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영화에 대한 감상은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상대적인 것이며 개개인의 취향이나 성격에 따라 천차만별일수 있다는점을 짚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 글을 통해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에 대한 악평을 쏟아낼 것이며 그것이 이 영화를 재미있게 감상하신 분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를 재미있게 감상하신 분들이라면 ''아... 저사람은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정도로만 받아들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지난번 에피소드 7을 그닥 좋아하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클래식 에피소드를 복제한 나머지 새로운 에픽을 구축하는데에 실패한 세계관, 극 진행의 편리를 위해 안이하게 설정되어지고 난데없이 등장하며 존재감 없이 사라지는 슈퍼웨폰 스타킬러베이스, 그로인해 클라이막스다운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스타킬러베이스 공습장면 등등의 이유로 어떤 의미에서는 영화적으로는 파탄수준이지만 스타워즈다우면서도 클래식 에피소드와는 차별되는 에픽을 구축해낸 프리퀼 시리즈보다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피소드 7에서 인정하지 않을수 없는 부분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입체적이고 개성적인 주역 3인방-레이,핀,카일로의 캐릭터와 꼼꼼하게, 그리고 먹음직스럽게 흩뿌려진 떡밥들이 그것이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에피소드에서 가장 맛났던 부분들이 이번 에피소드에서 모조리 붕괴해버리고 맙니다.
에피소드 7 공개이후 팬들 사이에 가장 치열하게 논의되던 떡밥은 다름아닌 레이의 정체에 대한 것들이였습니다. 루크, 오비완, 팔파틴등 시대적으로 연결이 가능한 모든 네임드 캐릭터와 레이의 관계를 추측해 보았고, 클론이나 실험체, 심지어는포스의 현신이나 아나킨의 환생일지도 모른다는 설까지 나온지라 이것들중 하나가 아닐 가능성이 없어보일 정도였습니다. 카일로에 대해서는 어땠나요? 단순히 중2병으로 치부하기에는 이상하리만치 다스베이더에 집착하고, 다크사이드에 더욱 깊이 잠겨들기 위해 아버지 한 솔로를 죽이는 그의 모습에서 뭔가 다른 목적이 있지 않을까라는 궁금증은 없으셨습니까? 혹은 에피소드3의 다스 플레이거스 테마를 정성스레 발라가며 흩뿌린 스노크 정체 떡밥은 또 어떤가요? 어째서 레이의 포스에 대한 잠재력은 저토록 거대하며, 그 잠재력이 하필이면 스카이워커 가문의 성검을 만지는 순간 '첫번째 가르침이다'라는 요다의 속삭임과 함께 훈련된 다크제다이의 마인드 컨트롤에 맞설만큼 폭발하는지? 루크가 잠적한후 작동을 멈추었던 R2-D2는 어째서 지도조각을 가지고 있던 BB-8이 아니라 콕 집어서 레이가 저항군 기지에 도착하자마자 재작동 한것인지? 레아가 레이를 저토록 포근히 안아주는 장면이 정말로 연출실수인지? 정말 먹음직스러운 떡밥들 아닙니까?
이번 에피소드에서, 지난 에피소드의 떡밥들은 모조리 가장 맛대가리 없는 형태로 회수되거나, 썩어버리거나, 붕괴되어 버리고 맙니다. 레이의 부모는 그저 돈 몇푼에 딸내미를 팔아버린 시정잡배로써 자쿠 어딘가에 묻혀있고, 카일로는 그냥 다크사이드의 유혹에 경도된 나머지 아버지를 죽인 패륜아였으며, 스노크는 사실 다스 플레이거스였던 다스 자자빙스였던 아무 상관없이 되어버렸습니다. 죽었거든요.
