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없이 모두 볼수 있습니다. (19금 제외)

흑인농부
접속 : 4982   Lv. 63

Category

Profile

Counter

  • 오늘 : 34 명
  • 전체 : 396944 명
  • Mypi Ver. 0.3.1 β
[볼만한거] 1985년 플레이보이의 스티브 잡스 인터뷰 기사 (6) 2012/08/16 PM 02:35
STEVEN JOBS: PLAYBOY INTERVIEW

AUTHOR DAVID SHEFF
Editors Note: This article was originally published in the February 1985 issue of Playboy magazine.

당장 모험자본가 세대 정신을 대표하는 자를 한 명 뽑으라면, 애플 컴퓨터 주식회사의 카리스마를 가진 공동 창립자이자 사장인 스티븐 잡스를 뽑을 수 있다. 그는 캘리포니아 Los Altos의 한 차고에서 시작한 사업을 10억 달러 규모의 회사로 일궈냈고, 창립 5년만에 포천 500대 기업에 올라서게 만들어냈다. 역사상 그 어느 기업보다도 빠른 속도다. 게다가 제일 당혹스러운 사실이 한 가지 있다. 그의 나이가 아직 29세밖에 안 됐다는 것이다.

애플은 미국의 가정과 사업장에 개인용 컴퓨터를 소개하였다. 1976년 애플 창립 이전의 컴퓨터에 대한 이미지는 SF 영화 속에 나오는 컴퓨터의 이미지였다. 거대한 기업과 정부 기관 안 쪽에 음산하게 숨어 있는 크고, 조용한 메인프레임이 삐빅거리고 반짝거리는, 그런 이미지 말이다. 그러나 트랜지스터, 그리고 마이크로프로세서 칩이 등장하면서 컴퓨터 기술의 소형화가 가능해졌고, 개개인도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70년대 중반 컴퓨터 조립킷이 나타났고, 여러 취미가들의 흥미를 끌었는데, 가격은 375달러 정도였다.

샌프란시스코 남쪽에는 이미 전자회사와 젊은 신생기업들이 밀집되어 있는 마을에서, 장난과 전자기기를 좋아하는 두 명의 친구가 자기들의 소형 컴퓨터를 만들어내기 위해 회사를 만들어낸다. 당시 21세였던 잡스는 기계공의 입양아였고, Reed College를 자퇴한 뒤 Atari에서 비디오 게임을 디자인했었다. 26세인 스티븐 워즈니악은 실리콘밸리라 알려진 곳에서 제일 큰 회사 중 하나인 휼렛팩커드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고 있었다. 남는 시간에 이들은 임시변통의 컴퓨터(실제로 서킷 보드에 불과했다)를 하나 고안하였고, 엉뚱하게도 이 컴퓨터를 애플 I이라 불렀다. 별다른 기능은 없었으나 50명의 주문을 받았을 때 잡스는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성장 잠재성을 알아보았다.

워즈니악의 관심은 주로 기술 부문이었다. 그러나 잡스는 일반인들을 위한 컴퓨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둘은 합세하여 키보드와 메모리(정보 저장을 위함이다)를 애플 I에 붙였고, 워즈니악은 디스크 드라이브(정보를 지속적으로 저장하고 읽어들이는 장치), 비디오 터미널을 추가시켰다. 잡스는 효율적인 전력장치와 우아한 케이스를 만들기 위해 전문가를 고용하였고, 드디어 애플 II가 태어났다. 그와 함께 개인용 컴퓨터 사업도 탄생하였다.

애플의 성장세는 정말 놀랍다. 애플이 잡스의 차고(실리콘 밸리 버전의 링컨 오두막집이랄 수 있다)에서 첫 해에 2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린 이후, 1984년 14억 달러의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창립자들은 백만장자인 동시에 국민 영웅이 되었다. 대학으로 돌아가서 음악 축제를 후원하기 위해 1979년에 사실상 애플에서 은퇴했던 워즈니악은 상대적으로 애플 II 이후 기여한 것이 거의 없었으며, 애플을 계속 운영하여 미국 내 가정과 학교 컴퓨터의 70%에 애플 마크를 붙이고 경영권을 지켜내었으며, 400억 달러 규모의 초거대 기업 IBM을 개인용 컴퓨터 사업으로 끌어들이게 만든 장본인은 잡스였다.

포브스 지에서 미국 부자 순위에 들어가는 인물들 중 제일 젊은이는 추정 재산 4억 5천만 달러(대부분은 애플 주식이다)인 잡스다. (이 말도 해야겠다. 포브스지의 100대 부자들 중에, 자기 스스로 재산을 번 인물은 단 7명 뿐이었으며, 잡스도 이 중 하나에 들어간다.) 1983년의 불경기때문에 애플 주가가 하락하여, 최근 그의 재산은 장부상 거의 절반이 줄어들었다. 그래서 그의 총재산가치는 현재 2억 달러 정도이다.

하지만 잡스 얘기를 들어보면 돈 얘기는 이야기의 절반도 못 된다. 특히나 그는 돈을 많이 쓰지 않는다. (친구들과 거의 어울리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는 개인용 컴퓨터, 특히 애플이 만드는 개인용 컴퓨터를 홍보하는 임무만 수행중이다. 그는 자기 물건 팔 시점을 놓치지 않는 상인이기도 하다.그는 컴퓨터가 나중에는 전화기, 혹은 내연기관처럼 혁명적이면서, 주방기기만큼이나 흔해지리라 묘사한다. 사실만 보더라도 애플 컴퓨터는 2백만 대 이상 팔렸다. 게다가 전국 교실이나 거실, 농장, 미사일 추적 센터, 사무실에서 쓰이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도 1만 6천여 종이 넘는다.

컴퓨터용 대중 시장을 만들면서 애플은 경쟁 환경 또한 조성하였다. 애플이 1977년부터 1982년 사이에 지배한 시장에서 경쟁을 하기 시작한 것인데, 아직까지는 IBM PC만큼 성공한 제품이 없다. IBM PC는 시장에 나오자마자 28%의 점유율을 재빠르게 차지하여 새로운 표준이 되었다. 애플은 시장점유율이 줄면서 리사와 애플 III를 선보였고 열광적인 반응을 받지 못하였다. 그래서 1983년 중반, 분석가들은 애플이 생존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크게 우려하기 시작하였다.

애플 내부의 권력투쟁도 있다. 잡스는 완전히 새로운 컴퓨터를 만드는 부를 통솔하는데, 잡스는 이 새로운 컴퓨터가 애플 최고의, 그리고 최후의 희망이라고 본다. 이 새로운 컴퓨터가 실패한다면? 잡스의 말이다. "IBM만 남게 될 겁니다. 그리고는 개인용 컴퓨터 산업을 파괴시키겠죠." 그리고 3년 후, 매킨토시가 2천만 달러 짜리 광고 캠페인과 함께 등장하였다. "나머지 우리들"을 위한 컴퓨터로 말이다. 매킨토시는 사용하기 쉬운 컴퓨터로 거대한 족적을 남겼다. 종이같은 하얀 화면에, 작은 그림으로 프로그램이 나타나 있고, "마우스(버튼이 있는 자그마한 롤링박스)"를 통해 화면상의 그림을 선택한다. 실로 매킨토시는 제일 무섭지 않은 컴퓨터이다. 장난감으로 사기에 너무 비싸며, 본격적인 사무용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도 받고 있으나, 애플은 한 달 4만 대의 매킨토시를 제조해왔고, 올해 두 배로 늘릴 예정이다.

누구에게 말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잡스는 세상을 더 좋게 만든 선구자, 혹은 마케팅 기술만 요란하여 성공을 거둔 기회주의자로 나뉜다. 청바지와 스니커즈를 신고 60년대의 이상주의와 80년대의 사무실을 결합했다 자랑스러워 하는 회사를 운영하는 잡스는 사랑받는 존재인 동시에, 공포의 존재이기도 하다. 한 엔지니어의 말이다. "제가 하루 20시간 일하는 이유요? 잡스입니다." The Little Kingdom의 저자 마이클 모리츠(Michael Moritz)는 잡스의 변덕(하루는 칭찬하고, 다른 하루는 비난)이 매킨토시 팀을 쪼갤 뻔 했었다고 전한다. 잡스는 또한 펩시콜라 사장이었던 존 스컬리에게 다가가, 이런 제안을 하면서 애플을 맡아달라 요청하기도 하였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데, 여기서 애들한테 팔아먹을 설탕물이나 파시겠소?" 스컬리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컴퓨터 혁명의 젊은(잡스는 다음달 서른 살이 된다) 아버지로서, 그의 삶과 기술을 돌아보기 위해 본지가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셰프(David Sheff)를 실리콘 밸리로 보냈다. 그의 기사이다.

"필자는 항상 옷을 과장되게 입는다. 그런데 애플이 참 캐쥬얼하게 입는다는 말을 들었다. 10억 달러 규모의 기업 우두머리를 인터뷰하기에 처음에는 넥타이를 맸다.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처음 잡스를 만날 때, 그는 플란넬 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별로 필자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하지만 애플의 새 사장, 존 스컬리를 만나자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애플 사무실은 보통의 사무실과는 상당히 다르다. 비디오 게임이 도처에 많고, 탁구 테이블이 놓여 있으며, 스피커는 The Rolling Stones에서부터 Windham Hill 재즈까지 음악이 흘러 나온다. 회의실은 다빈치와 피카소라는 이름이 붙어 있고, 간식실에는 냉장고가 있는데, 여기에 신선한 당근과 사과, 오렌지 주스가 들어 있다. (맥 팀은 한 해에 신선한 주스로만 10만 달러를 지출한다.)"

