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건곰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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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온 괴담] 악마와 같은 여자 ~ 18 ~ (0) 2010/06/26 PM 04:11


사형과 무죄의 판결이 교차될 것 같았다.

살인범 김용국의 물귀신작전 같은 증언은 신뢰성이 없었다.

유일한 증언이 효력이 없다면 회장부인은 무죄였다.

대형 로펌의 거물변호사들이 로비에 전력투구할 것이다.

대법관을 지낸 선배가 내게 법원장시절의 경험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재판초기에 분명 중형을 선고해야지 하고 속으로 결심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이 되자

그의 마음은 어떻게 풀어 줄까로 자신도 모르게 바뀌어 있더라는 것이다.

제일 친한 친구가 변호사로 활동을 한 게 그런 변화를 만든지

나중에야 깨달았다고 했다. 그게 현실이었다.

먼저 증언이라는 버팀목을 없애 판사가 봐줄 수 있는 명분을 만든다.

다음으로는 강한 로비였다.

그렇다면 물귀신 같이 살인을 지시받았다고 진술한 김용국은?

그는 사형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뒤에서 총 지휘를 하는 회장이 그런 작전을 하는 건지

의심스러운 면이 있었다. 완벽을 기하기 위해서는 그는 김용국을 계속 유혹해

그 담당변호사인 나를 배제해야 했다.

진실을 말하는 나는 그들의 눈으로 볼 때 목에 걸린 가시이기 때문이다.

또 회장은 어떤 방법을 택하든 죽은 여대생의 아버지를 진정시켜야 했다.

자신이 직접 구속도 되어본 노련한 회장이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그는 오히려 회유해야 할 인물들을 자극하고 있었다.재판장이

강한 소신파라면 어쩌면 회장부인은 영원히 감옥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위험성도 있었다.

나의 뇌리에 죽은 여대생의 빽빽하게 적힌 삶의 스케줄이 떠올랐다.

순간순간을 밀도 있게 살려고 애썼다.

오전시간을 흩트리지 않기 위해 새벽에 나갔다가 그녀는 인생전부를 도난당했다.

차디찬 이른 봄의 산기슭에서 서서히 죽어가면서

그녀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지금은 공원묘지의 납골당에서

사건과는 무관한 한줌의 재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산자의 세계는 치열했다.

범인들은 모두 자기만 살려고 교활한 꾀를 부리고 있었다.

여대생의 아버지는 재판장에게 저 사람들도 꼭 죽여 달라고 절규했다.

악인들은 자기의 피해자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오후 1시30분. 나는 법정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법원로비에 회장 측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나를 보는 그들의 눈길에 적대감이 가득했다.

그 중에 외딴 섬처럼 김용국의 처가 보였다.

진실을 얘기하게 해서 남편의 정상참작을 바라는 그녀는 친척들에게 배신자였다.

이기적인 그들에게는 회장부인의 석방만 보였다.

그들은 정말 인간적으로 회장부인을 동정할까.




이윽고 나는 괴괴한 기운이 도는 법정에 들어섰다.

법정을 지키는 정리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다가와 물었다.


“오늘 다른 심리가 있나요?”


“아니요. 그냥 선고장면을 보기 위해 왔어요.”


나는 선고 순간 재판장의 숨소리까지 그리고 살인자들의

얼굴에 스쳐가는 표정을 놓치지 않고 싶었다.

재판은 최대의 쑈일 수 있었다.

거짓말 하고 가짜눈물을 흘리고 위증을 하게했다.

돈을 받고 변호사는 머리를 빌려주기도 했다.

나는 차라리 범인들에게 거짓말과 한판의 쑈를 할 자격을

부여한다는 권리장전을 만드는 게 더 현실적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내가 더욱 흥미를 느끼는 것은 쑈가 끝난 후 배우들의 진면목이었다.

진실은 항상 무대 뒤에 숨어있었다.




“모두 일어서 주십시오”


정리의 외침이 들렸다. 넓적한 흰 얼굴에 콧등이 높은 재판장이 배석판사들과

함께 법정에 들어섰다. 코의 중간쯤에 걸친 돋보기를 보면서 25년 전

군인시절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나는 그와 같은 연병장을 기고 있었다.

누런 먼지를 뒤집어쓰고 온몸에 허연 소금이 붙을 정도의 훈련 중에도

그는 별로 말이 없는 성격이었다. 눈빛만 얼마 교환 했을 뿐 말을

나눈 기억이 거의 없었다.

그의 선고를 기다리는 몇 명의 잡범들이 먼저 나와 대기하고 있었다.

얼굴이 길쭉한 삼십대의 남자가 기대감으로 눈을 반짝이며 재판장인 그의 앞에 섰다.


“아침마다 여자만 있는 집에 들어가 강도강간을 해서

징역 7년을 받고 깍아 달라고 항소했군요. 생각해 봤는데

그 형이 적당하다고 생각했어요. 깍아줄게 없어요.

그래서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합니다. 들어가요.”


남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비굴하던 눈초리가 재판장을 노려보는 눈이 되었다.

다음은 작달막하고 눈이 째진 남자였다.

양손을 앞으로 하면서 겸손한 자세를 취했다.


“당신은 검침원을 가장하고 남의 집에 들어가

강도강간을 했는데 일심의 징역10년이 무겁다고 항소했어요.

재판장으로서는 그 형이 적당하다는 의견이었어요.

항소를 기각합니다. 들어가세요. 다음”


그 사내역시 순간 절망과 분노의 표정으로 변했다.

다음번 남자가 등장했다. 어떤 범인도 판결에 승복하지 않았다.


