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차백만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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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소설] 자작단편소설 - 위대한 진화 (1) 2022/04/05 PM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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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친구인 분필갈매기님의 습작게임(관련 트윗) 기반으로 만들어본 단편입니다.

장면 제시가 거의 없어서 너무 추상적인 글이 되어버렸네요.

썩 잘 만든 글은 아니었다고 생각했는데 원작자분이 만족하신 김에 마이피에도 들고와봤습니다.


https://britg.kr/novel-group/novel-post/?np_id=401101&novel_post_id=159857
(요건 브릿G버전 링크)


=============== 위대한 진화 ===============


<-meta>/

, 어서 오렴 얘야.

옛이야기를 하나 해주마.

그래, 내가 학교에 다닐 적의 일이란다.

 

***

 

너도 알듯이 모든 짐승은 학교에 다녀야 했지.

그게 그 시대의 진화였어.

아무도 의문을 가지지 않았단다.

돼지도, 여우도, 다람쥐도.

심지어 사자도.

짐승들은 의문을 가지는 일에 관심이 없었단다.

더 훌륭하게 진화해, 더 좋은 먹이를 먹고, 더 좋은 짝을 만나 섹스를 하는 것.

그렇게 해서 더 좋은 자손을 남기는 것

, 얘야. 얘야.

발정기도 지났으면서 섹스라는 두 글자에 참 잘도 반응하는구나. 귀엽기도 해라.

어쨌든, 그날은 작은 문제가 있었단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이었지.

밥 먹을 시간은 이미 끝난 거나 다름없었고,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렸지.

불행히도 밥을 먹지 못했거든.

특히나……. 얘야, 너도 알겠지만, 돼지는 허기를 참지 않는단다.

게다가 누구보다 미식가이기도 하지.

학교가 세워지기 전의 돼지는 땅을 파헤치고 코를 박으면서 온갖 먹거리를 찾아냈단다. 돼지에겐 그러기 위한 진화한 코가 있었으니까.

슬픈 일이지만 돼지의 코는 학교에선 의미가 없었어. 그 코는 맛있는 걸 찾는 코지, 위험을 감지하는 코가 아니었으니까.

그게 돼지의 두 번째 불행이었단다.

, 첫 번째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던가?

첫 번째는 MP3를 잃어버린 거였단다. 밥을 굶을 수밖에 없게 된 돼지는 음악이라도 들으면서 버티려 했지만, 아뿔싸. MP3가 사라진 거였지.

배고픈 돼지는 이곳저곳을 뒤지기 시작했지.

그렇단다 얘야.

네가 좋아하는 RPG 게임의 주인공이 숨겨진 아이템을 찾듯이, 돼지는 책상이며 사물함이며, TV 뒤편까지 샅샅이 확인하고 싶었단다.

하지만 뒤지지는 못했지.

왜냐면 우리는 학교 안의 짐승이지, 담장 너머의 짐승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다 돼지는 반에서 힘을 상징하는 곳까지 들여다보려고 했단다.

그게 뭐냐고? 교탁이란다.

사자가 가장 신경 썼던 곳이지. 사자는 힘과 상징을 좋아했거든.

 

.”

 

가장 앞자리에 앉은 사자가 말했단다.

사자는 교실에서 선생님 다음으로 가장 강했어.

게다가 아주 강력한 대화 수단을 가지고 있었지.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누구보다 우월한 갈기였단다. 사자의 적은 손톱에 찢기고 이빨에 물리기 전에 그 갈기를 보고 기가 죽어서 물러나는 경우가 더 많았지.

이렇게 대단한 능력을 두루 갖춘 사자는 돼지에게 복잡하게 말할 필요가 없었어.

 

꺼져.”

 

그 한마디로 충분했단다.

그런데 돼지는 물러나지 않았어.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거지. 돼지에겐 먹을 걸 찾는 코가 있던 거지, 위험한 냄새를 맡을 코가 있던 게 아니었으니까.

돼지는 낌새가 나쁘다는 걸 전혀 모른 채로 물었어. MP3를 못 봤냐고.

그러자 사자가 답했지.

 

또 말해줄까?”

 

그제야 돼지는 자기가 말을 잘못 걸었다는 걸 깨닫고 서둘러 물러났지.

이젠 MP3가 있을 만한 곳도 떠오르지 않았어.

얘야, 돼지가 다음에 했을 건 뭐였다고 생각하니?

포기하고 자리로 돌아간다고?

, 얘야. 너라면 그러겠니?

돼지는 MP3가 필요했단다. 먹는 걸 무엇보다 좋아하는 돼지가 배고픔을 참으려면 돼지에겐 MP3가 필요했어.

이젠 구석구석을 뒤지는 게 아니라, 교실에 있던 짐승들에게 말을 걸 때가 되었어.

돼지는 마침 옆자리에 앉아있던 다람쥐의 손을 봤지. 그 작달막한 손에는 MP3가 있었단다. 하지만 돼지의 MP3는 아니었어. 돼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는 걸 알았단다.

그러면 누구에게 말을 걸어야 할까.

교실 안에는 다람쥐와 사자, 여우가 있었어.

일단 사자는 아니었지. 사자라면 돼지가 자는 동안에 돼지의 물건을 빼앗는 비겁한 짓을 할 이유가 없으니까.

다람쥐도 아니었지. 다람쥐는 자기 MP3가 있었으니까.