"잡스와 길게 얘기를 나눈 것은 일과 함께, Aspen과 Sonoma의 헬스 스파에서 보낸 휴가(그 해에 딱 두 번이었다)였다. 애플 월드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막을 방도는 없었다. 그는 IBM과의 전쟁에 대해 근엄하게 말하되, '단정하죠!'나 '미칠정도로 훌륭합니다!'와 같은 열정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뉴욕시 유명인사들이 모인 한 아이의 생일파티에서 잡스를 만났을 때 인터뷰는 끝났다. 저녁이 되자 잡스는 9회 생일을 맞은 그 아이에게 캘리포니아 선물을 하나 주었다. 매킨토시 컴퓨터였다. 잡스는 그 아이에게 매킨토시의 그래픽 프로그램 안에서 어떻게 스케치를 하는지 보여주었다. 그러자 두 명의 남자가 잡스의 어깨너머로 그 광경을 쳐다 보았다. 한 남자가 흠, 하고 말했다. 앤디 워홀(Andy Warhol)이었다. '이게 뭐지? 키스! 이거 좀 봐. 정말 놀라워!' 옆의 남자는 그라피티 예술가인 키스 해링(Keith Harring)이었다. 워홀과 해링은 맥을 쳐다 보았다. 워홀은 이내, 앉아서 마우스를 만졌다. 그의 외침이 들렸다. '맙소사! 내가 원을 그렸어!'"

"하지만 파티 이후가 더 인상적이었다. 손님들이 나간 이후에도 잡스는 아이와 함께 있었다. 맥의 요점을 알려주면서 말이다. 나중에 잡스에게 물어보았다. 두 명의 유명 예술가와 있을 때보다도 소년과 함께 있을 때가 더 행복해 보였다고 말이다. 그가 답변을 미리 준비한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이 든 사람들은 앉아서 이게 뭐냐고 물어 봅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이렇게 물어 봤죠. '이걸로 제가 뭘 할 수 있죠?'"





PLAYBOY: 1984년은 잘 지나갔습니다. 믿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컴퓨터는 세상을 탈취하지 않았죠. 컴퓨터의 확산에 공을 세운, 혹은 책임이 있는 한 사람을 뽑으라면 바로 당신입니다. 컴퓨터 혁명의 아버지인 29세의 당신이지요. 재산도 엄청나게 커졌어요. 주식 가치가 한 때는 거의 5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안 그랬나요?

JOBS: 주가가 떨어졌을 때 한 해만에 2억 5천만 달러를 잃었습니다. [웃음]

PLAYBOY: 웃을 수 있군요?

JOBS: 물론 제 인생 망칠 수는 없지만, 재밌지 않나요? 일단은 정말 웃기다입니다. 돈이야 지난 10년간 제게 일어난 일 중에 제일 중요하다거나 가치 있는 일이랄 수 없어요. 대학에서 연설을 할 때, 제가 백만장자라서 학생들이 존경한다고 하면 갑자기 늙은 느낌이 날 때가 있거든요.

학교 다닐 때가 60년대가 막 지난 이후였어요. 실용주의의 파도가 닥치기 직전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학생들은 이상주의는 커녕 그에 가까운 것마저 생각하고 있지 않아요. 철학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경영학 수업 준비만큼 시간을 들이지를 않아요. 60년대의 이상주의는 여전히 존재하기는 합니다. 제가 아는 제 또래의 사람들 대부분은 영원히 간직할 테구요.

PLAYBOY: 컴퓨터로 백만장자가 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JOBS: 압니다. 젊은 미치광이들이 그렇죠.

PLAYBOY: 겨우 10년 전에 차고에서 사업을 시작한 당신이나 스티브 워즈니악 같은 사람들에 대해 얘기해 보죠. 당신과 워즈니악이 시작한 혁명이란 것이 대관절 무엇입니까?

JOBS: 100년 전 석유화학 혁명이 있었습니다. 이 혁명 덕택에 자유로운 에너지, 이 경우 기계 에너지가 생겨났지요. 이 혁명이 사회의 모습을 대부분 바꿔버렸습니다. 정보혁명은 자유 에너지만이 아니라 자유로운 지적 에너지의 혁명입니다. 지금 막 일어나고 있죠. 우리의 매킨토시 컴퓨터는 100-와트 짜리 전구보다 전력을 덜 소모합니다. 하지만 수 시간을 절약시켜줄 수 있죠. 앞으로 10~20년, 아니 50년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요? 이 혁명이 석유화학 혁명을 능가할지도 몰라요. 우리가 최전선에 있습니다.

PLAYBOY: 그렇다면 컴퓨터에 대한 당신의 정의에 대해 생각해봐야겠는데요. 컴퓨터는 어떻게 돌아가나요?

JOBS: 컴퓨터는 사실 꽤 간단합니다. 여기 까페 벤치에 우리가 앉아 있죠.제일 간단한 명령만 이해한다고 생각해 보죠. 화장실을 찾으려 합니다. 단, 제일 간단한 명령만 이해하기 때문에 대단히 특정한 표현을 써야만 합니다. 아마 이렇게 말할 거예요. "벤치에서 2 미터 떨어진 곳으로 간 다음, 똑바로 서서 왼쪽 발을 든다. 그리고 수평이 될 때까지 왼쪽 무릎을 숙인다. 왼쪽 발을 펴서 300센티미터 앞으로 옮긴다..." 이 모든 명령을 이 까페에 있는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도 100배 더 빠르게 전달하게 되면 마술사가 되는 겁니다. 갑자기 가서 밀크 셰이크를 만들어서 탁자로 가져올 수 있으면, 밀크 셰이크가 갑자기 여기 나타났다 여기게 되겠죠. 너무나 빨라서 저의 지각을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컴퓨터가 하는 일이 바로 그겁니다. 정말, 정말 단순한 인스트럭션으로 움직여요. 이 숫자로 가서 이 숫자를 더한 다음 결과를 내고, 다른 숫자보다 큰지를 알아보라."처럼요. 그러면 가령 초당 1백만 회의 계산을 할 수 있죠. 1백만 회라면 마술처럼 보일 겁니다.

간단한 설명이 이겁니다. 그런데 컴퓨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꼭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어요. 자동차 트랜스미션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부분은 개념도 잘 모릅니다. 그래도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죠. 자동차를 움직이기 위해 물리학을 연구해야 할 필요는 없어요. 매킨토시를 사용하기 위해 그런 학문을 연마할 필요 또한 없습니다. 이거 물어봤죠? [웃음]

PLAYBOY: 물론이죠. 컴퓨터가 우리 개개인의 삶을 바꾸리라고 보시는데요. 회의론자들을 어떻게 설득할 요량입니까?

JOBS: 컴퓨터는 제일 신뢰할 만한 툴입니다. 저작 수단, 통신센터, 수퍼 계산기, 플래너, 파일, 예술 수단을 모두 한데 모았죠. 단, 새로운 인스트럭션이나 소프트웨어를 통해 돌아갑니다. 이 정도의 융통성과 힘을 가진 다른 수단이 없어요.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는 우리도 짐작 못 하겠습니다. 당장 컴퓨터가 우리 삶을 쉽게 해 줄 겁니다. 수 시간이 걸리던 일을 수 초 안에 끝내주죠. 삶의 질을 높아주고 단조로운 일을 자동화시켜주며, 가능성을 크게 넓힐 겁니다. 점점 더 우리를 위한 일을 많이 하게 되겠죠.

PLAYBOY: 오늘 컴퓨터를 사야 할 확실한 이유가 있을까요? 최근 컴퓨터 업계의 한 인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우리가 컴퓨터를 주었지만, 그걸로 뭘 할지는 보여주지 않았다. 컴퓨터보다 손으로 수표장 기입하는 편이 더 빠르다." 아니 그러면 컴퓨터를 왜 사야 합니까?

JOBS: 제각각의 이유가 있습니다. 사무용으로 한다면 답변은 쉽습니다. 고품질로 서류를 훨씬 빠르게 준비할 수 있습니다. 생산성을 늘리기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죠. 컴퓨터는 손수 들어가는 일을 많은 부분 절약해 줍니다. 그것 말고도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죠. 기억하세요. 컴퓨터는 수단입니다. 수단은 일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돕습니다.

교육면에서 보면 컴퓨터는 책 이후로 별 판단 없이 학생과 끊임 없이 접촉하게 되는 첫 번째 물건입니다. 소크라테스 식 교육은 더 이상 가능하지가 않죠. 하지만 교육 과정에서 깨인 교사가 사용한다면, 컴퓨터는 정말 잠재성을 지니고 있어요. 대부분 학교에 이미 들어가 있습니다.

PLAYBOY: 사무용과 교육용으로 말씀하신 것이네요. 가정용으로는 어떨까요?

JOBS: 지금까지 보면, 실제 시장보다는 개념이 더 많습니다. 집에 컴퓨터를 들여 놓아야 할 주된 이유는 집에서 사무실 일을 좀 하거나, 아이들을 위해 교육용 소프트웨어를 돌리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 둘 중 하나의 이유가 충분하지 않다면, 딱 한 가지 남는 이유가 있습니다. 컴퓨터를 알고싶다는 이유죠. 뭔가 일어나고 있기는 한데, 뭐가 뭔지 자세히 모르겠다. 그러면 배워야죠. 이것이 변화를 이끌 겁니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컴퓨터는 필수 요소가 될 것입니다.

PLAYBOY: 어떤 변화를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JOBS: 집 안에 컴퓨터 한 대 들여놓을 주된 이유가 하나 생길 텐데요. 국가적인 통신 네트워크에 연결하기 위해서입니다. 전화기만큼이나 엄청난 변화를 불러일으킬 겁니다. 그 초창기 단계에 막 접어들었죠.

PLAYBOY: 정확히 어떤 말씀이신지요?

JOBS: 추측만 할 수 있는데요. 아주 많이 볼 수 있지만 정확히 어떻게 흘러갈지는 알 수 없습니다. 뭔가 크고 좋다는 점만 알 수 있죠.

PLAYBOY: 그렇다면 지금으로서는 가정용 컴퓨터 구매자들이 신념만으로 3천 달러를 투자해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JOBS: 미래에는 신념 구매가 아닐 겁니다. 지금 제일 어려운 부분은, 정확히 이유를 물어보는데 답을 딱히 할 수 없더라는 겁니다. 100년 전에, 누군가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에게 물어봤겠죠. "전화라는 것으로 도대체 뭘 하려고 하시오?" 전화가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해 그에게 답할 수 없었을 겁니다. 실제로 사람들이 전화기를 사용하여 오늘 밤에 무슨 영화가 나오는지, 뭔가 주문을 하는지, 지구 반대편의 상대방과 통화를 할지도 장담할 수 없었어요. 그래도 최초의 공공 전신이 1844년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정말 통신 혁명이었어요. 뉴욕에서 메시지를 보내면 오후에는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으니까요. 그 때 미국에서 생산성 향상을 위해 모든 책상에 전신기를 놓아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어요. 하지만 일이 그렇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이상한 표현법, 모스 부호를 새로 배워야 했기 때문이에요. 배우려면 40시간은 필요합니다. 절대 다수는 전신을 어떻게 사용할지 배우려들지 않았죠. 다행스럽게도 1870년대에 벨이 전화 특허를 출원합니다. 기본적으로는 전신과 기능이 동일하였지만 어떻게 쓸지는 이미들 알고 있었죠. 게다가 실제 말로 통신한다는 점이 정말 멋졌죠. 노래도 부를 수 있고요.

