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과학적 경험에 치중해서 감상을 올리시는 와중에
저는 진지하게 왜 이리 등장인물들이 '사랑' 타령을 해대는지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
1. 모든 인물들의 행동양식은 '사랑'으로 이뤄진다.
-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행동 기반은 사랑입니다. 사랑엔 부정, 애정, 이타심, 호기심, 그리고 이기심 등 여러 감정이 포함되어 있어요.
부정을 대표하는 건 주인공 '쿠퍼'와 '브랜든 박사(할배)'죠. 쿠퍼가 매 순간 어떻게든 플랜A를 성공시키고 지구로 귀한하려는 모습도 그렇고 멸망하는 지구에서 딸이라도 새로운 행성을 찾게 보내는 브랜든 박사도 부정이고요.
거기에 브랜든(미녀)은 인류의 구원보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겠다는 애정을 앞세우기도 했고요,
희생하려는 이타심(파도에 휩쓸리는 도일 박사, 자신을 희생하는 타스) / 블랙홀에 대한 애정을 보이고 호기심을 갖는 로밀리 /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심.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거슬리는 부분이 사실은 이 사랑타령이었어요.
하드SF 영화에서 갑자기 사랑을 찾는 이유가 뭘까. 이상하다고 생각만 할게 아니라 왜 감독이 이걸 꼭 넣어야했는지 고민해봤습니다.
2. 멸망하는 지구는 사랑을 잃은 현재의 은유적 표현
- 전 놀란 감독이 멸망을 앞둔 지구라는 설정을 만든건, 사랑이 없어지는 현대 사회를 은유적으로 표현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인류는 웜홀을 통과해서 점차 가지고 있었지만 뼛속까지 느끼지 못한 사랑이란 감정을 알게되고요.
이전에서 인물들은 사랑이란 감정을 가지고 표현해왔어요. 하지만 진정으로 사랑을 느끼고, 그리고 사랑이란 감정 앞에서 주체하지 못하는 어찌보면 비이성적인 모습을 드러내 시점이 우주선이 웜홀을 통과한 후부터입니다. 쿠퍼는 시간을 잃지 않고 연료를 아끼려고 무리하게 되고
웜홀을 통과하고서 첫 행성에서 죽을 뻔한 브랜든은 인류의 재건보다 사랑하는 이를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다는 감정에 쿠퍼에 대립하게 되고요.
만 박사 또한 혼자 추운 행성에서 홀로 살아남은 뒤로 자기 자신을 향한 생존본능, 살고자 하는 이기심에 눈을 뜨고 거짓 신호를 보냈고요.
사랑은 웜홀 건너편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인류는 웜홀 건너편에서 사랑이란 감정을 스스로 되찾습니다.
3. 블랙홀의 특이점 안에서 머피의 책장으로.
- 쿠퍼는 머피 방의 책장으로 안내한게 먼 미래의 인류라고 생각합니다. 타스는 그럴리가 없다고 하고요.
이상 뜬금없어 보이는 이 장면은,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개인적으론 특이점 안에서 쿠퍼의 사랑이 극대화되어 중력을 통해 시공간을 뛰어넘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한 복선이 하나 있어요. 만 박사가 쿠퍼를 죽이려고 할 때, 죽기 직전에 사랑하는 이를 만날 수 있다는 식의 이야길 합니다. 여기서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회상장면이 나오죠. 쿠퍼는 죽음을 앞두고 회상을 통해 과거로 갑니다.
(그 이전까지는 쿠퍼의 시간대를 기준으로 지구와 쿠퍼를 번갈아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쿠퍼가 모든 시간 흐름이 기준이 되었죠. 그러니 카메라의 위치만 바뀔 뿐 회상이란 개념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쿠퍼가 두 번째 죽음, 블랙홀의 특이점으로 들어가는 순간 이번엔 회상이 아닌 무한대의 차원 속 머피의 책장으로 갑니다. 하지만 이 머피의 책장으로 가는 방아쇠는 죽음을 앞둔 쿠퍼의 사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즉, 놀란 감독은 최종적으로 사랑이 특이점이 될 수 있고 이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무언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쿠퍼는 자신의 힘으로 이뤄낸 일을 다른 누군가가 도와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죠. 사실 이걸 쿠퍼 스스로 깨닫는 것도 힘들고 그리고 영화 자체적으로 '쿠퍼의 사랑이 머피의 책장으로 가게 만들었다'라고 말해버리면 너무 직접적이라 더 재미 없었을 거에요.
