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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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Review] (후기)레이니 데이 인 뉴욕, 대도시의 우연성과 인간에 대한 해석 (0) 2020/05/12 PM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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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니 데이 인 뉴욕
감독
우디 앨런
출연
티모시 샬라메, 엘르 패닝, 셀레나 고메즈, 주드 로, 리브 슈라이버, 디에고 루나
개봉
2020. 05. 06.
 
 



 

일단 우디 앨런의 영화인줄도 모르고, 그냥 평범한 로맨틱 영화이겠거니 생각하고 보았는데, 역시 스타일이 그 감독 삘이 나긴 하더라...;;;

 

내가 우디 앨런의 영화를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매치포인트][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 같은 경우 아주 재밌게 보았다. 특히, 이번 영화는 캐릭터나 이야기 구성이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와 아주 비슷했는데... 아쉽게도 [미드나잇 인 파리]는 보질 못해서 이와 비교하지 못했다.

 

 

이 글을 적기전에 몇몇 이 영화의 소감이나 리뷰를 보았는데, 일단 나는 우디 앨런의 영화를 일반적인 영화적 기교에 초점을 맞출만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느끼기에 이 영화도 그렇고, 그의 영화는... 굳이 따지면 홍상수같은 이야기꾼인데, 얼핏보면 스토리라고 할 것도 없고, 당최 이 영화가 뭘 말하고 싶은거지? 하는 작품들이 꽤 많은 것 같다.

내 생각으로는 우디 앨런의 작품은 지역적 특색(특히 대도시) 따라 낭만적인 정서, 느낌을 전달하는데 주력한다. 그런데 별것 아닌 그의 이야기 속에 그 사람들이 부대끼는 대도시 속에 살고 있는 인간에 초점을 맞춘다.

 

나는 분명 본 영화가 샤를 보들레르(1821~1867)의 시, 특히 악의 꽃과 이에 대하여 문예평론가 발터 벤야민(1892~1940)이 분석한 근대적 인간상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고 확신한다. ‘겜블러’, ‘대도시의 거리’, ‘창녀’, ‘우연적 사건등 이 영화를 지배하고 있는 키워드들이, 발터 벤야민의 평론을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이 사람의 사상에 대해서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배경지식들을 사전에 이야기하기 힘들다. 그래서 아래 링크로 대신한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artnstudy&logNo=110181670995&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이에 기초하여, 내가 해석한 본 영화의 담론들을 두서없이 적고자 한다.

 

 

주인공은 왜 갬블러인가?

 

영화 도입부부터 주인공 자신의 대한 소개를 독백으로 전달한다. 이는 주인공이 어떤 인간인지가 매우 중요할 것이며, 앞으로 영화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힌트가 된다.

 

주인공은 자신을 갬블러라고 소개한다. 부가적으로 그의 여친 엘르 패닝은 주인공을 직업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며 독특한 인간이라고 말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갬블러적 성향을 단순 일탈이라고만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은 뉴욕같은 대도시에서 성장한 자신을 규정짓는 인간상이다.

 

여기서 보를레르의 악의 꽃과 이에 대한 발터 벤야민의 평론을 끄집어 내어본다. “악의 꽃은 겜블러를 소재로 한 시로서, 발터 벤야민은 갬블러의 특징이 대도시의 삶의 양태와 유사한 원리로 작동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것은 예측불가한 상황, 즉 우연성에 대해 거는 기대감이, 서로 연관없는 익명의 사람들이 밀집된 대도시의 양태와 똑같다고 본 것이다. (대충 대도시의 인간은 익명의 사물에게 끊임없는 유혹을 주고받고 성욕이 충족되길 기대한다는 내용.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참고)
그들은 예측가능하고 틀에 박혀있는 기존의 것들에 대해 흥미를 갖지 못하고, 그들이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것에 기대를 건다.

주인공의 성향이 바로 그런 매커니즘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이는 그의 겜블러적 성향이 뉴욕이라는 대도시의 삶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임을 암시해주고 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 주인공이 주머니에 쑤셔박은 도박으로 번 돈을 꼬깃고깃한채로 꺼내는 모습 : 돈에 관심이 없으며, 오로지 도박 행위 그 자체만을 즐김)

 

, 내가 봤을 때는 이 영화는 대단하지도 않은 스토리 속에 현대라는 시대를 대표하는 인간을 이야기하고 있다. 주인공은 나이가 어려 아직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 어떤 사람보다도 현재 시대와 공간을 대표하는 인간이며, 영화 말미 자신이 진짜 누군지를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일 것이다.

 

 

 

어머니의 고백이 왜 주인공에게는 전환점이 되었는가?

 

주인공은 아직 어리기 때문에, 나는 그가 자아상이 확립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성향을 인지하지 못하고, 기존 질서-, 안정성이 유지되고 있는 사회에 순응하면서도 반골기질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안정성이란 우연성에 기반한 기대감을 박탈하는 것이며, 주인공은 그런 욕구 불만이 쌓인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기존 질서 안에서 어떻게든 순응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이 딜레마가 영화를 이끌고 있는 주된 갈등 요인이다.

