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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백 투 더 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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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등교하던 고등학생들은 생각했다.
‘골든 리트리버다.’
‘왜 교문에 개가 묶여있지?’
그리고 시선 몰리기가 거듭되면 누군가는 개를 만지거나 사진을 찍고, 누군가는 캐기 위해 물음을 던지는 법.
강미래가 바로 그런 타입의 여고생이었다. 그녀는 바로 옆에있던 학년부장을 붙잡고 물었다.
“학부쌤. 왜 개가 교문 앞에 있어요?”
“그게 말이다. 오늘은 장 선생하고 내가 등교지도를 맡기로 했는데…….”
“그런데요?”
학년부장은 여고생들이 귀엽다며 내민 손길에 배를 내밀고 뒤집어진 골든 리트리버를 바라봤다. 그의 얼굴에는 말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한 표정이 깃들어 있었다.
뭔가 심각한 비밀이 있을 거라고 여긴 미래는 학년부장에게 귀를 들이대며 말했다.
“쌤. 저한테만 알려주면 안 돼요? 비밀로 할게요.”
“너 나흘 전에 화학동아리 애들이 과학실 불낸 거 온 교실에 떠들었잖아?”
“저는 기억이 없는 걸요~”
“으음, 또 그런 식인 거냐. 알았다. 그러면 절대로 놀라지 말고…….”
학년부장이 말하려던 그 순간, 미래의 옆에 조금 앞의 미래에서 온 미래가 나타나 소리쳤다.
“뭐라고요? 장 선생님이 회식자리에서 술김에 지나가던 마녀에게 작업을 걸다 그만 개가 되었다고요?”
“……강미래?”
“저는 아무것도 안 들었어요.”
현재의 미래는 미래의 미래가 나타난 것을 보자마자 순발력 좋게 귀를 틀어막은 덕에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그리고는 그 자세 그대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보이며 반복해서 말했다.
“아~ 무것도 못 들었답니다~”
감정의 격해지는 순간 과거의 자신에게로 날아가버리는 초능력자. 그게 바로 강미래라는 소녀였다.
만약 귀를 막지 않았다면 미래는 연속해서 과거의 자신에게 날려졌을 것이다. 도미노처럼 말이다.
“…학부쌤. 저 또 사고쳤죠?”
학년부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목소리를 안 내도 주변 상황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여고생들은 혐오스러운 걸 봤다는 얼굴이 되어 귀여운 골든 리트리버에게서 멀어졌다.
본의 아니게 개가 되어버린 장 선생이 사회적으로 죽은 순간이었다.
***
이 현상으로 가장 멀리 날아간 것은 7살 무렵의 12월이었다.
“산타가 없대!”
7살. 12월의 미래가 11월의 미래에게 소리쳤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배신감을 느낀 11월의 미래는 과거로 날아갔다.
“엄마! 미래가 산타 없대잖아! 거짓말쟁이!”
11월의 미래가 10월의 미래 앞에서 울부짖었다. 산타가 없는 현실을 견디지 못한 10월의 미래는 과거로 날아갔다.
“배신자는 산타였어!”
10월의 미래가 9월의 미래가 놀고 있던 정글짐 위에서 고함쳤다.
“산타는 첩보원이었구나!”
9월의 미래가 때마침 첩보물 영화를 보고 온 직후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최소한 1월까지 날아갔을 것이다.
***
“미래를 아는 게 그렇게 편한 능력은 아니란 말이지.”
미래가 계단을 오르며 말하자 미래의 미래가 맞장구쳤다.
“그렇다니까. 무슨 딸꾹질도 아니고.”
“근데 넌 장 쌤이 개가된 걸 언제 즈음에 알았던 거야?”
“1시간쯤 뒤야. 1교시 끝나고 전파받았거든.”
“돌아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1/3이니까, 아직 시간이 좀 남았네.”
“그만큼 시간이 남으면 매점갈래? 지갑빌려줄게. 돈이 복사가 된다고.”
“오, 좋은 생각…… 그런데 저게 뭐야?”
미래가 뜨악한 표정을 짓게한 건 계단 한쪽 모퉁이에 숨어있는 미래의 미래‘들’이었다.
“…너도 저거 봤었어?”
“아니. 미래가 조금 바뀌었나본데.”
장 선생이 개가 된 걸 들은 미래의 미래가 어깨를 으쓱했다. 종종 있는 일이었다. 미래는 사소한 사건으로도 크게 변하는 법이니까.
물론 미래의 미래가 모르는 사건이라 해도 알아볼 방법은 많았다. 저 앞에 있는 군중들 또한 전부 미래의 미래들이었으니까.
“야, 뭔데? 무슨 일인데?”
“선배가 모르는 여자하고 있어.”
“선배가 남자도 아니고. 같은 반 친구 아냐?”
