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건곰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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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온 괴담] 껌 ~ 32 ~ (1) 2010/06/22 PM 06:47


내가 생각할 때 이 길은 다행히도 외진길이 분명했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부쩍 늘어난 돌맹이들과 잔가지, 그리고 관리 안 된 나뭇가지까지 가세해 나의 걸음을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등산로라면 하다 못 해 나뭇가지 정도는 쳐 놨을 텐데 말이다.

확신이 깊어질수록 한 걸음 떼기가 무서울 정도로 길이 험해진다.

이대로 가다가 굵은 가지에 눈이라도 찔리면 큰일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대한 손전등을 넓게 비추고 왼손으로 앞을 더듬어가며 걷는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이 두 가지였다.

하나는, 맛 집이고 뭐고 다시는 후평동 쪽에는 얼씬도 안 할 거라는 생각이었고,

둘은, 거래처 사장에게 들었던 그 괴상한 이야기였다.


......


......


“그건, 마을에 갑자기 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네.”


“괴상한... 일이요?”


“그래. 말 그대로 괴상한 일. 그 집을 다녀온 사람들에게 벌어진 일이었네. 길게 말 하진 않겠네. 그렇다고 길게 아는 것도 아니지만 허허.”


“예, 괜찮아요. 말씀 해 보세요.”


“우선 그 곳에 다녀온 사람들 중 대부분이 죽었어. 한 사람만 살아남았으니 대부분이란 말도 약간 어폐가 있네만 어쨌든. 그런데 그 죽은 사람들이 그렇게 처참하게 죽었다고 해. 뭐 신체가 훼손되거나 그런 것도 아닌데, 엄청나게 고통스러워하며 죽었다고 하더라고. 뭐랄까. 뭐에 중독이라도 된 사람처럼 스스로 온 몸을 쥐어뜯어가며 괴로워했다고 해. 그것도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전부 똑같이 말이야.”


“그런데 아까 말씀하신 한 사람만 그렇지 않은 건가요?”


“맞아. 그 사람은 멀쩡했지. 아니 어떻게 보면 멀쩡한 것도 아니었어.”


“예? 무슨 말씀이신지?”


“몸은 멀쩡했지만 성격이 아예 딴판이 되었다는 군. 그러니까 몹시 과격하게 변해서 심지어는 지 부모까지 때렸다고 해. 사람들 사이에서 급속하게 안 좋은 소문이 퍼졌지. 나중엔 정말 죽어야할 놈은 살아있고, 착하디착한 사람들만 죽어났다라는 등의 말까지 나돌았지. 하여튼 이 모든 게 그 곳을 다녀온 이후로 벌어진 일이니 얼마나 괴상한 일이야. 안 그래?”


“정말 그 곳에 뭔가가 있군요. 이거 저도 살짝 두려운데요?”


“자네는 왜?”


“저도 거길 다녀왔으니까요. 매점 주인보다 그 음식점 주인, 사장님 말씀대로라면 딸이 되겠죠? 그 사람이 더 이상했어요. 뭐 매점 주인도 이상했어요. 저한테 괴상한 껌이나 주고...”


“껌? 그 사람이 껌을 줬어!?”


“예? 아, 예. 뭐. 맞아요. 처음에는 주기 싫어하는 것 같더니 나중에는 주더라고요. 기가 막히게 달다면서.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아. 문제라고 할 것 까지는 없는데. 내가 말 한 그 사람들 말이야. 돌아왔을 때 하나같이 껌을 씹고 있었다고 들었거든. 뭐 그 때도 여전히 껌 장사를 한 모양이지 허허.”


......


......


402호에 두고 온 족발과 보쌈은 잘 있을까.

혹시 괴물들이 그런 것도 먹는 것은 아니겠지.

손전등만 챙기지 말고 그것들도 챙길 걸.

일부러 비싼 집에서 샀는데 아까워 죽겠네 정말.


대체로 이런 생각들이 가득한 걸로 보아 뱃속에 거지가 들어앉기 시작한 모양이다.

저녁은 먹었지만 운동 아닌 운동을 워낙 많이 한 탓에 금방 배가 꺼진 것 같다.

그나저나 살짝 긁힌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아픔이 오래간다.

방금 전에 미처 피하지 못 하고 나뭇가지에 베인 내 오른쪽 어깨 죽지가 말이다.