주인공의 딜레마를 표현하는 장면
1) 포커 게임에서도 엘르 패닝에 대한 미련 때문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
2) 그가 가식적이라 생각한 엄마의 파티에 참여할 때, 주인공 또한 체면 때문에 창녀에게 여친을 롤플레잉시킴으로서 결국 본인도 가식을 떨게 됨.

 

어머니에 대한 주인공의 기존 생각은 꼰대 혹은 가식적이니 사람이다. 그러나 어머니로부터 의외의 말을 들었을대 꽤나 충격적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

그 이유는 주인공의 갬블러적 성향일수도 있다. 어머니가 살아온 인생은 도박으로 치면 잭팟과 다를바 없기 때문.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잭팟의 의미는 세속적 보상보다는 어떤 우연성이 삶에 초래한 폭발적인 결과물을 뜻한다.

(((스포주의, 드래그해서 읽을 것)))
, 어머니가 원래 창녀였다가 상류층으로 올라갔다는 것은 본인이 인지하고 있는 기존 사회의 어떤 고정성을 깨졌다는 걸 의미한다. 이러한 충격이 주인공에게는 되려 신선한 자극제가 되지 않았나 추측해본다.

 

이즘에서 창녀에 대한 벤야민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자면 사창가 역시 우연성에 기대하는 매커니즘과 무관하지 않다. 화대를 제공하면 이성과의 만남이 이뤄지는 구조이지만, 사실 화대를 제공한 사람도 화대를 받은 이성의 본질을 미리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스포주의, 드래그해서 읽을 것)))
이는 영화 속에서 주인공의 여친 롤플레잉을 수행하는 창녀와창녀였던 어머니를 대비시켜 보여준다. 한 사람은 창기 노릇을 하다가운명의 짝을 만나 신분상승까지 한 반면, 다른 한명은 신분이 탄로나 상류층의 모임에서 결국 쫒겨나게 된다.

 

어머니의 고백은 주인공에게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기존 질서가 어떤 정()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무너뜨리는 우연성은 반()이다.
어머니의 잭팟이 바로 반()이었고, 그녀가 주최하는 사교모임은 합()이자 주인공에게는 정()이 되었다.

그도 역시 어머니가 그러했던 것처럼 안티테제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게 된다.

 

 

 

여친인 엘르 패닝은 왜 차였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주인공과 정반대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기존 질서를 상징하는 존재가 바로 엘르패닝, 그리고 어머니와 정반대되는 노선을 걸어온것도 엘르 패닝

주인공은 그녀가 주인공이 하는 말에 선의로 아는척을 하며 호응해주다가 차이고 마는데, 내가 봤을땐 이건 아무 문제의식 없이 세계에 순응해버리는 그녀의 성향이 그에게 더 이상 무매력으로 다가왔기 때문일 거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뉴욕의 욕망의 세계에 있던 그녀가 주인공을 만나자 마자 그의 세계로 전환하게 된다.

, 겜블러적 성향을 지닌 주인공에게 그녀는 아무런 호기심도 느껴지지 않는 인간이엇을 것

 

 

엘르패닝의 이야기는 무엇을 상징하나?

 

엘르 패닝의 본 목적은 신문기사 작성 인터뷰이란 점을 기억하자. 그리고 이 목적은 실패했고, 그녀의 이야기는 성적 유혹으로 점철되어진다.

 

엘르 패닝은 뉴욕과 같은 대도시가 가진 우연성에 대해 전혀 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이다. 영화 속에서는 정말 멍청하리만큼,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결국 섹스를 하지 못한다.(안한게 아니라 못한거다.)

보강 설명을 하자면, 영화에서 우연성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이다.
비는 뉴욕에 있는 주인공과 엘르 패닝 모두에게 닥쳐오는데, 주인공은 비를 피해 우연히 탄 택시에서 우연히 비버 전여친을 만나게 된다. 그는 위태로우면서도 능숙하게 그 우연이 가져다 준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그러나 엘르 패닝은 우연적 만남과 성적 유혹에도 끝내 섹스를 하지 못하고, 비에 쫄딱 맞고 주인공에게 돌아가게 된다. 비에 쫄딱 젖었다는 것은 대도시의 우연성에 전혀 대비가 되지 못하고 실패한 사람임을 증명한다. 결국 주인공과 다른 유형의 인간임을 보여주는 장치다.

 

 

 

 

마무리:

 

그래. 이 영화가 보들레르와 벤야민의 모티브를 얻어서 만든 영화일수도 있다 그거다.

 

그럼 대체 감독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것인가?

 

나는 이 영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의 모습에 바로 감독 자신이 되고 싶었던 인간상이 투영되었다고 생각한다. 기존 체제에서 뻔한 것을 거부하고 새로움을 갈구하는 예술인의 자세.

현재 이 시대와 대도시라는 공간을 살아가는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해야한다는 감독의 고집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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