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젤 다방의 눈싸움 (1) / 2013.10.02
지금부터 천천히 눈을 감고 다음을 상상해보세요. 배경은 80년대 초반의 시골입니다. 시골이란 곳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면 드라마 전원일기나 영화 워낭소리 같은 걸 떠올리면 됩니다. 그렇게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시골의 이미지를 5분 동안 끌어올린 후 소설을 읽으세요. 만약 당신이 시골에 한 번이라도 가봤거나, 아니면 철들 무렵부터 텃밭에 삽질을 하고 잡초를 뽑는 일을 했었다면, 그러다 흙냄새에 질려서 도시로 도망쳐나온 사람이라면 눈 감을 필요 없습니다. 그냥 이 소설을 즐기는 일만 남았습니다.
다 했나요. 그러면 눈싸움을 시작해보죠.
시골 구석에서 찾을 수 있는 유흥거리라곤 스쿠터를 타고 레지들을 배달하는 다방 뿐이다. 엔젤 다방이라고 적힌 낡은 간판은 구년 전까지만 해도 새것 특유의 윤기를 담고 있었다. 지금은 안에 있는 등이 하나 나가서 밤이면 음산한 빛을 냈고, 출입문은 열 때마다 틀이 맞지 않아 칠판 긁는 것 같은 소리를 냈다. 다방 밖에는 노인의 주름처럼 인생의 풍파를 다 겪은 듯한 상처를 안은 스쿠터 한 대만 입간판처럼 자리를 지키고 서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낡은 분위기를 떨쳐내려는 듯 여자들의 분 냄새와 구수하게 타들어가는 커피 향을 느낄 수 있다. 당신이 도시 사람이라면 화장품 냄새는 시장 좌판에서 파는 싸구려임을, 커피는 너무 타서 연탄 같다고 느낄거다. 팬티가 보일 정도로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엉덩일 씰룩이며 쇠쟁반에 커피를 들고오는 레지를 보면 도시에 찌든 당신이라도 슬쩍 엔젤 다방에 호감이 갈거다. 하지만 레지가 당신 눈앞에 얼굴을 들이밀며 커피를 내려놓으면 서른 넘은 여자 특유의 눈주름과 늘어진 턱살을 보고 실망할 것이다. 하지만 시골에선 이정도가 딱 적당했다 시골 촌놈들은 이 모든 것에 어느 하나 불만을 갖지 않았다. 어차피 그 치들의 목적은 커피가 아니니까.
그렇다고 이곳을 단순히 몸 파는 곳이라 폄하하진 말자. 아직 도시로 떠나지 못한 시골 남정내들이 비료 냄새를 풍기며, 도시 놈들이라면 단박에 코를 막고 인상을 찌푸렸을 거다, 앉아있는 와중에 눈에 띄는 두 남녀가 있다. 최 군은 시골학교로 발령 받아 온 신임 선생님이다. 그는 기차를 타고와서 버스 좌석에 30분 넘게 엉덩일 붙이고 있다가 마지막엔 이장이 정류장까지 끌고 나온 트랙터 뒤에 앉아 여기까지 찾아왔다. 그에겐 오늘 겪은 모든 게 난생 처음이었다. 눈에 덮힌 짚더미며 영화에서나 보던 짚을 엮어 지붕에 올린 초가이며, 겨울의 개울물에 얼음을 깨고 뛰어드는 어린아이들까지 모두. 앞으로 2년간 지내게 될 집에 짐을 풀고 그는 추위를 견디지 못해 시골 한 가운데 있는 다방으로 향했다.
그러면 눈을 최 군의 뒷좌석으로 돌려보자. 거기에 앉아 있는 여자는 영숙이란 이름으로, 지난 해 겨울 딱 오늘에 도시에 취직했다며 잔치까지 벌이며 시골에서 탈출한 전적이 있다. 그녀가 잡은 직장은 흔히 말하는 공순이였다. 하지만 시골에서 벗어나는 사람이 몇 없었기에, 그리고 그녀가 시골에서는 절대 벌 수 없는 돈을 본가로 보내주리란 희망에 작년 오늘엔 돼지 두 마리와 닭 열 마리, 그리고 소고기 국 백 그릇이 소비됐다.
