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건곰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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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온 괴담] 악마의 핏줄 - 고베 연쇄살인 사건 ~ 1 ~ (1) 2010/06/21 PM 03:17
1997년 5월 27일 아침 6시 40분 무렵


효고현 고베(神戶)시 수마(須磨)구 시립 토모가오카 중학교 직원이 학교의 정문을 열다가 사람의 머리가 절단된 채 교문앞에 놓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경찰의 조사결과 이 학교에서 서쪽 1km 떨어진 아파트에 사는 하세 쥰 군(타이노하타 초등학교 6학년, 당시 만 11세)으로 판명되었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 3시경, 쥰군이 사는 아파트 앞에 있는 통칭 「탱크산」에 있는 케이블 TV 송전기지(사방이 철조망으로 둘러싸고 있고 입구는 쇠사슬로 잠겨있다)에서 쥰군의 몸이 발견되었다.


쥰군은 3일전인 24일 오후 1시 30분 무렵, 「근처의 할아버지 댁에 다녀올게요」하고 나간 뒤 행방불명 되었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는 주택가 「수마 뉴 타운」에서는


2월 10일에 초등학교 6학년 소녀 2명이 머리를 쇠망치로 구타당해 큰 부상을 입었고,


3월 16일에는 초등학교 4학년 소녀가 역시 쇠망치로 머리를 맞고 1주일 후에 사망,


그 직후 초등학교 3학년 소녀가 날카로운 칼에 배를 찔려 중태에 빠지는 사건이 연속해서 발생.


현지 주민은 공포와 불안에 떨었다.


교문앞에서 발견된 쥰군의 머리는 입에서부터 귀까지 찢어졌고 눈동자에는 X 자의 상처가 칼로 새겨져 있었다. 또한 찢어진 입에서 나온 A4용지에서는




자 게임의 시작입니다



미련한 경찰 여러분



나를 멈춰보라구



난 살인이 유쾌해서 견딜 수 없어



사람의 죽음을 보고 싶어서 보고 싶어서 어쩔 수 없어



더러운 채소같은 인간들에게 죽음의 제재를



수년간의 큰 원한에 유혈의 판결을



SHOOLL KILLER



학교살인마 사카키바라 세이토



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사카키바라 세이토'의 2번째 메시지는 6월 4일 현지의 고베 신문사로 우송되어 왔다.




고베 신문사에



일전에 내가 외출을 했을 때 우연히 가게에 TV가 켜져 있어 그것을 보고 있던 참에 아나운서가 내 이름을 「귀신 장미(오니바라)」라고 틀리게 읽는 것을 들었다.



사람의 이름을 틀리게 읽는 것은 더할나위 없이 사람을 우롱하는 행위이다.



종이 겉에 쓴 문자는 암호도 수수께끼도 허위도 아닌, 거짓없는 나의 본명이다.



내가 존재하게 된 순간부터 그 이름이 지어졌고 그렇게 결정되었다.



그러나 여러가지 주변사항으로 인해 나에게는 국적이 없다.



지금까지 나 자신의 이름을 다른 사람에게서 불린 적도 없다.



만일 내가 태어났을 때의 나 그대로인 채라면, 일부러 절단된 머리를 중학교 정문에 방치하는 등의 행동은 취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려고만 하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조용하게 살인을 즐기는 일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일부러 세상의 주목을 끈 것은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투명한 존재로 계속 되는 나를 적어도 당신들의 상상 속에서만이라도 실제하는 인간으로서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그것과 동시에 투명한 존재인 나를 생산한 의무교육과 의무교육을 낳은 사회로의 복수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단지 복수하는 것 뿐이라면 지금까지 떠맡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리는 것 뿐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이 세계에서 단 한 명, 나와 같이 투명한 존재인 친구와 상담했다.



