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꿈을 언제 처음 꿨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학교를 다니기도 전이었던 것 같다.
꿈이라고 해 봤자 별다른 것은 없다. 불빛하나 없는 깜깜한 세상 나 혼자 쭈구려 앉아있는 것이 전부다. 그곳은 춥고, 배고프고, 쓸쓸한 곳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으려니 다리가 저려와 뒤를 돌아 봤을 때.
저 멀리 하얀 원이 보였다. 원……. 그렇게 밖에 표현을 못하겠다. 계기일식처럼 가운데가 뻥 뚫린 원이 저 멀리서 빛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완전한 동그라미는 아니다. 계란 같은 모양이라고 할까? 약간 위아래로 길쭉한 모양이었다.
추위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한 나는 나도 모르게 일어나서 그쪽으로 걷는다. 한참을 걷고, 걷고, 걸어가다가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무언가에 쫒기는 기분이 들어 원을 향해 뛰어간다. 뛰고 또 뛰다가 꿈은 끝나버린다. 그 원에 도달하지 못한 채.
10살 때 나는 그 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간헐적으로 그 꿈을 꾸고 나면 너무나도 이상한 기분이 들어 눈을 뜨자마자 엄마부터 찾았다.
19살, 수능보기 전날 또 그 꿈을 꾸었다. 도대체 무슨 꿈일까? 날이 날인만큼 찝찝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어둠속에 선명하게 그어진 흰색 원이 아직도 망막 뒤편에 잔상을 남기고 있는 것 같았다.
22살, 그날도 재수학원에서 골아떨어지다가 또 그 꿈을 꾸었다. 이제는 별로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23살, 대학을 휴학하고 군 입대를 하기로 했다. 요즘 군대는 편해져서 공부할 시간을 준다니까 거기서 반수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훈련소 첫 날 밤에 또 그 꿈을 꾸었다.
25살, 전역 전날 또 그 꿈을 꾸었다. 반수는 포기했다. 그냥 지금 다니는 대학에 복학해서 취업준비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27살, 취직이 되지 않는다. 어김없이 또 그 꿈을 꾸었다. 너무나도 재수 없는 기분이 들어서 무당을 찾아가 그 꿈에 대해 물었다. 무당은 내 얼굴을 보고 쯧, 하고 혀를 차더니, “절대,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라고 한마디 했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29살, 결심했다. 늦은 나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로 했다. 요즘 인터넷에 만화를 그려서 올리는 것으로 돈을 벌수 있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만화를 좋아했고 많이 읽기도 했고 그림도 많이 그려봤으니 나정도면 도전할 수 있지 않을까?
요즘 들어 그 꿈을 자주 꾸지만 전처럼 불안감은 없다. 좋은 현상이다.
33살, 친구한테서 청첩장이 왔다. 이제 내 친구들은 대부분 결혼했다. 나는 소규모 포탈에 연재하게 되었지만 남들에 비해 박봉에다가 일도 힘들다. 그 날도 마감 때문에 예식장에서 잠깐 잠들었는데 또 그 꿈을 꾸었다. 이제 거의 잘 때 마다 꾸는 것 같다.
34살, 포탈이 없어져서 연재할 곳을 잃었다. 메이져 포탈 사이트에 계속해서 만화를 올리고는 있지만 그쪽은 받아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생계가 끊기자 나는 매일 밤 꾸는 그 개 같은 꿈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 원은 도대체 뭘까? 도대체 나한테 뭘 말하고 싶기에 매일 밤 꿈에 나와서 나를 괴롭히는 걸까. 이젠 다 싫다. 왜 내가 그런 꿈을 꿔야하는 거야. 나도 남들처럼 평범하고 좀 행복한 꿈을 꾸고 싶다고!!! 왜 나한테는 선택지가 없는 거야!! 왜!! 왜!! 나만 이런 지.랄 병.신 같은 꿈을 계속 꾸는 거냐고!!! 이젠 미쳐버릴 것 같다. 아마 지금 잠들면 또 나는 의미 없는 깜깜한 공간에서 또 병.신같이 뒤뚱거리면서 뜀박질을 할 것이다. 그 원을 향해서. 씨.발 그 원이 도대체 뭐야!
35살 되는 12월 25일 크리스마스이자 내 생일. 드디어 그 꿈의 의미에 대해서 알아냈다. 꿈에 대해서 알아내자 허탈하게 웃음만 나왔다. 그래, 처음부터 이런 거였다.
꿈은 너무나도 단순한 것이었다. 하하, 씨.발 이런 거였다니…….
나는 돌돌 꼬아놓은 수건에 목을 걸고 의자를 걷어 차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