PLAYBOY: 무슨 의미이신가요?

JOBS: 단순히 언어학적인 의미 이상을 말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죠. 오늘날의 상황도 같습니다. 생산성을 늘리기 위해 미국 내 모든 책상 위의 IBM PC를 몰아내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겁니다. 배워야할 주문이 있거든요. "명령어"를 익혀야 합니다. 제일 유명한 워드프로세싱 프로그램인 WordStar의 매뉴얼은 400페이지에요. 소설을 쓰려면 소설을 읽어야 하는데, 대부분은 미스터리처럼 읽을 겁니다. 모스코드, 안 배우죠? 명령어를 왜 배웁니까? 매킨토시가 바로 거기서 등장합니다. 우리 업계 최초의 "전화"가 매킨토시이죠. 그 외에도 매킨토시가 정말 멋진 점이 하나 있어요. 전화로 노래도 부를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드렸죠? 통신용으로 단어만 교환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그림을 덧붙이거나 그릴 수 있고, 특별하게 출력할 수도 있어요.

PLAYBOY: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아니면 그저 참신한 건가요? 어떤 비판가의 말에 따르면 매킨토시는 세계에서 제일 비싼 에칭스케치(etch a sketch)라고 하네요.

JOBS: 전화와 전신만큼이나 차이가 있고, 그 만큼 중요합니다. 자라나고 있을 때 이 에칭스케치를 한 대 갖고 있으면 어땠을지 생각해 보세요. 하지만 그것도 일부일 따름입니다. 생산성을 늘리고 창조력을 신장시키는 것만이 아닙니다. 단어와 숫자만큼이나 그림이나 그래프를 사용하여 훨씬 더 효과적으로 통신할 수 있게 해 주죠.

PLAYBOY: 컴퓨터 대부분은 명령어를 치기 위해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그렇지만 매킨토시는 마우스라 불리우는 뭔가로 그것을 상당수 대체하던데요. (마우스는 책상 위에 놓는 작은 상자형 기기로서, 컴퓨터 화면에 포인터를 가이드한다.) 키보드에 익숙한 사람들한테는 상당히 큰 변화입니다. 어째서 마우스이죠?

JOBS: 셔츠에 얼룩이 하나 있다고 해 보죠. "셔츠에 얼룩이 있어. 칼라로부터 14 센티미터 아래에서 버튼 왼쪽 사이에 있어."라고 하나요? "셔츠에 얼룩이 있어. [얼룩을 가리키면서] 여기!"라고 말하죠. 가리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비유법입니다. 수많은 연구와 테스트를 거쳤어요. 자르기와 붙이기와 같은 온갖 기능보다 훨씬 더 빠릅니다. 마우스가 있으면 사용이 더 간편해질 뿐 아니라 효율도 더 커집니다.

PLAYBOY: 매킨토시 개발은 얼마나 걸렸나요?

JOBS: 컴퓨터 자체는 2년이 좀 넘었어요. 하지만 해당 기술 작업은 수 년이 더 걸렸죠. 이렇게 열심히 일해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매킨토시 일이야말로 제일 멋진 경험이었습니다. 매킨토시 작업을 한 모두가 그리 말할 거예요. 마지막에 우리들 중 아무도 매킨토시를 선보이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손을 떠난 순간 우리 것이 아니니까요. 그래도 주주 회의 때 매킨토시를 보여주기는 했습니다. 모두들 일어나서 5분동안 박수갈채를 해줬어요. 정말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맥 팀이 첫 번째 줄이 있었는데요. 우리가 정말 끝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 모두들 울기 시작했습니다.

PLAYBOY: 인터뷰 시작 전에 경고를 하나 받았어요. "최고로 설득당해버릴 것이다"라고 누군가 말해주더군요.

JOBS: [미소지으며] 우리야 그저 우리 하는 일에 열정적일 뿐입니다.

PLAYBOY: 하지만 그 열정과 수 백만 달러 짜리 광고 캠페인, 그리고 당신 자신의 언론 대응력을 생각해 보죠. 소비자들이 뭐가 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JOBS: 광고 캠페인은 경쟁을 위해 필요합니다. IBM 광고도 모든 곳에 다 있죠. 하지만 좋은 PR은 교육을 시켜줍니다. 그게 다예요. 이 사업에서는 사람들을 속일 수 없습니다. 제품이 스스로 말하니까요.

PLAYBOY: 마우스가 비효율적이라는 비판이 끊임 없긴 한데요. 매킨토시 화면이 흑백이라는 문제도 있습니다. 제일 심각한 지적은 애플이 너무 가격을 올렸다는 점인데요. 답변을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JOBS: 데이터나 애플리케이션을 움직일 때 전통적인 방식보다 마우스가 더 빠르다는 점을 증명하는 연구를 해 두었습니다. 언젠가는 합리적인 가격에 칼라 스크린을 만들 수도 있겠죠. 가격을 말씀드리면, 처음 나온 신제품은 나중에 나올 제품보다 더 비싸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더 생산할수록 가격도 더 떨어질 겁니다.

PLAYBOY: 바로 그 점이 비판을 받고 있어요. 프리미엄 가격과 열정의 결합이죠. 가격을 낮춰서 나머지 시장에 대응하라는 겁니다.

JOBS: 사실이 아닙니다. 가격을 낮출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했죠. 지금 팔리는 컴퓨터가 몇 년 전, 심지어 작년에 팔던 것보다 저렴합니다. IBM PC도 마찬가지이지요. 우리의 목표는 컴퓨터를 뿌리는 거예요. 더 저렴하게 만들수록 더 쉬워질 겁니다. 매킨토시 가격이 천 달러 수준이 되면 정말 기쁘겠어요.

PLAYBOY: 매킨토시 이전에 출시한 리사와 애플 III 구입자들은 어떻습니까? 호환성이 없는 옛날 제품으로 놓아둘 건가요?

JOBS: 그 말씀을 하시려면, IBM PC와 PCjrs 구입객들도 목록에 올려 놓아야 합니다. 리사의 경우는 매킨토시에서 사용하는 기술을 차용했기 때문에 매킨토시용 소프트웨어를 돌릴 수 있어요. 매킨토시의 큰 형 뻘입니다. 처음에는 비록 성공적이지 못하였지만 리사 매출량은 계속 오르고 있어요. 애플 III의 경우는 한 달에 2천 대 이상을 팔고 있습니다. 절반 이상은 재구입이고요. 신기술이 꼭 옛기술을 대체해야 할 필요성도 없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죠. 칼라가 처음 나왔을 때 흑백 TV와 마찬가지입니다. 투자할만하다 싶을 신기술인지 아닌지를 결국 결정하게 되죠.

PLAYBOY: 그 속도로 보자면, 맥이 몇 년 안에 또 뒤쳐지지 않을까요?

JOBS: 매킨토시 이전에는 표준이 두 개였습니다. 애플 II와 IBM PC이죠. 이 두 표준은 협곡의 돌산을 둔 강과 같습니다. 형성되는 데 수 년이 걸리죠. 애플 II 만들어내는데 7년이 걸렸고, IBM은 4년이 걸렸습니다. 매킨토시의 경우, 기업으로서 우리가 갖고 있는 마케팅을 통해, 매킨토시의 혁명적인 면모를 통해 세 번째 강, 세 번재 표준을 만들어냈습니다. 이것이 1년이 안 걸렸어요. 제가 볼 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회사는 딱 두 곳입니다. 애플과 IBM이죠. 안 된 일일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당장 한다고 하면 애플이나 IBM 외에 3~4년 안에 누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을지 생각이 안 나요. 80년대 후반이 되면 새로운 제품도 몇 가지 보게 될 겁니다.

PLAYBOY: 그리고 그동안에는요?

JOBS: 제품의 휴대성과 네트워킹, 레이저프린터, 공유 데이터베이스, 통신력 개발이 더 이뤄질 겁니다. 어쩌면 전화와 개인용 컴퓨터의 결합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PLAYBOY: 매킨토시에 많은 걸 걸으셨던데요(You have a lot riding on this one.). 매킨토시가 애플을 흥하게도, 망하게도 할 수 있다고들 합니다. 리사와 애플 III 이후로 애플 주가는 내리막이었고, 애플이 살아남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어요.

JOBS: 예. 우리 어깨의 중압감을 우리도 느낍니다. 매킨토시로 최대한 잘 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도 알고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제품에, 혹은 회사에 가져온 꿈을 실현시킬 수 없을 테니까요.

PLAYBOY: 얼마나 심각하죠? 애플이 부도 상황에라도 처해 있나요?

JOBS: 아뇨, 아뇨, 아뇨. 1983년에 그런 예언들이 나왔었죠. 그런데 사실 1983년은 애플이 엄청나게 성공한 해였습니다. 회사 크기만 해도 두 배가 되었죠. 1982년 당시에는 판매량이 5억 8,300만 달러였는데, 1983년에는 9억 8천만 달러가 되었습니다. 거의 애플 II 관련이긴 하죠. 우리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었습니다. 매킨토시가 만약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매 해 1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었을 겁니다. 애플 II 류의 컴퓨터를 계속 팔았겠죠.

PLAYBOY: 그러면 지난 해 애플의 뒷얘기로는 무엇이 있나요?

JOBS: IBM이 매우, 매우 강력하게 등장했습니다. IBM으로의 스위치가 대세였죠. 소프트웨어 개발자들도 IBM으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소매점들도 IBM을 더 거론하기 시작했어요. 매킨토시를 만든 우리들은 매킨토시가 업계를 뒤바꾸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업계를 완전히 재정의내리게 될 터이죠. 그리고 정말 그렇게 되었어요. 매킨토시가 성공을 거두지 않았다면 저의 비전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이니 패배를 인정해야 했을 겁니다.

