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잡담] 댓글 열심히 썼는데 원글삭이라니ㅠㅠ2020.07.11 AM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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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게에서 고 박원순 시장의 공과를 박정희나 조주빈과 비교하는 글을 보고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고 댓글을 써서 엔터를 눌렀는데

원글이 삭제됐네요ㅠㅠ

다행히 메모장에 쓰고 복-붙하던 습관이 있어 살렸습니다.

그냥 휴지통에 버리기엔 아까워 마이피에라도 남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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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잘잘못 갈리지 않고 모든 일에 잘한 사람, 또는 모든 일에 잘못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일생을 착하게 살았어도 말년에 잘못했으니 삶 전체가 무의미했다는 논리는

말년에 잘못했어도 일생을 착하게 살았으니 삶 전체가 의미있었다는 논리와도 다를 바 없으니

그 자체로 모순되죠.


어떠한 인물에 대한 평가를 내릴 때, 잘잘못을 비교하고 경중을 따지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그 과정을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면 악인을 옹호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으니

더욱 철저하게 따지고 들어가야죠.



예를 들어

일제시대의 한반도 근대화와 수탈을 공과로 두고 비교할 때

근대화는 수탈이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행해진 것이기에

'수탈과 별개로 이건 일제의 공으로 봐야한다'는 건 설득력이 없죠.

수탈의 목적 없이 온전히 선의로 근대화를 해준 게 아니니까요.


박정희의 경제발전과 그 부작용을 공과로 두고 비교할 때

그가 추진한 개발정책은 장면 정부에서, 그 자금은 미국과 일본에서 왔기에

오직 그의 주체적 행위만으로 이끌어낸 긍정적 결과는 없다고 볼 수 있으며

반면 그의 독단적 결정으로 인한 화폐개혁이나 중공업 및 대기업 중심 투자는 양극화와 지역갈등의 뿌리가 되었고

무엇보다 개인의 영욕을 위해 쿠데타를 일으키고 독재정권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국민들을 억압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부정적 영향이 압도적으로 크죠.

그러니 '독재와 별개로 경제발전은 박정희의 공으로 봐야한다'는 건 설득력이 떨어지죠.


조주빈 등 성범죄자나 살인범이 '성실하고 착한 사람'으로 살았던 것과 실제 범죄활동을 공과로 두고 비교할 때

그들에 대한 주변인의 평가는 '민폐 안 끼치니 착하다' 수준이지 '헌신적이고 전무후무한 족적을 남긴 사람'이 아니죠.

오히려 평범을 가장하기 위해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사람으로 평범하게 스펙 쌓고 학보사 활동도 하고,

크게 손해보지 않는 한 때로는 봉사활동같은 '선행'을 하기도 하죠. 그게 '보통사람'이니까요.

그런데 그들의 선행은 위장을 위한 것이니 손해 보면서까지 헌신적으로 꾸준하게 하지는 않죠.

그러니 '범죄행위와 별개로 그들의 착한(본질적으로는 '평범을 가장한') 삶은 공으로 봐야한다'는 건 설득력이 떨어지죠.



이렇게 악행의 수단이나 과정으로 선행을 하여 공과를 딱 나누기 애매한 사례와 달리


고 박원순 시장이 일생동안 걸어온 족적과 (고소내용이라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위계에 의한 성폭력을 공과로 두고 비교할 때

그가 서울 시장이기에 위계에 의한 성폭력이 이루어졌다고 폭넓게 해석한다 할지라도

서울 시장 취임 이전의 인권변호사, 시민사회운동가로서의 삶이

2017년 이후의 성폭력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나 과정, 또는 위장을 위한 '위선'이라고 볼 수 없고

또한 빚을 내면서까지 오랜 시간 다방면의 시민운동을 지원하는 등 그 헌신의 수준이 비범하기에

이런 경우는 공과를 구별하고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덮어씌우지 않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생각합니다.


물론 그의 언행이 불일치했다는 모순을 비판하거나,

죽음으로 도피하여 공소권을 소멸시킴으로써 사건의 실체를 흐지부지시켰다는 게 비겁하다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당장 저부터도 그의 일생에서 가장 큰 오점은

(고소내용이라 언론에 보도된) 성폭력이 아니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라 생각하니까요.