미래는 미래의 미래가 누구를 말하는지 바로 눈치챘다. 그녀가 선배라고 부르는 사람은 육상부의 양 수인인 램 선배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미래에게 있어 램은 동경의 대상이었고, 가끔은 그 이상의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육상부 답다고 해야 할까, 양이라기 보다는 산양을 연상시키는 늘씬한 몸매의 소유자. 램은 같은 여성이 봐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탄력감이 있었다.
하지만 미래가 그녀에게 사로잡힌 까닭은 머리 양 옆의 큼직한 양뿔과, 그 아래로 흘러내리는 불꽃 같은 빛깔의 생머리였다.
그녀가 육상부에서 달리면 길고 긴 머리카락이 그 뿔 뒤에서 흔들렸고, 햇빛을 받아 불의 강처럼 보였다. 그 색채와 어우러지는 역동적인 움직임은 늘 미래를 흥분케 만들었다.
그러나 이날의 흥분감은 그 방향이 달랐다.
램과 겹쳐진 것마냥 붙어있는 여성은 미래의 미래들이 말한 대로 미래가 모르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특정은 할 수 있었다. 상대는 과학실에서 입는 흰 가운이 반쯤 벗겨진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바닥에는 ‘러브 포션’이라는 이름이 적힌 약병이 깨져있었다.
사고이리라. 어떤 화학물질이 일으킨 사고가 램과 화학동아리 관계자처럼 보이는 그녀를 저렇게 가깝게 붙여놓은 것이리라.
침묵과 함께 과거에 체류하는 시간이 다 된 몇몇 미래가 자신들이 온 시간대로 되돌아간 그때, 램은 마치 스페인 투우를 연상시키는 거친 숨소리를 내며 상대의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깨물기라도 한 것일까. 상대는 미약한 신음과 함께 램의 뿔을 깨물었다.
미래는 그 이상의 상황은 알 수 없었다. 막대한 자극과 충격이 허리케인처럼 그녀의 감정을 휘저었고, 멋대로 발동한 초능력이 그녀를 과거로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아침이 아니라 밤의 학교에 있었다.
“이렇게 된 거였구나.”
과거로 날아온 미래는 자기가 할 일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녀는 날랜 움직임으로 야간순찰을 도는 수위를 피해, 순식간에 과학실까지 도달했다.
거기에는 이미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미래의 미래들이 있었다. 어쩌면 과거의 미래들일지도 모른다.
“어쩐지 학부쌤이 기억에도 없는 과학실 화재 얘기를 한다 싶었어.”
미래의 미래가 물었다.
“러브포션인지 뭔지하는 라벨이 붙은 병은 다 찾아냈어. 이제 태워버리자.”
모든 미래가 동의했으나, 램이 목덜미를 파고든 순간에 타임슬립을 했던 미래의 생각은 달랐다.
“아니야. 화재 얘기를 듣고도 러브 포션이 있던 걸 보면, 화재로는 부족해.”
“그러면 어쩌지?”
“어쩌긴.”
미래의 엄지 손가락이 아래로 내려갔다.
“터치자.”
“과연. 미래다운 생각이야.”
범죄에 악용될 여지가 있어 자세한 설명을 생략해야 하는 약간의 작업 후, 과학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폭발을 일으켰다.
***
현재로 돌아왔을 때, 미래 주위에는 다른 미래가 없었다.
화학동아리 관계자처럼 보이는 학생은 눈가에 진한 다크서클이 낀 채로 자기 키보다 큰 잡동사니를 옮기고 있었고, 램은 창가에서 따사로운 햇빛을 받다가 미래를 발견했다.
“어머, 램. 왔어?”
“헤헤, 안녕하세요. 선배.”
“그래. 좋은 아침이지? 그런데……. 코에 숯검댕이는 왜 묻히고 다니는 거니?”
“네?”
“잠깐 있어봐. 닦아줄게.”
램의 머리카락과 똑같은 붉은 빛을 띤 눈동자가 점점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눈을 깜빡인 순간, 미래는 교문 앞에서 과거의 미래와 마주보고 있었다.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잠시 생각한 후, 미래는 예전에 들었던 말을 입에 올렸다.
“뭐라고요? 장 선생님이 회식자리에서 술김에 지나가던 마녀에게 작업을 걸다 그만 개가 되었다고요?”
***
이곳은 K국의 S시.
거대 운석이 낙하하다 허공에서 멈춘 기묘한 도시.
이것은 S시에 사는 사람들의 혼돈과, 혼돈의 이야기다.
세계가 끝나기까지.
앞으로 9,991화.
이번 이야기는 확장성이 굉장히 좋다고 느껴집니다!
어쩌면 10,000회차 세계자체가 녹차백만잔님의 브레인스토밍이자 데이터 마이닝이라는 생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