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라는 한정된 소비자층의 구매력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자생하고 있는 현대 아니메 업계의 일반적인 사업전략은 다음과 같다. 우선 적합한 원작을 찾아 기존 팬들을 통한 홍보효과를 누리고, 당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아니메를 제작함과 동시에 싱글앨범, 코믹스, 피규어와 같은 미디어믹스를 전방위로 전개하고, 소비자의 구매욕구가 최고조되는 기간에 최대한의 판매성과를 달성한다. 그리고 곧장 다음 작품으로 옮겨간다. 장기적인 판매전략은 시장의 반응에 따라 결정한다. 인기가 없다면 곧바로 철수하고 차기작에 집중한다. 요약하자면 속칭 트렌드에 따른 1회성 흥행으로 사업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투자자 역시 해당 작품의 흥행여부에 대해 보수적인 태도로 접근할 수 밖에 없다.
투자자, 즉 스폰서의 매출은 DVD, BD의 판매량에 따라 결정된다. 한 스폰서가 여러가지 작품(제작업체)에 출자했다면 10개 중 7개가 망한다고 쳐도 흥행한 3개 작품으로 손실을 메꾸고 남는 금액을 가져간다. 하지만 망하는 작품의 손실금액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리스크 회피를 위하여 1기, 2기와 같은 제작방식으로 시장의 반응을 캐치한 뒤 추가적인 출자여부를 결정한다. 반대로 말하면, 아니메를 직접 제작하는 현장의 제작사들은 출자된 예산 내에서 아니메를 만들기만 하면 된다. 남는 금액은 제작사가 가져가는 이익이다. 제작사가 판권시장에서 이익을 얻기 위해 직접 스폰서를 맡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고비용과 리스크를 감당할 수 없는 군소 제작사들은 출자비용으로만 꾸려나가게 마련이다.
그렇기에 아니메 제작사(史)에서 꼽을만한 최근의 가장 극적인 변화는(꽤 시간이 흘렀긴 했지만) 디지털 제작방식으로의 전환과 3D의 적극적인 도입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이 주류인 아니메 업계가 제작비 절감을 위해 추가적으로 사용하게 된 또 다른 꼼수였다고 할 수 있다. 초당 프레임을 극도로 낮춘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에서 각각의 원화와 동화를 디지털 방식으로 만드는 것은 저열하기 짝이 없는 아니메 제작업계의 노동임금과 맞물려 저비용으로 적절한 퀄리티의 제품을 제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여기서 ‘적절한 퀄리티’라는 단어는 결코 ‘좋은 퀄리티’와 동의어가 아니다. 아니메 시장에서 CG의 도입은 대체적으로 퀄리티 상승을 위해서라기보다 제작비 절감을 위함이다. 이처럼 ‘저비용 고효율’은 아니메 제작에서 떼 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이러한 제작행태와 그렇게 나온 수많은 쓰레기 같은 제품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업계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을 몇 가지 제시했다. 언제나 선현들의 지혜는 이런 곳에서 (쓸데없이)빛나게 마련인데, 지겹겠지만 대표적으로 안노 히데아키 감독이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썼던 방식이 그러하다. 푸른 하늘이 보이고 나무가 보이고, 매미가 맴맴 우는 소리만 한 1분 틀어놓으면 사람들은 그 곳에서 의미를 찾았다. 누군가 생각했다. ‘이거 그대로 사람으로 바꾸면 되지 않나?’ 이것을 극단적으로 발전시킨 사람이 신보 아키유키 감독이다. 클로즈업 상태로 움직임 없이 입만 움직이는 인물들, 배경만으로 모션 코믹스와 아니메 사이 어딘가에 놓인 작품을 만들어서 그는 독자들이 불평하던 ‘작화’를 잡아내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신에서 움직임을 죽여버림으로써 아름다운 캐릭터를 살려낸 것이다.
좋다. 독특한 방식이긴 하지만 감독 나름대로의 작법이고, 개인적으로도 그러한 스타일을 싫어하지는 않는다(요샌 좀 질리긴 했다). 시청자는 언제나 예쁘게 그려진 캐릭터를 볼 수 있게 되었다. 흥행이 계속되면서 출자도 늘어났을 테고, 이제는 죽였던 움직임도 다시 살려내면서 아름다운 캐릭터를 양립할 정도의 여력도 생겼으니까. 문제는 이러한 방법을 사용할 수 없는(사용하지 않는) 곳에까지 시청자의 지나친 요구가 난립하는 데에 있다.
대한민국의 인터넷 아니메 커뮤니티에는 며칠 사이에 방영된 작품의 스크린샷을 이용하여 리뷰하는 게시물이 매우 많다. 그러한 게시물 중 꽤나 눈에 띄는 것들이 ‘~의 작붕 모음’이다. 호기심에 클릭해보면 2~3초간 진행되는 컷이 이상하게 그려진 장면만이 아니라, 동작 중간중간의 망가진 캐릭터의 모습들이 ‘작화붕괴’의 증거로 꽤나 많이 들어있다. 이러한 ‘프레임 리뷰’는 얼핏 보기에는 별다른 입장표명 없이 그저 캐릭터가 망가진 스크린샷만을 모아 놓은 것처럼 보일 지 모르지만, 그 아래에 제작진의 태업 혹은 능력부족을 성토하려는 의도가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故 카나다 요시노리는 독특한 클로즈업과 데포르메, 구도로 현대 아니메에 큰 영향을 끼친 연출가이다. 그가 연출을 맡은 장면들은 CG가 없던 시절부터 획기적인 카메라워크와 동세를 통해 아니메에 기존에 없던 생동감을 부여했다는 평을 받는다. 프레임 하나 하나를 뜯어보면 등장인물들이 말도 못할 모습으로 엉망진창으로 그려진 듯 하지만, 영상으로 보면 망가진 한 프레임이 동작과 동작을 이어 자연스러운 동세를 연출한다. 그 후의 수많은 애니메이터들이 그의 방법론을 도입하거나 모방했고, 그의 그림자는 지금의 아니메 구석구석에 드리워져 있다.
아니메를 볼 때 이상하게 느끼지 못했지만, 스크린샷으로 보니까 이상한가? 당연하다. 움직임을 잃은 순간 그것은 애니메이션에서 그림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반대로 아니메로 볼 때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다면, 그것은 괜찮은 것이다. 애니메이션은 기본적으로 속임수다. 정지한 그림을 연속해서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눈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얼핏 이상한 그림이지만 시청자의 눈을 훌륭하게 속일 수 있었다면, 그것은 능력이고 재주라고 표현해야 할 일이다. ‘아 얘네들 제품 엉망으로 만들었네’ 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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