PLAYBOY: 애플 III는 원래 4년 전에 나온 애플 II의 업그레이드판이 될 것이었는데요. 실패했습니다. 만 4천 대를 리콜했고, 결국 수정한 애플 III도 뜨지 못 하였죠. 애플 III가 얼마나 손해를 끼쳤나요?

JOBS: 많죠. 무한정 손해를 끼쳤습니다. III가 보다 더 성공적이었다면 IBM의 시장 진입은 훨씬 더 힘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이 인생이죠. 실패의 경험에서 많이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PLAYBOY: 하지만 리사 또한 시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실패작이랄 수 있었어요. 무엇이 잘못 되었을까요?

JOBS: 일단 리사는 너무 비쌌습니다. 약 1만 달러였으니까요. 포천 500대 기업에 들어가고 나서, 대기업들에게 판매해보려 노력했습니다만, 애플의 뿌리는 사람들에게 직접 판매하는 곳에 있습니다. 다른 문제가 있었어요. 출하가 늦었던 겁니다. 그래서 소프트웨어가 같이 배달이 안 되었고, 그 때문에 많은 기회를 잃었죠. IBM은 대단히 강력하게 나섰어요. 우리가 6개월 정도 늦었고, 가격이 너무 높았으며, 우리 스스로 전략적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리사를 150개 딜러망으로만 판매했던 것이죠. 너무 어리석었어요. 대단히 대가가 큰 실수였습니다. 그래서 마케팅과 채널망 전문가라 생각한 사람들을 고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나쁜 아이디어는 아니었지만 불행히도 이 사업은 너무나 새로운 사업이었어요. 소위 전문가라 불리는 사람들도 잘 모르는 사업이었습니다. 새로운 안목이 필요했죠.

PLAYBOY: 스스로의 불안을 말씀하신 건가요? "사태가 커졌으니 강경책을 구사하겠다. 진짜 전문가를 모셔오자."로요?

JOBS: 기억하세요. 우리는 23, 24, 25살이었습니다. 이런 일을 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러니 불러올만하죠.

PLAYBOY: 어찌됐건 좋은지 나쁜지 결정해야 할 텐데요. 어땠나요?

JOBS: 한 명이 모든 결정을 다 내리게 한 적이 없습니다. 그 때 운영자는 세 명이었어요. 마이크 스콧(Mike Scott)과 마이크 마큘라(Mike Markkula), 그리고 저였습니다. 이제는 존 스컬리가 [애플 사장으로] 합류했죠. 초창기 시절 합의하지 않은 뭔가가 있으면 제 판단을 보통 미뤘습니다. 저보다 경험있는 분께 넘긴 것이죠. 여러 경우 그들이 옳더군요. 그런데 제 의견대로 했더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경우도 몇 건 있었습니다.

PLAYBOY: 당신은 리사 부를 이끌고 싶어했었어요. 당신이 고용하기는 했지만, 마큘라와 스콧이 당신의 상사이고요.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 거 아닙니까?

JOBS: 개념을 만들고, 핵심 인력을 찾아낸 다음, 기술 방향을 설정하는 일입니다. 스콧은 제가 그런 일 운영 경험이 없다고 결정내렸고, 그거 정말 고통스러웠어요. 이해를 못 해준 것이죠.

PLAYBOY: 애플을 잃고 있다는 느낌이었나요?

JOBS: 좀 그랬죠. 하지만 우리와 원래 같은 비전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을 리사 그룹에 대거 불러들인 꼴을 보니 더 견디기가 어려웠어요. 리사 그룹 내에서는 정말 거대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매킨토시와 같은 것을 만들기 원했던 사람들과 HP 류의 기업에서 고용한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죠. 그들은 더 큰 머신, 기업 판매의 경험을 가진 이들이었습니다. 전 떠나기로 마음 먹었고, 소규모 그룹을 스스로 시작해보기로 하였어요. 다시 창고로 들어가서 매킨토시를 디자인하는 일이죠. 리사 그룹은 우리를 별로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스콧은 오히려 절 달래기도 했으니까요.

PLAYBOY: 하지만 당신이 세운 회사에요. 억울하지 않았나요?

JOBS: 자식한테 억울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PLAYBOY: 그 자식이 아버지보고 꺼지라는데도요?

JOBS: 억울하지는 않았어요. 슬펐습니다. 좌절했죠. 하지만 애플에서 최고의 인재들을 불렀어요. 우리가 하지 않으면 정말 큰 문제에 봉착하리라 느꼈기 때문입니다. 매킨토시를 만든 분들입니다. 맥을 보세요.

PLAYBOY: 글쎄요. 리사를 처음 소개할 때에도 맥처럼 엄청난 팡파레를 울렸죠. 하지만 리사는 실패했잖습니까?

JOBS: 맞습니다. 리사에 매우 높은 희망을 걸었으나 우리가 틀렸어요. 더 힘든 사실은 매킨토시가 곧 나오리라는 점이었습니다. 매킨토시는 리사의 모든 잠재적인 거부감을 극복할 것으로 보였어요. 회사 입장에서 우리의 뿌리로 되돌아가자이죠. 컴퓨터를 기업이 아닌 사람들에게 팔자입니다. 그래서 세계 최고로, 미칠정도로 훌륭한 컴퓨터를 만들어냈습니다.

PLAYBOY: 미친 사람들이래야 미치도록 훌륭한 것을 만들 수 있다.

JOBS: 예. 사실 미치도록 훌륭한 제품을 만드는 것은 그 과정과 정말 관계가 깊습니다. 새 아이디어를 어떻게 알아내고 어떻게 배우는지, 어떻게 옛날 아이디어를 교체하는지의 과정이지요. 예. 맥을 만든 사람들도 그런 열정으로 만들었어요.

PLAYBOY: 미칠정도로 훌륭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과, 그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사람들의 차이는 뭘까요?

JOBS: IBM과 비교해 보죠. 맥 그룹이 맥을 만들어냈고, IBM이 PCjr를 만들어낸 이유가 뭘까요? 우리는 맥이 엄청나게 팔린다고 봅니다. 우리는 모두를 위한 맥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위한 맥을 만들었죠. 훌륭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그 판단을 내리는 것은 우리 그룹이었습니다. 우리는 나가서 시장 조사를 벌이지도 않았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기술로 만들기 원했습니다. 아름다운 서랍을 만드는 목수라면, 뒷면이라 해서 합판 찌그러기를 사용하지 않을 겁니다. 설사 아무도 안 쳐다본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알 것은 다 알게 되어 있어요. 즉, 뒷면에도 아름다운 목재를 써야 합니다. 밤에 잘 자려면 미학적으로도 품질로도 침대가 좋아야 합니다.

PLAYBOY: PCjr를 만든 사람들이 제품에 대해 그런 종류의 자부심을 갖고 있지는 않으리라는 말씀이신가요?

JOBS: 만약 그렇다면 PCjr같은 것이 안 나왔을 겁니다. PCjr는 특정 시장, 특정 종류의 소비자를 조사한 시장 연구를 통해 디자인했음이 분명해요. 이런 것을 만들면 수많은 사람들이 구입할 테고, 돈을 벌 수 있으리라 희망했겠죠. 동기부터가 다릅니다. 맥 그룹은 이제까지 보지 못한 최고로 훌륭한 컴퓨터를 만들기 원하는 그룹입니다.

PLAYBOY: 어째서 유독 컴퓨터 업계만은 젊은이들이 지배할까요? 애플 직원 평균 나이가 29세이던데요.

JOBS: 새롭고 혁명적인 부문이 좀 그렇죠. 나이 들면 안주하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은 일종의 전자화학 컴퓨터이지요. 생각은 마음 속에서 건설현장의 비계처럼 패턴을 구축합니다. 화학 패턴을 새기게 되는 것이죠. 대부분의 경우, 음반의 그루브처럼 그러한 패턴에 갇혀 있어요. 절대로 못 빠져 나옵니다. 그런데 특정한 방식으로 질문을 던지고 바라볼 줄 아는 그런 드문 인재가 있어요. 30~40대의 예술가들은 정말 놀라운 것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선천적으로 호기심 많은 사람들도 있죠. 영원히 아이인 사람도 있습니다만, 드물죠.

PLAYBOY: 당신때문에 기뻐할 40대가 아주 많을 거니다. 주제를 바꿔보죠. 애플을 컴퓨터가 아니라 회사로 묘사할 때 하는 말들이 있어요. 애플을 운영하면서 뭔가 임무같다는 느낌이 없었나요?

JOBS: 컴퓨터만이 아니라 사회에 끼친 영향도 있다고 봅니다. 애플은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포천 500대 기업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10~15년 전에 미국에서 제일 흥미로운 기업 다섯 곳을 고르라면 폴라로이드와 제록스가 모두의 목록에 올라와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두 회사가 지금 어디에 있죠? 수 십억 달러 어치의 기업이 되면 비전을 잃게 마련입니다.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과 일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 대량의 중관 관리자들이 들어 앉게 되죠. 그러면 제품에 가졌던 느낌이나 열정을 상속받을 수 없게 되어요. 열정을 신경쓰는 크리에이티브 쪽은 자기들이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관리자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다섯 번을 설득해야 합니다.

개개인의 성취를 북돋기는 커녕 꺾어버리는 환경에서 일하는 훌륭한 인재들을 잃으면 어떻게 될까요? 평범한 회사가 될 뿐입니다. 물론 애플도 그렇게 세웠어요. 애플은 Ellis Island 회사입니다. 다른 기업들로부터 망명자들을 모아서 세웠어요. 다른 회사에서는 말썽을 일으키지만 극도로 뛰어난 개개인들이지요.

