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건곰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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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온 괴담] 악마와 같은 여자 ~ 12 ~ (0) 2010/06/26 PM 03:23


공판이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마치 그들의 거짓말 대회를 보는 느낌이었다. 잠시 후 김용국의 처 가 따라왔다.


“남편이 진실하지 못할까봐 마음이 조마조마 했어요”


긴장한 얼굴이었다. 가난해도 정직한 사람을 보면 맑은 샘물을 본 것 같다.

나는 그녀의 남편 김용국이 어떤 부분은 의도적으로 숨기는 걸 느끼고 있었다.

재판장도 계산된 정직성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오늘 방청 온 회장 측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내가 궁금해 하면서 물었다. 연극 같은 법정보다

그 뒷 무대가 그들의 저의를 판단하는데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회장님이 부리는 사람들이 전부 출동했어요.

법정 내려오는 계단에서 회장님을 만났는데 저보고

‘좋은 변호사 구했구만 잘 해봐’하고 빈정 대시더라구요.

회장님이 뒤에서 전체를 지휘하고 계시는데

친척들 말이 로펌에 거액을 줬다고 하더라구요.

자기들은 무죄로 빠져 나간대요.

로펌의 높은 변호사들이 뒤에서 검찰과 법원 고위층까지 움직일 거래요.”


요즈음 로펌은 고위직에 있던 법조인을 영입하기도 했다.


“남편 김용국씨를 위해 증언해 줄 친구가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회장부인이 지난번 너무 나쁘게 말했다.

그걸 희석시켜줄 어렸을 적 친구가 필요했다.


“남편이나 마기룡을 다 아는 고등학교 동창 한 분이 보일러기사로 있어요.

그렇지만 여기 올 시간은 없을텐데.”


“그럼 내일 같이 가 봅시다.”


나는 움직이기로 했다. 발로 뛰어야 한 사람의 얘기라도 더 들을 수 있다.

그들의 고교시절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다음날인 토요일 인천 쪽으로 가는 오후의 지하철은 붐볐다.

나는 흔들리는 차 안에서 김용국의 처에게 물어 보았다.


“회장부인과 싸운 적이 있어요?”


수사기록 중에 간단히 그런 내용이 있었다.


“남편이 잡혀 오기 전이었어요.

회장부인인 고모님이 울산의 분식점 앞에서 저를 보자고 했어요.

어떻게나 치밀한 여잔지 고모는 그때도 기록이 남는 비행기는 절대 타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자기차도 타지 않고 버스로 다녔어요.

분식점 앞에 대놓은 빌린 친척차 안에서 만나자고 해서 그 차 안으로 들어갔죠.

모자를 쓰고 커다란 썬글래스를 쓰고 있더라구요. 자신을 철저히 감추고 있는 거예요.

차안에 들어가 인사를 했는데도 도무지 말을 안 해요.

녹음이라도 할까봐 그랬나 봐요. 그때 저는 정말 화가 났어요.

남편이 베트남까지 도망을 갔는데 고모인 회장부인은 뭔가 설명이 없는 거예요.

전 그 치밀한 성격을 알기 때문에 멍청한 남편이 이용당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그 집 파출부를 좀 해봐서 인간성을 알아요.

제가 막 따졌죠.

이렇게 된 판에 이젠 고모라던가 회장부인이 저하고 무슨 상관이예요?

제가 남편을 이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어요.

진실이 뭐냐구요? 그랬더니 고모가 자기는 모른다는 거예요.

그 말에 제가 모를 리가 있느냐 뒤에서 다 시켜놓고 같이 일한 걸 아는데

그렇다면 어디 경찰서에 가서 진실을 같이 따져보자고 덤볐죠.

말하는 도중에 고모가 나보고 도대체 조카며느리라는 게 어디 이따위 버릇이 있느냐고

뺨을 한대 갈기더라구요.

저도 그동안 쌓였던 게 폭발해서 같이 덤벼 들었어요”


어느새 차창 밖으로 부천역이란 간판이 보였다.


“그 다음은 어땠어요?”


회장부인은 김용국의 처가 산통을 깨지 않을까 걱정을 했을 것이다.


“며칠 후에 시누남편을 통해 연락이 왔어요.

제 남편이 총대를 메주면 50억원을 주겠다는 거예요.

회장이 시누남편에게 그렇게 얘기했대요.”


“그래서 뭐라고 대답 했어요”


“나이 많으신 고모님이 죄 값을 받으시고 젊은 조카인

우리남편은 살아야 하지 않느냐면서 거절했어요.”


“그 돈을 받고 싶은 유혹이 없었어요?”


내가 놀라면서 물었다. 거절하기 힘든 금액이다.


“회장부부는 철저하게 남 줄 돈 안주고 해서 부자 된 사람인걸 제가 압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제가 또 속아보세요.

평생 얼마나 한이 남겠어요? ”


그녀는 회장부부를 신뢰하지 않았다.


“참 변호사님”


그녀는 갑자기 어떤 생각이 난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죽은 정혜경이 머리에 총을 여섯 발 맞고 죽었잖아요?”


“그랬죠”


난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다.


“총을 여러 발 쏜 건 원한의 표현이 아니겠어요? 저는 그 말을 전해 듣고 처음에 회장부인이 쏜 걸로 알았어요.”


일리가 있었다.

마기룡은 프로가 아닌 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렇게 침착하게 죽이기가 힘든 것이다.