그러나 그의 일생이 말년의 잘못을 정당화할 수 없고, 없어야만 하듯이

그의 말년의 잘못이 일생의 족적을 부당화할 수 없고, 없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댓글 : 14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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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11 AM 04:02
글 잘 읽었습니다.
원 글이 어떤 글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충 상상은 가네요.
여전히 본받고 싶은 필력입니다 ㅎㅎ
  • =ONE=
  • 2020/07/11 PM 12:12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ㅎ
님 말대로면 국가경제발전에 이바지한 회장님들이 왜 맨날 풀려나는지 알겠네요
  • =ONE=
  • 2020/07/11 PM 12:41
...? 그 반대입니다.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면 악인을 옹호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경계한 게 바로 기업 회장 사면의 예입니다.
제 말대로면 국가경제발전에 이바지한 회장님들이 왜 맨날 풀려나는지 불만이 생겨야 하는데요.

기업 회장의 목표는 일신영달과 부귀영화죠.
(그걸 추구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권리마저 짖밟지 않는 한에서, 딱히 그게 나쁘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기업의 성장은 그걸 위한 수단이고, 국가경제발전은 그것의 부수적 결과죠.
게다가 (정확히 명시되지 않은) 기업 회장의 범죄행위가
개인의 부를 더 쌓기 위한 경제, 금융범죄라면
이는 전형적인 '공로를 수단으로 삼아 과오를 이루는' 경우죠.
따라서 '국가경제발전에 이바지했다'는 건 온전히 개별적인 공로가 될 수 없고,
이런 경우 공과를 따져서 사면하는 이유로는 부적절하다 생각합니다.

예외적 경우가 있다면, 말 그대로 사회적 소명의식을 지닌 워커홀릭이 인생 갈아가면서까지 일에 매진하다 대기업 CEO로 추대되었지만
막상 CEO 개인의 재산은 빈털터리를 넘어 마이너스라서 이득을 챙긴 게 없고 (업무 관련 추진비로 연봉에 사채까지 끌어다 쓰는 중)
CEO의 범죄행위가 기업의 활동과 무관한 개인적 차원의 범죄라면
이런 경우에는 공과를 따져야 하겠죠.
물론 부귀영화를 거부하는 기업 회장이 없으니 실제로 이런 사례를 본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공과를 따져야 한다'는 말이 '대충 좋은 게 좋은 거자너~'의 의미로 사용되는 게 대부분이었죠.
어쩌면 이번 경우가 지극히 이례적으로 '공과를 따져볼 수 있는' 경우라는 게 혼란을 가속화했다 생각합니다.
애초에 유죄추정을 깔고 가시네요
  • =ONE=
  • 2020/07/11 PM 12:48
댓글을 달았던 원글이 유죄를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는 논리여서
저는 '설령 유죄라 하더라도 이 경우에는 죄와 그의 2017년 이전의 행보를 별개로 두어 어느 한 편이 다른 편을 덮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어서
(고소내용이라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등의 단서를 붙여 말한 겁니다.

저는 고 박원순 시장이 유죄 혹은 무죄라 단정할 근거나 방법, 능력도 없거니와
그런 추측을 기정사실화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고, 또 그에 걸맞게 표현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죽음으로 덮어버린 무책임한 결정에 대해서는 그를 지극히 비판하고요.

이를 앞뒤 다 떼어내고 "유죄추정을 깔고" 간다고 하시면...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 DBKGE
  • 2020/07/11 AM 08:08
이런거면 이명박도 마찬가지임
  • =ONE=
  • 2020/07/11 PM 12:52
이명박은 박정희와 마찬가지로 봐야죠.
운 좋은 기회주의자. 박쥐의 인생. 도장 찍는 기계라도 할 수 있는 경제적 성장.
반면 일신영달과 사리사욕을 챙기는 데에서는 역대급 능력.
공익을 후퇴시켜 그런 사욕을 채우는 과오.
따라서 이명박의 경우는 박정희와 마찬가지로 경제적 성장을 경제적 사욕과 분리된 독립적인 공로로 볼 수 없으며
그렇기에 공과를 따져서 '잘한 것은 잘한 것'이라 말하기엔 설득력이 떨어진다 생각합니다.