에드윈 랜드(Edwin Land) 박사도 말썽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잘 아실 겁니다. 하버드에서 쫓겨나 폴라로이드를 만든 분이지요. 그는 우리 세대 최대의 발명가 중 하나일 뿐 아니라, 예술과 과학, 사업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회사를 하나 세웠죠. 폴라로이드의 초창기 얘기입니다. 하지만 결국 랜드 박사도 다른 억만장자 말썽꾸러기들처럼 회사를 떠나라는 요구를 받게 됩니다. 정말 멍청한 얘기가 아닐 수 없는데요. 75세인 랜드는 밖으로 나가서 나머지 삶을 순수과학에 바칩니다. 컬러 비전 코드를 깨기 위해 노력하면서 말이죠. 이런 사람은 자연의 보석이에요. 이런 사람들이 어째서 모델로 설 수 없는지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우주비행사나 축구 선수가 아니에요. 이런 분이야말로 제일 훌륭한 분입니다.

아무튼 제가 보기에 존 스컬리와 저라면 5~10년 정도 해서 애플을 100억~200억 짜리 회사로 만들어낼 수 있다고 봅니다. 그 후에도 지금과 같은 정신을 유지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새로운 영역을 열 겁니다. 알아볼 전례가 없어요. 우리 스스로 우리 길을 개척해 나아갈 겁니다.

PLAYBOY: 애플이 정말 그런 회사라면, 어째서 스무 배 성장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소규모로 남아 있으면 되지 않나요?

JOBS: 우리가 하는 방식이 우리 사업 모델입니다. 주요 기여자로 남아 있기 위해서는 100억 달러 규모의 회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성장을 얻어내려면 경쟁에 맞춰야 하죠. 우리의 관심사항은 수치 몇 달러가 아니라 어떻게 그 목표를 이루느냐입니다. 돈은 의미가 없어요.

애플 사람들은 18시간을 일합니다. 다양한 종류의 직원들이 있죠. 거대한 위험을 감수하기까지 5~10년을 기다리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목표 달성을 절실히 원해서 결국 쟁취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알아요. 어떻게 만들어 나아갈지 아직 시작 단계입니다. 여기 있는 모두들 바로 지금, 우리가 미래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죠. 당신이나 저나 우리가 입고 다니는 옷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을 만들거나 키우지도 않죠. 다른 사람들이 개발한 언어를 사용합니다. 사회의 연산을 사용하지요. 그러다가 매우 드물게, 뭔가를 뒤바꿀 기회를 갖게 됩니다. 그 기회가 바로 지금 왔다고 보고요. 그리고 아니오. 우리가 어디로 향할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저 뭔가 지금 그 어느 것보다도 더 큰 걸 하고 있다는 사실만 알 뿐입니다.

PLAYBOY: 매킨토시로 점령을 하기 위해 기업 시장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업 시장에서 IBM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JOBS: 예. 기업시장에는 여러 부문이 있어요. 포천 500대 기업만 생각하면 IBM이 제일 강력하겠죠. 하지만 저는 포천 5백만, 1,400만 기업을 생각해보렵니다. 미국의 소규모 사업체는 1,400만 곳이 있어요. 중소규모 사업체에서 컴퓨터 사용을 필요로하는 곳이 매우 많다고 봅니다. 바로 여기에, 1985년에 의미 있는 솔루션을 제시할까 합니다.

PLAYBOY: 어떻게요?

JOBS: 우리의 접근은 사업적인 측면이 아니라, 개개인들을 모으자입니다. 사람들 일하는 방식을 질적으로 바꾸고 싶거든요. 워드프로세서를 더 빠르게 한다거나 숫자를 더 바르게 추가시키는 데에 도움이 되고 싶다만이 아니죠. 서로간의 커뮤니케이션 방법 자체를 바꾸고 싶습니다. 다섯 페이지짜리 메모를 한 페이지짜리 메모로 바꾸는 이유는 주요 개념을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쓰는 종이도 줄고, 커뮤니케이션의 품질도 높아지죠. 더 재밌기도 해요. 집에서는 정말 멋지고 재미나는 사람들이 회사만 가면 재미 없어지고 지루해진다는 말이 있잖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교양(liberal-arts)의 정신을 사업의 매우 심각한 측면에도 투영실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럴 가치가 있습니다. 얼마나 바뀔지 가늠조차 안 되지만요.

PLAYBOY: 그러나 기업 시장에서는 무엇보다도 IBM과 싸워야 합니다. IBM 브랜드를 안정성과 효율성으로 간주하는데요. 컴퓨터의 새로운 영역에서 A.T.&T.도 애플을 노리고 있죠. 애플은 상대적으로 젊고 검증이 안 된 회사입니다. 특히나 고객이 될 기업들 눈에는 더 그렇죠.

JOBS: 기업시장을 뚫는 몫은 매킨토시입니다. IBM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방식이죠. 메인프레임에 집중했다가 기업시장까지 내려왔습니다. 우리가 성공을 거두려면 풀뿌리 관점에서 봐야 해요. 네트워킹을 사례로 들자면 IBM처럼 전체 기업들을 잇는데 집중하기보다, 소규모 웍그룹의 현상에 집중해야 할 겁니다.

PLAYBOY: 전문가에 따르면 기업시장을 키우고, 이를 소비자 시장의 확대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표준이 하나만 있는 편이 낫다고 합니다.

JOBS: 사실이 아닙니다. 1920년대에도 자동차 표준이 하나면 된다는 주장이 있었죠. 그 말을 되풀이하는 겁니다. 실제로 표준이 하나 뿐이었다면 자동 트랜스미션이나 파워 스티어링, 독립적인 서스펜션과 같은 혁신이 나오지 못했을 거예요. 우리가 하고 싶은 마지막 일은 기술 동결입니다. 컴퓨터로서 매킨토시는 혁명적이에요. 매킨토시 기술이 IBM보다 우월하다는 점은 당연합니다. IBM에 대한 대안은 분명히 필요해요.

PLAYBOY: IBM과 호환성을 갖기 거부한 결정은 혹시, IBM 통제를 받고싶지 않아서 아닌가요? 맥이 IBM 호환기종이 아닌 이유는 단순히 맥이 오만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스티브 잡스는 IBM에게 엿먹으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죠.

JOBS: 그저 다르다는 것만으로 사내다움을 표현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닙니다.

PLAYBOY: 그렇다면 어째서 애플이죠?

JOBS: 주된 이유는 대단히 간단합니다. 우리가 개발한 기술이 더 우월해요. IBM과 호환성을 갖춘다면 이렇게 우월할 수가 없어요. 물론 IBM이 이 산업을 지배하는 꼴을 보기는 싫습니다. IBM 호환이 아니라고 해서 우리보고 바보라 여기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IBM의 우산 아래 살고 있지 않다면서요. 우리가 그러지 않으리라 결심한 주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우리 생각에 (역사적으로 맞다고 봅니다) 우리가 옳아요. IBM은 호환 기종을 만드는 기업들을 씌워준 우산을 결국 걷게 됩니다. 그들을 절대적으로 파괴하게 되어 있어요.

두 번째가 더 중요한데요. 우리가 애플을 움직이는 제품 비전때문입니다. 컴퓨터는 인류가 가져본 툴 중에 제일 주목할만한 툴이에요. 그리고 인류는 기본적으로 툴 유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우리가 수많은 컴퓨터를 수많은 사람들에게 안겨다 줄 수 있다면, 질적으로 차이가 있어야 해요. 애플이 하고싶은 일은 컴퓨터를 일반적인 기기로 만들어서 수 천만 명에게 안겨다 주는 겁니다. 우리가 원하는 일이 이거에요. 현재 IBM에서 하는 일가지고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뭔가 다르게 해야 하구요. 이 때문에 우리는 매킨토시를 만들었습니다.

PLAYBOY: 1981년부터 1983년 사이에, 개인용 컴퓨터 점유율이 29%에서 23%로 감소하였습니다. 반면 IBM의 점유율은 3%에서 28%로 늘어났어요. 어떻게 경쟁하실 겁니까?

JOBS: 수치갖고 걱정해본 적은 없습니다. 시장에서 애플은 제품에 신경을 씁니다. 제품만이 우리를 차별화시켜주니까요. IBM은 서비스와 지원, 보안, 메인프레임, 통제에 신경씁니다. 3년 전 애플 관측에 따르면 컴퓨터를 한 해 천 만 대 출하한다고 했을 때, IBM조차도 충분한 마더보드를 확보하지 못한다고 봤었어요. 즉, 컴퓨터 안에 마더보드를 집어 넣어서 만들어야죠. 그것이 바로 매킨토시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애플과 IBM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되었어요. 몇 가지 이유로 우리가 큰 실수를 저지르고 IBM이 승리한다면, 한 20년은 컴퓨터의 암흑시대가 오잖을까 싶네요. IBM이 시장을 지배하게 되면, 이들은 혁신을 언제나 멈추려 들 겁니다. 아예 싹을 짓밟겠죠.

PLAYBOY: 왜죠?

JOBS: 예를 말씀드리죠. Frito-Lay는 흥미로운 회사입니다. 한 주일에 50만 곳 이상 공급하는 곳인데 각 스토어마다 전용 선반이 있고, Frito-Lay의 칩이 다 거기에 있죠. 그리고 각 스토어마다 그 선반의 모양은 동일 합니다. 큰 점포인 경우 여러 개의 선반이 있죠. Frito-Lay의 제일 큰 골치거리는 제품 상태라고 합니다. 만 명의 직원들이 매번 와서 제품 상태를 보고, 안 좋은 상태인 과자를 새 제품으로 교환합니다. 그리고 관리자에게 모든 것을 확실히 하도록 주의도 주지요. 이런 서비스와 지원덕분에 Frito-Lay는 현재 진출한 모든 종류의 칩에서 80% 이상의 점유율을 올리고 있어요. 아무도 Frito-Lay의 시장을 침범 못 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계속 잘 해 나가는 한 아무도 80%의 점유율을 올릴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럴 정도의 영업과 지원 인력을 운용할 수 없을 테니까요. 역으로 80%가 아니라서 그렇기도 합니다. 딜레마죠. 아무도 Frito-Lay 프랜차이즈를 깨뜨릴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Frito-Lay는 혁신을 해야 할 필요가 없어요. 새로 나오는 소규모 칩 회사들을 지켜보고 한 두 해 정도 알아본 다음, 자기 브랜드로 내세우면 그만입니다. 그리고 서비스와 지원을 동원하겠죠. 그리고 한 해 정도 지나면, 다시금 80% 이상의 점유율을 올리게 됩니다.