하지만 영숙의 생각과 달리 공장에서 일은 만만치 않았다. 힘들었던 이유로 첫째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텃새란 인간군상, 둘째로는 단순반복으로 손을 움직이면서 계속해서 쏟아지는 잠, 그리고 셋째로는 공장사장과 붙어 먹었다는 있지도 않은 소문 때문이다. 그녀는 결국 사장 부인에게 머리채를 잡혀 작업복 그대로 쫓겨나고 말았다. 친구 하나 없기에 기숙사에서 자기 짐을 하나도 챙기지 못했지만, 어차피 작년에 올라오며 가져온 건 옷가지 세 벌과 그걸 싼 보자기 한 장이 전부였다. 그녀는 한참을 공장 입구에서 울다가 해가 지자 유령처럼 떠났다. 우는 사이에 눈물과 같이 미련과 괴로움이 사라졌다.
그 와중에 한 가지 다행인 일은 영숙은 아무도 믿지 않았고, 그래서 모든 돈은 한 달에 한 번 벗을까 말까한 작업복 앞주머니에 전부 들어있었단 사실이었다. 공장에서 번 돈은 전부 집으로 송금했기에 고작해야 집까지 돌아갈 돈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희망적이었다. 하지만 기차 객실에 올라가서야 불현듯 작년에 있었던 잔치가 떠올랐다.
"어무이도 미련시럽게."
영숙은 그렇게 동네방네 떠들어 놓고는 내쫓겨 돌아가면 사람들에게 찍혀서 죄인 취급 받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미뤄놨던 잠에 빠지는 순간에서야 잠시 고민을 잊을 수 있었다. 그녀가 코 고는 소리가 맨 앞칸의 기장에게까지 들릴 정도로, 쇠로 만든 선로를 긁는 열차 바퀴 소리를 집어 삼킬 정도로 그렇게 거대했다.
다시 최 군에게 돌아가 보자. 그가 커피를 한 모금 후룩 마시고 너무 써서 쿨럭거리는 사이, 엔젤 다방 레지의 주인인 김 마담이 다가왔다. 그녀는 서른 다섯이 내일 모레인,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모레가 그녀의 생일이다, 것에 비해서 비교적 탄력적인 피부와 매끈한 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근방에서 가장 큰 가슴을 가지고 있었는데, 시골 촌뜨기들에겐 도저히 한국산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크기였다. 다방과 몸을 무기 삼아 그녀는 죽은 남편이 남긴 아홉 살 난 아들과 살면서 아무런 불편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심심하지 않아?"
김 마담이 껌을 씹으며 최 군에게 페르몬을 풍겼다. 그녀는 팔뚝살을 모아 가슴이 두드러지게 했다. 이미 최 군이 다방에 들어왔을 때부터 모든 종업원들이 그를 눈여겨봤다. 이는 최 군이 특출나게 잘 생겼다거나 키가 크다거나 해서가 아니다. 시골 특유의 호기심 때문인데, 이게 뭔지 모르는 사람은 금발에 키가 180쯤 되는 외국인을 처음 만났을 때나 첫 월급을 받았을 때의 감정을 대충 대입시키면 된다. 하지만 최 군은 다방에 들어설 때부터 느낀 불쾌감에 김 마당의 가슴 따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김 마담의 가슴은 시골 근방에서나 큰 가슴이지 서울 거리를 돌면 열에 한 둘 정돈 눈에 들어오는 사이즈였다. 괜찮습니다. 오로지 추위를 피하는 게 목적인 최 군에게 있어선 나무 장작이 난로에 타들어가며 뿜어져나오는 온기만이 중요했다. 김 마담은 거세게 껌을 씹고는, 턱관절이 바로 가슴과 연결된 것마냥 두 덩어리가 더 크게 씰룩거렸다, 서비스직의 필수인 가짜 미소를 지으며 미안하단 눈웃음을 지었다. 김 마담이 카운터로 돌아가자 자기 차례라는며 레지들이 소근거렸다. 김 마담은 그들을 째려보는 것으로 입을 다물게 했다. 그 눈빛엔, 내가 안 돼면 니들이 백날 치근덕 거려봤자란 뜻이 담겨있었다.
