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왜 롱테이크인가?
일단 1917에서 롱테이크 기법이 준 효과에 대해 나름 개인적인 생각을 붙여본다.
먼저, “몰입도”의 차이이다. 1917의 롱테이크 특징은 두 인물을 중심으로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다. 이는 흡사 비디오게임 장르의 서사 연출과 흡사하다.
예를 들어, 비디오게임의 대표작, “콜 오브 듀티” 같은 전쟁 소재의 게임을 들 수 있다. 이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은 주인공과 유저의 시각을 하나로 일치시킨 일종의 시뮬레이션이다. 이는 가상으로 연출한 긴박한 전장 상황과 서사 한복판에 유저들을 던져놓아도 상당한 몰입도를 선사하게 된다. 바로 이 시뮬레이션적인 성격이 영화 문법에 대입해보면 일종의 롱테이크라 할 수 있다.
1917의 롱테이크 또한 주인공에게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그 주변의 사건을 묘사하기 때문에 비디오게임과 유사한 장르적 쾌감을 가져온다.
다만, 영화가 24프레임으로 제작되었기에 전장의 풍경을 역동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다소 어지러움이 있다. 아이맥스나 다른 포맷은 어떤지 모르겠다만, 개인적으로 좀 아쉬운 부분이다.
2. 시각적으로 재현한 1차세계대전
사람 하나 겨우 지나다닐법한 진흙탕의 참호를 미로속 탐험같이 훝고나면, 단지 2미터 겨우 안되는 참호진지를 넘어 가시철조망의 생경한 풍경이 펼쳐진다. 아마 그러한 풍경은 1차세계대전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던 살벌한 지옥도일 것이다. 그리고 그 아래 진흙속에 파묻혀 땅과 동화되어 가는 병사들의 시체, 공포스러운 분위기의 독일군 참호 등을 차례로 보여주며 끔찍했던 당대의 전장 속으로 관객들을 끌어들인다.
지금까지 2차세계대전을 다룬 영화는 많았어도, 1차세계대전을 다룬 영화가 그리 많지 않았다. 아마 상업영화 내에서 지루한 공방전이 오고가기만 한 참호전을 매력적으로 그려내기가 힘들었기 때문 아닐까? 그래서 1917이 시각적으로 묘사한 1차세계대전의 단상은 유니크한 매력이 있으며, 과감한 선택이었지만 꽤 성공적으로 보인다.(개인적으로 롱테이크 씬을 활용한 것이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장면은 첫번째 롱테이크씬이 전환되고 두 번째 롱테이크가 시작되는 야간 시퀀스다. 칠흙같은 어둠 속, 조명탄 빛에 비춰진 파괴된 마을은 마치 그리스-로마 유적처럼 폐허만이 가지는 아름다움이 있어 기묘한 느낌을 준다. 직접적인 빛의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고 오로지 반사광으로만 실루엣이 겨우 드러나는데 그 빛마저 적색광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세기말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
아마 시각적으로 지옥의 묵시록 마지막 장면이 해당 시퀀스와 가장 근접하지 않을까 싶으며, 이건 마치 단테의 신곡-지옥이 1917년 현실에 강림한 듯 했다.
3. 영화의 메시지
영화는 적군의 계략으로 1,400여명의 병사들이 몰살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공격중지 명령을 하달하려는 전령의 여정을 다룬다. 영화는 여기에 설정이 하나 더 붙인다. 전령으로 가는 두 명의 주인공 중 한 명이 형제가 있고, 그 형제가 바로 1,400명의 부대에 속한 것이다.
물론 본 영화의 밋밋한 스토리에 드라마틱한 요소를 더한 것일 수도 있으나, 이 때 1,400명 목숨의 가치는 단순 숫자나 통계가 아닌 인간으로서 지켜내야 할 소중한 것이 된다.
이를 더 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영화는 1,400여명의 목숨을 단순 숫자로 생각하는 상층부와 주인공을 대비시킨다. (영화의 최종장,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분한 중대장은 전령이 목숨을 걸고 송달한 공격중지 명령에 비아냥대며 “어차피 이 전쟁은 마지막 한 사람까지 죽고나서야 끝나게 될 것이다.” 라고 말한 장면)
1차세계대전이 병력만 때려박는 지휘관들의 전근대적 전술관으로 인해 유달리 의미없는 희생이 많았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오로지 해당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만이 다룰 수 있는 역사적 반성과 휴머니즘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본 영화의 메시지는 더할 나위없이 명확했으나 새롭지는 않으며, 안전해보이지만 고루해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지금까지 오스카 시상식이 보여줬던 보수적인 성격을 생각하면 1917의 작품상은 상당히 기대할 만 했지만... 뭐 결국 아시다시피 기생충을 택함으로서, 오스카도 했던 얘기 또 하기보단 시대가 요구하는 목소리에 따라가려고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