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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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과 예측] 설국열차 스포있는 분석 (스포 없는 추천 글 링크) (5) 2013/08/01 PM 06:34
ㄴ 위에 있는 링크는 스포 없는 제 감상글입니다. 영화를 안 보셨다면 우선 이걸 보시고,
영화를 볼까 말까 망설이는 분들에게 적절한 감상이니 참고하시고 결정하셨으면 좋겠네요.


그러면 스포 방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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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부 세부적인 명칭이나 개념들이 좀 다를 수 있습니다.


1. 설국열차란?

단순히 기차가 아니죠. 인류 최후의 생존열차입니다. 바깥은, 7인의 반란에서 볼 수 있듯, 생물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그 안에서 인류는 열차의 온기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죠.
여기서 커티스는 자신이 지도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남들을 위해 대신 뭔가 해줄 수 있는 하찮은 존재,
그냥 서포터 역활이라고 생각하죠. 그는 자신이 아닌 길리엄을 위해 앞칸으로 전진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커티스에게 있어 길리엄이란 존재는 무엇일까요. 진정 따를 수 있는 리더?
요즘 느끼는 정치적 상황(국내 뿐만이 아닌 세계적인 것)과 맞물리고 있죠.
하지만 길리엄은 최후 월포드와의 대화에서, 그 또한 순수한 인물이 아니란 게 드러나죠.
사회 구조층은 대표자라는 한 사람에게 결정권이 집중되고, 그 대표자들은 서로 암묵의 합의를 합니다.
노조를 떠올리면 좋아요. 우리가 아는 노조가, 그 이념과 상황은 이해할 수 있어도, 순수하게 윗 계층과 대립하기만 하는 존재들일까요?

여기서 봉준호는 궁극적 물음을 던집니다. 모든 의사 결정권을 대표가 해야만 할까.
커티스는 하급계층의 '대표자'이자 그 안에 있는 '개인'입니다. 이 둘을 다 가지고 있고, 그걸로 고뇌하죠.
그리고 마지막엔 대표자로의 결정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결정을 내립니다.
어린 두 사람을 살리는 것.

그가 마지막에 성냥을 넘겨주냐 마느냐의 기로에서 그는 '개인'으로의 의사를 택하죠.



2. 사실 커티스가 한 일은 목적도 없고 굉장히 쓸데 없는 짓.


커티스는 처음엔 길리엄을 위해 앞으로 갑니다. 그가 그렇게까지 길리엄을 신봉하는 이유는, 자기 희생적인 부분에 감동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커티스 스스로는 단 한 번도 자기희생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길리엄을 어린 아이를 위해 팔을 자르고, 그 후로도 많은 사람들이 신체 부위를 자르며 기부합니다. 하지만 커티스는 자르지 못하죠.

그런 커티스는 길리엄이 죽고 나자, 앞 칸으로 가려는 목적을 잃습니다. 그 후로는 단순 생존을 위해 나아갈 뿐이죠.
그가 엔진칸 문 앞에서 발광하는 장면은, 어쩌면 그 안에서 잃어버린 것을 대신할 목적을 찾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실제로 윌포드는 그에게 새로운 삶의 목표를 줍니다. 커티스는 엔진 앞에서 혼자만의 고민을 하고
길리엄의 배신 같은 행동, 윌포드의 이기적인 행동을 '이해'합니다.

여기서 이해와 공감은 다른 감정입니다.
커티스는 윌포드와 길리엄이 왜 그런 합의를 했는지 '이해'합니다.
하지만 세상이 텍스트로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커티스는 그 방식에 공감하지 못하죠.
그런데 커티스는 마지막에 윌포드의 제안을 거의 다 받아들입니다. 요나에게 성냥을 주지 않고
열차의 새 리더가 되기로 하죠. 막판에 요나가 바닥을 열어 고통받는 타냐의 어린 아들을 보고 나서야 마음을 바꿉니다.


사실 설국열차는 그대로 계속된다고 해도 나쁠 게 없습니다.
비록 삐뚤어지긴 했지만, 남궁민수의 이론대로 눈이 더 녹을 때까지만 기다린다면 모든 사람들이 생존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게 얼마나 걸릴까요. 5년? 10년?

