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차백만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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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소설] 웹소설) 10,000회차 연재 후 끝장나는 세계 - 12 (2) 2021/10/01 PM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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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좀비와 엘프 장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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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좀비는 생각했다.

 

아 맞다. 방부제 떨어졌네.”

 

제트가 그걸 깨달은 건 물류창고에서였다. 박스를 들어올리려다가 안쪽이 썩었던 한쪽 팔이 그대로 떨어져버린 것이다.

마침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나라를 시작으로 모두들 작업을 멈추고 괜찮냐며 달려왔지만 제트가 할 수 있는 말은 얼마 없었다.

 

아니 뭐, 연례행사라서.”

 

죽어서 정규직 취직은 불가능했지만, 역시 생활은 해야 하고 세금은 내야 해서 일용직을 오가야 했던 제트.

결국 제트는 이날 하던 일을 포기하고, 급한대로 바늘과 실로 팔을 꿰맨 채 물류센터를 나왔다.

가는 곳은 병원이 아니다. 병원은 살아있는 사람들을 조금 더 오래 살리기 위해 있는 시설이니까.

그렇다면 좀비를 위한 의료시설은 어디인가.

 

진즉에 인터넷으로 좀 사둘걸. 그 엘프장의사는 만나기 싫은데…….”

 

좀비를 위한 의료시설. 시체에다 굳이 수고롭게 손을 댈 만한 업자는 음지가 아니라면 당연히 장의사 밖에 없었다.

 

***

 

제트가 발걸음을 옮긴 빌딩에는 브로켄의 요정이라는 간판 외에는 아무것도 안 붙어있었다. 대신, 옥상 위로 나무가 우거져 있는 게 인상적인 건물이었다.

그나마 있는 간판도 K국에 흔히 있는 간판과는 달랐다. 네온은 커녕 램프하나 안 달린 목재 간판은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중세 판타지에 가까웠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진짜 서양 중세마냥 똥오줌 냄새가 나지는 않았다. 대신, 지하에서 시취가 끓어올라 이전을 요구하는 팻말이 근처에 몇 개나 꽂혀있었다.

하지만 브로켄의 요정이 다른 곳으로 이전할 일은 없다.

이 일대 땅 주인, 그리고 이 빌딩의 건물주 역시 브로켄의 요정을 운영하는 장의사의 소유였으니까.

 

소피아, 안에 있나?”

 

1층 정문을 열자 지하실에서 올라오는 시취와 달리 엄숙하면서도 향긋한 나무 향기가 그를 반겼다. 아직 시신이 안치되지 않고 전시만 해둔 관들이 내는 향기였다.

제트는 문 밖에서 잠시 기다렸지만 반응이 없자, 팔자눈썹을 만들면서 위험을 감수하기로 마음먹었다.

 

저기~ 방부제 안 팔아주면 바로 안으로 들어간다? 지금 팔 썩어서 안에서 뭐 나올지 모르거든?”

 

다음 순간, 날카로운 파공성이 제트의 다리 아래로 스쳐갔다.

화살이었다. 은제화살촉은 아주 날카롭게 갈려 있었고, 문틈으로 들어온 햇빛을 받아도 온기는 커녕 서늘한 냉기만 느껴졌다.

브로켄의 요정의 주인은 어둠 저편에서 쉰 목소리로 말했다.

 

한발 물러나라. 망할 좀비야.”

할망구. 또 술 마셨어?”

닥쳐. 749살이면 아직 젊은 거거든? 너희 기준으로는 파릇파릇한 40대 밖에 안 됐단 말이다.”

“40대가 뭐가 파릇해. 좋게 봐줘도 중년이지.”

“100대가 40대에 대해 뭘 알아.”

저기요, 그렇게 따지면 그쪽은 740대인데요?”

크이이이익! 이래서 망할 G국 출신 소시지들은!”

잔말 그만 하고, 방부제 팔아주면 갈 테니까. 하는 김에 팔도 고쳐주면 더 좋고. 계속 이대로 있으면 진물하고 고름만 떨어질 걸?”

망자에 대한 예우 따윈 조금도 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 내가 그 망자라서. 애초에 요즘에 죽는 애들이 나보다 더 젊은데 예우를 따지겠어? 안됐다고는 생각한다만.”

됐다. 좀비하고 장의사 사이에 얘기가 통할 일은 영원히 없겠지.”

 

계속 그림자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소피아가 앞으로 나왔다.

허리가 약간 구부정하고, 키는 컸지만 체격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깡마른 여성이었다.

