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프리미어12가 한창이었던 때다.
하루 벌어 하루 살던 나에게는 TV는 무슨 일하고 먹고 자고 가끔 게임하고가 전부였던 날이었는데 어느날 한국의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일본 박살났는데 괜찮냐?'
에엥 이게 뭔소리지? 하면서 잠이 깨면서, 나 자는 사이에 지진이라도 났었나 하고 뉴스 기사를 황급히 검색해봤다.
인터넷에는 그런 일이 없었던 듯이 조용했는데 야구 기사가 문득 보였는데 우리나라가 일본을 이겼다는 소식이었다.
같이 사는 룸메들도 tv 보는걸 많이 본적이 없어서 관심이 없나... 라고 몇일 동안 생각했었지만..
같이 사는 룸메의 친구가 어느날 놀러와서 이야기를 하던 도중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프리미어 12의 이야기로 흘러갔다.
한국 야구 쎄다, 일본이 이기는 줄 알았는데 역전패 당해서 슬프다, 배트 플립했던 선수가 너무 무섭다, 분하다 등등...
우리나라가 이긴건 사실이지만, 바로 앞에 일본인을 두고 "그래 우리나라 짱짱이다" 라며 무한 긍정하기도 좀 그렇고, 야구에 크게 관심이 없어서 하핫 그렇습니까로 일관했었다.
그러던 중, 나중에 일 쉬는 날 있으면 같이 야구를 하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야구라고 하더라도 소프트볼 규칙으로 하기 떄문에 크게 힘들지는 않을거라고, 약간의 운동이나 하자는 것이었다.
흠, 그래 뭐 운동이나 하자. 소프트 볼이니까 적당히 할 수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받아들이니까 너무 좋아한다.
한국인의 야구실력을 볼 수 있는거구나 하면서...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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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야구를 하기 위해 나 포함 4명이 쉐어하우스에 모였다.
??? 꼴랑 4명으로 무슨 야구를 하겠다는 건지; 일본인들은 캐치볼도 야구라고 하는건가 라고 생각할 차에
우리 인원이 많이 부족하니까 상대 팀에서 끌어 쓴다고 룸메가 알려줬다
가까운 곳에서 하는 줄 알았더니 지하철 타고 꽤 긴시간동안 가서 환승까지 한 끝에 항공공원역에 도착했다.
공원 이름 한번 엄청나군.. 사진은 시합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찍은 것
이름 답게 여기저기서 비행기 조형물이 많이 있었다.
도착하자 꽤 많은 사람들이 도착해서 몸을 풀고 있었다.
그중에는 여성도 꽤나 많았다. 아마도 소프트볼이니까 부담없이 할 수 있는 거겠지.
짝을 지어서 캐치볼을 하며 시합 준비를 시작했다.
우리는 4명 뿐이라서 상대쪽에서 몇명을 끌어와서 팀을 이루고 역할을 각자 지정하고 심판에게 전달했다.
소프트볼이라길래 진짜 간단하게 생각하고 왔더니 상대의 준비가 만반이었다.
스코어 기록이라던지, 순번, 역할 등등 이런 저런 표를 프린트 해온 종이에 심판이 일일이 다 적는 것이었다.
경기는 시작되고 내 첫번째 역할은 투수
'한국의 야구 실력을 보여주마!' 힘껏 강속구를 던졌다.
볼!
볼!
볼!
볼!
... 아냐 이건 한국의 실력이 아니고 나 개인의 실력이다....-_-
형편없는 제구력으로 강속구(내 입장에서는 강속구다)를 뿌려대니 상대 타자는 배트를 휘둘러보지도 않고 진루했다.
어쩔수 없다... 속도를 포기하고 어떻게든 중앙으로 넣어야겠구나 생각했다.
다음 타자가 들어서고 속도를 크게 포기하고 던졌으나, 역시 속도가 없으니 얻어맞고 말았다.
초구에 안타.....
다른 타자들의 상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1회 초만에 몇점이나 내주고 말았다.(점수는 너무 오랜 시간이 흐른 뒤라 기억이 나지 않음)
그나마 3명을 잡을 수 있었던건 여성들을 잡거나, 호수비 덕분이었다.
