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초지구걸이라는 이덕일빠가 설쳐댄 관계로 이러한 글을 써보게 되었네요
초지구걸
(limit222) XaeXae하다//
아까 얘기했잖아...몇번을 얘기해야 하는거야..
단지 유물이 있으니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다고 한다면, 중국내에 있는 로마의 유물을 보고 중국이 로마의 식민지였다고 봐야 한다고.
유물가지고 따질려면 유물의 구체적인 증거를 가지고 대야할거아냐?
아까 물어본 점제현신사비 만이라도 설명을 해 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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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유물만 있어도 어느정도 증명이 되지만
여기에 유물 뿐만 아니라 유적 등도 있고 사료와도 일치하기 때문에 확실히 한사군은 여기에 있는게 맞다고 하겠다.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음을 말해주는 유물 및 유적 그리고 사료
:http://orumi.egloos.com/2976992
-유물 및 유적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1001&docId=50018864
에서의 이 구절
"이 곳은 지금 고구려의 수도인데, 사신이 말하기를, 성은 패수가에 있고 이 강은 서쪽으로 흘러 옛날 낙랑군 조선현, 즉 낙랑군 치소를 지난다고 한다. (其地今高句麗國治. 余訪蕃使言, 城在浿水之陽, 其水西流逕, 故樂浪郡朝鮮縣 卽 樂浪群治)"
-사료
초지구걸
(limit222)
일단, 점제현신사비에 대해 말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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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나 이덕일같은 자칭 재야사학에선 이 점제현신사비가 조작되었다고 하는데
그 근거로 비석에서 시멘트 등이 발견되었고 돌도 그 주변의 것과 다르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문제는 북한은 이러한 검증들에 대해 제대로 말하지 않았다.
http://www.hani.co.kr/arti/SERIES/215/359537.html
고고학에서 가장 중요한 '측정은 몇 번 했는가? 시료는 공평하게 채집되었는가? 공인된 보정법을 사용하였는가?'라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북한은 이전에 단군릉 발굴 쪽에서 한번 크게 사기를 친 적이 있는지라(고구려 귀족의 무덤을 단군의 무덤이라고 하면서 거기에 발생하는 의문점에 대해서는 단 하나도 제시하지 못했다)
이는 주체사상 이후 북한의 역사 인식이 기존의 역사관(마르크스 유물론)에서 주체사관으로 변화함에 따라 한민족 등을 중시하는 등 국수주의적인 성향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낙랑 관련 연구에서도 이를 감추려고만 하는 것 같다.)
이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덕일빠인 초지구걸은...........................
XaeXae하다//
말 잘했다~
니 말대로라면, 친일사학자인 이병도의 말도 못믿는거야~~
그러니깐 특정인물의 주장을 근거로 접근하는게 아닌 1차 사료들을 가지고 접근하는수밖에 없다고.
그래 사료량이 극히 적지...2000년 훨씬전이니깐..
근데 어째서 이병도의 스승인 쓰다소우키치만은 '신의손'이라고 불릴만큼 혼자서 한사군 유물을 그것도 혼자서 찾아낼수 있는걸까?
2000년 넘에 어느누구에게도 발견된적없는 점제현신사비는 어째서 어느날 문득 일본놈들에의해 발견된걸까? 그 발견된 점제현신사비는 어째서 시멘트가 묻혀잇는걸가? 그 점제현신사비의 돌성분은 왜 근처의 돌들고 판이하게 다른걸가??
설명좀 해다오..
니가 이것에 대해 객관적으로 설명한다면 난 너를 믿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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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말대로라면 백제 멸망 이후 발견되지 않다가 아주 우연히 발견된 무령왕릉과 다보탑 내의 유물 등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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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구 니가 아까 말한 목간(나무판)기사는 끝까지 읽어봐. 출처가 어딘지도 명확하지 않은 기사가지고 와서 '사실'이라도 되는냥 우기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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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04130136
http://orumi.egloos.com/3111356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02599.html
2005년 북한지역에서 발견된 낙랑의 목간
한국목간학회에서 10명의 학자들을 동원하여 판독했다는 내용도 있음
자기말에 맞지 않으면 출처가 이상한건가?
정말 편한 논리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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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고 아까 물어본 목관(나무관)에 대해서 해명해보시지.
니들은 한사군=한반도설 이라고 주장하는 핵심근거중 하나인 목관이 한사군의 하나인 낙랑군이 설치되기 수백년전것이라는것을 어떻게 해명할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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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1970년대의 발굴로 드러난(이시기 정백동 13~95호분이 나왔다고 합니다 - 낙랑군 연구, 오영찬 지음,사계절) 정백동 37호 무덤 7곽에 지절4년(地節4年)이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여기서 지절은 중국 전한 시기 선제의 연호라고 하네요
즉 지절 4년은 기원전 66년
http://ko.wikipedia.org/wiki/%EC%A7%80%EC%A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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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구걸
(limit222) XaeXae하다//
봉니 얘기 잘했다~
봉니가 제각각 크기가다른건 어찌 설명할래?
임둔태수장 봉니는 어케 설명할래?
봉니에 쓰인 관직명들이 한사군 시절에는 안쓰던 관적명인걸 어지 설명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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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발굴된 봉니들이 제각각이고 일부는 위조품일 가능성도 충분하다
하지만 전부 다 위조라고 할 수는 없다.(물론 그렇게 만들 수도 없고)
봉니에 대해서
http://orumi.egloos.com/3003421
그리고 봉니 중에서도 평양에서 발견된 낙랑태윤장이라는 것은 왕망 시기에 태수란 관직을 태윤이라고 한 것으로
이것은 낙랑이 평양이라는 빼도박도 못할 증거라고 할 수 있다.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1001&docId=56931489&qb=7KCQ7KCc7ZiE7Iug7IKs67mE&enc=utf8§ion=kin&rank=1&sort=0&spq=0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1001&docId=56931489&qb=7KCQ7KCc7ZiE7Iug7IKs67mE&enc=utf8§ion=kin&rank=1&sort=0&spq=0
왕망시기 관직변화에 대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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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군의 한반도 존재설의 근거로 정백동 1호분을 들 수 있다. 1958년 평양시 낙랑규욕 정백동 건설 공사 중 발견된 유적으로, 세형동검 등을 포함한 다수의 청동기와 철기, '부조예군'이라고 쓰여진 은인(도장)이 출토되었다.
이는 황주 천주리유적, 금석리유적,흑교리유적,청룡리유적과 강서 태성리유적, 은율 운성리유적 등과 유사성을 띈다.
여기서 피장자의 성격을 보여주는 유물인 '부조예군'은인은 한나라의 25개 현 중 하나인 부조현의 은인으로, 기원전 75년 동부도위에 편입한 이후 기원전 30년에 한의 지배에서 벗어난 무덤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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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낙랑군 연구, 오영찬
http://orumi.egloos.com/2976992 초록불의 잡학다식
http://xakyntos.egloos.com/443566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1001&docId=56931489&qb=7KCQ7KCc7ZiE7Iug7IKs67mE&enc=utf8§ion=kin&rank=1&sort=0&spq=0
낙랑군 연구가 일제의 의도로 인해 이루어진것은 사실입니다(일제가 타율성론을 부각시키기 위해 이용한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시기에 춡토된 유물 등을 전부 무시하기는 힘들죠
또한 해방 이후 북한에서 출토된 것도 있어서(대표적으로 위에서 언급한 목간, 정백동 37호 무덤 등..........)
피해를 입은 글쓴이님께 죄송하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어디 고칠 곳이 있다면 바로 쪽지를 보내주시거나 답글 달아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