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감상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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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홈커밍데이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주말에 집을 나설 준비를 합니다. 구글 캘린더에 등록한 후 잊고 있었는데 어느덧 그 날이 다가왔네요. 평소라면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거나 집에서 늘어져 있겠지만 오늘은 다른 패턴으로 움직입니다. 집을 나와 단골인 까페 “인그레이”에 들려서 서로 눈빛을 교환하자 늘 먹던 것을 뽑아주시기 시작합니다. “혹시. 지금 출근하시나요?” “아니요. 오늘은 서강대 30주년 홈커밍데이가 있어서 참석하려고 나왔습니다”
내 입에서 ‘서강대’라는 단어가 나오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것 같다. 졸업 이후 20년 이상의 삶 가운데 나의 대표 타이틀이 계속 갱신되어 왔기 때문이다. 어떤 영화의 명대사처럼 '나 서강대 나온 사람이야' 를 이야기하며 주위를 환기시키거나 상대를 누르는 경우는 더이상 없기 때문이다. 서강대라는 타이틀은 건물의 주춧돌 처럼 나의 어느 구석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오늘은 다르다. 오늘 '서강대'는 내 입을 통해 여러번 세상에 울려퍼졌다. "서강대에 3시 까지 가봐야 해요" "서강대 체육관에서 다들 모인다고 하네요" 자연스럽게 출신 대학을 이야기 할 수 있는 하루다.
커피를 받아들고 학교를 향해 걸어간다. 익숙한 길이지만 오늘은 익숙하지 않다. 동문회관 옆 계단. 체육관 뒤쪽으로 갈 수 있는 그 계단. 이 앞을 자주 지나쳐 왔지만 오늘은 그 계단을 올라간다. 철문을 넘어선 순간 가슴이 뛴다. 공기가 다르지 않겠지만 다르게 느껴진다. 서강대의 영압이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지금 내 눈으로 들어오는 장면 하나하나가 머릿속 깊이 있던 기억들을 조금씩 퍼 올린다. 그랬었지. 미소를 띄우며 체육관으로 다가갔다. 학교 가까이 살면서도 오늘 지각을 했다. FA를 먹어보았기 때문에 익숙한 것일까?
도착해보니 다들 빙 둘러서 앉아있었고 내가 가야할 곳을 몰라서 오랫동안 두리번 거렸다. 우리 과에 가보니 다들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같이 나이를 먹어가는 상황이라서 그럴 것이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로 불리기 시작할 사람들이지만 내 눈에는 그 때 그 모습이다. 그렇구나. 잘 지냈구나. 힘냈구나.
그런데, 나이 오십을 바라보는 우리들에게 줄넘기와 줄다리기라니... 다치면 어떻게 하지? 이 사람들 모두 그럴 나이 아닐것 같은데. 시신경과 근육신경이 미스매치를 일으키며 다들 줄을 제대로 못넘는다. 인풋 아웃풋을 명확하게 구분해야하는 우리팀 구성원들은 그래도 줄을 넘었다. 전산과를 졸업해서 다행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앞으로 누가 우리에게 줄넘기를 하라고 요구할까? 내 인생에 줄을 당길 기회가 더 있으려나? 그렇기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참여한다. 승패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같이 했다는 그것이 남을 뿐이다.
많은 분들의 말씀 이후에 후배님들의 경연이 있었다. 다 큰 대학생들에게 재롱잔치라고 표현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분들도 있겠지만 연세의 높은 벽 앞에서는 재롱잔치가 맞습니다. 다들 열심히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경연을 보며 감탄했습니다. '재능도 참 많네. 서강대도 오고 노래도 잘부르고 춤도 잘추고. 우리 애들은 노래 못불러도 좋으니 서강대라도... 아니.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아무튼 후배님들의 그 젊음에서 뿜어나오는 열정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저희를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오래 앉아있어도 힘든 사람들에게 일어서서 응원하라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그래도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 박수 치고 함성 질러주고. 퍼져라 서강에! 서강에! 서강에! 청!년!서!강!
94학번 합창단이 공연을 하였고 마지막에는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를 함께 불렀습니다. 이것은 오늘의 모임을 정리하는 내용이자 결론이자 마침표인것 같습니다. 대학에 와서 파릇파릇 할때 불렀던 그 노래를 지금 다시 부릅니다. 그때와 지금은 삶의 깊이가 다릅니다. 그때는 친구들과 함께 학업을 이겨냈지만 이제는 다른 동료들과 가족들과 함께 삶을 이겨냅니다. 그때와 다르게 내 어깨 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매달려 있습니다. ‘기쁨의 그날위해 함께할 친구들이 있잖아요’ 결국 나의 삶은 내 어깨 위의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기 위해서 달려가는 것이고 이것이 나만의 싸움이 아닌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 친구들과 함께하는 싸움인 것입니다. ‘Bravo Bravo My Life 나의 인생아 지금껏 달려온 너의 용기를 위해 Bravo Bravo My Life 나의 인생아 찬란한 우리의 미래를 위해’
식순이 모두 끝나고 다들 청년광장으로 이동해서 김밥과 맥주와 안주를 챙겨서 오순도순 모여앉았습니다. 제 경우에는 와이프(정외 95)께서 체육관 앞까지 오셔서 둘이 같이 청년광장 무대 근처에서 둘만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친구들아, 미안하다! 사람들이 모여앉은 모습이 보이고, 그 뒤에 제2서강빌딩과 많은 건물들의 불빛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떠오르는 기억들. 학생때 청년광장 잔디밭에 누워서 일몰의 햇살을 맞으며 멍때리던 그때의 기억들. 전공 필수에서 FA를 맞아서 5학년 1학기를 다니며 열심히 학점을 메꿨던 그 노력들. 2.08이라는 저공 비행을 마치고 사회라는 전장으로 날아올랐던 기억들. 지금까지 나와 함께 해줘서 고마워요 와이프님. 지금까지 내 인생의 기초를 깔아줘서 고마워요 서강대님. 오늘의 나는 이 고마움과 감동을 품고 내일을 또 새롭게 시작하겠죠.
76년에 한번 오는 헬리혜성처럼 30년만에 서강대가 내 인생에 다시 다가왔다가 멀어져갑니다. 이제 또 30년 후에 진행할 60주년 홈커밍데이를 기약하고 열심히 달릴 수 있을까요? 그때가 되면 가상으로 생성된 서강대 공간에 홀로그램으로 만날지도 모르겠네요. 그 예전 잔디밭의 청년광장에서 학과 깃발을 들고 그때의 젊은 모습으로 다시 만날지도 모르겠네요. 기대되지 않나요? 이제 그 기대는 마음 한 구석에 묻어놓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서강대’라는 단어는 다시 나의 주춧돌이 됩니다. 힘내라. 30년 잘 지냈으니 앞으로 30년도 잘 지내겠지. 힘내라. 우리 모두.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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