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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Farmer 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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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시는 S역에서 조금만 외곽지대로 나가면 논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마침 일이 있어 이곳을 지나던 장 선생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는 걸음을 멈춘 채 논으로 고개를 돌렸다.
“묘란이구나. 거기서 뭐하니?”
“농부 딸래미가 밭에서 하는 일이야 당연히 밭일이죠.”
고양이 귀에 장화를 신었지만 동화 ‘장화신은 고양이’와는 판이하게 건강미만 넘치던 소녀는 어깨에 대검을 걸친 채 말을 이었다.
“엄마가 어제 허리를 삐끗하셔서요. 오늘은 일당 받고 대타로 뛰는 중.”
“밭일인가……. 호미는?”
“이건데요.”
묘란은 손가락 끝으로 어깨에 걸친 대검을 가리켰다. 사실, 그건 대검이라 하기에도 어색할 정도로 규격에서 벗어나 있었다. 너무 크고, 두껍고, 무거워 보여서, 용광로에서 막대만 꽂아 바로 끌어올린 철괴처럼 보였다.
“으음……. 혹시 괭이나 낫도 그거니?”
“맞아요. 만능 농기구에요. 겸사겸사 검으로도 쓰고요.”
“아니, 그럼 검이잖아 그냥.”
“뭘 모르시네. 쌤보단 제가 농사경력이 있지 않겠어요?”
장 선생은 딱히 부정하진 않았지만 ‘역시 그거 농기구는 아닌 거 같은데’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그보다 장 쌤. 무…아니, 농기구도 없이 여기 있으면 위험하실 걸요?”
“아, 무기라 하려고 했지 지금. 역시 검이잖아.”
“그건 됏고요. 진짜로 위험하다니까?”
“대체 뭐가 문제길래 그래?”
“요새 한창 제철이라, 나오거든요.”
“귀신?”
“아뇨, 지렁이요.”
묘란의 답변에 장 선생은 폭소를 터트렸다.
“아니, 묘란아. 지렁이가 위험하면 얼마나 위험하다고…….”
“이래서 도시 촌놈이 안 된다는 거예요 선생님. 지렁이가 얼마나 위험한데요. 지렁이 만큼 땅을 많이 먹어치우는 괴물도 없을 걸요?”
“그래 그래. 지렁이가 땅을 먹어야 땅이 윤택해지지. 하지만 말이다, 지렁이 외에 또 누가 땅을 먹겠니?”
장 선생이 더워서 담을 훔치는 사이, 그의 주위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장 선생은 ‘구름이라도 지나가고 있나보네’라며 가볍게 넘겼다.
한편, 묘란의 반응은 장 선생과 완전히 달랐다. 그녀는 입을 쩍 벌리며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어, 장 쌤? 절대 놀라서 허둥대지 마세요? 가능하면 뒤도 돌아보지 마시고요.”
“응? 왜 그러니? 뒤에 있으면 뭐가 있다고…….”
장 선생이 뒤를 돌아보자, 10미터는 더 될 초거대 지렁이가 장 선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장 선생은 그제야 농기구가 왜 검을 닮았는지를 이해했다.
“Aㅏ.”
밭에 사는 것이 이렇게 크다면야, 그걸 제거하는 농기구도 당연히 클 수밖에.
하지만 모든 것을 깨달은 시점이 너무 늦었다.
덥석.
목표 외에 아무것도 감지하지 못하게 된 지렁이는 거체를 거울여, 장 손생을 단숨에 집어삼켰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묘란은 장 선생을 구하기 위해 급히 달려가 농기구를 휘둘렀다.
하지만 상대는 지렁이다. 몸을 짓누르는 수백톤의 압력을 가볍게 무시하며 땅 속을 헤엄치고, 대지를 삼키는 시골의 패왕이다.
농기구도 나름대로 무게가 있어 탱탱한 표면에 상처를 내긴 했지만 일격에 절단되지는 않았다.
날을 박은 채 힘으로 누를 수도 없었다. 안에서 강력한 소화액이 나오는 탓에 몸뚱이에 박아두면 농기구가 통째로 망가질 터였다.
“쌤! 지금 구해드릴게요!”
결국 묘란은 민첩하고 탄력 있는 몸을 살려 몇 번이고 계속해 농기구를 휘둘렀고, 마침내 지렁이의 거체를 밭 위에 눕혔다.
그러나 장 선생을 구해내지는 못했다.
급히 지렁이의 배를 가른 뒤, 그 심연을 들여다본 묘란은 복잡한 표정이 된 채로 본 것을 입에 담았다.
“…안에 아무것도 없네?”
***
이곳은 K국의 S시.
거대 운석이 낙하하다 허공에서 멈춘 기묘한 도시.
이것은 S시에 사는 사람들의 혼돈과, 혼돈의 이야기다.
세계가 끝나기까지.
앞으로 9,99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