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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 리뷰] 파묘 리뷰. 2024.02.23 AM 02:22
(스포있는 부분은 후반부에 따로 분리해놨습니다.)
장재현 감독의 세 번째 작품입니다. <파묘>.
한 감독이 특정 장르에 특출난 모습을 보여주는 건 팬에게는 아주 감사한 일입니다. 그것도 단순히 호러라는 장르의 큰 틀이 아니라, 오컬트라는 핀셋으로 집은 듯한 세부 특성을 보여주는 일은 흔하지 않죠. 저 같이 오컬트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보물 같은 감독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실망을 주지 않더군요.
풍수지리와 무속 신앙의 조합은 보기 드문 소재고, 이렇게 한국적인 오컬트 영화는 정말 귀합니다. 당연하지만,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만들어 주지 않을테니까요.
감독의 전작들이 보여줬던 다른 문화와 다른 종교가 상생하는 모습은 이번 작품에도 그대로 반영됩니다. 경쟁하기 보다는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이죠. 풍수사와 무속인, 그리고 집사님인 장의사가 함께하는 모습은 마치 종교인 어벤져스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영화 전반부는 참으로 불길했습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불길함은 단어의 뜻대로 무서움이나 긴장감과는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죠. 관객을 놀라게 하지도 않고 잔인하거나 대놓고 공포를 유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실인양 담담히 보여주죠.
다시 말하지만, 영화는 정말 불길합니다. 땅을 파고 관을 옮기고, 사건을 겪은 후 이야기가 끝나갈 때 전 영화가 끝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생각보다 영화가 짧구나, 하지만 좋았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영화는 겨우 절반만 지났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아예 장르가 변주하는 것이죠. 그리고 영화는 전혀 다른 얘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야심차고 민족적인 이야기를 다루게 됩니다. 개인의 이야기가 민족의 이야기로 변주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의 주인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것이죠.
생각보다 화려하고 거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후반부는 분명 관객의 호불호를 이끌어낼 것입니다.
어려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불길한 묫자리를 파헤쳤고, 그 곳에서 무언가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무섭고 악의적인 존재지만,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누가 언제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것을 그 장소에 묻었는가? 그리고 그 미스터리가 풀릴 때 우리는 생각보다 익숙하고 낯익은 이야기에 도달하게 되죠.
<사바하>처럼 미스터리를 다루면서도 <검은 사제들>처럼 거대한 적과 대적하죠. <사바하>처럼 종교적 질문을 던지진 않습니다. 이 영화는 이 땅에 벌어졌던 험난한 과거를 다루는 영화니까요.
완벽한 영화는 아닙니다. <사바하>와 결이 많이 달라 직접적인 비교는 힘들겠지만, 결론은 비슷합니다. 장르적으로 잘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대사가 세련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때론 촌스러운 대사도 보여요. 하지만 수준급인 외국어 대사를 보고 있자면 감독이 얼마나 철저히 준비했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장르의 변주는 사실 도박입니다. 가뜩이나 타겟층이 좁은 장르를 다시 두 갈래로 나누는 건 분명 실험적인 도전입니다. 오컬트 팬이라도 두 장르를 모두 좋아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불길한 귀신에 관한 오컬트에서 후반부의 애국적인 크리처물의 느낌까지 취향에 맞는다면 정말 종합선물세트 같은 장르적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장재현 감독의 영화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는 시작과 끝이 좋은 영화였습니다. <파묘> 역시 그렇습니다.
그 애국적 메시지가 다소 오그라들지 몰라도, 의도는 분명하게 보여지니까요.
한 줄 평 : 불길한 곳을 파헤쳐 나온 그것보다 악의가 느껴지는 건 누가 언제 그걸 왜 거기에 묻었느냐다. 4/5
이후로는 스포일러를 담고 있으니 아직 보시지 않은 분은 뒤로가기 버튼을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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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오프닝 시퀀스는 영화의 방향성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비행기에서의 첫 장면은 파묘를 다룬 영화의 시작으로 뜬금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장면은 이 영화의 후반부 내러티브와 한국인 관객의 정서를 그대로 담은 장면임을 영화가 끝난 시기에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요, 뜬금없게도 애국 영화입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우리나라 땅에 그들의 행했던 악의적인 저주를 풀어내는 영화입니다. 일제 시절 그들이 나라의 정기를 빼앗기 위해 쇠말뚝을 박았다던 이야기는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굳이 따지자면 허무맹랑한 도시괴담이지요.
하지만 오컬트는 원래부터 괴담입니다. 사실을 말하는 장르가 아니라, 기괴하고 어두운 이야기로 꾸며내는 것이죠. 일제의 수탈을 오컬트답게 풀어낸 것이죠.
친일파 귀신을 불태웠을 때 끝났어도 좋았을 겁니다. 하지만 영화는 더 나아가죠. 마치 캡틴 아메리카가 하이드라와 싸우듯이 이 영화는 독립 운동가의 이름을 빌린 풍수 무속인 어벤져스가 외세의 침략에 대응합니다.
적을 여우의 피를 물려받은 음양사와 바다 건너온 일본의 요괴와 연관시킨 것은 정말 독특한 시도였습니다. <파묘>가 일본 요괴를 퇴치하는 영화일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우리나라 풍수와 무속신앙이 일본의 주술과 싸우는 것은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소재죠.
감독은 정말 놀라운 수준으로 적에 대해 연구한 티가 납니다. 일본의 음양사 관련 서브컬쳐를 많이 조사한 티가 나더군요.
키츠네라는 이름의 스님은 여우의 피를 물려받았다는 일본의 음양사 아메노 세이메이를 연상시킵니다. 요괴 쇼군의 정체는 세키가하라 전투의 죽은 사무라이입니다. 세키가하라 전투는 임진왜란 직후에 벌어진 일본의 내전이고 그 전쟁에 참여한 이들의 상당수는 우리나라를 수탈했던 왜장들입니다.
설정 맛집이라고 볼 수 있죠.
무엇보다 한 많은 한반도의 귀신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를 공격하는 일본의 요괴는 풍기는 정서가 다르죠. 게다가 지독한 악의를 가진 적입니다. 넷플릭스의 <경성 크리처>를 이렇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비슷한 결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그 장르적 디테일과 영화적 완성도의 격차가 상당히 크네요.
이 영화를 보고나니 장재현 감독이 만드는 <퇴마록>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영화 이후 한동안은 이 영화를 뛰어넘을 오컬트 영화는 나오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를 더 잘 만들 수는 있겠지만, 이렇게까지 오컬트를 좋아하는 감독은 없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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