“남의 차를 훔쳐 달아나다가 경찰차와 숨바꼭질을 했네?

징역2년을 선고받고 깍아 달라고 항소했는데

그 정도 형이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항소를 기각하니까 들어가세요.”


재판장의 선고 속에서 그의 단호한 일면을 알아챌 수 있었다.

인정상 조금의 형이라도 깍아 주는 판사도 있었다.

험상궂은 청년 세 사람이 건들거리며 나와 섰다.

버릇이 된 깡패걸음은 법정에서도 버리지 못했다. 차라리 그들은 당당했다.


“당신네들은 차를 몰고 다니면서 길 가는

여자를 납치하고 강간하고 돈을 뺐었네? 모두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억울하다고 항소했는 모양인데 저는 오히려

그 형이 약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중형을 받아야 마땅하죠.

그렇지만 검사가 항소를 하지 않아 더 올리지는 않겠습니다.

항소를 기각합니다.”


그중 한명이 손으로 얼굴을 비비면서

“아! 씨팔”하고 소리쳤다. 존경하는 재판장님이 그들의 욕대로 X

같은 판사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 선고를 받기 위해 나왔다. 다른 사람과 달리 눈에 독기가 없었다.


“이건 강도긴 강도인데 먹을 것이 없어 저지른 생계형 강도라고 판단했어요.

일심에서 징역1년이 선고됐는데 우리 항소심은

정상이 딱하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3월에 처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벌써 그 이상 살았는데요. 그럼 오늘 나갑니까?”


영감이 얼굴이 환해지면서 재판장에게 물었다.


“그럼요. 오늘 저녁 당장 나가실 겁니다.”


재판장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선고하는 모습을 보면서

재판장의 성향을 보다 확실히 알았다.

그는 참회하는 인간에게 한없이 관대할 수 있는 판사였다.

그렇다면 회장의 변호전략은 잘못됐을 수 있었다.

자기시각으로 보지 말고 재판장의 시각으로 판단해야 오류가 없는 것이다.

나는 방청석 뒤에 있는 회장의 모습을 살폈다.

그는 손에 수첩을 들고 무엇인가 적고 있었다.

부인의 선고를 들으러 온 남편치고는 지나칠 정도로 담담한 분위기였다.

선고받은 잡범들이 모두 일어나서 대기실로 들어갔다.

그때 살?열린 대기실의 문틈으로 회장부인의 모습이 보였다.

나무의자에 앉아 머리를 벽에 기대고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김귀숙! 김용국! 마기룡!”


재판장이 무거운 목소리로 그들의 이름을 불렀다.

회장부인이 초췌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

이어서 얼굴에 붉은 기가 도는 김용국이 나타나고 그 뒤로 마기룡이

고개를 숙인채 곁눈질로 주변의 눈치를 살피면서 따라 나왔다.

재판장이 조용한 눈길로 그들을 내려다보면서 먼저 판결이유를 말했다.


“회장부인인 김귀숙은 자신의 가정과 딸만을 위하는

극도의 이기주의에 물들어 있다고 봅니다. 죽은 여대생 정혜경과

판사사위의 관계를 의심해 미행을 시키다가 오히려

그 여대생측으로부터 고소까지 당하자 위신이 실추된 것으로 느낀 것 같습니다.

김귀숙은 속에서 끓는 복수심과 의심만으로 살해지시를 한 것으로 재판부는 봅니다.

사위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판사직에 있는 사위는 장모가 의심을 하고 있는 걸 알았음에도

그 오해를 풀도록 노력하는 태도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고 피고인 김귀숙은 이 법정에서도 지금까지

조금도 뉘우치지 않고 범행을 전면부인하면서 다른 두 명에게

그 죄를 미루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재판장은 거기까지 말하고 김용국과 마기룡에게 시선을 돌렸다.

일괄해서 세 사람의 판결에 대해 먼저 말할 모양이었다.


“또한 재판부는 김용국과 마기룡에게서도 돈에 눈이 어둡고 아직도

뭔가 진실을 숨기는 듯한 태도를 보았습니다.

김용국의 경우 살해지시가 있은 지 다섯 달 후에 살인을 했는데

그 긴 시간동안 비극적인 사태를 막을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김용국과 마기룡은 서로 자신들의 책임을 가볍게 하기 위해

납치한 이후의 살해과정과 방법등 세밀한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됩니다.

피고인들은 아무런 원한관계도 없으면서

오직 물질을 위해 여대생을 잔인하게 살해했다고 보여 집니다.

특히 좌측 상완골이 분쇄골절이 된 것을 보면 여대생에

대한 상당한 가혹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 지므로

그 책임이 배후에서 지시한 회장부인 김귀숙보다 가볍지 않다고 재판부는 판단했습니다.”


공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우리 재판부에서는 일심에서 피고인들에게

내린 징역 20년은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는 의견이었습니다.

피고인들은 사형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의견입니다.”


세 명의 얼굴이 검은 흙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재판장이 잠시 뜸을 들인 후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나 사형을 꺼리는 게 요즈음의 추세입니다.

재판부 역시 그렇습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고심 끝에 피고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판결을 선고하기로 했습니다.”


재판장이 세 사람을 굳은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피고인들을 각 무기징역에 처한다.”


결론이 났다. 재판장과 판사들은 앞에 놓여있던

서류들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제서야 제정신으로 돌아왔는지

회장부인은 다급한 표정으로 손을 들면서 소리쳤다.


“저 재판장님 말씀드릴게 있습니다.”


재판장은 그녀를 흘낏 보더니 소리 없이 문을 빠져 나갔다.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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