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건곰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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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온 괴담] 껌 ~ 37 ~ (0) 2010/06/22 PM 07:04


“용희야~ 용희야~ 이거 봐라~.”


이제 막 3단 까지 모래성을 쌓아 올린 용희가 자신을 부르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양 갈레 머리를 흔들며 뛰어오는 희영이가 눈에 들어왔다.

비가 와서 축축해진 놀이터 모래 바닥이 희영의 다가올 때마다 앙증맞은 자국을 남긴다.


“으응? 뭔지는 모르지만 내가 만든 성이 훨씬 멋있을걸~”


젖은 모래는 모래성을 쌓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불과 20분 만에 3단까지 쌓았으니 엄마가 데리러 올 때까지 네 단쯤은 더 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자신의 최고 기록인 5단을 넘게 되는 것인데,

벌써부터 엄마에게 자랑하고 사진도 찍어달라고 할 생각에 용희는 매우 격양된 상태였다.


“우와. 벌써 3층까지 만들었어? 오늘 대빵 빠르다 너~”


어느새 다가온 희영이 용희가 만든 모래성을 보며 감탄했다.

그 모습을 본 용희는 속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헤벌쭉 웃는다.

오늘따라 희영의 분홍색 원피스가 더욱 예뻐 보였다.


“헤헤. 고마워~.”


용희는 자신보다 한 살 위인 희영이를 좋아하고 있었다.

친구들이 얼레리꼴레리를 하든 어쩌든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희영이는 자기와 결혼할 거라며 스스로가 온 동네에 소문을 내고 다닐 정도였다.

모래성을 쌓기 시작한 것도 희영이 때문이었다.

모래성을 쌓으면 매일같이 놀이터에 놀러 오는 희영과 함께 있을 수 있으니까.


“자 그럼 상으로 이거 줄게 받아~”


희영이 용희에게 뭔가를 건 냈다.

억지로 사각형을 유지하고 있는 울퉁불퉁한 덩어리였다.

용희는 그 덩어리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의아한 듯 말을 꺼냈다.


“이게 뭐야?”


“응. 껌이야.”


“꺼엄?”


용희가 손가락으로 그 덩어리를 꾹꾹 눌러보았다.


“그래 껌. 먹어봐 언능. 진짜 맛있어.”


용희가 가만히 희영을 쳐다보았다.

희영이 뭔가 몹시 아쉬운 눈빛으로 쩝쩝 거리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너는 먹었어?”


용희가 물었다.


“어 먹었어.”


용희가 희영의 입가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왜 입에 없어?”


그러자 희영이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 대답했다.


“너무 맛있어서 삼켜버렸어.”


용희가 인상을 찌푸렸다.


“에엑? 엄마가 껌 삼키면 안 된다고 했는데.”


“괜찮아. 아저씨가 이 껌은 삼켜도 된다고 했어.”


“아저씨?”


“으응. 이 껌을 준 아저씨 말야.”


용희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분명히 엄마가 말했었다.

낯선 사람이 주는 건 절대로 받지 말라고.

특히 용희가 좋아하는 초코렛이나 사탕은 더더욱 안 된다고 했다.


“용희야 어서 먹어봐. 정말 맛있어.”


용희는 갈등 중이었다.

아무리 희영이가 준 거라지만 모르는 아저씨에게 받은 것을 그냥 먹기가 조금 그랬다.


“먹어봐 언능~ 안 먹으면 너랑 안 논다!”


희영이 머뭇거리는 용희를 더욱더 종용했다.

용희는 이제 거의 울상이 되었다.

문득, 예전에 아빠가 해 준 말이 떠올랐다.


‘싸나이가 한번 할 때는 화끈하게 하는 거야.’


그래 화끈하게 하는 거야.


“울 엄마한테 절대 말 하면 안 돼.”


희영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용희가 결심했다는 듯 눈을 꼭 감고 입에다 껌을 넣었다.

두툼한 덩어리가 용희의 혀에 이끌려 오른쪽 어금니에 맞물렸다.


“콰직”


식감은 평소 즐겨 씹던 캡슐껌이랑 비슷했다.

다만 한 번 씹었을 뿐인데도 엄청나게 단물이 흘러나온다는 점이 달랐다.

이건 거의 ‘콸콸콸’에 가까울 정도여서 입을 열면 물이라도 쏟아져 내릴 기세였다.


“질겅, 질겅, 질겅”


달았다.

몹시 달았다.

씹으면 씹을수록 거침없이 단물이 쏟아져 나온다.

거기에 이 식감은 또 어떤가.

단물이 빠지면 뻑뻑해지는 일반 껌과는 달리, 이 껌은 점점 부들부들해 진다.

마치 단물이 다 빠지면 자연스럽게 삼키라는 듯이.

용희는 살면서 이렇게 맛있는 껌, 아니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지 못한 것 같았다.

케로로 소세지보다 열배, 아니 백배는 맛있었다.

이런 껌이라면 밥 대신 먹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때 맛있지, 맛있지? 헤헤헤.”


“......”


용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하고 싶어도 턱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 나도 또 먹고 싶다. 그 아저씨 또......으윽”


부러운 눈빛으로 용희를 쳐다보던 희영이 갑자기 탄식을 내뱉고는 비틀거렸다.

깜짝 놀란 용희가 희영의 몸을 붙잡았다.

얼굴이 점점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눈에는 실핏줄이 돋기 시작했다.

불길한 징조였다.


“질겅, 질겅. 희영아. 희영아!”


희영은 아예 의식을 잃었는지 용희에 외침에도 전혀 반응하지 못 했다.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지고, 온 몸에서 경련이 일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부축하고 있던 용희가 손을 뗄 정도로 몸이 뜨거워졌다.

부축하는 손길이 없어지자 희영은 더욱 제멋대로였다.

불에 타는 오징어처럼 온 몸을 배배꼬는가 싶더니 결국에는 땅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용희는 너무 놀라서 어쩔 줄을 몰랐다.

방금 전까지 여느 때와 다름없는 예쁜 모습으로 자신에게 다가왔는데,

그리고 최고신기록을 노리고 만든 모래성을 칭찬해 주었는데,

상이라며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껌도 주었는데,

그랬는데.


“질겅, 질겅, 저, 정신차려 희영아!”


눈까지 뒤집고 거품마저 물기 시작했다.

희영이의 모습이 어제 만화영화에서 본 귀신 같이 흉측하다.

만화에서는 전설의 검을 얻은 주인공이 멋진 솜씨로 귀신을 물리쳤다.

용희는 주인공의 모습에 매료되어 어린이날에 엄마에게 받은 플라스틱 칼을 한참 동안이나 휘둘러댔다.

휘두를 때마다 ‘웅, 웅’ 하고 효과음이 나는 바람에

늦게까지 잠 안자고 뭐하냐고 꾸지람을 듣기고 했었다.

용희는 지금 그 칼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좋아하는 희영이지만 귀신으로 변한다면 이빨을 꽉 깨물고 처단해야 한다.

그게 사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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