졸렬하게 여성을 상대로 전력투구 한 셈...
그에 비해 상대 투수는 우리 여성팀원을 배려해서 크게 호를 그리며 천천히 던져주었기 때문에 내 인성을 나도 다시 보게 되었다...-_-...
어찌어찌 아웃을 잡아내서 공수교체,
일본식 이지메인지, 아니면 진짜로 작전인지 뭔지.. 1번 타자도 내가 되었다.
그래 이렇게 된 이상 타격으로라도 한국의 힘을 보여주갓어 내가 바로 조선의 타자다 라고 생각하며 타석으로 들어섰다.
'슈욱!'
진짜로 공에서 소리가 났어!!!
눈 깜짝할 사이에 공이 미트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3스트라이크로 대기열로 돌아왔다.
대기열에서 대화해보니 여성과 쉐어하우스에서 모인 우리와는 달리 남성들 대부분은 진짜 선수들이 모여있었던 거였다....
뭐야 이거... 간단하게 생각하고 왔다가 관광당하는거 아니냐.. 라고 생각했으나 아까 팀을 나눌 때 선수 몇명도 우리 팀에 포함되어 있다고...
이거... 그냥 단순히 노는 소프트볼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제대로 해야겠다...
그래봐야 내가 완전 블랙홀 급 구멍이라
1. 팀원이 점수를 내거나 호수비를 한다.
2. 그리고 그 이득을 내가 까먹는다.
지는건 별 다를건 없나.. 라고 생각했다...
경기에 흘러감에 따라, 경기 초반까지는 내가 투수를 했지만 제구 및 속도가 도저히 못 봐줄-_- 정도였기 때문에 투수-야수-포수 순으로 역할이 바뀌어갔다.
물론 타자를 해도 점수를 내지는 못하는 상황
네 완벽한 구멍입니다.
없는게 훨씬 낫지 않아?
라고 생각은 했지만 점수 자체는 나 제외 모든 팀원이 힘내준 결과 지고는 있지만 따라잡을 수는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경기는 막바지로 흘러흘러 우리팀의 마지막 공격 찬스가 왔다. 여기서 점수를 따면 아직 기회는 있었다.
타자의 순번은 무슨 장난인지 내가 또 첫번째가 되었다.
지금까지의 결과만 보면 당연히 아웃당했을 것이다.
팀의 완벽한 -_- 구멍이었으니...
그런데
마지막에 와서
지금껏 빠른 공만 봐와서 느려진 공을 볼 수 있었던 걸까
아니면 단순히 공을 골라본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단순히 초심자/외국인에 대한 서비스 차원이었을까,
정확한 상대 투수의 기분이 뭔지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지금껏 빠르게 오던 공이 확실하게 느리게 날아오는게 보였고,
여태 힘껏 휘두르지 못해서 그랬는지 팔에는 힘이 잔뜩 들어간 스윙으로 공을 쳐낼수 있었다.
원래 내 속도라면 1루 정도 갈 수 있었던 안타였지만
이어지는 기적같은 상대의 수비미스,
내가 칠거라고는 누구도 생각을 못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1루를 지나 2루, 홈까지 올 수 있었다.
내가, 첫번째 타자로, 마지막에 와서, 1점을 낸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팀원들의 플레이로,
역전에 성공했다.
그리고 수비 또한 내가 포수를 보기 시작한 뒤로 좋아져서 내 허벅지는 아프고 땡겨오지만 점수를 내주지 않아
진짜 기적적으로
우리팀은
이길 수 있었다.
프리미어12 시즌2
그 누구도 알아주지 못하고, 기록되는 경기도 아니었지만, 역전 승리의 맛이 대단했다.
양 팀의 악수가 끝나고 정리를 하는 도중 상대 투수와 이야기를 하게되었다.
'마지막에 던지고 나서 당신의 눈을 보는 순간 얻어맞겠구나 라고 예감했습니다. 대단하시네요.'
...분명 거짓말이다.. -_- 일부러 천천히 던진거다.. 라고 순간 생각했지만 역전의 기쁨이 더 컸다.
나도 상대를 칭찬하며 서로 인사하고 모든 일정이 끝이 났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허벅지를 칼로 찌르는듯한 고통이 몇일간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