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을 보러 한참 다녔던 시절, 면접관들의 모습을 평가할 때마다
'저 사람은 나에 대해 뭘 알고 질문하는 건가?' 싶을 때가 많습니다.
회사가 제대로된 인재를 뽑지 못하는 이유는 서류에 치우쳐진 입사 방식과 그로 인해 사원이 추구하는 이상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 현상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면에서 이소연 먹튀 논란은 이소연 개인보다는 그녀를 뽑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문제가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그렇듯 제 분석글은 추론이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소설 정도로 봐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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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소연, 그녀가 원했던 것은?
스펙 쌓기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누구도 가지지 못한 독특한 타이틀은 굉장히 어렵게 얻어야 합니다.
예를 들자면 이제 와서 MOS 자격증이나 토익 점수 정도는 기본이 된 상태입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준비하고 얻고 얻어놓았기 떄문이죠.
그래서 이소연 씨가 필요로 했던 건 우주 여행과 후배 우주인 양성이 아니라 거창한 타이틀이었다고 봅니다.
물론 그게 나쁘지 않아요. 세금이 많이 들어가고 기대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틀어지긴 했어도 우주인이란 타이틀 자체는 이소연 씨 개인이 노력해서 얻은 성과니까요.
문제는 이런 이소연 씨의 행보에 대해 예측하지 못하고 막연히 스펙만으로 뽑은 항우연입니다.
많은 세금이 들어가는 국가 사업에 우주에 갔다와서도 솔직히 성과는 별로 없었으며 그녀가 우주 관련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감시가 이뤄지지 않았단 겁니다.
2. 그녀가 우주 여행으로 얻은 것들.
일단 이소연 씨 먹튀 논란에 있어서 그녀가 우주인이 된 후에 받은 혜택들을 찾아봤습니다.
3년간 강연 및 출장비로 1억원 가량이 지원되었으며 그 외에도 연구소에서 따로 떨어져 미국 MBA 과정을 밟는데 있어 별다른 제지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MBA 과정 중에도 연구원이란 직함은 그대로 유지되는 유례 없는 특혜를 받았고요. 항우연에서도 MBA 과정이 우주 사업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서 보내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CF 찍은 것도 있고 찾지는 못했지만 의례 그렇듯 연구소에서 특정 연구를 진행하며 연구비도 받았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리가 가장 큰 것은 우주인이란 타이틀 자체겠죠. 무려 교과서에 실릴 정도니까요.
3. 그러면 항우연은 뭘 했느냐.
사실 항우연 입장에서 이소연은 계륵이었을 겁니다.
우선 항우연이 우주인 양성 사업을 시작하며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가장 중요시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대국민 홍보'입니다. 이는 한국우주인배출사업 보고서에 명시된 내용으로,
그러니까 260억짜리 쇼였단 거죠.
좋아요. 쇼를 한 것까진 좋습니다. 이공계와 여성들에게 희망을 주고, 우주산업에 박차를 가하게 된 계기가 된 것 분명하니까요.
문제는 '쇼'는 관객들이 떠나도 관계자들이 뒤에 남아 유지 시켜야 하는 게 쇼입니다.
그런 부분에서 우리나라 정부는 정말로 쇼맨쉽이 부족합니다.
이소연 씨가 먹튀 논란에 발표한 심경고백엔 '공대생으로 우주에서 실험을 할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에서 지원했었다.', '선임연구원이 되어서 정부정책과 예산 결정 과정 등을 알고 현 상황을 이해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 정부에서 우주인 양성 후 개인에게 주어져야 할 '실무에 대한 교육'이 부족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니까 연구원이면 예산 측정 방식과 연구 통과 과정, 연구 채택 후 진행해야 하는 방법 등을 전혀 교육하지 않고
덜컥 선임연구원에 앉혔단 거죠.
어떻게 보면 이제 막 대학원에 들어가 박사 과정을 밟는 수준인 사람에게 해외 학술지에 발표될 논문의 주저자로 올려놓은 거라고 봐야죠.