그러자 그는



「비참하지 않고 가치 있는 복수를 하고 싶은 것이라면 당신의 취미이기도 하며 존재의 이유이기도 하고 또 목적이기도 한 살인을 포함시켜 복수를 게임으로서 즐기고, 당신의 취미를 살인으로부터 복수로 바꿔 나가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없고,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닌 당신만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서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말에 반응하듯이 나는 이번 살인 게임을 개시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내가 왜 살인을 좋아하는가는 알 수 없다.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는 자연의 섭리로 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살인을 하고 있을 때만은 평소의 증오로부터 해방되고 평온함을 얻을 수가 있다.



사람의 고통만이 나의 고통을 가라앉힐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이 종이에 쓴 문장을 대체로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 보통 이상의 집착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내 이름을 틀리게 읽거나 내 존재가 더럽혀지는 일은 참을 수 없다.



지금 현재 경찰의 움직임을 보면 어떻게 봐도 내심 귀찮아 하면서도 일부러 그것을 속이고 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나의 존재를 은폐하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는 이 게임에 목숨을 걸고 있다.



잡히면 아마도 목이 매달리게 되겠지.



그러니까 경찰도 목숨을 걸라고까지는 말하지 않겠지만 더 분노와 집념을 가지고 나를 추적해줘.



향후 한 번이라도 내 이름을 틀리게 읽거나 다시 실망시키는 일이 생긴다면 일주일간 세 개의 채소를 해치우겠습니다.



나를 아이 밖에 죽일 수 없는 유치한 범죄자라고 생각하면 큰 실수다.



 ― 나는 한 명의 인간을 두 번 죽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



PㆍS 머리 부분의 입에 넣어둔 편지 글자가 비 따위에 젖어 읽기 힘들 것 같아서 그것과 완전히 똑같은 내용의 편지도 함께 보냅니다.



(성명문을 싸고 있던 종이의 뒤에)



내 이름은 사카키바라 세이토



밤하늘을 볼 때 떠올리면 좋겠지




1300자에 달하는 글자수와 내용의 맥락을 볼 때 높은 교양을 가진 30세~40세 전후의 남성으로 추정되었다.(범죄자 프로파일러의 견해)


게다가 쥰군의 머리가 발견되던 27일 이른 아침, 검은색 세단 승용차(닛산 블루 버드)가 중학교 정문 앞에 정차하고 있던 것을 트럭 운전기사가 목격했고 정문 근처에서 검은 비닐 봉지를 가지고 배회하는 30세~40세의 남자를 주위의 노부인, 신문 배달부 등 다수가 목격했다.


그런데 수마 경찰서는 그때까지 보도되고 있던 범인과는 하나도 닮은 구석이 없는 S(토모가오카 중학교 3학년, 당시 만 14세)를 6월 28일 체포했던 것이었다. 얄궂게도 S의 부모님은 자청해서 실종된 쥰군 수색을 돕고 있던 상황이었다.


S는 대기업 제약회사에 근무하는 연구직의 부친과 모친, 남동생(당시 중학교 1학년)과 막내 동생(당시 초등학교 4학년)의 5인 가족이었다.


부모님의 예의범절은 엄격했는데 S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모친으로부터 크게 꾸지람을 받은 뒤 무슨 일이 생기는게 아닐까 할 정도로 심하게 계속 울었다고 한다. 의사에게서 「소아 노이로제」라고 진단을 받고 부모님은 가정교육 방침을 「방임주의」로 바꾸었다.



S가 초등학교 5학년 때 S를 가장 귀여워 해주었던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비정상인 행동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때를 경계로 죽음이라는 것에 흥미를 가지고 주위의 고양이나 작은 새 등 작은 동물을 학대하거나 죽이는 것을 반복했다.


비정상적인 잔학성을 가진 S는 근처에서도 유명해서 친구들도 S를 무서워해 다들 멀어져 갔다고 한다.


수사 본부에서는 근처의 탐문수사결과 S를 용의자라고 단정했다.


(프로파일러의 의견은 신문과 TV뉴스에 나왔지만 경찰의 실제 용의자 선정결과는 언론에 흘리지 않았다.)


