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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읽기 편하실지 모를 브릿G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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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건 라이크노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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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거슨 노벨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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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일에 썼어야 했던
4월 2일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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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을 좋아하는 그녀에게 만우절은 일종의 축제였다.
예를 들자면 십몇 년 전.
난데없이 전화한 그녀는 놀러 왔다면서 잠깐 나와보라고 말했다.
특별히 바쁜 일도 없었기에 요청대로 현관문을 열기는 했지만, 그녀는 거기에 없었다.
대신 문 앞에는 핼러윈의 잭 오 랜턴 스타일로 깎아놓은 호박이 놓여있었다.
“이건 시즌이 다르잖아.”
“만우절이니까요.”
그녀는 평소처럼 밝고, 너무 들뜬 나머지 약간 불안정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히히. 그보다 안에 손은 넣어봤어요?”
그 말을 듣고 무심코 넣어보자, 안에는 초콜릿이 들어있었다.
발렌타인이냐.
“지금 4월이거든?”
“4월에는 2월이 포함된 법이니까요.”
“궤변이구만.”
“수학적이지 않아요? 지적이죠?”
“지적할 곳투성이긴 해.”
대충 이런 식이었다.
시시한 장난이기는 해도 꽤 재밌었던 애.
분명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그리고 이젠 기억으로만 남겠지.
4월 1일.
나는 그녀의 장례식장에 와 있다.
그녀의 부모님과 인사하고 조문을 했다.
갑작스러운 일이었을까. 그녀의 부모님들은 안색이 안쓰러울 정도로 창백했었다.
물론 굳이 묻지는 않았다.
굳이 물어서 딸을 잃은 부모의 마음에 못을 박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
그녀가 죽은 걸 들은 건 어제다.
한창 일하던 중에 전화를 건 인물은 대학교 후배인 A.
대학 시절에 알고 지내던 녀석들은 내가 결혼을 하고 일이 바빠지면서 대부분 끊어졌었지만, 어쩌다 보니 아직도 연락하고 지내는 몇 안 되는 녀석 중 하나였다.
인맥이 협소하다 해도 할 말은 반박은 못 하겠는데… 사는 데가 다르고, 하는 일이 다르면 어쩔 수 없이 멀어지긴 하더라. 단톡방 같은 곳도 들어가 있어봤자 거의 얘기 안 하고.
“형. 소식 들었어? ▲▲죽은 거.”
“어? 죽었다고? 왜?”
알 리가 있나.
친했던 애들하고조차 연락을 안 하고 지냈는데 여자애 하나만 알고 지냈다고 해보자.
그게 아내와 아이한테 어떻게 보이겠냐고. 우리 애도 벌써 6살이다. 괜히 집에서 다른 여자 얘기를 가볍게 꺼내서 아이에게 트라우마가 남을 수도 있는 사건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걔 장례식 갈 거야? 내일인데.”
“얘기는 들었으니 가긴 해야겠는데……. 너는?”
“내가 왜?”
“엥?”
뭐냐 얘. 나한테는 갈 거냐고 물어놓고 자기는 안 간다고?
영문을 몰라 고개가 저절로 기우는 사이, 녀석은 허둥대며 말을 바꿨다.
“아, 그게 아니라. 하하. 내가 내일 바쁘거든. 하필이면 중요한 상담이 내일 잡혀있어서.”
“그래… 어쩔 수 없겠네. 알았다. 나 혼자 다녀오지 뭐.”
그 뒤로 녀석은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 반복하고, 같이 못 가서 정말 미안하다고 말했다.
참 별일이다 싶었다.
예의를 깍듯이 차리는 녀석은 아니었는데 말이지.
***
반차를 내고 온 장례식장에서 ‘좋은 일’이라고 하면 장소에 어울리는 말은 아니겠지.
그래도 장례식장 온 옛 친구들을 몇 명 보니 반갑기는 하더라.
다만.
“어?”
“너, 너 온 거냐?”
‘오지 말았으면 했던 사람’을 보는 시선에 들떴던 마음이 조금 식었다.
