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곡성]을 [올드보이] 이후 최고의 한국영화라는 견해를 줄곧 견지하였다.
이에 대해, 누군가 "그 사이에 이창동 감독의 [시]도 있는데요?" 라고 반문하였다.
그렇게 치면, 왜 [밀양] 은 빼먹는 것일까? 물어보고 싶기도 하다.
내가 장르영화에 취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시]를 인정하지 않고 그런거는 아니다. 다만, 저기서 [시] 이후 최고의 한국영화라고 얘기 하지 않는 것은, 애초 나는 이창동 감독같은 작가주의 영화하고 상업영화를 철저히 구분하여 생각한다.
그리고 최고의 한국영화라는 기준이라는 것도 사실 스스로 웃긴 것이다. 상을 받았다고 하면 그것이 최고가 되는건가? 저 반문을 한 사람은 아마 성과주의적인 생각에서 [시]를 최고라고 발언했을것 같다. 만약 [시]가 아무런 상을 못탔다고 한다면? 그 때도 저런 말을 했을까?
이창동 감독의 [시]가 최고냐 아니냐를 따지고 싶지 않다.
사실 이 영화는 내가 판단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난 영화다.
별점 몇개, 훌륭한 영화다, 아니 그렇지 않다.... 이런 식으로 단편적으로 평가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다. 적어도 [시] 에서 만큼은 그러하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미술품을 보며 우열을 따지는 것은 정말 미련하고 멍청한 짓이다. 그냥 나에게 오는 느낌과 생각 그대로 수용하는 게 올바른 자세라고 생각한다. 이게 내가 작가주의 영화에 대해서 생각하는 바다.
(굳이 따져야 한다면, 이런 상황을 가정할 것이다. [올드보이]/[곡성]/[시] 셋 중에 상을 수여한다면 어느 것에 수여할 것인가? 그럼 주저없이 [시]를 택할 것이다.)
[시]를 관람한지는 꽤 오래다. 2~3년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 마음을 울렸던 먹먹함, 슬픔과 거기서 나오는 아름다움의 정서들은 정말 두고 두고 잊혀지지 않는다. 특히 영화 엔딩을 장식하는 '아네스의 노래' 에서 이런 감정이 극대화되었다. 그리고 야밤에 배드민턴을 치다가 손자가 연행되는 모습을 바라보는 미자의 눈빛도 그렇게 가슴이 아릴 수밖에 없었던 장면이다. 위 두 장면은 지금껏 봐왔던 그 어떤 영화 속 장면들보다 슬픈장면이었다.
[시]에 대한 리뷰를 적는 것은 꽤 오랫동안 미뤄왔다.
어떻게 하면 내가 받은 감동들과 그러한 감정들을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도 글로는 표현이 안되고, 앞으로도 안될 것 같다.
결국 지금 리뷰를 적게되는 계기가 한낱 댓글러의 도발 때문이라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래서 많은 얘기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세계에 대한 인식이다.
미자가 시상을 찾고자 노력하는 행위는 그녀가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나를 보여준다.
그녀는 사과를 바라보며, 아름다움을 찾고자 노력하지만 결국 찾지 못한다.
그녀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마다 드러나듯, 그녀는 그 어려운 형편 가운데서도 늘 세상에 대한 아름다움을 동경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 아름다움을 찾질 못해서 시를 못쓴다.
정말 잔인하게도 그녀는 불현듯 닥친 잔인한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서 시상을 찾게된다. 그 때서야 비로소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시가 완성이 된다.
아무리 평범한 인생이라도 그 삶속에 한번쯤은 부딪치는 아이러니함을 누구나 느낀적이 있을 것이다. 이 아이러니함은 때론 웃음을 때론 슬픔을 안겨준다. 이 때 우리가 인식하고 느끼는 감정이야말로 아름다움라 하는 것의 본질이다.
아름다움은 시로 승화된다. 하지만 거기에서만 끝나지 않고 이 영화 전체를 꿰뚫는다.
괜히 이창동 감독이 리얼리즘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지만, 정말 모나지 않는 설정과 플롯, 인물상을 그려내면서 인간과 세계, 그리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의 본질을 어떻게 이렇게 잘 담아낼 수 있는지...
아네스의 노래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 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젠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 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 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 전에
나의 오랜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출처] 아네스의 노래 / 박기영|작성자 제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