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버펑크물에선 왜 동양 이미지가 등장할까? >
아마 대부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사이버펑크가 대두된 시기가 일본 경제의 부흥이라는 시대적 맥락 때문이라고 꼽을 수 있을 거다.
좀 더 깊이 알고 있는 분들은 사이버펑크가 자본주의의 폐해를 다루고 있고,
때마침 일본경제가 그 첨병노릇을 했기 때문에...
혹은 일본경제가 미국을 집어삼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이것이 사이버펑크물에 반영된 것으로 알고 있을 거다.
아니면 단순히 유명한 사이버펑크 작품이 일본에서 많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 일본 경제에 대한 경계심이 반영된 대표적 영화, 다이하드 >
한번 더 깊이 생각해서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왜 사이버펑크물에서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첨병이 일본을 비롯한 동양 문화일까?
이것이 오로지 시대적 맥락, 한가지 요인 때문일까?
나는 단순히 그것만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사이버펑크물에서 등장하는 동양적 이미지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끼고 매료되었기 때문에, 이것이 전통처럼 이어져 나갔다고 생각한다.
< 사이버스페이스의 시각화 예시 :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 >
이를 설명하기 위해, 먼저 사이버펑크물이 무엇인지 간단히 보자
사이버펑크는 사이버스페이스 기술이 발달된 미래상을 다룬 SF의 하위장르다.
일반적으로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본질을 위협하는 것을 주제의식으로 한다.
여기서 사이버스페이스는 진짜와 가짜의 경계선에 대한 화두를 던지며,
또 다른 철학적 고민을 던져주는데, 여기선 이 정도만 언급하고 넘어간다.
주로 이런 작품들은 사이버스페이스의 발전을 설명하기 위해,
초국가주의와 극단적으로 치우친 자본주의의 발달을 또다른 설정놀음으로 한다.
시대적 맥락을 한번 더 짚고 넘어간다면,
사이버펑크가 등장한 80년대는 정치사회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산업적으로는 IC기술이 큰 화두였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혜택에 힘입어 일본은 유래없는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사이버펑크는 가상의 근미래를 다루고 있지만, 그건 진짜 현실로 다가올 미래일 것 같았다.
< 영화 [토탈 리콜] 리메이크 버전에서 한글이 나오는 장면 >
그렇다면 사이버펑크물에서 동양적 이미지는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와
어떻게 사이버네트웍스 기술과 함께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굳어졌을까?
나는 이를 아마 영화 [블레이드 러너] 때부터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원래 영화의 원작인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에선 오리엔탈리즘 요소가 없다고 한다.
즉, 사이버펑크물에서 동양의 이미지가 등장한 것은 [블레이드 러너]가 최초가 맞을 것이다.
((사실 확신을 못하겠으나, [블레이드 러너] 자체가 사이버펑크물의 효시나 다를 바 없어서 아마 내 말이 맞을 것이다.))
[블레이드 러너]가 SF장르에서 높이 평가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사이버펑크물의 주제의식과 맞닿아있는 미래 도시 모습을 놀랍도록 설득력있게
시각화했다는 점이다.
한번 이 영화의 전설적인 오프닝 시퀀스를 살펴보자.
<약간 편집된 본이다.>
처음에 지구(세계)를 연상케 하는 눈알이 있고, 이것이 어두운 밤하늘의 LA 전경을 담아내고 있는데,
도시의 다크한 색감은 디스토피아적 근미래, 마천루들은 거대화된 자본주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오프닝뿐만 아니라 미래도시의 전경을 보여주는 시퀀스를 중간마다 삽입하여 보여주는데,
이런 도시 시퀀스에서 그 유명한 일본여인의 대형 영상 광고 장면이 나오게 된다.
이 장면을 영화에서 봤었을 때, 어떤 느낌을 받았는가?
상당수 많은 사람들이 다른 장면을 다 제쳐두고 이 장면을 인상깊게 꼽는데, 그 이유는,
여기 나오는 전통분장의 일본여인 이미지는 상당히 화려한데 반해,
현재(개봉당시 82년)의 LA라는 도시공간을 생각하면, 상당히 엑소틱하기 때문이다.
즉, 이질감 형성이다.
영화 감독인 리들리 스콧은 이 작품 전에 [에일리언]을 감독했는데,
해당영화의 소재나 노골적인 네이밍을 고려하면,
이질감에 대한 두려움과 부정적인 감정을 줄곧 장르적으로 활용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아마 이와 같은 맥락으로,
대표적인 미국도시 LA 한복판에 일본여자가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대형광고판을 점령하고
도시 곳곳에 아시아 문화가 자리잡고 있는 장면들을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이질감을 형성하려고 했고,
그것은 느와르 장르의 특성들과 맞물려 부정적 정서를 이끌어냈으리라 생각된다.
< 이해를 돕기 위한 짤, 불쾌한 골짜기의 예시 >
이질감은 정상적인 것(진짜)과 비정상적인 것(가짜)가 뒤섞여 야기되는 혼란스럽고 불편한 감정들을 뜻한다.
이는 곧 사이버펑크의 주제의식과도 연관이 되는데,
사이버펑크 세계는 주로 안드로이드와 인간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인간의 정신은 디지털화, 육체는 기계화되며
영상광고처럼 이미지와 본질이 주도되어 뭔가 진짜인지 모르는,
본질과 인간성이 상실된 세상이기 때문이다.
리들리 스콧은 이를 미국도시를 점령한 일본여자 광고이미지 하나로 표현한 듯 하다.
해당 장면은 세기말적 분위기가 팽배했던 20세기 말 - 그리고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키며
컬트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불편한데 왜 매료되냐고 물을 수도 있는데, 인간들은 불편함을 즐기기도 한다. 공포장르가 인기있는 이유.))
이후 잘 알듯이 재패니메이션의 황금기가 [아키라]를 비롯한 사이버펑크물로 꽃을 피워냈고,
사람들은 사이버펑크에서 동양적 이미지가 나타나길 기대하며,
이젠 사이버펑크의 전통처럼 동양의 이미지가 약방 감초마냥 등장하게 된다.
((3줄 요약))
- 사이버펑크는 기술발달+가치관이 개판난 근미래를 소재로 함
- 서양 도시에 동양 이미지가 지배하는 풍경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줌
- 영화 [블레이드 러너]가 먼저 이를 보여줬고, 후발주자들이 비슷한 이미지를 보여줘서 전통처럼 굳어짐
((참고))
- 나무위키
- 우리는 지금 매트릭스 안에 살고 있는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