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러 리뷰] 부산행 리뷰- 장르영화 역을 출발해 대중영화의 역에 내리다.2016.07.25 PM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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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TRAIN TO BUSAN, 2016)― 장르영화 역을 출발해 대중영화의 역에 내리다.
 

척박한 애니메이션 불모지에서 여러 차례 장, 단편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해왔던 연상호 감독이 첫 실사 영화입니다. 이야기의 강도가 세고 관객에게 불편함을 줄 정도로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연상호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가히 애니메이션계의 나홍진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그런 감독이 좀비 물에 도전합니다. 한국에서는 <이웃집 좀비>같은 독립 영화를 제외하고는 사실 좀비 영화는 많지 않았습니다. <무서운 이야기> 같은 호러 옴니버스 영화 시리즈에도 좀비 소재의 작품이 있긴 했었고 <연가시>도 넓은 의미로는 좀비 물과 비슷한 재난 영화였지만 장르 적으로 이렇게 본격적인 상업 장르 영화는 사실상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연상호 식 좀비 영화라 끝을 보는 좀비 영화가 아닐까 예상하는 사람이 꽤 많았죠. 그런데 의외로 전혀 다른 결과물을 보게 되었습니다. 극단적으로 사회의 암부를 끌어내거나 끝을 보는 장르적 쾌감보다는 적절한 강도의 서스펜스를 보여주는 가족 영화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월드워Z>를 벤치마킹 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비슷한 이미지를 풍깁니다. 일반적으로 좀비 영화는 잔인한 묘사와 이야기로 인해 성인 등급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부산행><월드워Z>처럼 잔혹함을 거세시켜 낮은 등급을 받게 하고 거기에 부성애를 강조하는 가족 영화를 녹아내게 한 점 역시 비슷합니다. <인터스텔라>가 과학적신 소재를 활용한 SF 장르에 부성애를 녹여내 대중적인 장르 영화가 된 것과도 비슷하죠. 재난 영화의 형식이라는 점과 소원했던 딸과의 사이를 좁히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우주전쟁>도 떠오릅니다. 사실 비슷한 소재의 장르 영화는 수도 없이 많고 가족애는 만국 공통의 소재이기 때문에 흥행을 위한 영리한 선택입니다.

 

때문에 B급의 정서도 찾기 힘들고 연상호 특유의 극단성도 보이지 않습니다. 등급이 낮기 때문에 잔인한 묘사도 보기 힘들고요. 기획 단계에서부터 노골적인 대중 상업 영화를 지양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연상호가 이런 대중적인 각본을 연출할 줄은 상상도 못했기에 도리어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대신 프리퀄인 애니메이션 <서울역>에서는 연상호의 특성이 제대로 느껴지게 되겠죠.

 