그런데 남궁민수와 커티스는 열차를 폭파시킵니다.
남궁민수가, 그리고 마지막에 커티스가 마음 먹은 것은 아마도
이 사회구조가 계속된다면 차후 아무리 말해도 누구 하나 열차에서 내릴 것 같지 않다 생각했겠죠.

본인이 리더가 되어 사회구조를 바꾼다?
설국열차에선 그게 불가능하다 판단합니다.
윌포드가 말하죠. '난 여기 있고 싶어서 혼자 있는거 같아?'
그렇죠. 리더란 존재 또한 사회구조 유지를 위한 하나의 부품일 뿐입니다.



3. 봉준호의 메시지는 새로운 사회구조의 탄생.


공산주의가 한 때는 이상적 사회론으로 평가 받았었죠.
하지만 개선된 자유주의가 지금의 주류 이론입니다.
그런데 계속되어 누적된 불편한 진실들이 속속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재화의 재분배가 이뤄지지 않고, 사회구조의 정점에 선 사람들은 그 구조를 교묘하게 이용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우리들 머리 꼭대기서 놀고 있죠.
봉준호는 새로운 사회구조가 개개인의 각성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네가 할 일을 특정 리더에게 몰아주지 마라.
우리는 사회 속 부품이 아니다.

실제로 그런 주제의 이야기가 미디어 전반적으로 일어나고 있죠.
가장 먼저 촉발된 것은 문학에서 도가니였고, 이후 게임 바이오쇼크가 그랬고, 그 다음이 영화 설국열차였다 봅니다.
공지영의 도가니는 특정 사회 계층이, 리더란 사람들의, 선하다 믿는 사람들의 추한 모습을 여과없이 드러냅니다.
바이오 쇼크 시리즈에선 이상적인 사회이론이 현실에 적용되면 어떻게 될 지를 잘 보여주고 있죠.
설국열차 또한 그 세계관에서 비슷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게 느껴집니다.



4.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 시킬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는 문제죠.
'나 한 사람이 죽어서 열 명, 백 명이 살 수 있다면 그럴 수 있을까?'

베스는 일정 개체수가 되면 자연적으로 개체수 비율 유지를 한다고 합니다.
정립된 이론은 아니죠.

자연적 개체수 이론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개입이 없다면 자연은 스스로 개체수를 조절해갑니다.
하지만 설국열차는 개개인의 선택이 가능한 인간들이 타고 있죠. 그들은 생각을 합니다.
개인적으로 바퀴벌레로 양갱을 만드는 장면이 이상적이었는데, 과연 그 많은 바퀴벌레들이 어디서 났을까요.
한 번쯤 물음을 던져볼만 하죠.
직접적으로 드러난 부분은 수족관 초밥 시퀀스입니다. 1월과 7월에만 먹을 수 있다는 초밥.
개체수 조절을 통해 극히 일부만 가지고 초밥을 만듭니다. 그런데 말이죠.
결국 초밥이 되면 그건 인간의 먹거리 밖에 안되는 겁니다.
인구 개체수 조절을 그런 이론적인 관념에서 단순 평가해서 결정할 수 있을까요?


5. 필요한 것은 적절한 사고관


인간에겐 자기만의 자리가 있고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성실히 지켜간다.
윌포드의 이런 생각은, 교실 칸의 종교적 색체와 합쳐지면.....
대놓고 언급은 하지 않겠지만 어떤 게 떠오르지 않나요?

전 기독교란 게 절대적 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같은 의미로 사회주의나 자유경제주의(바이오 쇼크)가 절대적 선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우리는 윌포드의 이론을 이해하고 그럴 수 밖에 없단 걸 알면서도,
남궁 민수의 희망적 이론에 끌립니다.

커티스는 이 둘 사이에서 고민하죠. 우리의 모습은 딱 이렇습니다.
그리고 윌포드의 극진적 사고관을 보고는 거기에 반발한 커티스는 팔을 희생하며 그 반대되는 남궁민수의 탈출 이론으로 노선을 바꾸죠.


전 커티스가 남궁민수의 이론을 믿고 그것을 위해 요나와 소년을 구했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단지 윌포드의 사상이 '틀렸다'라고만 생각했죠. 그리고 커티스가 취한 행동은 단순 윌포드에 대한 반발심이었을 뿐입니다.
영화 마지막에서 우리는 희망을 얻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우리는 사회구조 안에서 네 생각이 틀렸다고 그 반대되는 생각이 옳다고 생각해선 안됩니다.
마치 새누리당이 개떡 같다고 민주당이 옳다고 판단하면 안되는 것처럼요.
봉준호는 '차악 선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만약 윌포드가 어린아이를 가지고 부품처럼 대하지 않았다면?
모든 게 옳지 않다. 하지만 최악을 알고 그걸 위해 차악을 선택하는 시선을 필요하단 거죠.