사실, 레이의 부모가 그저 시정잡배일 뿐이라는 떡밥회수는 굉장한 드라마를 만들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나 자신은 특별한 사람일거라고, 언젠가는 특별한 나 자신을 발견할수 있을거라고 믿고 살았는데 알고보니 나는 아무 특별할게 없는 평범한 사람이였다. 그리하여 실망하고 절망하여 시련에 빠지게 되지만 결국엔 시련을 이겨내고 나 스스로 특별해진다. 라는 전개... 뭔가 굉장한 이야기가 있을것만 같은 이 전개가 그저 반전을 위한 반전 정도로 소모되어버립니다. 극 중반까지 보여주는 레이의 놀라운 포스 잠재력, 포스를 통해 보게되는 수수께끼의 환상, 카일로와 포스로 연결되어 나누는 교감등을 통해 지난 에피소드의 떡밥을 강화하는데에만 골몰하다가 이 모든 떡밥들을 한순간에 날려먹은 다음 별다른 고민이나 시련없이 최후의 제다이로 인증해버리는 것이죠. 그 와중에 포스의 교감을 통해 아직 선함이 살아있음이 발견된 카일로는 단 한순간에 급전직하 그냥 자기 욕심에 충실한 개새끼로 떨어져 버리고 맙니다. 결국 '언젠가는 빛의 길을 걷게 될것' 이라는 레이의 대사도 지난 에피소드의 '그의 안에는 아직 선함이 살아있어' 라는 레아의 대사도 그냥 무의미한 허언으로 추락해버리는 겁니다. 뭔가 아슬아슬하게 빛과 어둠 사이에서 갈등하는 아직은 미숙한 다크 제다이라는 카일로의 캐릭터와 함깨 말이죠. 어떻게 보면 레이가 카일로안의 빛을 발견하고 카일로가 레이 안에서 어둠을 발견하는것은 새로운 떡밥일수도 있겠지만, 기존의 맛있어 보이던 떡밥이 이렇게 쉬어버렸는데 새 떡밥을 물고 싶냔 말이죠. 여기에 더해 전작에서 팔파틴과는 다르게 제법 진중하고 합리적인 악의 카리스마였던 스노크는 극 중반까지 전작의 캐릭터를 붕괴당한채 말많은 악당 클리셰를 뒤집어 쓰다가 카일로의 배신으로 허무하게 퇴장하면서 주인공한테 깝치다 총맞아죽은 악당 A급의 존재감을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이딴 존재감 없는 악당이 다스 플레이거스였던 팔파틴의 클론이였던 이젠 관심 없어요.
전작에서 잘 만들어둔 캐릭터와 떡밥들을 이렇게 날려버리는 와중에 영화는 의미없는 간지내기와 새 캐릭터 띄우기에 몰두해 질질 늘어지고 맙니다. 저항군의 탈출과 함대단위의 추격전, 그 과정에서 서로 갈등하고 대립하다가 종국에는 밀리네엄 팔콘에 탑승한 생존자들이 살아남은 인원의 전부일 정도로까지 철저히 괴멸당해버리는 저항군. 이라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데 긴장감이 전혀 없어요. 아무리 포 다메론이 출중한 에이스라지만 엑스윙 단기에 농락당해 대공포대를 모조리 파괴당해버리는 퍼스트오더 전함은 도대체 어디서 굴러다니던 깡통인지, 아군의 주요 전력이 단 한기이 적 전투기에 농락당하고 있는데 손놓고 구경만 하고있는 퍼스트오더 함대는 또 어디서 굴러다니던 당나라 군대인지, 애초에 전투기를 탑재한 적함 수척을 상대로 전투기 단기만으로 대공포를 모조리 무력화시킨다음 소규모 폭격편대로 공격하겠다는 작전은 어떤 닭대가리가 입안한 작전인지, 데스스타 공격에도 잘만 써먹던 어뢰들은 어따 팔아먹고 직접 상공에서 투하하는 폭탄을 쓰고 있는건지, 그 와중에 저 동양인 여자는 왜 저리 띄워주지 못해 안달인건지...... 오프닝 시퀀스 전투씬 만으로도 크게 실망했는데 함대 단위의 추격전이 벌어지면서 흐름은 더욱 지리멸렬하게 늘어집니다. 뭐 칼리마리 크루저가 무슨 잠수함은 아니니까 다스부트나 붉은 10월같은 쫄깃한 숨박꼭질 함대전이 나올리야 없다고 합시다. 아무리 그래도, 아무리 포 다메론이 무리하게 적함 무력화를 고집한 나머지 전투기 전력이 괴멸적 타격을 입었다고 해도, 아무리 카일로 편대의 공습에 전투기 격납고와 발진 데크가 파괴되었다고 해도, 함대단위의 추격전이 이렇게 시시하면 안돼죠. 뭔가 생과 사를 넘나드는 급박함, 치열한 머리싸움과 작전싸움, 좀더 스펙타클한 함대전을 스타워즈에 기대하면 사치인건가요? 되도않는 PC캐릭터 띄울 러닝 타임에 이런거 해주면 안돼요? 모처럼 스타워즈에서 아군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고 선상 반란까지 일어났는데 이건 또 왜 이렇게 사족같나요? 갈등이 좀더 치밀했으면 하는 바램과 선상반란의 전개가 좀더 촘촘했으면 하는 바램이 욕심인가요? 어차피 핀과 로즈가 백방으로 뛰어다닌거 로즈의 PC쇼 말고는 다 헛짓이였는데 그 러닝타임에 이런거 묘사해주면 안돼나요? 칼리마리 크루저 특공장면도 그렇습니다. 뭐, 연출적으로 인상적이거 인정합니다. 근데 중간전개가 이렇게 늘어졌는데 간지만 잡으면 영화가 저절로 흥미진진해집니까? 모처럼의 아군내 갈등과 선상반란이 이렇게 스치듯 지나가 버렸는데 어느 포인트에서 '아 내가 저 사람을 오해하고 있었구나. 저사람의 참뜻은 그게 아니였구나' 하고 몰입해야 하나요? 스타워즈에서 크림슨 타이드 기대하면 안돼는 거였나요? 로즈가 목걸이 만지작 거리는 러닝타임으로 이런거 해주면 안돼나요?
