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까지 해왔던 게임 중에서는 가장 독특했던 게임이었던 것 같습니다.
동시에 오늘날 우리가 흔히 즐기는 게임이라는 매체에 대해서 한번쯤 고민해보는 시간도 있었죠.
일단, 문화적 차원의 컨텐츠로 보자면 이 게임은 북유럽 신화를 다룹니다.
북유럽의 고대 문화를 다뤘던 게임으로는 대표적으로 [룬] 이나 [스카이림] 이 있는데요.
[룬] 이라는 액션 게임으로서 제가 접한 최초의 북유럽 신화 소재 게임이자 문화컨텐츠였습니다.
그 전까지 어떤 매체를 통해서도 북유럽 문화를 접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생소하기도 했고요.
[스카이림]은 다소 자체 세계관으로 커스터마이징이 된 듯 하지만, 역사와 전통에 기반한 문화적 요소를 훌륭하게 재현해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운 작품입니다.
[헬블레이드]는 상기한 두 게임보다 더 깊이 북유럽 신화에 파고드는 것 같은 느낌인데, 그도 그럴 것이 '세누아'는 실제 켈트족에 관한 고고학적 연구 성과를(그것도 비교적 최근의...)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사족 1. 언젠가 우리나라도 더이상 근본도 없는 판타지 소재 기반 게임보다 학구적 성과를 기반으로 탄탄한 세계관을 갖춘 문화컨텐츠를 만들어야 할텐데라는 아쉬움이 들더군요. 드라마나 영화도 마찬가지지만 게임이 좀 선봉장이 된다면 게임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인식에도 전환점이 될텐데 말이죠.))
어쨌거나 게임 속에서 벌어졌던 바이킹들의 약탈과 대학살 또한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 충실히 재현해놓았습니다.
콜린 윌슨의 역사 서적 [A Criminal History of Mankind] 에 소개된 야만족들의 분별없는 대학살극을 지옥도로 잘 그려냈습니다.
또한, 이로 인해서 정신이상 증세가 온 주인공의 조현병 증상을 게임 속에서 너무 충실히 잘 표현했다는 점도 높은 점수를 줄 특징입니다.
등장인물의 입체적인 표현은 물론그 당위성까지 갖추고 있으니 매우 탄탄한 스토리라고 느낄 수가 있죠.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보통 게임의 퍼즐들은 논리적 사고를 바탕으로 풀어나가야 하지만, 이 게임에서는 편집증 증상에 맞춰 플레이해나가야 합니다.
게임이라는 매체 특성에 맞게 정신병을 이렇게 훌륭하게 재현해 놓다니... 제작진들의 레벨 디자인과 스토리텔링 능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다시 말해서 제가 평가하는 [헬 블레이드]는...
1. 학문적 연구성과를 기반으로 치밀하게 세계관을 구축한 완성도 높은 문화컨텐츠
2. 게임이라는 매체에 정신병 증세를 훌륭히 재현해놓은 정신병 시뮬레이터
이 두가지를 느꼈습니다.
하지만, 제가 원했던 것은 [룬] 이나 [다크소울] 같이 '게임' 의 정체성,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오락거리를 원했던 것이지, 정신병이나 체험하려고 내 귀중한 시간과 돈을 지불한 것이 아닙니다.
네, 저는 이걸 '게임' 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군요.
'시뮬레이터'와 '게임' 은 쾌락의 유무에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시뮬레이터를 통해서도 오락을 즐길 수는 있지만...
게임은 게임 본연의 목적이 있고, 시뮬은 시뮬 본연의 목적이 있잖아요?
[헬블레이드]는 게임이긴 하지만 솔직히 매체 본연의 임무를 잊어버리고, 주객이 전도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3시간 정도 해보고 손도 안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할 마음은 별로 없네요.
하지만 정말 완성도 높은 '문화컨텐츠' 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결론은 재미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다소 비추, 색다른 경험을 원하는 분들에게는 추천.
소수 인원으로 제작된 점을 비롯하여 전 점수를 후하게 주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