이와 같은 점은 캐릭터에서도 그대로 들어납니다. 공유나 마동석이 맡은 역들은 연상호에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정형화되고 선한 인물들입니다. 추악한 내면을 가진 인물들이 넘치는 연상호 월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인물이죠, <내부자들>의 이강희 논설주간이 대중을 개, 돼지로 부르는 것처럼 <돼지의 왕> 교실에서 인물들은 전부 돼지와 같죠. <사이비>의 주인공은 정의를 실현하는 인물 같지만 그 역시 폭력적이고 선하다고 보기 힘든 인물입니다. 그에 비해 <부산행>의 캐릭터들은 평범하고 우리가 여러 작품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인물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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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에서 가장 매력이 넘치는 마동석의 캐릭터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나 어울리는 옷을 입고 있기에 우리가 간과하기 쉽지만 거칠고 터프한 남자 같지만 속으로는 정 많고 가족을 위하는 인물상은 영화, 서브컬처 전반에 흔하도록 많습니다. 애초 마동석은 그런 연기만 여럿만 했을 정도로 전문 연기자고요. 김의성이 맡은 악역도 그렇습니다. 정말 발암을 일으킬 정도로 얄밉고 이기적인 짓만 골라서 합니다. 마치 악역이라면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행동하죠. 배우의 연기와 마스크가 배역도 매우 잘 어울리는 것이 참 감독이 노골적으로 캐릭터를 배치했다고 생각이 듭니다. 애니메이션을 했던 감독이기 때문일까요? 전반적인 외모나 생김새도 그렇고 연기한 역들이 만화를 찢고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이러한 설정들은 장점이 되기도 하고 단점이 됩니다. 익숙한 설정과 그에 따른 보편적 이야기는 대중적 공감을 일으키고 이는 천만을 노리는 영화로서는 필수 불가결 같은 요소가 됩니다. <명량><국제시장>도 그런 캐릭터와 이야기를 통해 흥행 영화가 되었기도 하고요. 좀비라는 장르 영화로 천만 흥행에 성공한다면 대한민국 영화사에 있어서 커다란 족적을 남기게 되겠죠. 이는 장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요소에 후반부에 최루성 연출이 더해지면서 소위 말하는 신파가 등장합니다. 이는 단점이죠. 연상호 감독의 기존의 작품이 높은 완성도임에도 스타일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것은 아무래도 이미지나 이야기가 과잉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김기덕과 나홍진을 더한 것 같은 불쾌함. 게다가 연출력과 묘사가 뛰어나 불편함이 과중되는 거기에 매직 리얼리즘까지 더해져 무거운 작품에 내성이 없는 분들은 정신소모가 극심한 작품들이죠. <사이비>는 좀 그런 면이 덜해지고 좀 더 극의 짜임새가 올라갔지만 여전히 버텨내기 힘든 지점들이 있습니다. 근데 이런 면모는 사라지고 도리어 가족애 장면에 억지로 쥐어짜낼 것 같은 감동 신을 조금 과하게 넣는 것을 보고 이 감독은 뭘 하더라도 표현이 강하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하지만 재밌게도 영화를 살려내는 것 역시 캐릭터입니다. 과하니까 미워할 수밖에 없는 악역인 김의성은 마지막까지도 신스틸러 역할을 잘 수행해내죠. 개인적으로는 김의성이 맡은 배역의 악행을 나눌 조연이 하나 더 있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가 해낸 악역이 인상적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공유 역시 이 영화가 이정표가 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바의 역할을 잘 수행해냈습니다. 오히려 배우로서의 이미지 소모가 많은 <월드워Z>의 브래드 피트나 <우주전쟁>의 톰 크루즈보다 공유의 배역은 더 인상적입니다. 김명민 같은 연기파 배우를 쓰는 것은 어땠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는 이미 <연가시>에서 비슷한 역을 한 전례가 있고 설경구, 황정민처럼 거대한 배우보다 영화판에서는 비교적 소모가 덜한 공유가 적절했던 배역으로 느껴졌습니다. 나이도 비교적 맞고요. 대중적인 기획에도 어울리는 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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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영화를 보신 분은 결국 한 인물을 기억하게 될 겁니다. 바로 마동석입니다. 개봉 전부터 크게 이슈가 되었고 모두 그의 역할을 예상했을 겁니다. 예상과 한 치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 영화의 최고 매력적인 부분은 바로 마동석이 이끌고 있습니다. 극의 지분 중 60%는 그의 공입니다. 실제로 마동석이 빠지니 액션 서스펜스가 줄고 신파가 과해지더군요. 그는 그가 맡은 역을 120% 소화해냈고 설득력을 자아냅니다. 그는 무기 하나 안 들고 주먹만 싸매고 있었을 뿐인데 그가 앞에 서있는 순간은 관객까지 안심하게 됩니다. 가히 존재감만으로 그런 설득력을 표현할 배우가 몇이나 될까요. 또한 그의 무시무시한 팔뚝과 체구가 주는 액션장면이 인상적인 것은 이 영화가 좀비 영화의 레퍼런스인 총, , 마셰티, 전기톱 같은 가학적 무기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 다는 점입니다. 그냥 야구배트, 진압봉, 방패정도죠. 거의 맨 몸뚱어리로 싸우는데 기존 좀비 영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정체성이 이런 데서 뿜어져 나옵니다. 거기에 좁은 공간이 더해지니 쾌감이 더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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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라는 공간과 호차를 이동하는 장면이 많기 때문에 <설국열차>와의 비교는 피할 수 없겠습니다. 전작 <사이비>에서 얼마 되지도 않은 액션 시퀀스에서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던 연상호 감독이니 만큼 확실히 열차의 공간과 기물들을 활용하는 장면들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공간과 액션 장면의 활용에 있어서 <설국열차>에서 느끼지 못했던 폭력의 미학이 느껴집니다. 수위가 높지 않아 고어, 슬래셔, 스플래터 무비의 맛은 전혀 느낄 수 없지만 마동석이 좀비를 집어 던지고 두드려 패는 모습은 마치 어벤저스의 헐크에서 느끼던 쾌감과 비슷합니다. 좀비 영화에서 헐크를 만났어요!