그렇습니다. 어쩌면 문제의 핵심은 로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망할 PC캐릭터를 띄우기 위해 너무나 많은 러닝타임을 할애하고 너무나 많은 중요 묘사를 생략한 나머지 정작 흥미진진해야할 부분들이 하나같이 수박 겉핧기로 지나가버린채 로즈의 PC쇼를 묘사한것이 극이 늘어지는 가장 큰 원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의 문제는 그녀가 단순히 PC캐릭터라는 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 드넓은 은하계에 PC캐릭터 한둘쯤 있는다고 이상할게 뭐 있을까요? 영웅이 모두 예쁘고 잘나란법이라도 있답니까? 게다가 외모로만 보자면 그녀는 통통한 외모 치고는 제법 귀여운 축에 속하기까지 한다고요.(개인취향입니다. 존중해주세요.)
이 캐릭터의 진정한 문제는 그녀가 극중 현실을 살아가는 입체적인 캐릭터가 아니라 감독자신, 혹은 제작진이 설파하고픈 PC적 프로파간다를 관객에게 가르치기 위한 확성기로써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이여자는 고민도 두려움도 욕망도 삶의 고단함도 아픔도 없어요. 오프닝 시퀀스에서 언니가 죽긴 했어요. 그것도 제작진의 무리한 띄워주기를 등에 업고 영웅으로써 희생해요. 그 때문에 첫 등장부터 쭈그려 앉아 오열하면서 등장하죠. 근데 이 캐릭터의 인간으로써의 묘사는 딱 거기까지뿐입니다. 그 이후는 그저 '언니의 유품'인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면서 핀과 함께 사방팔방 뛰어다니다가 적재적소에서 PC프로파간다를 한마디씩 읇어주는게 역할의 전부입니다. 언니의 희생만으로 캐릭터의 모든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하려다 보니 캐릭터로써의 깊이는 나노미터 단위가 되어버려요. 이런 초박형 캐릭터에 뜬금없는 로맨스를 끼얹습니다. 엔딩 근처에서 아무 예고없이 핀과 키스하는데, 저는 이 처자가 언제 어떻게 왜 핀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었는지 전혀 모르겠어요. 에피소드 5에서 레아가 한보고 '당신은 여자를 몰라'하면서 루크한테 키스하는 순간에도 '아... 저 귀한집 처자가 불한당한테 마음을 빼았겨서 자존심 세우고 있구나...' 라는게 느껴지고, 재미없는 로맨스의 대명사인 파드메와 아나킨조차도 '그래뭐... 남자가 저렇게까지 들이대는데다가 죽을 위기를 같이 넘겼으면 저렇게 될수도 있겠지' 싶은데 로즈는 왜 핀한테 빠진건지 전혀 모르겠어요. 목걸이 돌려달라고 대신 말해줘서 그랬나? 덤으로 아군 기계화 부대 코앞에서 반란군노무 시키 두마리가 꽁냥대고 있는데 퍼스트 오더는 아무짓도 안해요. 로맨스가 너무나도 아름다웠나봐요.
결과적으로 어떤 의미에서 스타워즈의 새로운 영역에 들어갔다는 평가는 정확한 것이였습니다. 루크는 -작중 거의 유일하게- 멋지게 퇴장했고, 팔파틴을 연상시키는 스노크는 죽었으며, 저항군은 문자 그대로 한줌 남았습니다. 그리고 진정 최후의 제다이이자 새로운 시대의 첫번째 제다이로 레이가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반대편에서는 선함이 남아있다고 평가되었었지만 이제는 분노와 욕망만이 남은 카일로가 스노크를 뒤이을 악의 후계자가 되었죠. 그리고 저는 당연히 에피소드 9를 기대하게 될겁니다. 마치 배트맨대 슈퍼맨에 뒷통수를 쳐 맞았지면 그래도 저스티스 리그를 기대했었던 것 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