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차백만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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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소설] [엽편소설] 이불데드 (ibul dead) (0) 2022/12/30 AM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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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동안 장편 2개 끝내고 요즘엔 그럭저럭 한가해서 전에 썼던 엽편집 컨셉 다시 부활시켜 놀고 있습니다.

날이 추워서 이불 아나에서 떨고 있으려니까 별 해괴한 아이디어가 다 나오네요.

그럼, 아래서부터 본편.

출근을 위해 이불과 싸우는 모든 분들과 유게의 옛 할아버지들께 이 글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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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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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XX년!
그 별의 인류는 핵의 불길에 휩싸이지 않았지만, 멸망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꺄아아악! 살려주세요!"

원인 불명의 전염병인가?

"온다. 놈들이다!"

아니면 좀비인가?
아니다! 이건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그 무엇보다도 주민들의 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된 재난이었다!

"모두 버텨라! 방어선을 사수해!"

추위가 뼛속 깊이 스며드는 아침, 동대장은 횃불을 든 채 비장한 얼굴로 지시를 내렸다.

"주민들의 출근길을 사수하라!"

총알이 빗발치고, 횃불이 던져지고, 불길이 일었다.
좀비도 전염병도 버섯도 괴물도 아닌, 모서리 끝을 다리처럼 말아 걸어 다니는 이불들에게.
그렇다. 이 별의 섬유는 이불로 가공된 뒤에도 살아있었고, 이불의 목적을 이해했다.
본디 이불이란 인간을 덮기 위해 만들어진 것.
좀비가 사람의 뇌수를 원하듯, 이불들은 사람을 덮어 따끈하고 폭신하게 만들겠다는 목적에 따라 맹목적으로 움직였다.

"동대장! 기름이 떨어졌습니다!"
"이 이상 불을 피우면 건물에도 피해가!"
"안 돼! 물로 축축하고 기분 나쁘게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적이 방어선을 돌파!"
"으아아악! 잠들고 싶지 않아! 나는 출근하고 싶어!"
"그녀에게 고백하려고 반지도 샀는데!"

불로 만든 방어선이 뚫리자 참상이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방어선을 맡은 방위대도, 딸에게 퇴근길에 케이크를 사 오겠다 약속한 대머리 회사원도.

"이 결재서류를 부장님께! 이것은… 좋은 것이다!"
"총은 의미가 없어! 다른 이불이 구멍을 덮어준다!"
"아아아아! 너무 푹신해애애애! 너무 따뜻해애애애!"
"사실은 출근 따위 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생계가, 급료가!"
"나는 틀렸어! 너만이라도 출근해!"
"체커를…! 출근 카드를…!"

다들 잠들기 시작했다.
하나씩. 하나씩. 착실하게.
통근 전철이 오기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15분.
남은 시간이 너무 길었다. 불길을 피해 꾸물꾸물 다가오는 이불들은 너무나 매력적이고, 따뜻하고, 폭신해 보였다.
그러나 그게 함정이다.
이불들에게 포근하게 감싸인 이들은 저녁이 되어서야 빠져나올 터.
누군가의 멋진 하루가 사라진다.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줄 하루가 헛되이 사라진다.
모두의 앞에 펼쳐진 가능성을 비웃듯, 이불들은 행군 속도를 늦춘 채 확실한 포진을 구성하며 다가왔다.
이불들이 역 안으로 들어가면 모든 게 끝난다. 퇴로마저 빼앗긴 직장인들은 플랫폼에서 잠들어, 직장마저 잃게 되리라.
머리는 시원하고 몸은 따뜻한, 한여름에 에어컨을 켠 듯한 환상에 빠진 채로.

"그런 형편 좋은 환상, 쳐부숴 주마!"

각오를 다진 동대장은 오리털 파카를 벗어 던지며 고함쳤다.

"내가 휴무를 내겠다! 모두 출근해!"
"저희도 남겠습니다!"
"대장 혼자…! 자게 둘 수는 없습니다!"
"크읏!"

모두가 한가해서 예비군에 나가는 게 아니다.
가야 할 직장이 있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지켜야 할 것이 있다.
사고 싶은 책이 있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 예구하고 싶은 프라모델이 있을 것이다!
사람의 욕망은 사람의 숫자만큼 있는 법.
그걸 위해 일하는 하루다. 잠들어서는 안 되는 아침이다!
혼자 막을 수 없을 것 같다 해서, 모두를 이불에 뛰어들게 하는 건 동대장으로서 내릴 수 있는 지시가 아니었다!

"안 된다. 그럴 수는 없다! 여기선 나 혼자서 가겠다!"
"이렇게 갈 수 없습니다… 같이 가게 해주십쇼!"
"맞습니다! 동대장 혼자 가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때였다.

"아주 스토리를 쓰는구만. 킥킥킥킥."
"뭐야?"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금발과 오렌지 머리카락의 예비군이 실소를 흘렸다.

"그렇게 쫑알댈 필요 없잖아? 대장이 뭐라 하건 간에 우린 따라갈 건데."
"훗, 맞는 말이야. 대장 혼자 보낼 수는 없지."

두 예비군의 말에 흔들렸는지 다른 예비군들도 출근을 포기하며 동대장에게 다가갔다.

"대장… 전우를 버리는 짓, 우리는 할 수 없다고."
"대장 혼자만 멋있는 척하게 놔둘 것 같아?"

물론, 이 와중에도 냉정하게 판단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았다.

"그만해 미친놈들아. 너희 그냥 출근하기 싫은 거잖아."

무울론, 이 와중에 냉장한 상식이 통할 리가 없었다.

"가려면 너 혼자 가!"

정상적인 의견을 낸 예비군이 저지당한 사이, 자칭 밀리터리 애호가가 전투모를 어루만지며 눈을 빛냈다.

"대장을 보면 지뢰밭에서 병사를 구해낸 장교가 생각난단 말이지.

무우우우울론, 그는 전장 경험은커녕 지뢰 실물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기묘한 고양감에 휩싸인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런 허언도 통하는 법이다. 여론은 이미 출근 포기 파에게 기운지 오래였다.

"우훗. 대장. 좋은 남자야."
"대장은 정말 대박이야!"
"애송이 녀석들이 감동시키긴…!"
"너희들……."

동대장은 진심을 담아 모두에게 말했다.

"후회하지 말라고! 멍청이들아!"

사심이나 곡해 없는, 정확한 지적이었다.

"그럼 모두들! 같이 가자!"
"우오오오오오!"

그렇게 예비군들은 이불을 향해 돌격했다.
아침 해가 떠오르는 잠자리로, 이불이 걸어오는 빌딩 숲의 저편으로.
누구도 눈을 뜬 채 돌아오지 못했다. 이불에 휘감긴 예비군들은 상냥함마저 느껴지는 이불의 보드라움과 따뜻함에 감싸인 채, 천천히 눈을 감았다.

"등신들이."

홀로 남은 예비군은 군복 위에 외투를 걸친 채 역 안으로 들어갔다.
노사 간 협상이 적절하게 처리된 전철은 연착 없이 5분 뒤에 무사히 도착했다.


<끄-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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