4. 이상론자가 현실의 벽에 부딪치면 절망하다 돌아서는 법.
이소연 씨 개인의 선택에 있어서 지금은 먹튀 논란이 있어도 도의적 책임은 전혀 없습니다.
그녀는 그녀 개인을 위해 우주인 선발 쑈에 참가했고 개인의 능력으로 우주인이 되었으며 그 후 개인이 절망했다가
개인적인 삶을 위해 진로를 수정했단 거죠. 그에 대해서는 누구나 그런 선택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에 대한 책임은 모든 걸 방임하고 지원하지 않고, 애초에 그녀 개인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아보지 않고 우주인으로 선발한 항우연에 있죠.
항우연이 이소연 씨가 개인적으로 희생해서 모든 걸 포기하고 우주인이라는 사명감을 갖고 희생할거라 생각했다면
순진했다는 말 밖에 못 하겠네요.
사실 이건 윗사람들의 문제라고 봅니다.
우리가 세금 들여 우주인이란 타이틀을 줬으니 응당 벅차서 눈물 흘리며 굽신거리겠지.
흔히 희생정신을 강요하는 꼰대들의 생각이죠.
아마 지금 항우연 관계자들은, 젊은 애가 패기도 없고 노력도 없고 눈꼽만큼도 손해 안볼라고 하네, 하고 짜증내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런 사람을 뽑은 건 바로 항우연 자체란 걸 망각하고 있는거 같아요.
자기 손으로 퍼냈으면서 똥 묻었다고 버럭대는 꼴이지 뭡니까.
5. 무중력 상태로 먼지가 된 돈.
애초 정부에선 왜 이런 대국민 쑈를 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260억원이나 들여서 그들이 얻을 이득이 뭐가 있었을까요.
얼마나 돈이 됐기에 260억에 대한 후속 조치가 없었던 걸까요.
많은 사람들이 돈을 우주에 뿌렸다고 하지만, 전 그 대부분이 이미 다른 주머니로 들어갔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이소연 개인을 우주인으로 만드는 사업보다는 우주인을 만드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연구비 책정 과정과 업체 선별 과정 등 돈 그 자체에 촛점을 둬야 한다고 봅니다.
이 무슨 연말 보도블럭 뒤업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과연 그 많던 돈은 어디로 갔을까요. 정말로 무중력 우주 속에서 260억이 온전히 부유하고 있을까요?
6. 그러니까 너네는 사람보는 눈이 없어.
많이 돌아갔지만, 결국 정부는 희생할 사람을 잘 못 골랐단 겁니다.
거창했던 우주인 선발 과정 속엔 항우연의 바람대로 개인을 희생하고 우주 산업에 혼신을 던질 인재가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슈에만 집중했고, 그걸 위해 인재는 멀찍이 밀어두고 아무나 좋으니 일단 뽑고 보자는 마인드로 임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영웅이 필요하면 영웅을 알아볼 눈부터 길러야겠죠.
최근 여러 국가적 문제들을 보면 통찰력 이전에 진짜 눈 자체는 있는지 궁금합니다.
더해서 아쉽게 탈락했던 고산 씨와 이상과 현실에서 방황했을 이소연 씨에게, 기왕 이렇게 된 거 잘 되기라도 바랍니다, 심심한 위로를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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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줄 요약
1. 애초 우주인이란 거 자체가 항우연이 기획한 대국민 쑈.
2. 근데 쑈를 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하는데 쑈가 끝나니 완전 손 놓았음.
3. 그래서 사람 보는 눈을 잃어버린 정부에게 부업용으로 쓰는 곰돌이 눈깔이라도 달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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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260억이 아깝지만 우린 더 큰 돈으로 땅 팠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세금이 낭비되어야 정신 차릴까요.
애초 정신이란 게 있는건지.
p.s 2
사회적 문제는 연달이 터지는데 여전히 정부는 희생만을 강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근데 사퇴했던 사람도 돌아오는 마당에 이젠 어지간히 총대 맬 사람도 없는 모양이네요.
기왕 터진 일 260억에 대한 철저한 국정감사가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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