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코가 석 자인 이등병이 뭐가 잘났다고 누굴 상담 해주랴.
부대로 복귀하고 나는 그렇게 다시 잉여가 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지금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우리부대에 뭔가 사건이 일어났었다.
그래서 군단 감찰부에서 감찰까지 나왔고 우리 부대는 발칵 뒤집어졌다.
그리고 감찰 과정 중에 식당에 모여 마음의 편지(소원수리)를 쓰게 되었다.
감찰관이 말했다.
"이 마음의 편지는 참고가 된다 싶은 부분은
군단장님께도 올라가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를 솔직히 써야한다."
군대를 다녀온 예비역들은 잘 알고 있겠지만
뭔 일이 났다해서 그 것을 있는 그대로 쓸 수 있겠는가.
그 것도 아직 이등병인 녀석이 말이다.
쓸 것이 없어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감찰관의 말이 떠올랐다.
'군단장님께도 올라가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말이 떠오르며 갑자기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생각은
'비전캠프는 군단장 명의로 주최되는 것이었다'는게 생각이 나며
그 생각은 어차피 상담으로는 휴가 가기 글렀고 여기에 희망을 걸어보자는데에 미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물 흐르듯 써내려지는 아부!
군단장님께서 주최하신 비전캠프로 인하여 얻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정표가 없던 제 군생활에 주변 전우에게 도움이 되어
건전하고 활기찬 병영 생활을 이끌어 나가고자 하는 그런 목표가 생겼고
이 목표가 이루어 진다면 병사들의 사기 진작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이 비전캠프가 더욱 더 확대 되어 저와 같은 생각을 지닌 전우들이 늘어난다면
저희 부대 뿐만 아니라 나아가 우리 군단 전체의 사기 진작이 이루어져
더욱 더 튼튼한 국방의 한 축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비전캠프는 제 군생활의 빛과 소금입니다.
비전캠프를 경험하게 해주신 군단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대충 이런 내용으로 마음의 편지를 썼다.
그리고 1주일 뒤
우리 부대는 집중 정신 교육 기간에 돌입하였다.
이미 선임들에게 집중 정신 교육의 가혹함에 대하여 들었던 터라
나는 꽤 긴장하고 있었다.
집중 정신 교육의 첫 날 아침 집합 시간
갑자기 들어온 포대장이 나보고 군장을 싸라고 한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내가 먼 사고라도 쳤나...'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군단에서 나를 부른다고 했다.
뭔 일인가 하고 결국 어리벙벙하게 군단까지 갔다.
도착하고 보니 지난 번 비전캠프에서 봤던 녀석들이 전부 있었다.
그리고 들어온 군종목사의 말
"이 번에 군단장님께서 비전캠프와 관련 된 아주 좋은 내용의 마음의 편지를 받으셨기에
이번 기수부터는 비전캠프 입소자는 전원 휴가로 군단장님께서 방침을 바꾸셨다고 한다."
쏟아지는 환호
비전캠프 입소 동기들에게 물어보니
마음의 편지를 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썼던 아부 편지 빼고는...
결국 난 집중 정신 교육도 제끼고 4박 5일의 포상휴가를 다녀오게 되었다.
그리고 군단장이 바뀌기 전까지 매 기수의 비전캠프 입소자들은 모두 휴가를 받았다.
그리고 난 관심병사였다고 군생활에 다른 영향을 받은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역시 관심병사도 잘 되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