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남 MY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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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낙서] 리트머스 하늘과 산성 불행 (0) 2015/01/10 PM 02:01
믿기지 않을 만큼 푸른 하늘이었다. 새하얀 도화지 위에 파란색을 칠하다 못해 아예 물감 통을 부어버린 것 같은 순수하게 푸른 하늘이었다. 제임스는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본 하와이의 바다가 이런 색이었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빨리 가야 할 텐데.”
제임스는 엑셀을 힘껏 밟았다. 그러자 차체가 덜컹거리며 가속감이 느껴졌다. 윌슨과 동갑인 이 고물 덩어리도 자신의 마음을 아는 지 있는 힘껏 달려주고 있다.
누나가 의식을 찾았다. 이 소식을 한시라도 빨리 조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럼 윌슨이 얼마나 기뻐할까? 아직 어린 캐시는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
제임스는 언제나 누나와 누나의 자식들을 안쓰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불행한 모자였다. 윌슨의 아버지 빌리는 밖에서는 평범한 회사원이었으나 집에서는 완전히 미치광이였다. 그는 매일같이 누나 캐서린을 폭행했는데 착해빠진 누나는 말 한마디 없이 언제나 그냥 맞기만 했다고 한다. 그렇게 10년이 흘렀고 매일 같이 누나를 때리던 빌리는 매일 같이 맞아주는 아내에게 더욱 화가 났는지 처음으로 맨손이 아닌 몽둥이를 썼다. 그리고 그 날, 누나 캐서린은 의식불명의 중태 상태가 되었다.
빌리는 덜컥 겁을 먹었는지 도망쳐버렸다. 제임스는 경찰이 먼저 그를 찾아내기 전에 자신이 먼저 빌리를 찾아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그 자식을 죽여 버리겠다고 생각했다.
차체가 심하게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제임스는 그제 서야 자신이 비포장도로에 진입했다는 것을 인식했다. 앞으로 옥수수농장까지 가려면 3시간은 쭉 밟아야 한다. 제임스는 남은 기름의 잔량을 확인 하고 혀를 찼다. 다행히 주변에는 제임스의 고물차를 제외한 다른 어떠한 것도 없었다. 저 멀리 보이는 지평선과 드물게 보이는 나무들 그리고 나무 가지 끝에 길게 걸려있는 그림자가 전부였다.
그 사건 후 조카 윌슨과 캐시는 제임스에게 맡겨졌다. 제임스는 조카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조카들의 상황은 놀랄 만큼 제임스와 캐서린의 어린 시절과 똑 닮아있었다. 제임스와 캐서린도 아버지의 폭행에 의해 어머니를 잃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형무소 밖의 세상을 보지 못했다. 조카와 똑같은 상황에 놓여봤기 때문에 제임스는 더욱 빌리에게 화가 났다.
또한 한번 도 믿어본 적 없던 하나님에게도 화가 났다.
왜 그 애들에게도 우리랑 똑같은 시련을 주는 것인지, 왜 이런 불행의 족쇄를 그 애들에게도 남겨주는 것인지.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조카들에게는 캐서린이 남아있었다. 착한 누나라면 그 애들을 훌륭히 키워낼 것이다. 그것은 확실하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살해한 후 당연히 캐서린과 제임스는 고아가 되었다. 그리고 남매는 시골에서 농사일을 하는 삼촌 댁에 맡겨졌다. 그리고 그 농장은 지금 제임스가 살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삼촌은 학업에 뜻이 없는 제임스에게는 농사 기술을 알려주었고 머리가 좋은 누나 캐서린에게는 학교를 계속 다니게 했다. 삼촌과 캐서린, 그리고 제임스. 셋이 함께 살 때가 제임스에게는 살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 중에 하나였다.

그리고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불행은 언제나 맑게 갠, 평범한 날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 날, 느닷없이 허리케인이 불어왔다. 제임스는 태어나서 그런 것은 처음 봤다. 아니 앞으로도 평생 볼일 없다고 생각했을 정도이다. 거대한 바람기둥은 모든 것을 집어 삼키고 가루로 만든 다음 뱉어냈다. 마치 큰 믹서기 같았다. 제임스는 그 허리케인을 보면서 우습게도 아기돼지 삼형제라는 동화가 생각났다. 늑대가 부는 콧바람에 첫째 돼지의 초가집도, 둘째 돼지의 통나무집도 흔적 없이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삼촌의 집은 통나무집이었다.
사실 창문너머로 허리케인이 보이는 순간은 이미 늦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삼촌은 제임스와 캐서린을 데리고 뛰쳐나왔다. 마구 달렸다. 그리고 삼촌은 날아오는 나무파편에 우리를 감싸다가 돌아가셨다.
날씨는 청아하게 맑았지만, 제임스는 어쩐지 계속해서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고철덩어리 애마를 더욱 재촉했다. 어쩐지 그 날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제임스의 눈에는 더 이상 날씨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가증스럽게 파란 막을 쓰고 있는 붉은 맹수와 같아 보였다. 분명 차창 너머로 비추는 햇볕은 따뜻하고 하늘은 파란 색종이처럼 새파랬지만 조금 있으면 분명히 구겨지고 찢긴 색종이처럼 위태위태해 보였다.
만약, 만약에…… 제임스와 캐서린에게 일어났던 일이 조카들에게 일어난 다면 제임스는 어떻게 할 것인가? 제임스는 괜히 하지 않아도 될 생각을 하고 있다고 머리를 털어내려고 했지만 이미 시작된 생각은 계속해서 쓰러지는 도미노처럼 멈출 수 없었다.
삼촌은 날아오는 나무파편에 남매를 지키기 위해 몸을 웅크려 우리를 감쌌다. 그렇게 한 참 시간이 지났고 제임스와 캐서린이 의식을 찾을 때 쯤 삼촌은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허리케인이 쓸고 간 회색 빛 하늘 아래에서 남매는 소리 내어 엉엉 울어댔다.
“내가 만약 그런 상황이라면…….”
제임스는 이를 딱딱 부딪혀가며 말을 쥐어짜냈다. 불안해서, 불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남매의 일생에 있어서 삼촌은 단 한명의 유일한 구원자였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까지 그의 생명을 바쳐서 남매를 지켜냈다.
그리고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제임스는……. 과연 삼촌처럼 그들을 지켜낼 수 있을까?
윌슨과 캐시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애들이 엄마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들으면 얼마나 좋아할까? 어머니가 살해당했을 때 3살이었던 제임스는 어머니가 자식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 지 잘 모른다. 하지만 가족이 없는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후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긴장했을 땐 항상 숨을 불어 넣어라. 그러면 마음이 차분해 진다.’ 살아있을 때 삼촌이 자주 하던 말이었다.
제임스는 마음을 굳혔다. 그가 만약 삼촌과 똑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제임스는 반드시 삼촌과 똑같이 행동하리라. 그렇게 다짐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불안했던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마음이 안정되었다. 눈앞의 태양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하늘은 아직 맑았다. 산성용액을 떨어트리지 않은 리트머스 용지처럼 푸른색이었다. 그 위에 누군가 불행을 떨어트려 붉게 물든다고 하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우리 때와는 다르다. 캐서린은 살아있다. 조카들은 어머니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는 두 조카의 행복을 지켜줄 것이다. 분명 지켜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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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소설 게시판에서 하고 있는 글쓰기 좋은 질문 2주차 소설입니다.

2주차 주제 : 폭풍으로 삼촌의 헛간이 무너지고 6살 난 조카가 죽었다. 그 폭풍이 몰아치기 전 하늘을 묘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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