• [철학] '진정한 믿음'은 존재하는가?2011.06.04 PM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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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0장 29절의 내용은 이러하다.

'그러자 예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

즉,경험론에 의존하여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행동을 하지 말고 무의식적으로 (신의 존재를) 믿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종교나 믿음은 자연과학의 영역 밖에 있는 개념이다. 그래서 종교나 믿음의 대상이 존재하는지 아닌지에 대해 밝히려는 노력은 무모한 일이 되기 쉽다. 한 마디로 비(非)존재를 증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답이 없는 문제이긴 하지만 가끔씩 나는 저 성경 구절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왜냐하면, 종교적 '믿음(신앙)'은 이유있는 믿음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귀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두 사람을 생각해보자. 이들에게 '귀신은 밤에만 나타난다'는 한 가지 명제를 주고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 보면 일반적으로 믿지 않는 사람의 경우엔 "귀신은 밤에 나타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귀신을 믿는 사람의 경우엔 다양한 변수가 존재한다. "귀신이 활동하기 좋은 영적 에너지가 충만한 시간이 밤이기 때문에 귀신은 밤에 움직인다." 혹은 " 귀신은 태양을 싫어한다." 는 등의 이유로 귀신이 어떤 존재이며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지에 대해 마치 그것을 경험한 것처럼 설명해야 한다.

종교나 민간신앙의 대상들은 예를 든 것과 같이 대상에 대한 경험론적인 고찰과 존재 이유에 대한 약간의 논증, 그리고 다양한 상징 등으로 가시적 효과를 강조한다. 게다가 '보지 않고도 믿는 것'을 강조하는 대부분의 종교는 강조한 말과는 모순적으로 교리나 경전을 가지고 믿음을 설파한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철학의 문제는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 언어 때문에 발생한다'고 말하며 언어의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그 역시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현실의 한계와 유사한 점이 상당히 많아 보인다.

결국 현실 종교는 실제로 겪지 못한 것을 자신이 겪은 것처럼 남에게 전달하는 과정-예를 들어 개신교의 간증이나 카톨릭의 성령안수 및 퇴마-에서 '보지 않고도 믿는 것'을 포기한 것이 아닐까?
댓글 : 4 개
  • 949N
  • 2011/06/04 PM 06:30
종종 이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인간은 본디 종교적인 존재]

종교적인 존재라고 적으니 뭔가 잘못 읽힐 것 같아 부연해봅니다.

인간은 거대한 무언가 혹은 감내할 수 없는 현상에 놀람과 두려움 그리고 신비를 느끼며 그것 앞에서 겸허해지는 감정을 갖는 것이 공통된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구석기 시대의 조상이 그러했고, 철기시대의 인간이 그러했고, 현대의 인간 또한 여전히 그러하지요.

그런 일종의 방향성-종교적인 방향성은 본능적으로 기저에 존재한다 봅니다. 다만 애니미즘처럼 그 방향성의 끝에 자연에 대한 경외를 놓을 지, 혹은 크리스트교처럼 예수나 신과 같은 인격신을 놓을지, 혹은 아인슈타인과 같은 과학자들처럼 자연의 법칙을 놓을 지가 문제란 생각이 들더군요.

여하간 사람들은 종교적인 방향성을 갖고 있다 보이고, 현대의 기독교 등의 종교는 분명 박복하고 갑갑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하루하루를 견딜 안정제와 같다고, 그래서 그런 부분에선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긴 듭니다.

허나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견딜 힘을 주는 것에서 벗어나 사람들을 조종하여 이익을 갈취하는 짓을 저지르는 한국의 거대교회를 보고 있으면, 면죄부를 팔던 그 시절의 카톨릭과 비슷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종종 이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인간은 사우나의 노예]

사우나의 노예로서 인간과의 약속을 잊게 되는데 뭔가 잘못 이해하실거 같아 부연해봅니다.

그딴거 없고 우왕굳ㅋㅋㅋㅋㅋㅋㅋㅋ
1. 귀신의 예에서- 귀신의 존재를 믿는자에게 귀신에 대한 구체적인 것까지 인식해야할 의무는 없다고 봅니다. 실제하는 것에 대한 믿음에 있어서도 우리가 믿는 대상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건 아니니까요 (예: 태양이 존재함을 믿는 사람들 모두가 태양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는 건 아님)

2. 과학적 지식 또한 귀납법을 통한 추론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기에 종교적 진리의 증명이 불가하듯 과학의 절대적인 증명 역시 불가능하며(러셀의 칠면조) 따라서 우리에겐 어느정도 과학에 대한 막연한 믿음이 존재한다고 봅니다. 과학이나 종교에 대해서 우리가 논할 수 있는 건 그 체계에 모순이 있느냐, 반증이 있느냐일 뿐이며 어느정도 주관적인 판단하에 보다 마음에 와닫는 쪽에 믿음을 둘 뿐입니다. 체계 모순 여부에 있어서 종교가 과학보다 조금 편한 입장에 있다면 그 이유는 종교는 신의 권능으로 모든 모순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 이겠지요...

3.'교리나 경전으로 믿음을 설파하는 것'이 '보지도 않고 믿을 것'과 상충되는것 같진 않습니다. 경전의 의미는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요소나 텍스트가 아니라 텍스트가 나타내는 내용에 있기 때문이죠...

4.종교 활동에서 신의 존재를 보여주는 과정이 있다해서 '보지 않고도 믿는 것을 포기한게 아닐까'-라는 결론을 이끌어낸 것엔 약간 비약이 있다고 봅니다. 신의 존재를 보여주는 과정을 '보여 줌으로 믿게함'이 아니라 '믿는 무언가를 보여줌'으로 해석하면 '보지 않고 믿게함'과 상충되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요.
과학이라는게 왜 있습니까? 보이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무릇
기독교에서는 과학을 이전에는 이단으로 보고 오직 예수님만이 진리고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 되다 했습니다 이런게 이게 미친게 그걸 믿으라고 강요하는 사람이나 그걸또 순진하게 믿는 사람이나 둘다 미쳤다고 생각이 듭니다
과학은 최소한 지구의 존재나 우주의 대해서 직접 가보진 않았지만 실험이나 기계조작으로 증명하고 믿으라고 합니다 믿음은 보이는게 믿음이고 눈앞에 있는게
믿음라고 생각듭니다 사람이 자기 1분 1초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존재인데
보이지 않는 걸 믿으라니 신은 너무 인간을 과대평가 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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