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어릴 적, 유치원 때의 모습입니다. 아버지가 수동 카메라로 저를 찍어주신 거죠.
이때의 기억은 흐릿히지만, 대충 어떤 상황이었는지 생각나요.
안양에서 살 때였는데, 아버지가 청담동에서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아 이사한지 1년쯤 되었을 땝니다.
그렇죠. 나름 잘 살았었습니다.
아버지는 청담동에서 안양으로, 그후 할머니집에 얹혀 사는 데까지 계속해서 사업 실패를 겪으셨습니다.
아버지의 취미는 등산과 사진이에요.
이때 무슨 사진기였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굉장히 구식 수동이었고
다루기도 힘들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래도 언제나 아버진 그걸로 가족들 사진을 찍어주셨고, 손수 먼지도 털고 닦고 소중하게 다루셨어요.
그 사진기는 이제 없네요. 나름 고가였는데 아버지가 IMF 때 망하셔서 할머니 집으로 얹혀 들어가야 할 때 파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전 이 사진에서 아버지의 애정이 느껴져요.
구도도 그렇고 잘 웃지도 않던 제 사진을 찍기 위해 과연 몇 장의 필름이 소비되었을까요.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제 시선입니다.
저때 전 아마 카메라 렌즈가 아닌 아버지의 눈을 보려고 했었을 거에요.
그래서 웃지도 않던 녀석이 저렇게 웃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 다른 사진들을 보면 몇 장 빼면 전부 다 웃고 있어요. 그래서 전 나중에 초등학교나 중학교나 고등학교나 대학교나, 지금에나 사진을 보면
언제나 웃는 내 모습만 보게 되죠. 그래서인지 초등학교 들어가선 긍정적으로 웃기도 잘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버진 제 내성적이고 무뚝뚝한 성격을 바꿔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셨던 게 보여요.
넌 항상 웃는 모습만 기억하고 살아라. 그런 목소리가 이 사진에서 들려와요.
전 이런 인증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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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좋아하는 사진들이 참 많습니다.
제가 저희 집 강아지인 흰순이와 마당에서 놀면서 찍은 셀카나 여자친구가 나를 바라보는 걸 찍은 것,
어렵게 돈을 모아서 가지고 싶었던 걸 샀을 때 찍은 구매 인증샷, 제가 온갖 고생을 하며 혼자 찍은 아주 짧은 단편 UCC,
군대에서 고생할 때 전우들과 일회용 사진기로 찍은 것.
그깟 종이쪼가리가 자신의 인생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면, 전 그런건 인증샷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삶이 묻어나는 꾸깃한 천원짜리 한 장이 그것보다 값질 테죠.
아마 제가 소설을 쓰기 위해 몇 일 동안 고민하며 끄적인, 노트 빼곡하게 적은 휘날린 글씨가 더욱 인증스러울 겁니다.
제 친구들 중에도 저보다 잘 사는 놈도 있고 못 사는 놈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이면 얼마 버는지, 어디에 땅을 샀느니 말하지 않죠.
진정한 인증과 진정한 커뮤니티가 그런 거라고 봐요. 누가 와도 즐겁게 놀고 대화할 수 있는 곳이요.
고졸이면 어떻고 하버드 박사면 어때요. 어짜피 오프 모임에서 고깃집에서 소주 한 두잔 마시고 낄낄 거리는 사람인 건 똑같잖아요.
일베의 학력, 수입, 학위 인증이 부럽다면
우리는 우리의 멋진 인생을 인증하면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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