이래도 이명박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신다면...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위선이라 볼 수 없는 건 님 판단이죠.. 끝까지 자기 이미지와 서울시장 타이틀 지키려고 자살한 시점에서 200% 위선이라고 전 생각합니다만.
  • =ONE=
  • 2020/07/11 PM 01:21
네. 동의합니다.
저도 위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죽음으로 도피하여 공소권을 소멸시킴으로써 사건의 실체를 흐지부지시켰다"는 게
그가 택한 최악의 방법이었고, 님이 말한 '위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2017년, 더 나아가 (고소내용이라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위계에 의한 성폭력에서의 '위계'인 서울 시장 취임 이전의
'인권변호사이자 시민사회운동가로서의 박원순'까지도 모두 위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근대적 법치가 자리잡으면서 연좌제가 없어졌듯이
말년의 잘못이 그 행위와 직간접적 연관이 없는, 사건 이전의 일생 전부를 부당화 할 수는 없다 생각합니다.
이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될테니 법적인 죄는 없다는
사람도있던데
그럼 김학의도 죄없는거죠
사실은 밝혀져야 합니다
  • =ONE=
  • 2020/07/11 PM 01:37
법적인 죄를 물을 수 없다
법적인 죄가 없다
죄가 없다

이 세 가지를 구별할 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어디부터 말을 꺼내야 할 지 모르겠더라구요ㅠ

다만 '사망으로 인한 공소권 없음'과 '검찰이 제식구 감싸기식 수사로 지지부진하게 시간을 끌어 공소시효를 넘어갔으므로 공소권 없음'을
같은 선상에 두고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성폭행 범죄자를 맘 편히 욕하던게 피해자에 연대하거나 피해자를 이해해서가 아니라 가해자에 대해 잘 몰라서 그랬던 것일 뿐이었다는 걸 열심히 고백하는 걸 보게 되네요. 가해자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면 공과 얘기, 좋은 사람 얘기 등등 계속 하는 거 보면.
  • =ONE=
  • 2020/07/11 PM 02:51
자신이 모르는 걸 어림짐작으로 판단하기보다 아는 것을 기초로 판단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합니다.

다만 기존의 악명높은 성범죄자들(이춘재, 조두순, 조주빈 등)에 대해 '평범하게 좋은 사람이었다'는 주변인의 평가는
그저 그들의 평범성만을 부각시킬 뿐, 딱히 그들이 아무나 할 수 없는 비범한 선행을 했다는 말은 아니죠.
그들이 범한 뚜렷하고 명백한 악행에 비해, 그저 티 나지 않고 평범하게 살았다는 수준의 '좋은 사람' 평가는
딱히 공과를 따로 보아야 한다기엔 설득력이 떨어지죠.

비슷하지만 사례가 좀 다른 이영학(=어금니아빠)의 경우에는
애틋한 부성애(비범한 선행)으로 유명세를 탔지만
알고보니 청소년기부터 성폭력을 일삼았고
이영학의 아내를 제외한 일가족 전부(이영학의 부친, 이영학의 딸)가 성적으로 어긋난 윤리관을 지녀
이영학의 성폭력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일려지면서
그간 알려진 어금니아빠로서의 일화가 위선으로 점철된 가면이었음이 밝혀졌죠.
따라서 이영학의 성폭력과 별개로 '어금니아빠'로서의 삶이 개별적이고 구분되어야할 공로라고 말하는 것 역시 적절치 않고요.

반면 고 박원순 시장의 경우는 그의 시장 취임 전 인권변호사이자 시민사회운동가로서의 행보가
(고소내용이라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고인의 성폭력과 인과적 관계도, 목적-수단으로서의 관계도, 악행을 선행으로 포장하는 관계도 아니며
그의 족적이 개인의 부귀영화를 등지고 공익을 위해 헌신하는 비범한 삶이었다는 점에서
여타 성범죄자들과 같은 선상에 두고 '악인은 악인, 악인의 삶은 악한 삶'이라 도매금으로 취급하는 건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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