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건곰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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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온 괴담] 껌 ~ 23 ~ (0) 2010/06/22 PM 06:20


-여보세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늘 그렇듯 맑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은비를 혼낼 때는 조금 날카로워 지지만 말이다.


“후우...”


아내의 목소리에 마음이 놓인 탓인지,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아내가 재차 물었다.

처음 보는 번호인데 걸자마자 한숨부터 쉬어서 그런지,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나야.”


짧게 한 마디 했다.


-어? 자기야?


단번에 알아챘지만 역시 의아해 하는 목소리였다.


“어. 은비는 자?”


-아니 아직. 음음. 이 번호는 뭐야? 음음.


밥이라도 먹고 있는 걸까.

손목을 올려 시계를 봤다.

열시 이십 분.

저녁을 먹기에는 늦은 시각이었다.


“아아. 후배직원 전화야. 내 게 지금 고장 났거든.”


-음음. 음음. 아휴 어쩌다가. 그런데 밥은 음음 먹었어?


“어. 뭐 대충. 그건 그렇고, 오늘 못 들어갈 것 같아.”


-왜? 음음 많이 바빠? 음음 은비가 자기 때문에 안자고 있는데. 음음.


“자세한 건 들어가서 말할게. 은비 어서 자라 그래.”


-음음. 음음.


아까부터 우물거리는 소리가 계속 거슬린다.

대체 뭘 먹길래.


“대체 입안에 뭐야? 통화할 때는 삼키든지, 뱉든지 하라고.”


-음음. 아아. 알았어. 잠깐만. 음음


그리고 수화기 너머로 ‘꿀꺽’하는 소리가 들린다.

삼킨 모양이었다.


“뭘 먹은거야?”


-아. 별 거 아니야.


“뭔데? 맛있는 거면 나도 내일 해줘.”


-후후. 은비 바꿔줄게~


‘은비야 아빠야~’ 하는 아내의 소리와,

‘어 정말?’ 하는 은비의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우당탕 뛰어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빠!!


은비였다.

방심하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그러자 나를 지켜보고 있던 필중이 말했다.


“집에 무슨 일 있어요? 갑자기 왜 그렇게 놀라요?”


“아, 아냐. 그냥 딸내미가 소리를 좀 질러서 흐흐흐.”


어색하게 웃어주고 다시 통화에 집중했다.


“그래 아빠야. 깜짝 놀랐잖니.”


-아빠! 아빠! 음음. 오늘 음음. 왜 안 와~?


“아빠가 오늘 너무 바빠서 그래. 내일 일찍 갈게.”


-아아아아~ 치킨 치킨~ 음음. 치킨~


“은비 너~ 아빠보다 치킨이 더 보고 싶구나.”


은비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아냐. 아빠가 훨씬 보고 싶어. 음음


가만히 듣고 있으니 은비도 뭔가를 먹고 있는 모양이었다.


“은비야. 그런데 지금 엄마랑 뭐 먹고 있었니?”


-응~ 음음 나 지금 껌 먹어~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껌이라는 말만 들어도 몸이 반응을 하는 모양이다.


“어, 어 그래. 은비야. 아빠가 며칠 전에 사준 치약껌이니?”


-아냐 그거~ 음음 엄마가 대빵 맛있는 껌 줬어~


갑자기 서늘한 기분이 든다.


“치,치약껌이 아니면 무슨 껌이야?”


-우웅~ 치약껌보다 음음. 훨씬 훨씬 음음. 백만배 달아 히히


치약껌보다 달다니.

살면서 수많은 껌을 씹어봤지만 어린이용 치약껌 이상 단 껌은 맛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단 껌을 찾기 힘들 거고.

그 껌만 제외하면 말이다.

그 껌.

그 껌?

순간 어제 잃어버렸던 껌 두 개가 떠오른다.


“은비야! 그 껌 어디서 낫니!”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은비가 깜짝 놀랐는지 잠시 말이 없었다.


-아~ 깜짝 놀랐잖아! 아빠 바보!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크게 심호흡을 몇 번 했다.

안 좋은 쪽으로 일부러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시중에 파는 껌일 것이다.

어쩌면 껌처럼 생긴 츄잉캔디일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진정 되는 것 같았다.


“미안해 은비야~ 그런데 엄마가 무슨 껌을 줬어~?”


-아빠랑 말 안 해 흥!


“은비야~ 아빠가 내일 치킨 두 마리 사갈게~ 교촌하고 비비큐. 어때?”


-저엉말?


“그럼~ 아빠가 언제 거짓말 하는 거 봤어?”


-와아아아! 음음. 아빠 내일 꼭 와야 해! 음음. 꼭이야 꼭!


치킨 두 마리에 겨우 은비의 마음을 풀 수 있었다.


“그럼 아까 아빠가 물어본 거 대답해줘야지~”


-응? 아아 껌 뭐냐구?


“그래. 엄마가 무슨 껌을 줬어?”


-음~


잠시 은비가 말을 멈추었다.

기억을 떠올리려는 모양이다.

우물거리는 소리만이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대리님. 너무 오래 쓰시는 거 아니에요~”


필중의 볼멘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필중을 향해 다시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수화기 멀리서 ‘엄마 이 껌 아빠가 준 거 맞지?’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마 전에 사준 치약껌은 분명히 아니라고 했었다.

그래서 혹시라도 사다준 껌이 있었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니 반드시 생각해내야만 한다.

잠시 후,

‘어 맞어.’ 하는 아내의 소리와 함께 다시 수화기를 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이거 엄마가 세상에서 두 개 밖에 없는 껌이라고 했었어.


“응? 은비야 그게 무슨 말이야?”


-아빠가 우리 주려고 세상에 두 개 밖에 없는 껌을 사왔다고 했어.


“아빠가?”


-응 아빠가 음음.


“대리님. 왜 그러세요. 껌 뱉으셨어요? 표정이 왜 그렇게...”


내 표정을 보던 필중이 말했다.

내가 내 얼굴을 볼 순 없지만 아마 처참하게 일그러진 것이 분명하다.

겨우 진정시킨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두 배는 더 맹렬히 뛰는 것 같았다.


“으, 은비야. 호, 혹시. 그, 그, 그거 아빠 주, 주머니에 있던 거냐고 어, 엄마한테 물어봐”

입이 덜덜 떨린다.


-으응 알았어~ 엄마~!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한다.

그리고 입술은 바짝 마른다.

혓바닥으로 연신 입술을 축이지만, 임시 처방일 뿐 순식간에 다시 말라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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