 

 

다만, 10대를 연기한 소희나 최우식이 맡은 롤은 극에 집중도를 떨어뜨리기도 하고 두 할머니에 대한 묘사도 심정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섬세함과 현실감이 조금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정유미의 경우는 연기는 좋았지만 그녀의 역할도 너무 80-90년대의 뻔한 여성상이 아니었나 싶고요. 21세기의 좀비 영화에는 많은 여자 배역이 처절하게 좀비와 투쟁을 벌이니까요. 구하러 오라고 전화하는 역할보다는 뱃속의 아이와 맡겨진 아이를 지키기 위해 조금 더 강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줬다면 좋았을 텐데요. 아역 배우인 김수안도 나쁘진 않지만 캐릭터도 대사도 너무 익숙한 아버지와 소원한 딸의 그것이더군요. 뻔한 역으로 인상적인 캐릭터 연기를 하기에 저 어린 배우들은 연륜이 조금 부족해보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연상호 영화의 장점 중 하나인 날카로운 시선은 살아 있습니다. 대중 영화의 영역에서도 감독 특유의 사회비판적 시선과 부조리에 대한 묘사는 극의 전반에서 표현됩니다. 좀비 떼를 폭력시위로 묘사하는 정부와 그것을 그대로 받아 적는 미디어,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하는 무능한 국가, 사회전반을 움직이는 거대한 자본의 폐해, 인간의 극단적 이기심을 다루는 부분은 사회에 대한 풍자로 시작된 좀비 영화의 현지화를 제대로 해낸 느낌이 들죠. 또한 애니메이션 감독 출신답게 이미지를 통한 은유 또한 많습니다. 의상, 군인들, 유리와 거울의 이미지 등 곱씹을 장면이 많죠.

 

 

장편 애니메이션 <서울역>과 동시에 기획되었고 먼저 제작된 서울역의 이후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입니다. 이후 개봉되는 <서울역>은 이 작품의 프리퀄에 해당하게 되겠죠. 연관되는 배우가 카메오로 등장하기도 하고 영화에서는 맥거핀으로 소비되는 노숙자의 이야기도 알 수 있겠죠. 감독이 대중적 선택으로 참았던 강렬한 이야기와 참혹한 묘사를 마음껏 행했을 것이기에 <부산행>보다도 기대가 되는 이도 많을 겁니다.

 

 

단평: 지옥 같은 연상호 월드에서도 부성애는 피어나네. 3.5/5


 


 


댓글 : 6 개
신파만 좀 줄어도 평점이 더올라갈 구성. 뭐 그래도 대중성과 어느정도 협의점을 맞췄다는 것에서 의의를 둬야겠지요.
맞아요. 어차피 서울역이 이어 개봉하니 좀 더 다수가 볼 수있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에 의의를 둬야죠.
  • 141
  • 2016/07/25 PM 09:33
영화의 속도감만큼은 정말 좋았어요
서울역은 어떻게 나왔을지 너무 기대됩니다.
별 기대없이 봤는데 완전 재미있게 봤고 서울역도 기대가 됩니다.
기대하고 봤는데도 참 재밌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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