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러 리뷰] 더 마블스의 감독 니아 다코스타의 전작 호러 영화 캔디맨을 봤습니다. (일부 스포)2023.06.01 PM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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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마블스의 감독 니아 다코스타의 전작 호러 영화 캔디맨을 봤습니다. (일부 스포)



각 잡고 분석한 거라 글이 깁니다. 긴 글은 안 읽으시는 분들을 위해 끝에 스포없는 요약본을 넣었습니다.


이 글은 <캔디맨> 1편과 2021년작 <캔디맨>에 대한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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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1993년에 나온 <캔디맨>을 꽤 좋아합니다. 클라이브 바커 원작과는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고 하는데, 원작 소설은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영화판이 맘에 들었거든요.

인종차별이 아직 만연한 90년대 초반에 흑인을 공포의 대상으로 그리는 건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겁니다. 인종 혐오를 공포로 삼는 방식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악, 흑인이다! 무서워!

농담 같지만, 21세기 지금도 미국 사회는 저렇다고 하죠. 흑인 여럿이 어두운 골목에 모여있으면 사람들은 피하고 경찰은 총부터 꺼낸다고 하니까요.

그래서 90년대는 흑인을 쉽게 빌런으로 캐스팅하지 못했습니다. 마치 지금도 타잔에는 흑인을 캐스팅하지 못할 거라는 농담이 나오는 것처럼요.

하지만 <캔디맨>은 그걸 해냈고 그것뿐만 아니라 거기에 인종 혐오에 대한 서사까지 그럴싸하게 부여했습니다. 현재의 인어공주가 해내지 못한 걸 이미 93년에 <캔디맨> 해냈었단 말이죠.

게다가 호러 영화의 장르적 재미나 비주얼, 컬트적인 요소도 잘 살린 영화였습니다.

특히 흑인이 백인과 사랑에 빠졌다가 처참하게 살해당했다는 이야기의 기원은 참 맘에 들었습니다. 둘의 사랑은 차별 없는 사회를 상징하는 거고 그것이 가장 처참하게 무너진 것이 캔디맨의 근원이라는 말이니까요.


좋은 작품의 후속편은 좋게 나오기 힘들지요. 특히 호러 영화들은 속편은 곧 프랜차이즈의 무덤입니다. 잘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캔디맨>의 후속작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캔디맨>은 1편 이후의 작품들을 다 없던 걸로 치고 1편에 이은 속편으로 다시 제작된 영화입니다.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나 <할로윈>과 비슷한 사례죠.

니아 다코스타는 89년생의 젊은 감독입니다. 개인적으로 감독의 성별이나 인종을 거론하는 건 좋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외부요인을 얘기하지 않을 수는 없겠죠. 흑인 여성 감독입니다. 그리고 <캔디맨>은 흑인 영화의 아이콘 중 하나니까요.

전작의 주인공은 백인 여성이었지만, 이번에는 주인공이 흑인 남성입니다. 흑인 여성 감독이 흑인 남자 주인공으로 <캔디맨>을 만든다. 그것도 각본은 조던 필. 영화를 보기 전부터 영화가 어떻게 흐를지 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영화의 첫 인상은 생각보다 연출이 젊고, 세련되어 보인다는 점입니다. 미쟝센이 괜찮아요. 특히 건축물을 다양한 방식으로 촬영해 인상적인 장면을 여럿 보여줍니다. 젊은 감독의 야심이 느껴지더군요.

전작은 흑인 빈민가와 부유한 백인들의 거주지를 대비시킨 영리한 공간의 배치를 보여줬는데요. 좀 더 사회적으로 위치가 상승한 흑인들을 보여줌과 동시에 건축물을 활용한 시각적 실험을 더 중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상징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라 미술, 시각적인 쾌감에도 꽤 공을 들였다는 거죠.

1편은 흑인의 거리 문화 중 하나인 그라피티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의 주인공은 화가입니다. 서브컬처나 거리 예술가가 아닌 서양화 화가라는 점은 과거 시대에 비해 신분이 상승한 흑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자신들도 엘리트 문화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흑인들의 열망이 어느 정도 실현된 모습입니다. 이런 설정이 나쁘지 않은 것은 공포 영화라는 소재와 현대 미술과의 조합이 좋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거울이라는 요소를 미술과 결합해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건축물, 미술, 거울 등의 재료들로 영화는 고급스러운 미장센을 계속 유지합니다.

전작의 장점들을 더 극한으로 발휘한 느낌이 들어요.

비주얼만 괜찮은가? 그렇지 않습니다. 조던 필의 각본은 확실히 좋아요. 그는 이야기 메시지를 담는 부분은 탁월합니다. 하물며 흑인 차별을 작품에 녹여내는 데는 도가 튼 양반이죠.