4. 블랙홀에서 다시 태양계로
- 특이점이 붕괴하면서 쿠퍼는 뜬금없이 토성 근처로 갑니다. 이미 블랙홀에서 시간을 뺏긴 후이고 딸 머피는 죽음을 앞두고 있죠. 여기서 의문인게 블랙홀 특이점에 가까워질수록 시간이 무한대로 빨리 지나갈텐데 시간이 너무 적게 흘러갔어요. 그리고 타이밍 좋게 머피 쿠퍼 콜로니를 만나게 되고요.
이는 쿠퍼의 염원이 딸을 만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와 시간으로 돌아가게 만든거죠. 그런데 왜 딸이 죽는 시점이냐. 이건 그 사이 쿠퍼에겐 또다른 사랑의 감정(이타심)이 새겨졌고 브랜든을 다시 만날 수 있으면서 딸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최적의 장소와 시간을 골라 특이점 바깥으로 나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쿠퍼는 딸과의 약속을 지키고 브랜든 박사를 만나기 위해 우주선을 타고 나가게 되고요. 우주선을 타고 토성 근처의 웜홀을 통과한다면 아마 쿠퍼는 안정적인 대기가 있는 (마지막에 브랜든이 헬맷을 벗었으니까요) 땅에 도착해 방금, 혹은 몇시간, 며칠, 몇개월, 아마 길면 한 1~2년 정도 지난 브랜든을 만날 수 있겠죠.
(브랜든도 블랙홀 바로 근처를 지났으니 그 몇 분 동안에 지구는 머피가 늙어 죽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고 설명될 수 있겠죠)
영화가 쿠퍼를 기준으로 시간이 흐른다는 공식이 맞다면 (죽음을 앞둔 회상 제외) 아마 쿠퍼가 우주선을 탄 시점이 브랜든이 사랑하는 이를 땅에 묻는 시점이었을거에요. 그렇다면 웜훨을 통과해 사랑이란 감정을 찾은 두 사람이 다시 만난다는 결말이 되겠네요.
뭐 영화가 인셉션 때처럼 열린 결말이기에 각자가 생각하는 결말이 정답이겠죠.
5. 다른 두 가지의 대립, 그리고 융합
- 사실 인터스텔라는 매우 과학적인 영화지만 그 접근방식은 비과학을 대표하는 '감성'이란 존재를 필요로 합니다. 어찌보면 과학이란 포장지로 둘러져 있지만 그 안엔 인문학이란 이야길 하고 있는 영화인거죠.
그게 쉽지 않은 일이고 그리고 인터스텔라라는 영화 또한 완벽하게 해냈다고 보기는 힘든 작품입니다.
다만 그런 과학과 인문학의 결합에 가장 노력하고 여태까지 중 가장 성공적이며, 이후 더 나은 작품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전 벌써부터 놀란 감독의 차기작이 기다려지네요.
=====================
P.S
톰보이 같은 숏커트가 이렇게 매력적일 줄 몰랐네요.
숏커트 매력폭발!
P.S 2
중력이 시공간을 뛰어넘는다는 설정을 보자마자 주위 사람들은 '왜?'라며 휘등그레하더군요.
옆좌석의 여자 둘은 '근데 어떻게 중력이 시공간을 넘을 수 있는거야?"라고 친구에게 묻기도 했고요.
죠죠 7부 스틸 볼 런을 읽은 제겐 이미 알고 있던 지식이라 좀 더 빨리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인터스텔라를 보고 새삼 죠죠 시리즈가 대단한 작품이란 걸 알게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