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에 일본으로 취학비자 가지고 넘어가서
2016년에 한국으로 완전 귀국을 했습니다. 거진 10년이군요.
워킹홀리데이로 가려하였으나 당시 엄청난 엔저로
100엔에 600원 후반~700원 초반 대던 꿈같은 시절이었는데 이 여파로
너도나도 일본으로 유학가던 시절이었고, 신주쿠 가면 한국어랑 중국어가
그나라 모국어인 것처럼 심심찮게 들리던 시절에 워킹 세 번 미끄러지고
결국 취학비자로 들어가서 2년 공부하고 2년 회사다니고 5년 사업하고
나머지 1년은 여행다니다가 귀국했습니다.
2-2-5-1 전법이군요 ㅋㅋㅋ
당시는 한류 1세대였는데, 배용준이가 꽉 잡고 있던 시절이었고 배용준 덕분에
한국인들 위상과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었습니다. 한국어 갈쳐준답시고 가서
노가리까고 밥 얻어먹으면서 시급 3천 엔 받던 시절이었지요(얼굴이 되야함 =ㅅ=)
저는 2년 동안 취업비자 받고 끝난 다음에 운좋게 일본기업으로 취업이 되었는데요,
IT로 취업이 되었습니다. 저는 전공이 두 개 인데, 하나가 IT였고 나머지 하나는 음향학(방송영상)
이었습니다. 일본 유학간 건 닌텐도 사운드 디저이너로 취업하고싶어서였는데요, 한국에서는
당시에 게임음향을 자체적으로 하는 게임사가 없었습니다. 모두 외주였죠.
그래서 대우가 아주 개판이었습니다. 요즘에는 엔씨도 그렇고 자체 스튜디오가 있어서
정직원도 되고 좋아졌지요.. (너무 일찍 태어났어 ㅜㅜ)
아무튼 그렇게 넘어가서 어학교에서 2년 공부 후에 도쿄 HAL대학에
들어가려고했지만, 갑자기 엔고가 되어서 100엔에 1600원으로 거진 2배 이상 올라가서
일본 대학의 꿈은 잠시 접어두고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는데.. IT쪽이다보니 쉽게 취업이 되었습니다.
2년 정도 일을 하다가 어느 한국계 기업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는데,
대우가 파격적이었습니다. 연봉이 거의 2배로 늘어나서 전 고민없이 이직을 하였는데
결과적으로 3개월 만에 쫒겨나고 인생의 쓴 맛을 맛보게 되었지요 ㅋㅋㅋ 월급도 3개월치만 받았는데,
당시 하던 업무가 일본 라쿠텐에 입점 및 샵 관리였습니다.
한국은 네이버스토어 라던가.. 오픈마켓 입점이 어렵지 않죠. 일반인도 할 수 있지만,
라쿠텐 관리페이지는 정말 개판이고 최악의 난이도인데, IT를 전공하지 않으면 다루기 힘들 정도로
쓰레기입니다. 일반인이 감히 접근하기 쉽지가 않죠.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네요. 아무튼 당시엔 그랬고
그땐 라쿠텐 관리자페이지를 만질수만있어도 연봉 800만 엔 이상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운좋게 첫 직장에서 라쿠텐을 맡게 되어서 시스템을 잘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스카웃 제의받아서 들어가서 라쿠텐 구축해주고 상품 등록 다 끝나자마자 꺼지라더군요 ㅋㅋㅋㅋ
참고로 라쿠텐은 수수료도 10~12%정도 있지만, 월 이용료가 있습니다. 이 이용료에 따라 상품 등록수가
달라지는데 보통 3~4만 엔 짜리를 많이 씁니다. 월 이용료만 30~40만 원. 거기에다 매출의 10~12% 수수료 ㅋㅋ
한국처럼 일반인들이 쉽게 온라인샵을 운영할 수가 없는 시스템이었죠.
아무튼 거기서 잘리고.. 한국에 갈 위기였지만,
당시 일본 대기업에 다니던 일본인 친구(여자임 ㅋㅋ)가 제가 라쿠텐 잘하니 사업을 해보라면서
사업 자금으로 100만 엔을 조건없이 빌려준다하여 솔깃한 나머지 사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아이템은 여성의류였습니다.
이유는 한국 동대문에 당시 의류사업으로 잘나가던 친한 동생이 있어서였고,
또 일본도 중국산 보다는 한국산이 훨씬 좋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였습니다.
시행착오가 엄청났죠.
여성의류사업이 돈은 되지만 가장 큰 문제가 재고처리였습니다. 품목이 너무 많아서 재고를
다 가지고 가기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그 중에서 가장 잘 되는 하나만 해보자 하여 찾은 것이
여성 신발 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수제화였죠. 일본에서 수제화는 굉장히 비쌉니다. 한국은 동대문 가면
10~20만 원 이면 가죽 수제화 괜찮은 거 살 수 있지만 일본은 최소 4~5만 엔 입니다.
