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사람은 자기 기준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니 중산층이라도 서민층이라고 생각하게 되죠.
저도 그렇고 여태 사귀었단 여자들도 그렇고 항상 집안엔 꽤 큰 빚이 있고, 항상 데이트 할 떄마다 빈곤하기 그지 없게 지내고
일년에 두 세 번 근사한 레스토랑이라도 가려고 몰래 돈을 모아야 했던 제겐 집이나 자동차 정도의 생활 대출 정도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아버지가 사업 흥망에 따라 나름 위와 아래를 다 겪어 봤거든요.
그러다 오늘 철없고 세상 물정 모르는 스물 둘과 이야기하다가 이 친구가 자기 집은 못 산다고 이야기해서 대답해줬죠.
"부모님이 학비 다 대주고 아파트 대출금도 다 갚아서 빚이 하나도 없으면서 수도권에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으면 그건 중산층이야. 그것도 꽤 윗쪽의 중산층이지. 너 잘 사는 거야."
그런데 이 친구 왈, 서울에 집 있고 부모님이 생활비 다 대주고 머리가 돌이라도 어디에 가게 차려서 먹고 살 수 있는 정도가 잘 사는 거죠.
"그건 잘 사는 정도가 아니라 재벌이지."
"전 맨날 알바해서 용돈 벌고 그러는데요."
"그러면 너 결혼하게 된다고 쳐봐. 그러면 전세 잡으려해도 대출 받고 그래야 하는데 사람 대다수가 자기 돈만으론 집 못 구해. 원룸도 보증금 대출 받고 그러는데 너 정도면 잘 사는 거야."
여기서 날라오는 몸쪽 꽉찬 돌직구.
"집 사는데 대출 왜 받아요. 그냥 돈 모아서 사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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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ㅅㅂ 할 말을 잃었습니다.
여튼 일반적인 중산층의 생활력과 자금 현황, 신혼부부가 맞벌이해서 버는 정도 등의 사회학적 경제학적 설명을 해주고 나서야
"요즘 다 그래요?"
란 놀라운 반응을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내가 스물 둘일 때 이랬었나보다.' 싶기도 하고,
이 세상물정 모르는 아가씨가 졸업반인데 어디서 뭘 해먹고 사려나 안쓰럽게 느껴졌네요.
대화를 하면 할수록 백지인게 드러나서,
'넌 어디가서 맘에 드는 남자 만나면 되도록 말을 많이 하지 말아라.'
뼈 아픈 조언도 해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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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추가해보는 에피소드들.
1. 항상 현금만 들고 다니며 쓴다고 하길래 현금영수증은 하냐고 물었더니
"그거 사업하는 사람들만 하는 거잖아요." 라길래
제가 받는 쥐꼬리만한 월급으로도 연말 정산 때 신고 하나도 안 하면 얼마다 뜯기는지 알려주고
반대로 연말정산 때 실적만으로 제가 얼마나 돌려받는지 알려줬습니다.
그랬더니 현금영수증 등록 어떻게 하냐고 묻길래 그냥 카드 만들라고 했음.
2. 취업하면 신용카드부터 만들겠다고 하길래 가계부는 써봤냐고 물었더니 써본 적 없다더군요.
그래서 넌 알바해서 번 돈은 모으냐고 물었더니 그 달에 번 돈은 그 달에 다 나간다고.
그럼 체크카드나 만들라고 쓸만한 체크카드들을 알려줬습니다.
그리고 계산기 두드리며 생활패턴을 파악해서 신용카드 만들었을 때 어떻게 패가망신할지 예측 결과도 내주고요.
3. 연애를 하긴 했는데 겉햝기로만 해서 남자에 대해 깊이 모름.
자기 왈, 고백하기도 하고 받기도 하면서 세 명 정도 만났는데 셋 다 100일 전에 깨졌고 모텔 입성도 한 적이 없음.
그래서, 잠깐 속으로 이 친구와 사귀었던 남자들에게 묵념하고, 결혼관에 물었더니 결혼 생각이 없다고.
하기사 연애도 잘 못하는데 너무 건너 뛰었나 싶어서 이상형을 물었더니 또 없다고.
음악, 음식, 영화, TV 프로그램 물어봐도 좋아하는게 하나도 없음.
그래서 깊게, 고작 1분 정도였지만, 고민해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돌직구로 조언해줌.
"넌 사랑하긴 글렀다."
왜 그러냐고 묻길래, 주관이 없는 사람을 누가 깊게 좋아하겠냐고 답해줌.
그리고 일단 차근차근 네가 좋고 싫은게 뭔지 알아보고 취미부터 만들라고 시킴.
중요한 건 시켰단거네요;;;;;
참고로 좋아하는 연예인도 없음.
답답함이 넘어서 노답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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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무서운 건 이 친구가 제게 그린라이트 뜰법한 짓들을 하는데
혹여나 고백해올까봐 무섭네요. 남이니까 귀찮아도 후배 대하듯 이야기하는건데 내꺼되면 답답해서 못 살듯.
왠지 연인 관계가 아니라 제자와 스승 같거나 주종관계가 될 거 같아서요.
결정적으로, 아마 여자 이야기라서 이쁘냔 댓글이 엄청 달릴 걸 예상하고 선수치면, 안 예쁨.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