간단한 인물 소개는 이쯤하고 왜 다방이 트랙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시골 촌구석에 있으며, 커다란 가슴을 가진 김 마담이 하필이면 여기에 다방을 세웠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 거다. 분명 당신은 다방이란 게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번듯하게 세워져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할 거다. 이 둘은 모두 맞는 말이다. 오년 전까지만 해도.
김 마담은 서울 한복판에 있는 다방의 레지였는데, 서울엔 모든 좋은 것들만 모인다는 말처럼 거기서 김 마담은 별다를 게 없는 종업원 중 하나에 불과했다. 얼굴이 뛰어난 것도, 그렇다고 몸매가 특출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2차까지 나가서 서비스가 좋은 것도 아니었고, 개미떼라면 머릿수 맞추기 위해 걷는 녀석들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었다. 명칭도 지금의 마담이 아닌 김 레지였다. 그런 그녀에게 딱 하나 특별한 점이 있다면 가슴이 유달리 잘 출렁거린다는 것이었다. 말을 할 때마다, 웃을 때마다, 남자 위에 올라타있을 때마다 요동쳤다. 그래. 요동친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했다. 하지만 이런 특기는 다른 레지들이 가진 수많은 장점들에 비할 수 없었고, 손님들은 한두 번 정도 신기한 경험에 그녀를 찾았다가 이내 다른 레지에게로 떠났다.
그러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될, 그리고 떡두꺼비 같은 아들의 씨가 될, 결국엔 달리다 심장이 멈춰 죽어버릴 남자를 만났다. 사내는 깡마른 체구에 쉬이 땀을 흘리지도 추위를 느끼지도 않는 이상한 체질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겨울임에도 반팔에 얇은 면바지 차림으로 다방에 들어왔다. 사내의 눈길은 레지들을 빠르게 훑었는데, 아쉽게도 그날은 크리스마스 이브로 김 레지 외엔 모두 짝을 지어 앉아있었다. 사실 사내가 오 분 빨리 들어오지 않았다면 그녀도 매진될 미래가 있었다. 결국 사내에게 선택권 따윈 없었고, 그렇다고 발을 돌려 나가기엔 김 마담이 그렇게까지 맘에 안 들지도 않았다.
"사장님. 여기 앉아요. 추운데 따스한 거 하나 드시고. 생강차가 좋은데, 커피나 쌍화차도 좋고."
"뭐 그건 필요없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오늘 밤 같이 보낼 사람이 필요하오."
그건 돌려 말할 것도 없는, 2차로 향하는 직행열차를 의미했다. 요즘으로 치면 흔히 말하는 돌직구. 이런 요청은 종종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쉽게 끄덕이면 재미없지. 그리 생각한 김 레지는 다방을 둘러보라며 오늘 같은 날은 그렇게 안 해도 장사 잘 된다고 말했다. 사내는 그녀의 손목을 덥썩 잡고는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냥 외로워서 그렇습니다."
순수한 욕망을 담은 한 마디. 간절해서 귓바퀴를 간지럽게 했고, 수십 번이나 안에서 맴돌게 한 사내의 목소리. 김 레지는 거기에 함락하고 말았다. 그건 그녀가 똑같이 크리스마스 이브의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일까.
사과 깍는 걸 상상해보자. 거기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해서 각각의 스타일이 존재한다. 우선 사과를 반으로 가르고 그 반을 다시 반으로 가르고 겉을 깍아내는 방법이 하나. 또는 겉부터 둘둘 깍아내고 나서 칼로 듬성듬성 떼어내는 방법. 그리고 감자 깍는 기계로 한올 한올 벗겨내는 방법. 그리고 기타 등등. 사내와 김 레지는 사과를 깍는 모든 방법들처럼 다양한 스타일로 밤을 보냈다. 인체가 낼 수 있는 모든 체위를 경험한 것마냥 그녀는 밤새 정신이 없었다. 사내 또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내려는 것처럼, 그리고 김 레지에게 자신을 몸뚱아릴 새겨 넣으려는 것처럼 노력했다. 해가 뜰 때가 되서야 둘은 서로를 부둥켜 안고 잠들었고,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그렇게 일 년을 함께 살게 되었다. 둘은 서로 단순한 것 외엔 대화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내는 묵묵히 돈을 가져다 줬고, 김 레지도 레지 일을 그만두고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을 귀신 같이 알아내 차려놨다.