그래. 장례식장에서 들뜨는 것도 이상한 일이긴 해.
게다가 나는 연락이 완전히 끊겼었으니까 녀석들 처지에선 갑자기 불쑥 나타난 느낌이었겠지.
그러면 당황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녀석들이 껄끄러워하는 것처럼 보였던 건 그냥 기분 탓이었겠지.
그렇게 생각을 바꾸고 친구들과 자리에 앉아 술잔을 기울였다.
“그나저나 몇 년 만에 주변 신경 안 쓰고 마시는지 모르겠네.”
“꽤 바빴나 보네.”
“바빴지, 바빴어. 그게 아니면 왜 너희하고 연락을 안 하고 살았겠냐.”
“…다른 이유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이유?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며 손사래를 친 나는 멀리 떨어진 그녀의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다. 상주(喪主)는 장례식장 안의 상황을 계속 지켜보고 있어야 하고, 그러다 몇몇 사람하고 눈이 마주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니까.
그랬을 텐데…….
그녀의 어머니는 흠칫 놀라서는 급히 고개를 돌렸다.
잘못 본 게 아니다. 입이 벌려지고, 어깨가 크게 올라간 게 정확히 보였다.
이상할 정도의 과민반응이, 어째선지 전날 얘기를 나눈 후배와 겹쳐 보였다.
“야.”
나는 친구들에게 물었다.
“…그런데 ▲▲는 왜 죽은 거야?”
“그, 자살이었어.”
“사고였지?”
“어?”
“엥?”
간단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얘기가 매끄럽지 않았다.
어째서?
소리 없이 내리는 눈처럼 의문이 부풀고, 나는 답을 재촉하려 했다.
다른 목소리가 끼어든 건 그때였다.
“뭔가 부족하신 건 없나요?”
목에 맞지 않는지 어딘가 불안정한 하이톤의 목소리.
“누구신지…….”
“△△라고 해요. ▲▲의 쌍둥이 언니죠.”
“아… 어쩐지. 들어본 목소리라고 생각했어요.”
“어머나. 그런가요?”
“네… 참.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동생에게서 이야기는 많이 들었었어요.”
“하하. 그럴리가요. ”
“…▲▲는 저한테 아주 특별한 사람이었다 말했었죠. 괜찮으시면 잠시 밖에서 동생에 대해 얘기를 나눠주시지 않겠어요?”
바쁜 일도 없으니 괜찮을 것 같았다. 고인도 고인의 가족과 대화를 나누는 걸 더 좋아하겠지.
나는 친구들에게 다음에 또 보자고 형식적인 인사를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한 걸음 먼저 간 그녀를 따라갔다.
***
나는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꽤 많이 알게 되었다.
▲▲는 대단히 내향적이었다.
▲▲는 초등학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남들과 교우가 거의 없었다.
▲▲는 짜증을 자주 내는 편이었다.
▲▲는 집에서도 별로 웃지 않았다.
▲▲는 기념일 같은 걸 거의 신경쓰지 않았다. 내향적인 만큼, 같이 보낼 사람도 없었으니까.
“그건……. 제가 기억하던 ▲▲와 정말 다르네요.”
“아마도 그럴 거예요.”
그녀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그 아이한테 있어서 정말로 특별한 사람이었으니까요. 집에 오면 당신 얘기를 멈추지 않았답니다.”
“그……. 그랬나요?”
“만우절 거짓말 같은 이야기인가요?”
“그럴리가요.”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오늘은 4월 2일인 걸요. 게다가 가족이 하는 말이 거짓말일 리가 없죠.”
“만약에.”
그녀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만약 그 시절에. 그 아이가 당신을 좋아했다는 걸 알았다면. 지금이 바뀌었을 까요?”
“글쎄요. 어쩌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눈썹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저물어 가는 노을을 정면에서 마주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런 부분은 립서비스가 아니라 진심을 담아 얘기하는 게 옳겠지.
“그렇다 해도 지금이 변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전 지금의 아내를 정말로 사랑하니까요.”