수사 본부는 S가 조사과정에서 「내가 쥰군의 살해와 2월, 3월의 소녀 상해를 저질렀다」라고 진술했기에 범인이라고 단정지었다.


그러나 「진범은 따로 있다」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저널리스트, 대학교수, 범죄 전문가)이 있었다.


이것은 검은색 세단을 탄 남자나 검은 비닐 봉지를 가진 의심스러운 남자의 존재 때문이다.


또한 쥰군의 목을 놓아둔 상황도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27일 아침 6시 40분 무렵, 중학교 직원이 학교 정문을 열었을 때 머리는 정문의 중앙에 놓여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현장검증에서도 증명되고 있다)


그런데 83세가 되는 노부인이 1시간전에 목격했을 때에는 「학교명이 쓰인 금속 플레이트 아래에 놓여져 있었다」고 한다.


(이 노부인을 포함한 다른 목격자들은 진짜 인간의 머리라고 생각하지 않고 마네킹등을 이용한 악질적인 장난 정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았다).


1시간 후인 6시 30분경 신문 배달원은 머리가 플레이트와는 반대로 정문으로 향하고 좌측에 놓여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또 S의 증언으로는 처음에는 정문의 담 위에 머리를 놓아 두었지만 상태가 안정적이지 않아 교문앞에 두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이 문의 높이가 약 2m인데 160cm인 S의 키로 4kg 무게의 머리를 담 위에 두었다가 다시 옮겼다는 것이 타당한가?


(S는 뛰거나 혹은 담위로 기어 올라간 적이 없다고 한다.)


또 당시의 신문이나 주간지에서 학교측의 체벌로 S가 학교에 원한을 가지고 있던 것이나 담임으로부터 「학교에 오지 말아라」라고 말했다는 등의 보도에 대해 학교측은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S가 속해있던 반 급우들의 증언과도 일치한다.


S를 향한 집단 괴롭힘의 징후도 없었다. (오히려 급우들이 S를 두려워하여 S의 말에 고분고분 잘 따르는 편이었다.)


그리고 고베 사건은 물증도, 범행 목격 증인도 없이 S의 자백만으로 범행이 인정되었으며 흉기의 종류와 칼날의 길이에 대해서도 실제와 S군의 자백이 엇갈렸다.


또한 사체의 훼손, 시반, 혈액, 음식물 소화상태로 보아 양손과 신발끈으로 목이 졸려 사망한후 급속하게 냉동된 것으로 보이나 S군의 상황으로는 사체를 보관할만한 냉동장치를 이용할 수 없었고 S군의 자백으로는 심한 몸싸움 뒤 죽였다고 되어 있으나 사체에서는 격투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또한 경찰에서는 S군의 집에서 고무대야와 톱, 칼을 이용하여 사체를 절단했다고 발표하였지만 S군의 집 욕실, 고무대야, 톱, 칼에서는 루미놀반응(혈흔검사)이 나타나지 않았고 이 사실은 무시되었다.


부검결과 범인은 왼손잡이로 나타났으나 S군은 오른손잡이이며, 협박장의 필적도 S군의 필적과 다르다는 사실 역시 무시되었다.


그리고 체포때부터 계속 부모님의 면회를 거절하고 있던 S는 사건 발생 6년만에야 부모님과 면회를 하게 된다.


이 때 모친은 「정말로 네가 범인이야?」라고 묻자 「응, 내가 했어!」하며 쓰러져 울었다고 한다.


2004년 3월 10일, S(당시 21세)는 수용지의 관동 의료 소년원(도쿄도 후츄시)을 가퇴원했다. 2003년 3월에 의료 소년원으로부터 접수된 가퇴원 신청을 관동지방 갱생 보호 위원회가 「S는 깊게 반성하고 있어 재범의 가능성이 없다」고 인정했다.



※ 이것은 이 사건으로만 끝나지 않고 또 다른 사건과 연결되게 됩니다. 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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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병의 폐혜인가여... 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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