커티스는 둘 다 올바르지 않다 생각합니다. 크로놀로 만든 사제폭탄을 저지했던 것처럼요.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윌포드의 사상을 보고 결국 그는 최악이 아닌 차악을 택하죠.



6. 허술함을 대충 넘어가지만 그렇다고 단순하다 보기 어려운 영화


솔직히 이 영화를 보고 느낄 수 있는 감상은 좀 제각각입니다.
특히 연령대와 사회개념에 따라 극렬하게 나뉠 수 있죠. 아마 봉준호는 이 영화 자체보단 영화를 보고 극명히 나뉠 대립 구조를 의도하고, 그 자체를 즐기려 했던 것 같네요.
영화는 영화관에서 완성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끝없는 논쟁을 통해 둘 중 어느 게 최악이고 차악인지를 떠들겠죠.


허술한 부분이 없는 건 아닙니다. 윌포드의 영구기관 엔진은 어떤 구조인지 전혀 알 수 없고, 칼빵 맞은 아저씨가 어떻게 다시 일어날 수 있는지도 모르죠. 그렇게 시끄럽게 울리는 전화기를 꼬리칸에선 왜 아무도 몰랐을 까요.
그리고 점점 기온이 내려가고 있다면 팔을 얼려 자를 때 이전과 똑같이 7분으로 충분했을까요?
마지막으로 윌포드는 과연 기온이 내려가고 있는 걸 몰랐을까요?

이 부분은 모두 제 개인적인 해석이 들어갑니다.

전화기야 벨 소리가 울리는 것도 있고 진동이나 불빛으로 걸수도 있었겠죠.
기온이 내려가는 건 아마 윌포드나 메이슨은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마 그들은 체제 유지를 위해, 자신이 건설한 이상향을 저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겠죠.


액션씬은 15세로 낮췄다기 보단 애초에 쾌감이 아닌 불편함을 유도하는 액션씬입니다.
아마 여기서 더 피가 난자하고 신체홰손이 있었다고 해서 짜릿함을 느꼈을 것 같진 않네요.
영화 속 폭력에 대한, 그리고 박찬욱 감독의 복도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었다고 봐요.
올드보이의 복도씬은 액션에 대한 통쾌함이, 십 년 넘게 갇혀있던 울분이 터지는 장면입니다.
반면 설국열차의 폭력은 이유가 없어요. 커티스가 앞칸으로 가려는 자신만의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죠.


7. 필요한 건은 개개인의 고민과 끝없는 생각


커티스는 엔진 앞에서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합니다.
그는 남을 위해, 주어진 상황에 치여서 행동하기만 했죠.
우리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봉준호가 담은 메시지, 주위의 평론, 사람들의 평가, 제가 쓴 이 글까지 싹 잊고 말이죠.


생각합시다. 오로지 자신만 남아서요.




=================


p.s 1

좋은 영화 두 편이 동시 개봉되었습니다.
즐기려면 더 테러를 생각하려면 설국열차를 권하고 싶네요.

누군가의 추천으로, 아니면 누가 같이 보자고 해서 이끌려 가지 마세요.
영화관으로 들어가는 모든 발걸음이 온전한 자신의 선택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느끼고 싶다면 말이죠.
강요하지 마세요. 우리가 이 영화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아직 안 본 사람들에게 너 스스로 생각해보라는 물음을 던지는 것 뿐입니다.

해석을 위해 비약시킨 부분도 있습니다.
그냥 재미로만 봐주세요.


p.s 2


인류 최고의 대인배는 남궁 민수입니다.
최후의 돗대를 넘겨줄 수 있는 인물이 또 어딨을까요. 당장 편의점서 한 갑 더 살 수 있어도 넘겨주기 싫은 게 마지막 개비인데 말이죠.

