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건곰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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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온 괴담] 껌 ~ 25 ~ (0) 2010/06/22 PM 06:26


나가야 한다.

무조건 나가야 한다.

방법 따위는 모르겠다.

하지만 죽는 한이 있어도 나가야 한다.

나가서 아내와 은비를 구해야 한다.


“대체 무슨 일이에요. 집에 무슨 일 있어요?"


"필중아."


"예?"


"나가자."


이 때 필중에게 비치는 내 모습이 어땠을까.

아마 갑자기 정신이라도 나간 것처럼 보였을 거다.


"다짜고짜 그렇게 말 하셔도, 대체 무슨 수로 여길 나가자는 거... 어? 대리님?"


필중이 계속 말했다


"우... 세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이 나온 모양이었다.

허겁지겁 손으로 눈가를 훔쳤다.


"우, 울긴 새끼야. 누가 울어."


"아까 통화중에도 우시는 거 봤어요. 무슨 일이에요? 뭐 삼켰느니, 어쨌느니 하시던 것 같던데."


필중의 말에 안으로부터 용솟음치는 감정이 느껴진다.

그리고 순간 울컥하나 싶더니, 이내 참을 수 없는 상태에 빠지고 만다.


"씨팔. 흐흑흑흑."


"이제 아예 대놓고 우시네. 참나..."


모르겠다.

아직 아내도, 은비도 어떻게 된 건 아닌데 왜 이렇게 슬픈지 모르겠다.


"아내가, 아내가, 그 껌을 삼켰어."


"뭐라고요?"


"그리고 내 딸은 그 껌을 씹고 있고.. 크흑...씨팔. 그러니까, 나가야 한다고!"


은비를 떠올리니 또 다시 감정이 격해졌다.

나는 도무지 그 아이가 괴물이 된 것을 상상할 수 없다.

그 아이의 입에서 괴상한 소리가 나는 것도, 그 아이의 얼굴이 이상한 곳에 붙어 있는 것도.


"아니, 아니 어쩌다가 그걸 씹었대요?"


"다 내 잘못이야. 내가 그 껌을 가져오면 안 되는 거였어. 차라리 내가 삼켰으면 삼켰지. 왜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가족이... 니미! 씨팔!"


흥분한 나에게 필중이 손을 내밀어 한 쪽 어깨를 붙잡았다.


"진정하세요. 마음은 알겠는데, 이성적으로 생각하자고요."


"흐흐흑..."


필중의 말이 맞았다.

우선은 이성을 찾아야 한다.

아내에게는 나만 믿으라고 해 놓고,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억지로 침을 삼켜가며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나를 필중이 물끄러미 보고 있었고, 어느 정도 뜸을 들인 후 입을 열기 시작했다.


"용케 나가서 집으로 갔다고 쳐요. 그 다음엔 어떻게 하실 거예요? 무슨 해독제라도 있나요? 눈앞에서 부인이 괴물로 변하는 걸 보고 싶으신 건 아니잖아요."


직설적이라 거슬리긴 했지만 틀린 말은 없었다.

당장 집에 간다고 아내를 구할 방도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눈앞에서 괴물이 되기라도 한다면 그거야말로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은비는 어쩌란 말인가.

은비까지 껌을 삼킨다면 나는 아마 미칠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충분히 정상은 아니었지만.


"후우. 그래 너 말이 맞다. 후우, 후우. 쪽팔리게 씨팔. 후우 후우."


숨을 골랐다.

이성을 찾는 데도 역시 은비 생각이 최고였다.


"후우. 후우. 아? 아. 그 집! 그 집으로 가 봐야겠어!"


"예? 무슨 집..."


"처음 이 껌을 받았던 곳 말이야. 그 집 주인이라면 뭔가 알고 있을 거야. 이 일의 장본인이니까."


필중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그 사이 나도 여러 생각을 떠올렸다.

특히 그 음식점 주인의 모습,

분명히 팔 여기저기에 살점이 뜯겨져있었다.

잘은 몰라도 정황상 그 껌의 영향이 틀림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필중의 말로 볼 때, 오주임도 그 주인과 비슷한 모습이 된 것 같았다.

그러니까 껌을 삼킨다고 해서 꼭 문 밖의 괴물처럼 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지금 상황에서는 팔에 구멍을 뚫는 상태라도 감지덕지해야 할 것 같았다.

아니,

아내가 제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괴물로만은 절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쨌든 일단은 그 가게로 가야한다.

그 주인장을 만나서 모든 비밀을 알아내야 한다.


“음... 다른 건 다 둘째 치고 일단 저 괴물은 어쩔 겁니까.”


생각을 마친 필중이 말했다.

조금은 누그러진 말투였다.

그나저나 정말 저 괴물이 문제이긴 했다.

문 앞을 딱 막고 서서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는 저 녀석을 어떻게 돌파한단 말인가.


“그, 약점 같은 거 없을까? 가령 불에 약하다든지.”


“약점이 있었으면 제가 여기 갇혀 있게요?”


“음.”


괴물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때다.

다행히 흥분상태는 많이 가라앉았다.

여전히 가슴은 뛰고 있었지만.


“저 놈만이 문제가 아니에요. 3층에는 저런 녀석들이 득실득실 하다고요.”


“응? 득실득실?”


아까 전 좌측 통로에서 비치던 실루엣이 떠오른다.

괴물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껌을 삼킨 사람만 괴물이 되었다면 그렇게 많은 수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득실 득실이라니.


“우리가 4층으로 도망 온 이유가 그거에요. 저 녀석들은 3층을 거점으로 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한 놈이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수가 많아지더라고요. 걷잡을 수 없을 지경이 되기 전에 사람들과 함께 나왔죠. 그때는 저렇게 문 앞을 떡하니 지키고 있지 않았거든요.”


“그럼 나온 김에 밖으로 나가지 그랬어.”


필중이 고개를 젓는다.


“이미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저 놈들이 지키고 있었어요. 어쩔 수 없이 4층으로 가게 됐는데, 3층과는 달리 한 녀석만 그 곳을 배회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비교적 손 쉽게 우리는 405호로 들어갈 수 있었어요. 405로 들어간 이유는 내부가 크기도 했지만, 잠금장치가 2중이라 좀 더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어요.”


“잠깐만. 그런데 그 한 놈은 어떻게 피한거야?”


“예?”


“그러니까. 그 4층에 있던 한 마리의 괴물은 무슨 수로 피할 수 있었냐고.”


“아아.”


필중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 마리쯤은 피할 수 있어요. 아까도 비슷했잖아요.”


그 말에 문득 떠올랐다.

괴물에게 잡혔을 때 빠져나왔던 순간이 말이다.

두 번이나 괴물에게 붙잡혔고, 그 때마다 내가 취한 행동은,

바로 껌을 뱉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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