진심이 통한 걸까. 이미 죽은 사람의 고백을 거절한 꼴이었지만, 고백 대리인이 된 그녀는 이를 드러내며 밝게 웃어줬다.
“정말로 애처가이시네요. ▲▲가 좋아한 이유를 알겠어요.”
대화다운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우리는 형식적인 인사를 끝으로 헤어졌고, 나는 느긋하게 거리를 가로지르며 역으로 향했다.
후배에게서 전화가 온 건 그 무렵이었다.
“오, A야. 고맙다. 너 덕분에 옛날 애들도 만나고 꽤 재밌었어. 너도 왔으면 좋았을 텐데.”
“하아. 형이 좋았다면야 다행이네……. 다른 일은 없었어 형?”
“다른 일……. 뭐 그건 딱히 없었고, 야. 너 ▲▲한테 누나 있던 거 알았냐? 아니다.”
“뭐……?”
“쌍둥이라더라고. 목소리가 어찌나 닮았던지. 뭐, 외형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누나 쪽이 훨씬 미인이더만.”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몰랐었는데, ▲▲ 우리 학과에서 꽤 소외되어 있었다면서? 하아, 이제와서 말해 뭣하냐 싶지만. 그럼 안 되지 이놈들아.”
“아냐!”
A는 내 귀가 아파질 정도로 크게 고함쳤다.
“뭐?”
“아냐! 이런 얘기는 사전에 없었다고!”
“야. 야. 왜 그래? 어?”
“걔는 혼자야! 끝까지 외톨이어야 해! 걔를 누가 좋아하겠어! 그런 년 누가 좋아하겠냐고!”
“야! 말이 심하잖아?”
“형. 정말 미안해. 처음부터 말했어야 했어! 똑바로 들어. 그 새끼는…….”
쯧. 나는 혀를 차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새끼. 깐죽대기는 해도 선은 지키는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대체 뭐야?”
***
그 뒤로 A와 연락하는 일은 없었다.
장례식장에서 만났던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뭐, 어디있는지는 아니까…….
물론 △△의 가족과 다시 만나는 일도 없었다.
그 가족에게는 그 가족의 삶이 있고, 우리 가족에게는 우리 가족의 삶이 있는 거니까.
거리가 멀고 하는 일이 다르고 사는 세계가 다르다면, 결국 마음도 멀어지는 거겠지.
퇴근길에는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의 행복한 얼굴이 넘쳐났다.
저마다 집에 돌아가 애인이나 가족, 친구와 행복한 시간을 보낼 생각에 젖어있겟지.
혼자서 보내는 사람도, 최소한 일할 때보다는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테고.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는 사이, 전화가 울렸다.
“히익!”
갑작스런 벨소리에 비명을 지르자 주변의 시선이 나에게로 모였다.
두렵고 창피한 나머지 어깨를 잔뜩 움추린 채로 전화를 받았다.
아내였다.
어디에 있냐는 질문을 받은 나는 어조를 너무 높인 나머지 조금 불안정한 목소리로 답했다.
특별한 내용은 없다.
당연한 일이다. 퇴근한 직장인이 조금 천천히 집으로 돌아가고 있을 뿐인데 덧붙이거나 거짓말할 게 뭐가 있을까.
어느덧 우리 부부가 함께한 지 1년.
나는 행복하다.
나는 행복하다.
오늘은 4월 2일.
만우절이 끝난 다음 날.
거짓말이 허락되지 않는 날.
나는 케이크를 사들고, 피곤과 삶의 무게 때문에 느려진 발을 억지로 움직였다. 너무 무거운 나머지, 발이 땅에 닿을 때마다 쿵쿵 울리는 것 같았다.
물론 내 걸음에 지축이 흔들리는 일은 없다. 실제로 쿵쿵거리는 건 내 심장뿐이었다.
자! 케이크를 전하러 가자!
어제 태어난. 우리의 첫째 아이를 위한 케이크를.
누구에게도 전해지지 않을 이야기를 위해.
전할 사람조차 남지 않은 세계에서.
우리들의 행복한 이야기를 위한 케이크를.
집으로!
나는 행복하다.
우리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