IBM이 바로 똑같이 활동하고 있어요. 메인프레임 시장을 보시죠. 15년 전, IBM이 지배자가 되면서 혁신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성공할 수 있다면 모든 컴퓨터 분야에 다 들어가가지고 똑같은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IBM PC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기술이 전혀 없습니다. 그저 애플 II 기술을 다시 포장하고 약간 확장시킨 것에 불과해요. 그리고 IBM은 모든 것을 원합니다. 모든 것을요.

좋건 싫건 시장이 점점 우리 둘의 싸움으로 가고 있어요. 저도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만 상황이 그렇게 되고 있습니다.

PLAYBOY: 너무나 빠르게 변하는 업계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매킨토시는 막 새로 나왔는데 한 2년쯤 지나면 어떻게 될까요? 스스로의 철학과 경쟁하지는 않으십니까? IBM을 애플이 뒤따르는 것처럼, 애플을 뒤따르는 소규모 컴퓨터 회사들도 생길까요?

JOBS: 컴퓨터 자체를 공급하는 면에서는 애플과 IBM의 경쟁이 될 겁니다. 6위나 7위는 커녕, 3위나 4위급 회사들도 많이 등장하리라 생각하지는 않아요. 새로 생길 혁신적인 기업들은 소프트웨어에 집중할 것입니다.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에 혁신이 굉장히 많이 일어날 것 같아요.

PLAYBOY: IBM도 하드웨어에 대해서는 같은 입장일 듯 하군요. 하지만 당신이 그 상태로 놓아둘 거 같지는 않은데요. 관점이 왜 다르신 겁니까?

JOBS: 규모성때문이죠. 이제 충분히 커졌기 때문에 다른 회사가 성공적으로 뭔가 새로운 것을 내놓기는 매우 어려울 겁니다.

PLAYBOY: 차고에서 십억 달러 짜리 회사는 더 이상 없다?

JOBS: 네. 컴퓨터에서는 그럴 듯 합니다. 그래서 애플에게 책임감이 더해지죠. 컴퓨터 업계에 혁신을 더 일으켜야 한다면 우리가 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경쟁에 임할 수 있죠. 충분히 빠르게 나가면 그들도 못 쫓아올 겁니다.

PLAYBOY: IBM이 IBM-호환 기종을 거느리고 있는데요. 당신 표현에 따르면 우산을 접으리라 했죠. 언제가 될까요?

JOBS: 1억 달러에서 2억 달러 사이에는 복제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만 2억 달러 규모의 회사라면 스스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혁신을 일으킬 위치는 못 되어요. IBM이라면 호환기종 회사들이 제공할 수 없는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겠죠. 그 뿐만이 아닙니다. 결국 IBM은 새로운 표준을 내세워서 현재의 호환기종들에게서 호환성을 없애버릴 수도 있습니다.

PLAYBOY: 애플에서 정확히 한 일이 뭐인가요? 애플 II용 소프트웨어를 매킨토시에서는 돌릴 수 없잖습니까.

JOBS: 맞습니다. 맥은 완전히 다르죠. 애플 II와 IBM PC라는 현 세대의 기술을 가지고 초기 혁신자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죠. 컴퓨터를 어떻게 사용할지 밤이라도 새서 배웠으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일반 대중에까지 미치지는 못했어요.

컴퓨터를 수 천만 명이 접할 수 있도록 하려면, 사용법이 정말 쉬우면서도 강력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협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야 했었죠. 우리에게는 마지막 기회가 될 터였기 때문에 정말 위대하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 결과가 매킨토시여서 매우 기쁩니다. 매킨토시는 향후 10년간 정말 강력한 기반이 될 겁니다.

PLAYBOY: 리사와 맥. 그 이전으로 돌아가 보죠. 부모님은 컴퓨터에 대한 당신의 관심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습니까?

JOBS: 용기를 주셨어요. 아버지는 기계공이었습니다. 손으로 못 할 것이 없었죠. 무엇이든 다 고쳐서 돌아가게 만들었어요. 분해했다가 조립하는 것이죠. 그게 처음 배운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차츰 전자공학으로 기울어졌죠. 아버지도 제게 분해 조립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곤 했었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다섯 살 때 팔로알토로 이사를 했어요. 그래서 실리콘밸리에 들어섰죠.

PLAYBOY: 입양되지 않으셨나요? 입양은 인생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나요?

JOBS: 어떻게 압니까, 그걸?

PLAYBOY: 친부모 찾을 생각은 안 해 보셨나요?

JOBS: 물론 입양아들은 자신의 뿌리가 어딘지 알고 싶어합니다. 당연하죠. 그러나 저는 거의 환경결정론자에요. 자라나는 방식과 세계관, 가치관은 자라나면서 겪게 되는 환경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100% 그렇게 되지도 않죠. 호기심 갖는 거야 당연하다고 봅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PLAYBOY: 그럼 친부모를 찾아내셨나요?

JOBS: 그 부분은 정말 말씀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PLAYBOY: 이사왔던 곳이 이제는 실리콘 밸리로 알려지게 되었는데요. 거기서 아이가 자라난다는 건 어떤가요?

JOBS: 교외이죠. 다른 지역 교외랑 비슷합니다. 저는 아이들이 매우 많은 동네에서 자라났는데, 학교 가기 전에 어머니가 읽기를 가르쳐줬었죠. 그래서 학교가 좀 지루해가지고 장난 좀 치기로 했습니다. 3학년 때를 보셨어야 해요. 선생님을 완전히 보내버렸죠. 뱀을 풀어서 교실에 놓아 두고 폭탄도 터뜨렸으니까요. 그러다가 4학년 때 바뀌었습니다. 제 인생의 성인이 4학년 때 선생님이십니다. 힐(Imogene Hill) 선생님이신데, 한 달 동안 저를 완전히 챙겨주면서 학습의 열의를 일깨워 주었어요. 그 해 배운 것이, 다른 어느 학년 때 배운 것보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학교측은 저를 이듬해에 고등학교로 보내려 했었어요. 하지만 현명하게도 부모님은 그렇게 월반을 시키지 않으셨죠.

PLAYBOY: 그래도 동네가 동네 아닌가요? 뭔가 관심을 끌었을 텐데요. 실리콘 밸리가 어땠습니까?

JOBS: 실리콘 밸리는 전략적으로 두 대학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버클리와 스탠포드이죠. 두 대학은 수많은 좋은 학생들을 주변 뿐 아니라 미국 내 전역에서 불러들이고 있죠. 여기 와서 이 동네를 좋아하게 되고 이 동네에 머무르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끊임 없이 뛰어난 사람들이 계속 오고 있죠.

세계 2차대전 이전, 스탠포드 졸업생인 빌 휼렛(Bill Hewlett)과 데이브 패커드(Dave Packard)는 매우 혁신적인 전자기기 회사, 휼렛패커드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Bell Telephone Laboratories에서 1948년에 트랜지스터를 발명하죠. 공동 발명자 세 명 중 하나인 윌리엄 쇼클리(William Shockley)는 자기가 살던 동네인 팔로알토에 가서 회사를 하나 세웁니다. Shockley Labs인가 그랬을 텐데요. 여기에 십여 명의 뛰어난 물리학자와 화학자들도 같이 모였죠. 점차 경쟁력 있는 회사들이 모여들게 도었어요. 꽃과 씨가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고, 그래서 오늘날의 실리콘 밸리가 형성됩니다.

PLAYBOY: 컴퓨터 쪽으로는 어째서 이끌리게 되었나요?

JOBS: 한 블럭 건너에 랭(Larry Lang)이라는 HP 엔지니어가 살고 있었어요. 저랑 정말 많이 놀았습니다. 제게 뭐든 갈쳐줬었어요. 제가 처음 본 컴퓨터도 HP였습니다. 매주 화요일 저녁마다 열 명쯤 초대해가지고는 수업을 해 주고 컴퓨터를 쓰게 해 보기도 했습니다. 처음 갔던 때가 아마 12살이었을 텐데요. 그 날 밤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새로운 데스크톱 컴퓨터를 보여주고 갖고 놀아보라 했었어요. 정말 갖고 싶었죠.

PLAYBOY: 흥미를 안겨준 부분이 무엇이었습니까? 잠재성을 보셨나요?

JOBS: 그렇게까진 아니고요. 멋지다는 생각만 했었죠. 한 대 정말 갖고 싶었습니다.

PLAYBOY: 실제로 HP에 일하러 가셨었죠. 어땠나요?

JOBS: 12살 때인가 13살 때인가. 뭔가 만들어보고 싶어서 부품을 구해야 했었어요. 그래서 빌 휼렛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팔로 알토 전화번호부에 그의 이름이 있더라구요. 그는 정말 친절했어요. 전화를 받아주시더니 한 20분 정도 저랑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물론 저를 전혀 몰랐죠. 하지만 휼렛이 저에게 부품을 주기로 하고는, 여름에 일하러 오라고 하셨어요. 주파수 계산기 조립 일이었습니다. 만만치 않았어요. 나사 조이는 것이 힘들었으니까요. 그래도 상관 없었습니다. 너무 행복했어요.

첫 날을 기억합니다. 여름동안 휼렛패커드에서 일하게 되어서 너무 기쁘다고 상사에게 말했습니다. 그 분 이름이 크리스였나 그랬을 텐데요. 정말 좋아하는 것은 전자기계라 말했죠. 그래서 그에게 좋아하는 게 뭐냐고 물어봤었어요. 날 보더니 이렇게 말하더라구요. "To f u c k!" [웃음] 정말 그 해 여름에 많은 걸 배웠습니다.

PLAYBOY: 스티브 워즈니악은 어떻게 만나셨죠?

JOBS: 13살 때 워즈를 만났습니다. 친구네 집 차고였죠. 그 때 워즈가 18세였어요. 그 시점에서 저보다 전자학을 더 많이 아는 첫 번째 사람을 처음 본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가 되었고, 컴퓨터에 대한 것도 같이 나누었어요. 유머 감각도 있었죠. 온갖 장난을 같이 했으니까요.

PLAYBOY: 가령?

