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건곰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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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온 괴담] 껌 ~ 2 ~ (0) 2010/06/22 PM 04:27


.............


“아주머니 여기 얼마에요?”


계산을 위해 주인을 불렀다.

결국 고기는 반도 못 먹었지만 오주임은 그것만으로도 놀랍다는 눈치였다.


“만오천원.”


여전히 주인은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이봐요, 아줌마. 무슨 장사를 그렇게 해요. 너무 불친절한 거 아니에요?”


오주임이 아까부터 주인의 태도에 불만을 갖더니, 드디어 폭발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주인은 오른 손만 내민 채 말없이 서 있을 뿐이었다.


“아, 예. 여기 있습니다. 정말 맵네요. 멋진 경험이었습니다.”


주인이 내민 손에 돈을 올리며 내가 말했다.

그러자 돈을 받은 주인이 아무렇게나 주머니에 돈을 꾸겨 넣었다.

그리고 식탁을 치우기 위해 허리를 숙이는 주인에게 오주임이 말을 걸었다.


“아줌마. 여기 뭐, 껌 같은 거 없어요? 이렇게 매운 걸 팔면서 입가심이라도 있어야지.”


거슬리는 말투였지만 맞는 말이었다.

아직도 입 안이 매워서 미칠 것만 같았는데,

달짝지근한 껌이라도 하나 씹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 그래요 아주머니 혹시 껌 있나요?”


내가 말했다.

그릇을 한쪽으로 치우고, 막 걸레로 식탁을 닦던 주인이 불현듯 움직임을 멈춘다.

그리고 우리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껌?”


주인이 짧은 한 글자를 내뱉고는 표정 없이 우리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요 껌. 없죠? 있을 리가 있나. 에휴.”


오주임이 말했다.

그리고 더 이상 상대하기 싫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눈짓을 보냈다.

밖으로 나가자는 신호였다.

막 몸을 돌리려는 순간,


“있어.”


주인이 말했다.

막 몸을 돌리던 차여서 우리는 어정쩡한 자세가 되고 말았다.


“아, 그래요? 있으면 하나만 주시겠어요?”


내가 말했다.


“그러지.”


주인이 대답을 하더니 갑자기 왼 팔 소매를 걷기 시작했다.

팔꿈치까지 올려서 소매를 고정시켰다.


“갑자기 소매는 왜..... 엇?”


오주임이 말을 하다 순간 입을 다물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주인의 팔 여기저기에 살점이 뜯어져 나간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살점이 뜯어져 나간 곳에 하얀 뼈까지 보였다.

불쾌한 표정을 짓는 우리에게 주인이 우리 쪽으로 팔을 올렸다.


“자, 껌이야. 떼서 씹어.”


자신의 팔을 씹으라는 주인.

입가에는 엷은 미소까지 비친다.

우리는 잠시 벙 찐 채 아무 말도 못했다.

그러다가 오주임이 몹시 흥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장난해 지금? 이 가게 신고할 줄 알아! 대리님 나가요. 언능!”


오주임이 씩씩거리며 문을 나섰다.


“정말 불쾌하네요. 다시는 오지 않겠습니다.”


물론 나 또한 기분 나쁘긴 마찬가지여서 적잖이 인상을 써주고 밖으로 나왔다.

문 밖에는 오주임이 우두커니 서서 투덜거리고 있었다.


“기분 풀어, 오주임. 그나저나 정말 매웠어. 캬~”


오주임의 어께를 두어 번 두드리며 내가 말했다.


“저는 고기 한 점 먹었습니다. 그것도 먹다 뱉었죠. 이게 뭐에요 정말!”


오주임이 사납게 쳐다보며 말했다.


“아, 알았어! 밥 한 번 더 사면 될 거 아냐. 남자가 이런 체험도 해 보고 해야지. 허허, 안 그래?”


“하아. 저기서 껌이나 한 통 사 주셔요.”


오주임이 체념한 듯 한숨을 쉬며 말 했다.

우리는 음식점 바로 옆에 있는 허름한 구멍가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기요~ 저..콜록, 콜록”


문을 열자마자 먼지가 먼저 우리를 반겼다.

음식점만큼이나 청결하지 못 한 내부였다.


“어엉? 손님? 워매 이게 얼마만이나?”


백발이 무성한, 7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주인이 우릴 맞이했다.


“손님들 뭐 사실 거드래요?”


