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피에는 글을 쓰지 않지만 그래도 하나 남겨야겠네요.
다른 곳에 쓴 글입니다.
기독교적인 관점임을 이해해주시고 싫으면 그냥 뒤로가기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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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6시 선거결과를 보면서 놀랜것은 54.3% 라는 투표율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60%를 말하고 70%가 되면 여러가지 행동을 하겠다는 말을 보며 선거율이 그래도 높을 것으로 기대했었습니다.
어느 정당이 잘했다 잘못했다라는 것은 그 다음 문제입니다. 최우선적인 것은 투표율이 문제입니다.
내가 볼때 이 투표율이라는 것은 국민 개개인의 삶의 자세라고 봅니다.
물론 하루하루 먹고 살기 어려운 분들이 있습니다. 선거일에도 쉴 틈도 없이 일하러 나가야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새벽 6시보다 일찍 일어나서 오후6시보다 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분들을 비난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부모님이고 형제,자매입니다.
'투표를 해야하는데 어쩔 수 없이 못하네'라는 마음만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감사합니다.
나중에 투표할 기회가 된다면 투표를 하실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국가에서 공휴일로 지정하고 회사에서도 빼줬는데 투표하러 가지 않은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중에는 물론 투표를 하러가고 싶었으나 몸이 무거워서 못가신 분들도 있습니다.
몸을 움직일 의지가 약해서 움직이지 못한 분들도 있습니다.
이분들도 비난할 수 없습니다. 연약한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짐이 무거워서 움직이지 못한 분들은 '그래도 힘내라'라고 말해 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날 갑자기 일이 생겨서 투표하지 못한 분들도 있습니다.
'투표를 해야하는데 큰 일이 생겨서 못하네'라는 미안한 마음, 책임감을 가졌다면 감사합니다.
다음번에 투표하시면 됩니다.
문제는 공휴일로 지정되고 회사에서도 빼줬는데 의지적으로 투표를 거부한 분들이 있습니다. 의지적으로 다른 곳을 간 분들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분들에 대한 분노 때문에 어제밤 한숨을 푹푹 쉬었는데 이제는 내려놓고 이해했습니다.
'우리의 수준, 인간의 존재라는 것이 다 그렇지.'
이제는 분노가 아닌 걱정으로 글을 씁니다.
걱정 되는 것은 개개인의 '투표'에 대한 태도는 그 사람의 '삶'이 반영되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1. '투표할 사람이 없다.'
많은 분들이 핑계로 말하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할 것은 '투표하는 것'입니다. '좋은 정치인이 나타났을 때 투표하는 것'이 아닙니다.
와이프에게도 선거하러 가면서 말했습니다. '찍을 사람 없으면 6살짜리 딸에게 어떤 번호가 좋냐고 물어봐서 그거 찍어라'.
찍는게 중요합니다. 백지 내도 좋습니다. 투표용지에 낙서를 해서 내도 됩니다. 그래도 이것은 의무를 감당한 것입니다.
'그러느니 차라리 안하겠다'라고 한다면 그것이 문제입니다.
'공부해도 서연고 갈 실력이 안되니 공부 안하련다'
'우리교회 목사님이 맘에 안드니 교회에 헌신하고 싶지가 않다'
내가 할 의무를 주위 환경에 따라서 선택해서 한다면 할 것 별로 없습니다.
하나님이 맡기시는 일중에 할만한 일이 얼마나 있을까요?
2. '나 하나쯤은 빠져도 대세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물론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태도가 삶에서도 고스란이 나타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분들 입장에서는 선거는 작은 것입니다.
'저런 분 한명쯤 빠져도 회사는 돌아갑니다'
'저런 분 한명쯤 빠져도 성가대 운영에 문제는 없습니다'
'저런 분 한명쯤 빠져도 남은 사람이 어떻게든 설겆이 다 합니다'
'저런 분들 백명쯤 빠져도 교회는 돌아갑니다.'
그렇지만 작은것에 충성하지 않는 사람은 큰것에도 충성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자세라면 '작게보이고 지속적으로 묵묵히 걸어가야하는 하나님이 맡기시는 일'을 감당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자기 눈에 보이는 큰 일에 동참하고자 할때에도 몸에 충성이 배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의지만으로는 이룰 수 없습니다.
3. '정치에 관심 없다'
사실 관심 없어도 됩니다. 선거때에만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정보를 가지고 투표하면 됩니다.
어느 한쪽에 편향된 정보들만 얻어서 투표해도 상관없습니다. 정보수집능력의 한계이지 자세와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것을 해야할 때 약간의 관심과 노력을 들여서 일을 진행하면 되는 문제입니다.
이게 왜 문제가 되는가 하면 과연 이러한 태도일 때 '하나님의 일, 영적인 일'이라는 것에 관심을 갖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면
"여름에 '단기선교'가 교회에서 계획되었다. 참가자를 모집한다" 라는 상황이라면
삶에 충실한 사람이라면 "내용을 반드시 읽어보고 내가 동참해야 하는 것이 인식되고 단기선교지에 대한 관심을 그때부터 갖고 기도로 준비하고 갔다온다"가 됩니다. 못간다고 하더라도 못가는 이유가 '하나님 앞에서 우선순위가 더 높은 일을 맡고있는 상황'이 그 이유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분들이라면 "그 상황에서 단기선교에 관심이 생길까??????"가 됩니다.
세상적으로 의무와 책임이 필요한 일에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의 일에 대한 의무와 책임, 그리고 관심을 가질 수 있을까요?
내가 해야할 일보다 내가 관심이 가는 일을 먼저 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투표율이 낮다는 것은 한국인의 삶의 태도의 평균적인 수준도 낮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것이 걱정이 됩니다. 한국인의 수준이 한국 기독교의 수준도 됩니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같이 올라가고 같이 내려옵니다.
투표율이 점점 낮아진다면 개개인의 삶의 질도 낮아지고 그리스도인의 삶의 질도 낮아지고 그것에 맞춰서 한국 기독교도 같이 주저앉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든 필요한 사람들을 남기셔서 역사를 끊지않고 이끌어가시겠지만 평균으로 봤을때에는 많이 하락할 것입니다.
누가 국회의원이 되고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는 큰일이지만 그것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누가 되어야 세상이 바뀐다'라는 기대는 내려놓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우리는 투표할 그 상황에서만은 최선을 택해야 합니다. 그 뿐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삽니다'
아무리 세상이 최악이 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먹여살리고 인도하십니다.
아무리 세상이 살기 편해져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의 삶의 태도입니다.
국가 앞에서 내가 해야할 가장 작은 의무를 감당하는가.
하나님 앞에서 내가 있어야할 가장 작은 자리를 지키는가.
생각할때마다 참 답답합니다.
정치색을 띄기 시작한 교회, 목회자 들은 더이상 종교라 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