JOBS: [활짝 웃으며] 대단치는 않았어요. 제일 길이가 긴 손가락 그림이 거대하게 있는 큰 깃발을 만든다든가 하는 것이죠. 워즈니악이 폭탄처럼 생겼고, 소리도 내는 걸 만들고는 학교 구내식당에 갖다 놓은 적도 있었어요. 장거리 전화를 공짜로 하기 위한 블루박스 사업도 같이 했었죠.

PLAYBOY: 불법 기기네요. 아닙니까?

JOBS: 흠흠. 재밌는 이야기가 있어요. 워즈가 그걸 이용해서 바티칸에 전화를 걸고는 자기가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라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전화 건 사람이 진짜 키신저인지 물어보지도 않고, 잠든 교황을 깨우러 누군가를 보내더군요.

PLAYBOY: 그런 일 때문에 문제가 생긴 적은 없었나요?

JOBS: 글쎄요. 학교에서 몇 번 정학 먹었죠.

PLAYBOY: 그 때부터, 아니면 계속 컴퓨터 광(nerd)이었나요?

JOBS: 한 세계에 너무 오래 있는 타입은 아닙니다. 다른 일이 너무나 많죠. 고2 때였나요. 처음으로 충격을 받았어요. 셰익스피어와 딜런 토마스(Dylan Thomas)를 그 때 발견한 겁니다. 모비 딕(Moby Dick)을 읽고는 학교의 작문 수업에 다시 들어갈 정도였어요. 졸업반이 되었을 때는 수업 절반을 스탠포드에서 들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PLAYBOY: 워즈니악도 그런 집념을 보인 시기가 있었나요?

JOBS: [웃음] 네. 컴퓨터만이 아니죠. 워즈는 아무도 이해 못하는 세계에 있다고 생각해요. 아무도 그의 흥미를 공유하고 있지 않기도 하고, 세상에 비해 좀 앞서 있기도 합니다. 외롭죠. 외부의 기대보다는 스스로의 관점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에요.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워즈와 저는 대부분의 면모에서 다릅니다만, 같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같은 부분에서는 대단히 가깝죠. 우리는 각자가 공전 주기를 갖는 두 개의 행성이라 볼 수 있어요. 그리고 교차할 때가 자주 있죠. 컴퓨터만이 아닙니다. 워즈와 저 모두 밥 딜런의 시를 좋아하고 여러가지를 생각하며 같이 보낸 시간이 대단히 많아요. 여기는 캘리포니아입니다. 스탠포드에서 제조한 신선한 LSD를 얻을 수 있어요. 밤에는 여자친구와 같이 해변가에서 잘 수도 있죠. 캘리포니아는 개방성과 실험의 정신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방성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러주죠.

밥 딜런 말고도 동양 신비주의에 관심이 있습니다. 동시에 좋아했었죠. 오레곤 주의 Reed 대학에 들어갔을 때 티모시 리어리(Timothy Leary)와 리차드 알퍼트(Richard Alpert), 개리 스나이더(Gary Snyder)에 대한 추종자들이 끊임이 없었어요. 인생의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한 지식인들의 의문도 끝이 없었죠. 우리나라의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Be Here Now"와 "Diet for a Small Planet"같은 책들을 읽었을 때입니다. 오늘날의 대학에서는 그런 책 찾기가 어려울 것이에요. 좋다 나쁘다가 아닙니다. 그저 달랐죠. 그 때는 정말 달랐어요. "Search of Excellence"의 자리에 "Be Here Now"가 있었으니까요.

PLAYBOY: 그렇다면그 때의 경험이 지금에 영향을 끼쳤다는 말씀이시죠?

JOBS: 모든 시대가 거대한 영향을 끼치죠. 60년대가 끝났다는 점은 사실입니다. 60년대를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이 원래 의도했던 것을 이루지는 못했다는 점 또한 사실이지요. 자기들의 원칙을 내던졌기 때문에 돌이킬 것도 그리 많지 않아요.그 시기의 이상주의에다가 현실성을 가미해가지고 45세가 되었을 때 유기농 가게의 카운터에 앉게 된 친구들이 많아요. 많은 옛 친구들이 그렇게 되어가죠.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그것이 정말 원한 것이 아니었다면 나쁜 것이죠.

PLAYBOY: 리드 대학 이후에 실리콘밸리로 돌아오셨는데요. 이제는 유명해진 말을 하셨더군요. "Have fun and make money."

JOBS: 맞습니다. 여행하고 싶었지만 필요한 자금이 부족해서 돌아왔죠. 일하러요. 광고를 봤더니 방금 하신 그 말이 떡하니 붙어 있었어요. 그래서 일하게 된 곳이 Atari입니다. 아이였을 때 말고는 그런 일을 해 본 적이 없었어요. 운이 좋았던지, 저를 불러서는 다음 날 고용하더군요.

PLAYBOY: Atari 초창기였을 텐데요.

JOBS: 제가 Atari 직원넘버 40번입니다. 매우 작은 회사였죠. Pong과 게임 두 개를 만들었는데, 제 첫 번째 일은 농구 게임과 관련해서 Don이라는 분을 돕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이 게임은 재앙이었죠. 이 농구 게임 말고도 하키 게임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모두들 단순한 필드 스포츠를 기반으로 모델을 만들었었습니다. Pong이 워낙에 성공했으니까요.

PLAYBOY: 왜 일하였는지는 확실했겠네요. 여행자금 마련이었으니까요.

JOBS: Atari는 유럽에 여러 가지 게임을 출시하였는데, 그 게임들의 엔지니어링에 결함이 있었어요. 저는 어떻게 고칠지 알아냈습니다만 누군가 직접 가서 해야했어요. 그래서 제가 자원해가지고 갔습니다. 그리고는 유럽 현지에서 휴가를 받아가지고는 스위스 쮜리히에서 인도 뉴델리로 향했어요. 인도에서 시간을 좀 보냈습니다.

PLAYBOY: 거기서 머리를 빡빡 깎으셨죠.

JOBS: 꼭 그런 식은 아니었는데요. 히말라야 산맥을 돌아다니다가 한 종교 축제를 보게 되었어요. 바바가 계셨죠. 성자를 바바라고 합니다. 이 축제도, 추종자들도 그를 위한 것이었어요. 음식 냄새도 좋았습니다. 오랫동안 좋은 음식 냄새를 못 맡아 봤었어요. 그래서 존경심을 표하고 점심을 얻어 먹었죠.

그런데 바바께서 제가 먹는 광경을 보더니, 바로 제 앞으로 와서 앉고는 크게 웃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는 영어를 몰랐는데, 제가 힌디어를 좀 알았죠. 그는 대화를 끌어가려 애썼고, 계속 웃어댔어요. 그리고는 제 팔을 잡고 산을 올랐습니다. 재밌었어요. 수 백 명의 인도인들이 이 남자랑 10초라도 같이 있어 보려고 수 만 마일을 왔는데, 밥때문에 들렀던 저는 바로 그와 함께 등산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30분 정도 올라가서 꼭대기가 나오자 정상에는 조그마한 우물이 하나 있었습니다. 제 머리를 빠뜨리더니 자기 주머니에서 면도칼을 꺼냈어요. 그리고는 제 머리를 깎았죠. 정말 놀랐습니다. 그 때 19살이었어요. 외국에서, 그것도 히말라야에서 이 괴상한 인도인 바바가 저를 끌어내가지고는 산 정상에서 이발을 하다뇨.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PLAYBOY:돌아와서는 무엇을 하셨나요?

JOBS: 돌아오는 것은 그저 귀국이라기보다는 문화충격에 가까웠습니다. 예. Atari가 전화했어요. 다시 같이 일하기를 원하더군요. 하지만 그러기 싫었습니다. 그랬더니 컨설턴트로라도 있으라고 제안해서 있게 되었어요. 그래서 워즈니악과 만났습니다. 워즈는 저를 Homebrew Computer Club 모임으로 데려갔어요. 거기는 컴퓨터 취미가들이 모이는 곳이었죠. 재밌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워즈니악은 거의 종교적이었습니다.

PLAYBOY: 그 때는 컴퓨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흥미가 있었나요?

JOBS: 클럽은 Altair라 불린 컴퓨터 킷 기반이었어요. 누군가 컴퓨터를 만들어갖고 와가지고 당신도 만들 수 있다고 하니 너무나 놀랐죠. 이전에는 불가능했잖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아무도 컴퓨터 메인프레임에 접속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어딘가에 운전해서 간 다음, 큰 기업에 들어가서 컴퓨터 접근을 해 주나 기다려야 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최초로 컴퓨터를 직접 구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Altair는 1975년 경에 나온 킷인데요. 400달러가 채 안 되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안 비싸게 나오기는 했지만, 아무나 쓸 수는 없었죠. 바로 그 이유때문에 컴퓨터 클럽이 나타난 겁니다. 같이 모이다보니 클럽이 되었죠.

PLAYBOY: 그 당시의 컴퓨터가지고는 뭘 할 수 있었나요?

JOBS: 그 당시에는 그래픽이 없었어요. 글자와 숫자 뿐이었습니다. 저야 프로그래밍, 간단한 프로그래밍에 매혹되어 있었죠. 초창기 컴퓨터 키트를 보면 타이핑도 칠 수 없었습니다. 스위치를 던지고는 캐릭터에 신호를 보냈죠.

PLAYBOY: Altair는 당시 가정용 컴퓨터의 한 개념이었죠.

JOBS: 가질 수 있는 컴퓨터의 일종이었을 뿐입니다. 그걸로 뭘 어떻게 할지 자기들도 몰랐어요. 처음으로 한 것이 랭귀지를 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프로그램을 작성할 수 있죠. 하지만 1~2년 후까지 실질적인 뭔가를 못했어요. 그러다가 장부계산같은 것에 쓰기 시작했습니다.

PLAYBOY: 그리고는 더 좋은 Altair를 만들 수 있겠다 싶었겠죠?

JOBS: 바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Atari에서 야근을 굉장히 많이 하고 있었어요. 워즈도 가끔 들어오라 했죠. Atari는 그 당시 스티어링 휠로 운전을 하는 최초의 운전 게임인 Gran Track을 출시했습니다. 워즈가 거기에 빠져들었어요. 엄청난 시간동안 그 게임을 해가지고는, 밤에 아예 그 게임을 워즈에게 맡겼습니다. 작업실에서 밤새도록 하게요.