그렇게 신발 단일 품목으로 변경하는데 처음엔 잘 안되다가
당시 라쿠텐 광고 중에 모바일에서 카테고리 상단 1주일 노출 되는 게 있었는데 단가가 30만 엔이었고
이걸 한번 해봤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습니다. 하루에 50개 이상씩 주문이 들어왔었죠.
이렇게 초기 자금을 마련하고 회사가 잘되니 돈을 빌려준 일본인이랑 사이가 틀어져서
원금+이자 돌려주고 사이가 아주 나빠지기 전에 정리를 했습니다. 이후엔 그냥 친구사이로 지냈지요.
지금도 가끔 연락합니다 ㅎㅎ 아무튼 이때부터 사무실도 얻고, 오프라인 매장도 알아보고 참 바빴습니다.
그러다가 그 사건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동북대지진. 후쿠시마원전사고가 터집니다.
당시 저는 시부야에 사무실이 있었는데, 지진 났을 때 사무실에서 노닥거리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데, 그땐 정말 죽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섭더군요.
그 이후 대부분의 기업들이 그런것처럼 저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려하였지만,
갈 수가 없었습니다. 비행기티켓이 없었어요. 저는 오픈티켓도 없었기 때문에 표를 사야했는데,
자리가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있을 수 밖에 없었죠. 규슈로해서 갈 수 있다는 소문이 있어서
일단 차랑 바이크에 기름 가득 채워두고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방사능 소식을 접하고 어차피 일본에 있어야한다면 다른 아이템을 찾아보자 하여
방사능 측정기를 알아보게 됩니다. 이게 정말 엄청난 행운을 가져다 줬죠. 당시 3만 엔 정도 하던
방사능 측정기가 물건이 없어서 20~30만 엔에 거래가 되는 걸 보고 한국에 과학교재 쪽 아는 분에게
연락을 해보니 그 똑같은 측정기가 100대 정도 있다고 하더군요.
가격은 일본보다 비싼 60만 원 정도였지만 제가 다 사겠다했습니다.
했더니 사실은 불과 몇 시간 전에 일본쪽에서 연락이와서 계약이 되었다는 겁니다.
여기서 굴하지않고 저는 계속 부탁하고 꼬셨습니다. 어차피 파는거면 한국인에게 팔아라 ㅋㅋㅋ
나에게 팔면 지금 당장 물건 가지러가고 돈도 주겠다 했더니.. 그럼 내일까지 바로 입금하면
물건을 주겠다고 하더군요.
오케이 했습니다.
그런데 당장 6천만 원이 한국에 없었기 때문에 지인+친척들 통해서 6천만 원을 조달하여
한국에 있는 동생을 업체로 보내서 물건 받고 바로 입금해주고 동생은 받은 물건을 바로
핸드캐리로(사람이 직접 일본까지 갖다주는 거) 물건 보내서 저는 불과 이틀 만에 한국에 있는
방사능측정기를 일본 사무실로 들여와서 일주일 만에 다 처분을 했습니다.
그때가 아마 최단기간에 최고의 매출을 올렸던 시절인 거 같네요.
라쿠텐 수수료만 300만 엔 넘게 지불했습니다. 이후로도 관련 물품들(방독면이라던지)을
계속 공급하면서 어느정도 자금을 불려가다가 방사능 특수(?)가 없어진 후에 한국으로 귀국할지
계속 다른 사업을 찾아서 할지를 고민했는데 결국 일본에 체류하기로하였고 지금 생각해보면
이건 좀 잘못된 판단이었던 걸로 생각이 되네요 ^^
이후에는 무역업으로 업종을 바꿔서 사업을 계속 하다가
2015년쯤에 방사능 문제도 심각해지고 가족들도 자꾸 오라고해서 사업체 정리하고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10년 만에 한국 왔더니 정말 적응이 안되더군요. 지금도 가끔
버벅거릴 때 있습니다 ㅎㅎ 나이가 있다보니 처음에 정착하는데 정말 힘들었네요.
지금은 소소하게 가게하고 있지만,
일본에서 사업하던 거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지만.. 전 만족합니다.
생활에 큰 불편함 없고, 큰 불만도 없네요 ^^ 하지만 일본이 그립기는 합니다.
그래서 한국 와서도 일본에 진짜 자주 갔었는데.. 요즘엔 코로나 때문에 강제적으로 못가고있으니
이부분이 좀 아쉽네요. 온천이 너무 그리운데.. ㅜㅜㅜㅜ
참고로 일본 방사능은 심각합니다.
이제 10년 지나서 피폭된 사람들 증상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정말 많이 죽습니다.
말도 안되는 테러방지법 때문에 제대로 보도가 안되고있어서 그렇지 심각합니다.
일본으로 취업은 아예 접으시기 바랍니다. 돈 벌려다가 일찍 죽습니다..
방사능 정말 무섭죠. 저는 대지진을 가까이서 겪진 않고 후쿠오카에서 겪었습니다만 진짜 그 당시에 큐슈로 오는 본토 주민이 한두명이
아니였었어요. 말씀하신 방사능 계측기 같은건 제 대학 선배도 좋은 사업아이템이라고 생각해서 제 도움받아 한국에서 엄청 조달했었는데
하나의 경쟁사셨겠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