어깨가 욱신거릴수록 이 맛없는 오부장 껌을 씹는 내 턱의 속도도 빨라진다.


얼마나 걸었을까.

어느 순간부터 상대적으로 덜 외진 길에 접어들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느낌이 든 후부터 급속도로 걷기가 편해지고 있었다.

뭔가 관리를 받는 영역으로 진입한 모양이다.

조금 지나니 먼발치로부터 안개를 뚫고 보이는 갈색 건물의 외형이 손전등에 잡히기 시작했다.

그 가게가 분명했다.

그렇다면 더 이상 내 어깨 죽지를 노릴 나뭇가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테니 속도를 높여도 될 것 같다.

그런데 이 빌어먹을 안개는 대체 언제까지 껴 있는 거람.


걸음은 편해졌지만 마음은 급속도로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리고, 식은땀까지 흐르는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뭔가를 얻어내지 못 한다면 아내와 은비는 꼼짝없이 죽거나 괴물이 되고 만다.

그리고 당장 만나서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도 걱정이다.

'이 망녕 난 늙은이야' 라고 소리칠지,

'저 기억하시죠?' 라고 점잖게 물어볼지,

다짜고짜 '씨발' 하면서 후려갈길지 말이다.

물론 '저 기억하시죠?' 쪽으로 굳힌 건 두말 할 필요 없었지만.


-끼이이익


“콜록 콜록.”


자욱한 먼지가 내 기관지를 괴롭힌다.

내부는 불을 꺼놔서 몹시 어두웠다.

아니 몹시 어두운 정도를 떠나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건 흡사 아까 전에 건물에서 느꼈던 어두움과 비슷했다.

정말 치가 떨릴 정도로 나를 두렵게 만들었던 그 어둠 말이다.


“콜록, 저기요.”


문을 닫고 손전등을 앞으로 비췄다.

안개가 없어서 그런지 손전등을 비추는 곳 마다 불편 없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고 해도 결코 인상적인 내부는 아니었다.

일단 며칠 전과 다를 바가 없었고,

유통기한이 수십 년은 지났을 것 같은 고대 과자들만 잔뜩 쌓여있을 뿐이었으니까.


“안 계세요? 저기요?”


여기저기를 비춰보아도 주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좁고 길쭉한 내부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오래된 쪽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가끔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가게와 집을 같이 붙여 쓰는 장면을 본 기억이 있다.


오늘 밤은 실례가 되는 짓을 조금 해야겠다.

그러니까 허락의 유무를 떠나서 이 문을 벌컥 열겠다는 말이다.

일단 물어는 봐야겠지 들어가도 되겠냐고.


“저기요. 할아버지. 할아버지!”


대답은 없었다.

나는 억지로라도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무로 된 미닫이문의 손잡이를 붙잡아 강하게 옆으로 재꼈다.


-벌컥!


낡은 문이라 뻑뻑할 거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쉽게 열렸다.

불이 꺼진 방 안에는 몹시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뭔가 있기는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팔을 들어 코와 입을 막고 손전등을 앞으로 내밀었다.


“허억?”


그리고 나도 모르게 뱉어내는 신음소리.

처참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하, 할아버지! 이봐요! 정신 차려봐요!”


신발을 벗는 것도 잊은 채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주인의 끔찍한 모습을 본 순간 그런 건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가까이서 보는 주인의 모습은 더욱 참혹했다.

밀가루 반죽을 수제비로 만들기 위해 제멋대로 떼 낸 것처럼,

주인은 온 몸의 살점이 뜯겨져 나간 채 아무렇게나 널 부러져 있었다.

딱 널 부러졌다는 표현이 옳을 수밖에 없는 게,

점잖게 눕거나 엎드린 자세가 아닌, 마치 나치의 기호처럼 팔과 다리를 보기 흉하게 펼쳐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건 문제가 아니었다.

만약에 이 사람이 죽었다면, 이 사람이 죽었다면 모든 것이 끝난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채 돌아가야 하고, 눈앞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잃어야 한다.

막말로 살점이 뜯기든, 심장을 파 먹히든 그건 내 알바가 아니다.

숨만 붙어있다면,

그러니까 나에게 어떻게 해야 할 지 말만 해줄 만큼의 생명력만 가지고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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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잘 모르겠음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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