예상했겠지만 돼지의 시선이 교실 가장 끝자리의 여우에게로 향하는 건 시간문제였단다.

그리고 앞자리에서 일어난 일을 지켜보고 있던 여우도 이걸 알고 있었지.

여우는 돼지가 말을 걸러 오기도 전에 이를 드러냈어. 내가 멍청한 돼지 새끼의 MP3를 왜 뺐겠냐. 잘 다듬어진 송곳니는 마치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하던 돼지는, 다람쥐에게 말을 걸었단다.

실제로 할 줄 아는 건 위협밖에 없던 어린 사자와 여우를 피해 다람쥐에게 시비를 거는 것. 실로 학교 안에 있는 돼지다운 발상이었지.

여기서 다람쥐는 생각했단다.

 

그래. 작은놈한테 지랄하는 건 사자가 아니라 돼지 새끼가 할 일이지. 늘 그랬어.’

 

그런데 그때, 돼지의 친구인 다른 돼지가 교실에 돌아왔어.

친구 돼지는 돼지를 보자마자 꿀꿀 웃으며 말했지.

 

, MP3 빌려줘서 고마워.”

? 내가 언제 빌려줬어?”

네가 자는 동안에 빌려줬지.”

 

친구의 말에 돼지는 어처구니가 없었어. 배도 고팠고, 화가 치밀어오른 게 눈에 보였지.

 

그건 빌린 게 아니라 훔친 거잖아!”

훔쳤다는 그렇게 쓰는 게 아니야. 빌렸다는 건, 훔쳤다는 게 아니잖아?”

 

꿀꿀 꽥꽥 꿀꿀.

돼지 멱 따는 것 같은 소리가 점점 커졌어. 여우는 신경 쓰기 싫었는지 자기 이어폰을 귀에 꼈고, 사자는 조금만 더 시끄러워지면 닥치라며 고함을 지를 기세였지.

, 아마 사자가 고함을 질렀다 해도 그게 끝이었을 거란다. 사자는 창밖에 있는 코끼리 선생을 무서워했으니까.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은 여우와 소리 지를 줄만 아는 사자.

교실에서 두 돼지의 다툼을 통제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

가까이 있던 다람쥐는 더 있다가는 큰일이 나겠구나 싶어 교실 밖으로 달아났지.

결과적으로, 다람쥐의 판단은 정확했어.

돼지 멱 따는 것 같은 소리는 돼지 멱 따는 것 같은 소리로 끝나지 않았단다.

돼지는 친구의 멱을 진짜로 따버렸거든. 사자도, 여우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 거야.

그리고 더 놀라운 건 그다음이었지.

얘야. 네가 하는 게임은 적을 쓰러트리면 레벨이 오르지?

그거하고 똑같은 일이 일어났단다. 친구를 죽인 돼지의 목이 갑자기 떨어졌어.

그리고 추잡하고 주름투성이였던 돼지머리를 대신해 우아한 뿔을 가진 사슴의 머리가 솟아올랐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그래 얘야. 지금이야 그렇게 말할 수 있지.

하지만 그 시절의 짐승은 철저하게 경쟁하는 사회였단다.

누군가를 먹고 강해지는 건, 사실 어디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었어.

중요한 건, 누가 학교가 정한 규칙을 깨고 남을 먹을 생각을 했냐는 거지.

우리 학교의 경우엔, 그게 배고픈 돼지였을 뿐이란다.

그렇게 학교에는 새로운 질서가 세워졌지.

짐승은 짐승을 먹고, 더 훌륭한 짐승으로 진화했어.

그러자 처음엔 미친 소리라고 반발하던 짐승들도 동족을 잡아먹기 시작했지.

왜 그런 미친 짓을 하면서까지 경쟁을 하느냐고?

단순하단다, 얘야.

그 시절의 짐승은 진화가 끝나지 않았어.

남을 속이고, 괴롭히고, 때리고, 죽여서 끝내 잡아먹어 버리는 행위가 미친 짓이라고 생각할 수준까지 진화하지 못했었단다.

동물이 동물을 먹는 행위를 멈춘 건 우리처럼 약해빠졌지만 살아남은 다람쥐들의 말을 들을 만큼 진화하고, 자기들이 해온 짓이 미친 짓이라는 걸 이해한 뒤에야 멈췄지.

하지만 얘야, 너도 알듯이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단다.

짐승은 짐승을 먹는 방법을 알아버렸어.

그 맛을 기억했어.

너무 많은 짐승이 죽고, 그래서 너무 많은 짐승이 섞였지.

사자도, 여우도, 돼지도 아닌 그 괴물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최근, 그들은 자신을 사람이라고 부르나 보더구나.

나는 아직 사람이 뭔지는 모르겠다만…….

모를 일이지.

여전히 사람은 사람을 먹을 수 있어.

늘 그랬단다.

그들은 진화를 쉬고 있을 뿐이야.

쉬는 시간이 끝나면, 또 진화를 시작하겠지.

마지막 하나가 남을 때까지.

가장 고독한 짐승으로 남을 때까지.

그야 사람은 다람쥐가 내는 작은 소리는 듣지만, 진심으로 이해해주지는 않거든.

자기들끼리도 이해를 못 하는데, 다람쥐의 말은 어떻게 이해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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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생각을 하는 요즘에 흥미로운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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