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막 만들어지고 만물이 자리를 잡아가던 아득한 초고대 시절 이야기입니다. '동승신주'라는 땅 오래국 근처 바다 한가운데에 화과산이라는 영험한 산이 하나 있었는데요. 이 산 꼭대기에는 비주얼부터 압도적인 거대 바위 하나가 딱 버티고 있었습니다. 높이가 11미터에 둘레가 7미터였으니, 바위라기보다 거의 3층 빌딩 수준의 사이즈였죠.
그런데 이 바위는 보통 돌덩이가 아니었습니다. 수만 년 동안 하늘과 땅의 정기를 빨아들이며 기운을 축적하고 있었거든요. 낮에는 뜨거운 햇살을 받고 밤에는 은은한 달빛 아래서 내공을 다스린, 그야말로 우주의 정기를 풀옵션으로 장착한 에너지 덩어리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바위 내부의 기운이 임계점을 돌파하더니 쩍! 소리와 함께 알 모양의 돌덩이를 낳았습니다. 여기에 거센 바람이 한 번 슥 스치자 돌알이 반으로 쪼개지면서 돌원숭이, 즉 '석후' 한 마리가 세상 밖으로 툭 튀어나오게 됩니다.
이 원숭이 형님은 태생부터가 정말 남달랐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사방에 절을 한 번 딱 올렸는데, 갑자기 눈에서 황금색 서치라이트 같은 빛줄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구름을 뚫고 옥황상제가 사는 궁궐 천장까지 닿아버린 겁니다. 옥황상제도 보좌에서 쉬다가 "아니, 밑동네에 뭔 일이 났길래 누가 하이빔을 쏴?" 하고 놀라서 일어날 정도로 온 세상을 뒤흔든 화려한 데뷔였죠. 천리안과 순풍귀를 시켜 조사해 보니 "돌에서 태어난 원숭이가 기지개를 켜는 중입니다"라는 보고가 올라왔고, 상제는 어이가 없었지만 "천지의 정기를 타고났으니 그럴 수 있지" 하며 쿨하게 넘겼습니다. 하지만 이게 나중에 자기 궁궐을 다 때려 부술 대재앙의 서막인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겁니다.
그렇게 화과산의 분위기 메이커로 등극한 돌원숭이는 다른 원숭이들과 어울려 지내며, 아침에는 과일 서리하고 저녁에는 굴에서 잠드는 자유로운 삶을 만끽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원숭이들이 계곡에서 모여 놀다가 폭포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했습니다. 그때 한 놈이 공약을 걸었죠. "누구든 저 폭포를 뚫고 들어갔다가 멀쩡하게 나오면 우리가 왕으로 모신다, 인정?" 다들 세찬 물줄기가 무서워 쫄아 있을 때, 돌원숭이 형님이 "내가 간다!" 하며 눈을 질끈 감고 거침없이 몸을 날렸습니다.
그런데 폭포를 뚫고 들어가 보니 안쪽에 물 한 방울 안 튀는 럭셔리 동굴 저택 '수렴동'이 있는 게 아니겠어요? 가구와 살림살이까지 완벽하게 갖춰진 저택을 발견한 공로로 그는 수천 마리 원숭이들의 추대를 받게 됩니다. 드디어 '미후왕', 즉 '잘생긴 원숭이 왕'이라는 간지 나는 타이틀을 달고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이죠.
그렇게 수백 년 동안 화과산 대장 노릇을 하며 떵떵거리고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현타가 세게 왔습니다. 잔치를 하다가 늙어서 시름시름 앓는 동료들을 보니 "아, 나도 언젠가 저렇게 저승사자한테 끌려갈 텐데 이게 진짜 행복이 맞나?" 싶은 거였죠. 고민은 짧았고 실행은 빛보다 빨랐습니다. 그는 영생하는 법을 배우겠다며 뗏목 하나에 의지해 거친 바다로 나갔습니다.
인간 세상에 내려가 사람 옷을 뺏어 입고 저잣거리를 누비며 10년 넘게 개고생하며 떠돌았지만, '꺾이지 않는 마음' 하나로 버텼습니다. 마침내 그는 서쪽 영대방촌산 깊은 곳에서 전설의 1타 강사 수보리조사를 만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일개 원숭이 대장이 우주급 능력치의 '제천대성'으로 거듭나기 위한 첫 번째 퀘스트이자, 본격적인 모험의 시작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