예술인의 광증이라는 요소가 캔디맨이라는 소재와 매우 잘 맞습니다. 조던 필은 <놉>에서도 그랬지만,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고 그걸 호러라는 요소에 잘 결부시키는 것 같아요. 이번 작품에서도 다양한 상징과 은유가 곳곳에 있습니다.

전작이 백인의 시선에서 본 흑인 문화와 차별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순수하게 흑인의 눈에서 보고 그린 작품입니다. 아주 작품 전체에서 조던 필의 향취가 짙게 나요. 그의 연출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입니다. 감독보다 조던 필의 냄새가 더 강한 작품입니다.

1편에 대한 존중도 크게 느껴집니다. 조던 필은 정말 영화를 사랑하는 시네필입니다. <놉>에서도 다양한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오마주와 존경을 표하죠. 조던 필이 <캔디맨>을 좋아하고 존중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만, 근본이 되는 원작 소설인 클라이브 바커의 요소는 거의 안 남은 게 아니냐는 느낌도 들었어요. 물론 원작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이 부분은 확언하긴 힘들겠네요.

이 영화는 블룸하우스처럼 올드 스쿨의 고전적인 스타일의 호러 영화는 아닙니다. 피터 잭슨, 샘 레이미, 제임스 건 같은 B급 스플래터 스타일은 더더욱 아니고요. 장르보다는 작가주의적인 면모가 더 강조된 영화입니다. 오히려 무섭다기보단 깊이나 신선함에 중점을 둔 A24의 호러 영화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물론 <유전> 만큼 사람을 끝까지 몰아가는 오컬트 영화는 아니고 <미드소마>나 <로우(RAW)> 같은 난해한 영화도 아닙니다. <램(Lamb>이나 <더 위치>처럼 호러를 가장한 다른 무언가도 아니고요.

전작 <캔디맨>이 그랬던 것처럼 고어 영화고 잔혹합니다. B급 정서나 장르적인 재미는 많지 않지만, 적어도 호러 영화로서의 형태는 잘 유지합니다. 여느 조던 필 영화처럼요.

분명 잔인하고 꺼림직한 부분이 있어요. 다만, 감독이 공포 연출에 빼어난 것 같지는 않은 것 같아요. 오히려 주제를 내포하는 재료로서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느낌입니다. 이런 면에서도 A24 영화랑도 비슷하죠. <캔디맨>의 주제는 알기 쉽지만요.

시네필에게는 분명 흥미로운 지점이 많이 있습니다. 영화적 완성도도 나쁘지 않지만, 연출 전반에 흥미로운 지점이 많아요.

장르적 재미가 덜하다고 평가하시는 분도 있으실 겁니다.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를 싫어하시는 분도 있을 거고요. 그냥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B급 영화를 원했다면 이 영화는 안 맞을 거예요.

호러 영화에 무슨 메시지냐고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건 장르에 대한 오해입니다. 호러는 의외로 정치적인 장르입니다. <불신지옥>은 사이비 종교와 신앙에 대해 말하고 있고 <기담>은 일본 강점기를 다루고 있죠. 대부분의 좀비 영화는 재난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그리고 있고요.

사실 주제 없는 영화는 없습니다. 블록버스터 영화에 그딴 게 어디 있느냐고 말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요.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는 자유와 통제 그리고 우정에 대해서 말하고 있고, <터미네이터>와 <매트릭스>는 산업혁명 시대부터 내려온 기술의 발전이 오히려 인간을 대체하는 상황을 은유하고 있습니다.

저렇게 깊은 사유를 담지 않더라도 대게 ‘권선징악’이나 ‘가족애’ 같은 걸 다루죠. 이런 것이 바로 주제거든요. 주제나 메시지 자체가 완성도의 기준을 정하지 않습니다. 그걸 잘 표현해야 좋은 영화가 되는 거죠. ‘가족애’를 JK필름처럼 다루면 신파영화가 되지만, 제임스 건 방식으로 다루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되는 거거든요.

이게 꼭 정답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보통 영화학에선 클라이맥스를 통해 주제를 얼마나 잘 표현하여 결말에 도달하는가가 영화를 잘 만드는 척도라고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라면 <캔디맨>은 꽤 잘 만든 영화에요.

이 영화의 백미는 원작이 그랬던 것처럼 캔디맨이 벌인 범죄를 피해자가 뒤집어쓰는 부분입니다. ‘백인’ 경찰이 피가 떡칠된 두 명의 ‘흑인’을 발견했을 때, 그것도 한 사람은 손에 갈고리를 끼고 있다면 어떨까요? 영화는 굉장히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고 실제로 있을 법한 일이기에 상당한 핍진성을 보여줍니다. 상당히 영리한 각본이에요.


하지만 완벽한 영화라고 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확실히 장르적 재미는 덜해요. 플롯 자체도 익숙합니다. 이미 백 년 전에 나온 호러 소설 <인스머스의 그림자>의 플롯과도 크게 다른 것 같지도 않아요. 전작의 흑인과 백인의 안타까운 사랑 같은 요소도 없습니다. 이건 마치 모두를 아우르는 영화라기보다는 영화의 정체성이 흑인 영화에 가깝다는 얘깁니다.