김 레지는 일년 뒤 사내가 죽는 그날이 되어서야 그의 이름, 직업, 그리고 왜 크리스마스 이브에 자신을 찾았는지에 대해 알았다. 사내는 마라톤 페이스메이커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는데, 대통령 배 전국 대회에서 신인 유망주의 페이스 메이커를 하다 그만 심장마비로 덧없이 사망하고 말았다. 김 레지는 사내에 대해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자연스러운 듯 살았기 때문에, 그의 사망 소식조차 수일이 지나서 들을 수 있었다. 여기엔 두 사람이 누구 한 사람에게 동거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도 한 몫을 했다. 사내에겐 가족도 친척도 없었고, 둘이 일년간 동거했다는 사실로 혼인한 관계나 다름 없다는 소리와 함께 김 레지는 그가 저금해둔 돈을 받을 수 있었다.
"페이수 매어꺼가 뭡니까."
유산 집행을 위해 찾아온 변호사에게 묻자, 그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누가 옆에서 뛰당기는데 잘 뛰라고 도닥여주는 일입니다. 그 예를 들면 혼자서 말하면 별로 할 말이 없는데 앞에 누가 있음 주저리주저리 떠들게 되는 거처럼요."
그 말을 듣고 김 레지는 사내가 왜 자신과 함께 살았는지 깨달았다. 그건 동질감이요, 거울을 바라보며 느끼는 연민 때문이었다. 그리고 김 레지 본인도 그래서 사내에게 정을 줬단 걸 알았다. 일년간 살며 그 커다란 가슴 안에 멍울져있던 마음이 풀렸다. 왜 사내가 말하지 않아도 내가 묻지 않아도 알고 있다는 듯 지냈는지. 순간 김 레지는 입을 부여잡았다. 우엑. 헛구역질이 나왔다. 자신의 아랫배를 다급하게 더듬더니 한 마디 꺼냈다.
"이런 젠장."
이 네 글자는 너무나도 감동적이어서 지금쯤 당신은 눈물을 흘리고 있을 거다. 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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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안 짜고 떠올는 이미지만으로 쓴 겁니다. 아직 여기서 끝난 건 아닌데,
이게 순전히 원래 쓰려던 소설 쓰기 전에 손풀기 삼아 쓴 거라서 계속 안 쓸 수도 있습니다.
뒷 이야기가 없이 김 마담, 영숙, 최 군, 이 세 명이 엔젤 다방에서 서로를 노려본다는 이미지만 있습니다.
앞으로 뭘 써야할지 모르겠는데, 사실 제가 쓰는 손풀기 소설이 다 이런 식이라서리.
고래, 고령화 가족, 나의 삼촌 브루스 리의 소설가 천명관 문체를 흉내내봤습니다.
생각나는대로 써서 오타가 있을 겁니다. 퇴고 따윈 없음.
블루투스 키보드가 말썽이네요. 종종 ㄱ 을 쳤는데 ㄱㅅ이 같이 타이핑 되기도 하고, ㄴ이 ㄴㅈ으로 되기도 하고, 쉼표를 찍었는데 + 가 같이 찍히기도 하고.
그냥 쓰고서 심심해서 올려봅니다.
엔젤 다방인 이유는 지금 있는 커피숍이 엔제리너스라서, 최 군의 모델은 내 친구, 김 마담의 이미지 모델은 루리웹에서 유명한 슴가왕(므흣), 영숙은 딱히 모델이 없고. 그렇다고 슴가왕이 서울에서 열에 한둘 볼 수 있는 사람이란 건 압니다. 그냥 이미지만 잡아왔다 보시면 돼요.
사실 최 군과 영숙이 주인공인데 김 마담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계속 썼네요.
사투리를 못한 다는 게 함정. 솔직히 저도 시골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도 함정.
읽기 힘들다는 것도 함정. (복사 붙여넣기로 글씨크기 키우고 보시면 좋습니다.)
이런 문체로 생전 처음 써본다는 것도 함정.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