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건곰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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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온 괴담] 껌 ~ 28 ~ (0) 2010/06/22 PM 06:36


필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숨을 죽인 채 한 계단씩 천천히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아까 그 껌 말이죠.”


중간쯤에서 필중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괴물 때문인지 매우 작은 목소리였다.


“그거. 오주임이에요.”


“뭐?”


내 되물음을 무시하고 필중이 계속해서 말했다.


“자신의 살을 씹으면 괴물이 되지 않는다고 했어요. 절대 뱉지 말라고 그랬는데…”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가.

필중이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내뱉는 사이 어느새 3층 마지막 계단에 발을 딛고 있었다.

그리고 2층 계단으로 몸을 돌리기 전 잠시 복도 쪽으로 손전등을 비춰보았다.


“흡!”


하마터면 소리를 낼 뻔했다.

손전등에 비친, 그야말로 득실거리는 괴물들의 모습을 본 순간 말이다.


“이런! 돌려요 어서! 빛을 보면 반응한다고요!”


“뭣?”


순간 한녀석이 이쪽으로 몸을 돌렸다.


-위휘쉬이위휘


그리고 그 특유의 괴성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다른 녀석들도 속속 몸을 돌리기 시작한다.


“씨, 씨발 뭐야!”


“괜히 불을 꺼놓은 줄 아세요? 뛰어요!”


손전등으로 2층 계단을 확인할 새도 없이 뛰기 시작했다.


-스르륵, 쿵


괴물이 우리를 좇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큰 실수를 저지른 것 같다.


“제가 뭐랬어요. 3층에는 득실득실 하다고 했죠?”


정신없이 달리느라 대답은 할 수 없었다.

이윽고 2층까지 내려왔다.

뒤쪽으로 들리는 괴물들의 소리가 여전히 우리를 쫓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1층 계단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산재하게 널려있던 오부장의 덩어리가 떠올랐다.


“마지막 계단이야. 여기부터는 발조심 좀 해야할거야!”


“알았으니까 어서 계단이나 비춰요.”


이제 이 계단만 내려가면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지체할 시간은 없다.


-화악


1층계단을 향해 손전등을 비추었다.

그리고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뭐에요! 어서 내려가요!


필중이 외치며 내 어깨를 잡아 옆으로 재꼈다.


“갑자기 왜 멈추고 그…”


잠시 말을 멈춘 필중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씨발.”


내가 멈춘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계단을 떡하니 막고 있는 괴물이 보였기 때문이다.

잠시 지체하는 사이, 뒤를 쫓아오던 괴물들의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상황이었다.


“일단 제가 뒤 쪽에 껌을 뱉을게요. 대리님은 앞에다 뱉어 보세요.”


일단 필중의 말에 고개는 끄덕였지만 쉽지않아 보였다.

워낙에 덩치가 큰 괴물이 좁은 계단을 딱 막고 서 있으니 딱히 껌 뱉을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앞에다 뱉자니 관심은 끌지 몰라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을 것 같았다.

괴물을 넘어 계단 밖으로 껌을 뱉는 것이 최선이었는데, 아무래도 괴물의 육중한 몸에 걸릴 것 같았다.


-퉤!


뒤 쪽으로 간 필중이 껌을 뱉은 모양이다.

쫓아오던 괴물의 속도를 조금은 늦췄으리라.

하지만 앞에서 오는 이 괴물에게는 도저히 답이 없어 보였다.

어떻게든 괴물의 뒤 쪽으로, 웬만하면 계단 바깥으로 껌을 뱉어내야한다.

최대한 입에 힘을 주고, 호흡을 골랐다.


“퉤!"


그리고 뱉었다.

단언컨데 지금까지 중 가장 만족스러운 곡선을 그으며 날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환상곡선도 괴물을 지나치지는 못했다.

괴물의 몸 근처에 맞고 떨어져버린 것이다.

우려대로 괴물은 그 자리에서 몸을 쭈그려 자신의 발밑에 있는 껌에 신경을 쏟기 시작했다.

완벽하게 계단 한 가운데를 막아선 채로 말이다.


“이… 이런.”


막 내게 다가온 필중이 그 광경을 봤는지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이, 일단 내려가자. 저 놈을 밟고서라도 건너가자고!”


내가 말했다.

하지만 필중은 쉽사리 발을 떼지 못했다.


“무, 무리에요. 저렇게 막고 있는데.”


“방법이 없잖아. 그나마 지금이니까 가능한 거야.”


“무리에요. 하지만.”


필중이 잠시 눈을 지그시 감더니 뭔가 결심한 듯 입을 열기 시작했다.


“혼자라면 가능할 수도 있어요.”


“… 그게 무슨 말이야?”


필중이 눈을 떳다.

그리고 사뭇 비장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가세요. 제가 미끼가 될 테니.”


잠시 할 말을 잊었다.


“무, 무슨 말이야! 지금 같이 내려가면 돼. 어서 가자!”


먼저 한 걸음 내려가 뒤를 돌아봤다.

필중은 여전히 그 자리였다.


“저는 어차피 괴물로 변할 거예요. 사실, 아까 그 껌을 뱉으면 안 되는 거였거든요.”


“무, 무슨!”


괴물이 될 거라는 말에는 깜짝 놀랐지만, 미끼가 될테니 나만 살아 남으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내 가족을 살리기 위해 필중을 사지로 모는 꼴 아닌가.

그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어서 가세요! 놈 들이 다시 움직일 거라고요!”


“같이 가야해! 나만 살 순 없어!”


필중이 답답하다는 듯 발을 동동 굴리더니,

주머니에서 남은 껌 모두를 꺼내 입에 넣는다.

그리고 양 볼에 가득 찬 껌을 난폭하게 씹기 시작했다.


"질겅, 질겅, 질겅"


"너, 갑자기 뭐하는 거야?"


"질겅, 질겅, 질겅"


필중은 한동안 계속 껌을 씹는 데만 집중을 했다.

도무지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었다.



“질겅, 질겅, 질겅. 만약에 오주임을 만나면 전해주세요. 퉤!”



필중이 껌을 손에 뱉으며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리고 뱉은 껌을 꾹꾹 뭉쳐 손바닥 반 만한 크기로 만들고는 계속 말을 이었다.


“죽어서도 잊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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