그럼 뭐 PC 영화네?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정치적 올바름 논란과는 거리가 있는 영화라고 보입니다. 애초에 정치적 올바름 운동은 메시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언어 사용에 차별적 요소를 배제하자는 거고 그것이 영화 캐스팅과 같은 영역으로 넓혀진 사례거든요.

애초에 혐오하자, 인종 차별은 정당해! 이런 주제를 가진 영화는 나치의 프로파간다 영화 밖에 없잖아요? 이 영화는 주제가 인종 차별을 다룬 거지, 일부러 전작에 있는 캐릭터의 인종을 워싱했다거나 인종 비율이나 성비를 맞췄다거나, 캔디맨이 캔디우먼(…)이 되거나 하질 않았습니다. 게이 커플이 나오긴 합니다만, 그렇게 비중 있는 내용도 아니고요.

이 영화는 <블랙 팬서>처럼 흑인 영화에 가깝습니다. 일단 다인종 캐스팅도 아니고요. 동양인이나 히스패닉은 뭐 거의 나오질 않거든요. 백인도 몇몇 조연으로만 나오죠.

결론을 내자면 <캔디맨>은 호러 영화의 장르적 요소가 줄어든 건 아쉽지만, 흑인 영화로서의 정체성과 다양한 연출적 시도가 잘 어우러지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이 영화를 본 건 니아 다코스타가 <더 마블스>의 감독이기 때문입니다. 할리우드가 대형 프랜차이즈 영화를 찍을 때 저예산 장르 영화 출신 감독을 데려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영화를 보통 B급 영화라고 부르죠. 그중 호러 영화가 비중이 가장 큽니다. 예산으로 최선의 결과물을 가져오는 감독이 많으므로 고예산을 주면 잠재력이 폭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지의 제왕>의 피터 잭슨, <스파이더맨>의 샘 레이미, <블레이드2>와 <헬보이>의 기 예르모 델 토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제임스 건, <아쿠아 맨>과 <분노의 질주7>의 제임스 완, <플래시>의 안드레스 무시에티 등등 호러 영화 출신 블록버스터 감독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마블이 또 하나의 신인 호러 영화감독을 데려온 것이기 때문에 흥미가 돋았거든요. 전 <슬리더>를 엄청 재밌게 봤었기 때문에 제임스 건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감독한다고 했을 때 쾌재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우리가 아는 그 영화가 나왔죠. 그가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만들 때도 좋았습니다.

그래서 니아 다코스타의 영화를 보려고 했는데 그게 또 마침 제가 좋아하는 <캔디맨>이더군요.

전 니아 다코스타의 <캔디맨>를 만족하며 봤습니다. 그런데 <더 마블스>에 대해서는 크게 기대가 되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캔디맨>이 장르적인 재미를 주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샘 레이미나 제임스 건의 영화는 극단적이긴 해도 꽤 재미에 충실한 B급 영화들입니다.

그에 비해 니아 다코스타는 조던 필 스타일의 깊이를 중시하는 감독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이런 성향의 여성 흑인 감독이 하필 여성 서사의 작품에 다인종 캐스팅을 해 시작부터 반PC주의자에게 미움받고 시작하는 <더 마블스>를 연출한다는 건 마블이 노골적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싶어 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미즈 마블>을 다 봤고 꽤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만, 슈퍼 히어로물로서는 재미가 떨어진다고도 생각합니다. 사실 실패한 기획이었죠.

<더 마블스>도 그런 작품이 되지 않겠느냐는 불안한 마음이 드는군요. 액션 영화의 본질은 액션입니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가 훌륭한 영화인 건 서사나 메시지뿐만 아니라 액션이 주는 쾌감이 상당하니까요. 아쉽게도 <캔디맨>는 액션이 거의 없어 감독의 액션 역량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과연 <더 마블스>와 제 디즈니 주식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영화가 좀 파고들 부분이 많아서 길어졌습니다. 읽기 귀찮으신 분들을 위해 요약해보겠습니다.


요약 : 영화는 썩 괜찮다. 다만, 장르 영화 색채는 옅고 주제의식이 강한 작가주의 영화다. 더 마블스가 이런 톤이면 영화 게시판은 인어공주 급 비난의 장이 될지도 모르겠다.


댓글 : 4 개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니아 다코스타라는 감독에 대해 알게되었네요!
  • Akani
  • 2023/06/01 PM 05:07
93년도에 나온 캔디맨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잘 읽었어요 :)
원작은 거울 괴담과 신분과 인종에 막힌 로미오와 줄리엣적 사랑을 베이스로 한 꽤 재미있는 작품이었는데 리메이크가 나온 줄도 모르고 있었네요
1편의 정식 후속작 느낌이라서 1편 보시고 연달아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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