그리고 개인적으론, 괴물의 오마쥬 장면이 하나 보이더군요.
물론 이번엔 고아성이 하지만요. 뭔가 괴물을 생각하면 재미있던 부분이었습니다.


p.s 3

아이맥스나 그런거 필요 없습니다. 그냥 적당히 큰 스크린과 좋은 음향 시스템이 있는 일반 영화관에서 충분히 즐길 수 있어요.
그래도 디지털 상영관에 한 100석 이상의 크기에서 감상하는 게 좋겠죠.

이 영화를 보고 소설 합평회 하는 친구들과 한 번 토론하기로 했는데, 꽤 부딪칠 게 많아서 걱정이네요.
영화를 본 뒤 이걸 어떻게 내 소설에 접목시킬 수 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지금의 내 지식으론 한참 무리라고 느껴지네요.


이외 자잘한 평가들은 스포 없는 감상 글을 봐주세요.
하고 싶은 이야기,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직 더 많습니다. 다만 정리하고 쉽게 풀어 쓰기가 힘드네요.
아마 이 영화에 댸해 완벽히 이해하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틸다 스윈튼이 봉준호를 잡고 매 씬마다 질문을 했다는 게 이해되네요.

신고

 

파이팅 맨    친구신청

윌포드는 공산주의 독재자, 길리엄은 민주주의 대표(민중에 의해 세워진 지도자),
커티스는 길리엄에 의해 짐승에서 인간으로 바뀐 이상주의자, 냄궁민수는 전형적인
무정부주의자라고 봅니다.

윌포드는 설국열차라는 자신의 꿈을 실현시켰고, 그것이 인류에 노아의 방주가 된 이상 좋던 싫던 자의던 타의던 그 설국열차를 관리해야하는 입장인데 메이슨이 얘기하는 '균형'을 실현시키기 위해 독재를 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죠.
물론 거기엔 개인의 욕심이 덧붙여진건 부정할 수 없지만 그게 욕망은 아니라는
점에서 입체적입니다.

길리엄은 팔다리를 잘라줄정도로 헌신적이지만 동시에 설국열차라는 사회와 시스템에 대해 누구보다 냉철하게 판단했던 인물이라 윌포드와 사적으로 대화하고,
커티스가 자신의 뒤를 이을(그리고 윌포드의 뒤를 이을) 인재로 성장하는것에 기뻐하는 아버지상이었습니다.

커티스는 길리엄 덕분에 혁명의 중심에 서고, 무리를 이끄는 지도자로 성장했지만
길리엄이나 윌포드가 물었던것처럼 과연 엔진까지 가서 뭘 어떻게 하려고...에 대한것 까지는 확신이 없는 이상주의자라 불안정하고 어두운 과거에 대해 고민하는 우리네 인간군상의 대표겪.

엔딩에 대해서는, 결국 인류에게 남아있던 모든것을 담고 있던 설국열차가 전복되어 사실상 파괴되었고 마지막 남은 인류가 티미와 요나뿐인데 야생동물은 돌아다닌다.. 즉 앞으로 살아갈 자원이 없는 인류의 종말과 자연 생태계의 희귀를 암시하는 암울한 엔딩인것같습니다.

piggie raccoon    친구신청

개인적으로 마지막은 곰이 생존했단 부분에서 남궁민수의 이론이 맞았고 둘은 아담과 이브로 살아가는 걸 인류의 새로운 시작을 의미해서 희망적이었어요.
물론 해석할 여지가 다양해 쉽게 결론내긴 어려운 영화지만요. 여튼 이 영화는 감상 자체가 아닌 그 후의 토론에서 완성 시켜 나가야할 냬용이었어요. 재미있는 봉준호의, 세계를 향한 자신만의 이력서 같아 즐겁네요. 이후 이걸 통해 또 어떤 영활 만들기 기대가 큽니다.

파이팅 맨    친구신청

아담과 이브정도로 생각하면 해피엔딩이겠지만 요나 17살, 티미 5살이었나?
거기에 열차는 박살났으니 당장 식량과 주거를 비롯해서..
몇명이라도 어른 생존자가 더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혹한의 기후에 폐허가 된 세계에서 아담과 이브가 인류의 기원이 되기엔 좀 많이 힘든 시츄에이션이라..

희룰루    친구신청

북극곰 잡아먹겠죠

겟코모리아    친구신청

앤드류 (이완 브렘너) 의 팔이 얼었던 그 부분이 좀 의아했는데, 다시 보니 그 지역의 해발고도가 높았던거 같더군요. 그때 대사가 "이정도의 해발고도면 7분이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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