“사위여자관계를 폭로한 처음의 그 전화는 어디서 온거죠?”


내가 물었다. 괴 전화를 한 사람도 밝혀지지 않고 있었다.


“사귀던 여자 아니면 중매쟁이라고 해요.”


“그 외 이 사건에 대해 생각나는 게 없어요?”


그들이 흘려버린 한조각의 진실이라도 발견해 내고 싶었다.


“한참 나중에야 이해한 사실이 있어요. 회장부인이 남편과 통화를 하는데

그게 맞냐? 확실하냐? 그런 소리들을 자주 하는 걸 옆에서 들었어요.

전 그때 그 소리가 뭔지 이해하지 못했죠.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까 그건 독극물 얘기인 것 같았어요.

살인교사가 틀림없어요.”


지하철이 어느새 중동역 플랫폼에 들어서고 있었다.




김용국의 친구가 보일러 일을 한다는 역 근처의 허름한 빌딩은 한산했다.

3층의 제약회사 빈 사무실에서 김용국 마기룡의 고교동창이라는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용국이나 기룡이는 다 고향친구고 동창이죠.

용국이 하곤 어려서부터 불알친군데 그렇게 죄를 질 독한 애는 아닌데요.

친구들 사이에서는 마음이 넉넉한 편이었어요. 동창들 모두 뉴스를 보고 놀랐죠.”


그의 표정과 말에서 진실이 느껴졌다.


“김용국은 학교 때 껄렁껄렁하고 싸움을 잘했다면서요?”


고모인 회장부인은 법정에서 그렇게 몰아쳤다.

살인을 할 수 있는 성질을 암시하는 말이었다.


“용국이 원래 싸움 못해요. 전혀 그런 소질이 없다니까요.”


“그럼 마기룡이는요?”


“기룡이는 덩치도 좋고 싸움도 잘하는 편이었죠.”


“김용국을 근래에 만나 무슨 얘기를 나준 적이 없어요?”


“글쎄요 한번은 와서 자기가 미행을 하는데 같이 하자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근무 중인 사람이 어떻게 가느냐면서 안된다고 했죠.

아마 또 다른 친구가 미행할 때 몇 번 따라갔을 거예요.

뭐라더라? 돈 받을 사람이 있다고 했던가?”


“마기룡은 어떤 사람이죠?”


난 그의 성격도 자연스럽게 알고 싶었다.


“2002년 2월인가 동창회에서 본 일이 있어요.

기룡이가 잠깐 있더니 일이 있어 가야한다고 그랬던 게 기억이 나네요.

저보다는 용국이가 기룡이하고 더 친한데 서로 아웅다웅하기도 했어요.

서로 어음을 빌려주기도 한 사이고요.

그런데 기룡이는 사채일을 하면서는 친구들을 잘 만나지 않았어요.”


“마기룡씨 성품은 어때요?”


“글쎄요 용국이 보다는 좀 사기성이 있다고 할까? 순진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리고 허풍이 엄청 세요. 항상 말이 일이백만원이 아니라 몇 억 몇 십억 해요.

보일러공하는 나하고는 차원이 다르니까 기가 죽어요. 말이 안 통하는 거죠.”


“마기룡씨는 무슨 일을 한다고 합디까?”


“어디 가서 빚 받아내는 게 전문이래요.

그것도 용국이가 전한 말이지 기룡이는 자기가 뭘 한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어요.

평소 선한 사람은 그런 일 못하잖아요? ”


“두 사람 성격을 비교한다면 어때요?”


“글쎄요 마기룡이는 책임을 전가하는 성격은 아니예요.

자잘한 거짓말을 한다면 그건 김용국일 겁니다.”


그가 옆에 있는 김용국의 처를 보면서 멋쩍은 듯 말했다.

처는 아무 말 없었다. 긍정하는 표정이었다.

삼십분 후.

나와 김용국의 처는 역 부근의 허름한 식당에서 갈비탕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남편이 착한 성격이라고 친구가 그러는데 왜 이 사건에 말려 들었을까요?”


내가 물었다.


“회장부인인 고모가 남편에게 자기말만 잘 들으면 뭔가 해 줄 것처럼

남편을 꾀었을 거예요. 순진한 남편이 그 말을 믿고 한 면도 있을 거구요.

그렇지만 전 돈 한 푼 받아본 적 없습니다.

지금 생활비도 제가 파출부일을 하면서 법니다.”


그녀는 내가 돈에 대해 의심할까봐 미리 막는 것 같았다.

그녀가 잠시 무슨 생각을 하다가 불쑥 이렇게 말했다.


“회장부인이 무기징역이라도 받으면 가장 좋은 사람이 첩일 거예요.

지금 애가 학교 갈 때가 됐는데 정식으로 그 집 사모님이 될 위치니까요.

그런 면에서 회장부인 김귀숙도 알고 보면 불쌍한 여자예요.

사랑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돈의 노예가 된 사람이니까.”


그 말에 난 문득 짚이는게 있었다. 회장의 변호방향이었다.

재판장은 이미 노골적으로 유죄의 심증을 나타내고 있었다.

로펌의 변호사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회장측은 김용국 부부와 마기룡 그리고 심지어 죽은

여대생의 아버지 정의택 까지 오히려 자극하고 있었다.

정의택과 김용국의 처가 다음증인으로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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