안경 뒤의 날카로우면서도 퀭한 눈은 동굴에 사는 코볼트를 닮았으며, 은색의 눈동자와 기다란 귀가 엘프라고 주장한다.

피곤에 찌들어있는 염세주의자의 이미지만 뺀다면. 그리고 몸에 달라붙는 와이셔츠 위로 드림캐처(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악몽을 잡기 위해 잠자리에 걸어뒀다고 하는 부적)를 목걸이마냥 매고 있지 않았다면 당장이라도 거리에서 시선이 몰릴만한 미인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그럼 당장은? 안경쓰고 성격 나쁜 돌팔이 주술사 같은 이미지였다.

. 제트의 팔에서 흘러 나온 고름을 본 소피아는 그렇게 혀를 차고는 관들이 자아내는 어둠 속으로 돌아가며 말했다.

 

문 닫고 지하로 꺼져있어. 연장 들고 내려갈 테니까.”

 

***

 

지하로 내려간 제트가 맡은 냄새는 시신이 부패하는 냄새만이 아니었다. 코를 찌르는 고기의 썩은내 뒤로는 나무와 이끼의 축축함이, 벽지 벗겨진 콘크리트 특유의 퀴퀴함이, 마지막으로 음지에서 자란 잡초의 불쾌한 냄새가 뒤섞여 후각의 혼돈을 이루고 있었다.

지하라고는 해도 그렇게 어둡지는 않았다. 좋은 LED를 쓴 건 아니다. 빛의 정령이 내뿜는 암울한 빛이 지하 곳곳에 퍼지고 있었다.

 

우울해. 우울해애…….”

. 빛이 어두우면 어떡해.”

 

빛의 정령은 좀비를 보더니,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망자한테 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지. 나는 최악의 정령이야. 너무 우울해…….”

, 그거 종족차별이야.”

헛소리 됐고. 담배 있으면 한 까치 줘봐.”

, 빛이 담배를 간접광고하면 어떡해.”

원래 밝게 빛나는 녀석이 뒤로는 누구보다 어두운 법이야.”

성실할 정도로 멍청한 소리지만 빛이 말하니까 설득력이 있군.”

 

소피아가 내려온 건 제트가 빛 에에게 담배를 꽂아주려던 순간이었다.

 

너네 뭐하고 있냐.”

, 정부의 금연 정책에 반대되지만 경제 성장에는 제법 도움되는 일 아닐까?”

무슨 개소리야. 거기 돌관 위에 엎어지기나 해. 망할 고름부터 짜낼 거니까.”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제트의 시선은 나무 위에 닿았다. 나무는 지하실의 천장을 뚫고 올라가 있었다. 제트가 밖에서 봤던 옥상의 나무는 여기서부터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나무를 굳이 지하에 심어야 했어?”

지상이야.”

.”

이 나무가 심어졌을 무렵엔, 여기가 지상이었다고. 너희 인류가 재건축이네 전쟁이네 뭐네 하면서 땅을 올리다보니 지하가 되었을 뿐이고.”

세월이란 대단하네.”

너희들만 하겠냐. 별을 근본부터 똥으로 만든 건 니들인데. 유물이네 문화네 하지만 땅 가지고 장난질 할 기회만 있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리는게 사람이라고.”

말 되게 심하네.”

대체로 사실인지라. , 신경 이었으니까 팔 들어봐. 그래. 잘 움직이는군. 시체치고는.”

매번 신세지는군. 고마워.”

고마우면 빨리 뒈지기나 해. 관짝이나 하나 더 팔게.”

 

침묵속에 살을 꿰매는 작은 소리만 이어지다, 그 위로 소피아의 말이 작게 겹쳐졌다.

 

뒈지라는 건 좀 심했나. 취소.”

 

이미 죽은 시체와 엘프 장의사는 그 뒤로도 쓸데없는 잡담을 이어갔다. 망자만 있는 장소 치고는 제법 소란스러운 공기였다.

 

***

 

이곳은 K국의 S.

거대 운석이 낙하하다 허공에서 멈춘 기묘한 도시.

이것은 S시에 사는 사람들의 혼돈과, 혼돈의 이야기다.

 

세계가 끝나기까지.

앞으로 9,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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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트스핀스파게티    친구신청

요즘 연구개발 중이라는 노화 역전기술이 성공적으로 보급된다면 어떻게 될지 궁금합니다. 신체의 쇠락 여부를 떠나서 마음은 젊은 두 생존자들이 투닥투닥 우애를 나누는 모습이 정감가네요!

녹차백만잔    친구신청

제법 살아있는 캐미였지 않나 싶습니다. 한명은 죽어있지만 말이죠! X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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