음식점 주인 보다는 손님 맞는 자세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저기, 껌은 어디 있나요? 지금 너무 매운 음식을 먹어서 많이 단 껌이면 좋겠는데.”


내가 말했다.

그러자 주인이 자신의 뒤 쪽에 있는 선반 윗부분을 뒤적뒤적 거리며 고개를 갸웃 거린다.


“어디 보자. 푸라보노, 하이트이, 티스마일, 음... 단 껌은 없는데.”


무설탕 껌 위주로 비치를 한 모양이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거라도 달라고 말 하려는 참에,

오주임이 먼저 말을 꺼냈다.


“할아버지, 그 앞에 하얀 통은 뭐에요. 그 안에, 껌 같은데. 그거 껌 아니에요?”


오주임의 눈길을 따라가 보니 과연 하얀 통이 보였다.

둥그런 타원형의 통이었는데 뚜껑이 열려 있어서 내용물까지 보였다.

약간 볼록한 정사각형, 흔히 씹는 껌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자세히 보려고 다가가려는데 그 앞을 주인이 막고 섰다.


“이건 안 돼. 껌이지만 껌이 아니네. 이건 안 돼.”


“아~ 그거 한 번만 보게 해 주시면 안 돼요? 그러니까 괜히 궁금하잖아요.”


괜히 호기심이 발동한 내가 말했다.

하지만 주인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문 채 움직이지 않았다.


“쳇, 뭐야 파는 게 아니면 어디 숨겨놓던가. 음식점 주인은 자신의 팔이 껌이라지 않나. 참 이상한 동네네 여기.”


오주임이 툴툴거렸다.

순간 주인의 눈이 부릅떠지는 것이 보였다.


“이보서! 아까 전에 무얼 봤나?”


호령에 가까운 주인의 소리에 오주임이 화들짝 놀란다.


“에, 예? 무, 무슨...?”


“봤나? 옆 집 주인 팔 봤나?”


오주임은 그제 서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아. 봤어요. 혹시 껌 있냐고 물어봤더니, 자기 팔이 껌이라고 떼먹으라고 하더라고요. 나 참.”


그 말을 들은 주인이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짓는다.


“할아버지. 그냥 푸라보노 한 통 주세요. 오백원이죠?”


내가 말했다.

왠지 요상한 분위기가 생기는 것 같아 어서 나가고 싶었다.


“아니다. 그냥 이 껌 줄게. 이 껌이 무지 단 껌은 맞다.”


주인이 말하며 흰 통에서 껌을 한 웅큼 움켜쥐고는 우리에게 내밀었다.

나와 오주임은 얼떨결에 그 껌을 손에 받았다.


“괜히 이러시니까 오히려 씹기 싫어지잖아요. 그냥 푸라보노 주세요.”


선뜻 내키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했지만 주인이 내 말을 무시한다.


“그 껌, 절대 삼키지 말고 단 물 빠지면 뱉어. 이것만 명심하면 된다.”


“아니 그냥 푸라보노...”


“아, 이거 진짜 단데요. 대리님? 매운 맛이 싹 가시네. 와, 이 껌 뭐야.”


내 말을 끊고 오주임이 말했다.

이미 껌 하나를 입에 넣은 모양이었다.


“오주임! 지금 할아버지가 이상한 말 하는 거 못 들었어?”


“대리님도 그냥 그거 씹으세요. 푸라보노보다 백배는 낫겠다.”


나는 한숨을 쉬며 다시 주인을 바라보았다.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껌 씹기를 권하는 표정이었다.

내키진 않았지만 어차피 공짜로 받은 껌이니만큼 나도 하나를 입에 넣었다.


-아그작,


껌을 깨무는 것과 동시에 입 안 가득 단 맛이 퍼진다.

포도 향 같기도 하고, 사과 향 같기도 한 청량한 맛이었다.

씹으면 씹을수록 입 안 가득 단 맛이 가득 찼고, 어느새 입 안을 지배하던 매운 느낌도 싹 사라졌다.


“명심해야 돼. 절대 삼키면 안 된다.”


정신없이 껌을 씹는 우리에게 주인이 재차 경고의 말을 해왔다.

뭐 충분히 알아들었고, 껌을 삼키는 취미도 없었다.


“예 알겠어요. 저희 그럼 가볼게요. 껌, 감사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가게를 나왔다.

조금 수상한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정말 기똥차게 단 껌인 것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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