뭔가 프로젝트에서 걸리는 것이 있다, 그러면 워즈가 게임을 잠시 멈추고 10분 정도 쉴 때 그를 불러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면 어슬렁거리고 들어왔죠. 그러다가 어느 날, 워즈가 비디오가 있는 컴퓨터 터미널을 한 대 디자인하였어요. 나중에 그는 마이크로프로세서를 하나 사가지고, 이 터미널에 끼웠죠. 그것이 바로 애플 I이 되었습니다. 워즈와 제가 인쇄회로기판을 스스로 만들었어요. 그게 애플 I의 기본이었죠.

PLAYBOY: 다시 말해서, 그냥 해 보자는 아이디어 차원이었다는 얘기죠?

JOBS: 예. 정말 그랬습니다. 만들어갖고 친구들에게 보여줄 수 있도록이요.

PLAYBOY: 그랬더니 그 다음 단계, 만들어서 팔아 돈을 벌자?

JOBS: 워즈와 저는 일단 1,300 달러를 모았습니다. 제가 폴크스바겐 버스를 팔고, 워즈가 HP 계산기를 팔았죠. 그래서 만든 돈입니다. 최초의 컴퓨터 스토어를 시작한 사람에게 물어봤어요. 만들면 파시겠냐고. 팔 수 있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그 때까지도 확실치는 않았던 거죠.

PLAYBOY: 워즈니악과는 어떻게 같이 일하게 되셨습니까?

JOBS: 디자인은 대부분 워즈가 했어요. 저는 메모리 부분을 도왔고, 제품으로 만들 때 도왔습니다. 워즈는 제품으로 만드는 데에 신통치 않았지만, 정말 뛰어난 디자이너였죠.

PLAYBOY: 그래서 취미가들을 위한 애플 I이 나왔나요?

JOBS: 물론이죠. 150대를 팔았습니다. 그다지 크게 판 건 아니지만, $95,000을 벌었어요. 사업성이 있구나 싶었죠. 애플 I은 인쇄회로기판에 불과했습니다. 케이스가 없었어요. 전력 공급 장치도 없었죠. 아직은 제품이랄 수 없었어요. 그저 서킷 보드였으니까요. 직접 나가서 트랜스포머를 사야 했습니다. 키보드도 물론이고요. [웃음]

PLAYBOY: 처음 시작할 때부터 비전을 갖고 했나요? 두 분 모두 얼마나 커질지, 컴퓨터가 어떻게 세상을 바꿀지 생각 못 하시고요?

JOBS: 예. 그런 생각은 못 했어요. 어떻게 될거라는 생각은 우리 모두 못 했어요. 워즈는 이해하기 위해 만들었죠. 워즈는 엔지니어링에 더 집중하였고, 제일 뛰어난 일을 수행했어요. 그 중 하나가 디스크 드라이브입니다. 애플 II를 가능하게 만들어준 주요 기능이죠. 저는 회사를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기업이란 무엇인가를 찾았죠. 워즈가 없었다면 할 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없었어도 역시, 할 수 없었을 거예요.

PLAYBOY: 시간이 흐르자 파트너쉽이 어떻게 변했나요?

JOBS: 워즈는 기업으로서의 애플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인쇄회로기판에 애플 II를 올려놓기 같은 데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한 대 갖고 있는 그대로 컴퓨터 클럽으로 가져갈 수 있었어요. 그는 일을 해냈고, 다른 일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다른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죠.

PLAYBOY: US Festival rock concert and computer show같은 곳에서 워즈니악이 천 만 달러 손실을 봤죠.

JOBS: 예. 저는 그 축제가 좀 아니다 싶었는데, 워즈는 강력하게 믿었나 봅니다.

PLAYBOY: 지금 두 분 관계는 어떠십니까?

JOBS: 가까운 사람과 일을 하고 같이 일을 경험해 나아가다 보면, 삶에 본드같은 것이 생겨납니다. 무슨 일이 있건 간에 본드로 붙어 있죠.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최고의 친구가 아니게 되더라도, 여전히 우정을 나눌 수 있는 뭔가가 생겨요. 워즈는 이제 자기 삶을 살고 있습니다. 5년 정도 애플에 안 왔어요. 하지만 그가 이룬 일은 역사를 이룰 겁니다. 그는 지금 수많은 컴퓨터 이벤트에서 연설을 하고 있어요. 그걸 좋아하죠.

PLAYBOY: 당신들 두 분이서 애플 II를 만들어내셨습니다. 애플 II가 컴퓨터 혁명을 실질적으로 시작시켰죠.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나요?

JOBS: 우리만이 아닙니다. 다른 분들도 계십니다. 물론 워즈니악이 애플 II의 로직을 설계하였죠. 정말 큰 부분입니다. 하지만 다른 부분도 많습니다. 전력 공급장치가 정말 중요했죠. 케이스도 마찬가지이고요. 애플 II의 의미는, 애플 II가 완제품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키트가 아닌, 나가서 구입할 수 있는 최초의 컴퓨터였죠. 처음부터 완전히 조립되어서 자기 케이스와 자기 키보그를 달고 나왔습니다. 앉아서 쓰기만 하면 되요. 애플 II 최고의 의미가 그겁니다. 실질적인 제품이죠.

PLAYBOY: 그래도 처음에는 취미가용 시장 아니었나요?

JOBS: 차이가 있죠. 애플 II를 쓰기 위해서 하드웨어 취미가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소프트웨어 취미가라면 몰라도요. 정말 큰 차이점이 그거입니다. 워즈나 저나, 컴퓨터를 직접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보다는, 컴퓨터를 갖고 놀아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애플 II가 바로 그런 목적을 위해 나왔습니다. 첫 해에는 3~4천 대밖에 못 팔았지만요.

PLAYBOY: 뭘 하고 있는지 자기 스스로도 모르는 사람들로서는 많이 팔았다는 말로 들리는군요.

JOBS: 정말 훌륭해죠! 1976년 차고에서 사업을 시작해가지고 20만 달러를 벌었습니다! 1977년에는 7백만 달러를 벌어들였죠. 정말 최고였어요!! 1978년에는 1,700만 달러를, 1979년에는 4,700만 달러를 벌었습니다. 이거 뭔가 되어간다는 느낌이 정말 들었죠. 1980년에는 1억 1,700만 달러를, 1981년에는 3억 3,500만 달러를, 1982년에는 5억 8,300만 달러를, 1983년에는 9억 8,500만 달러를 벌었습니다. 올해는 15억을 찍겠네요.

PLAYBOY: 수치를 다 외우시는군요.

JOBS: 그저 기준일 뿐입니다. 제일 멋진 일은 1979년도에 한 교실에 갔을 때였어요. 교실에 15대의 애플 컴퓨터와 그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는 아이들이 있었죠. 그런 일이야말로 정말 획기적입니다.

PLAYBOY: 그래서 획기적인 최신 제품이 나왔죠. 맥입니다. IBM의 숙적이 되셨는데요. 이 인터뷰에서 당신은 애플과 IBM만 경쟁하는 양 묘사하셨습니다. 하지만 두 회사를 합쳐도 시장의 60%밖에 안 되어요. 나머지 40%는 버린 셈인데요. Radio Shacks, DECs, Epsons 등이 있죠. 이들은 안 중요합니까? 잠재적으로 제일 큰 경쟁사랄 수 있을 A.T.&T.는 어떤가요?

JOBS: A.T.&T.는 정말 컴퓨터 사업에 뛰어들 겁니다. 당장 회사 안에서 대규모 변동이 일어나고 있어요. 보조금과 규율 하에서 서비스-지향적이던 회사가 이제 자유시장에서 경쟁-마케팅 회사로 바뀌어가고 있으니까요. A.T.&T. 제품은 그 자체로 고품질이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전화기부터 알아보세요. 당황스럽지요. 하지만 연구소만은 훌륭한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이제 그 기술을 어떻게 상용화할지를 배워야 할 겁니다. 또한 소비자 마케팅도 익혀야 하죠. 둘 다 하리라 생각하는데, 몇 년은 걸릴 겁니다.

PLAYBOY: 그래서 위협으로 안 보신다?

JOBS: 향후 24개월 내에 큰 위협요소가 되리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되겠죠.

PLAYBOY: Radio Shack은요?

JOBS: Radio Shack은 전혀 안중에 없습니다. 이들은 버스를 놓쳤어요. Radio Shack은 소매 모델로 컴퓨터를 팔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제 생각에 소매 모델은 2류급 제품이나 저가형 제품을 중고 매장 환경에나 어울립니다. 좀 아는 컴퓨터 구매자라면 별 생각 없이 Radio Shack을 지나칠 겁니다. 실제로 그들의 시장점유율은 줄어들고 있어요. 그들이 다시금 주요 업체로 회복하리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PLAYBOY: Xerox나 Texas Instruments, DEC, Wang은요?

JOBS: 제록스는 폐업했습니다. T.I.는 기대 이하이고요. DEC나 Wang같은 대기업들은 기존 고객들정도 팔 수 있지요. 개인용 컴퓨터를 진보된 터미널로 판다는 얘기입니다. 그들 사업도 줄어들고 있어요.

PLAYBOY: 저가형 컴퓨터 업체, 가령 Commodore와 Atari는 어떤가요?

JOBS: 어째서 애플 II나 매킨토시를 사야하는지에 대해 써 놓은 안내책자에 써 놓았는데요. 500달러 이하 짜리 컴퓨터로는 할 것이 별로 없다는 점을 사람들이 이미 깨달았다고 봐요. 싸구려는 더 원하는 이들을 속여서, 완전히 좌절시켜버리는 것이죠.

PLAYBOY: 더 작은 포터블형은 어떻습니까?

JOBS: 기자이거나 계속 돌아다니면서 노트를 적어야 한다면 OK입니다. 그렇지만 평균적으로는 그리 유용하지 않을 것이에요. 관련 소프트웨어도 전혀 없고요. 소프트웨어가 준비된다 하더라도, 새로운 기종이 약간 더 큰 디스플레이를 달고 나올 겁니다. 그러면 그 소프트웨어는 금세 구식이 되겠죠. 따라서 그들을 위한 소프트웨어는 아무도 작성하지 않고 있어요. 우리가할 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매킨토시의 파워가 책 크기의 하드웨어에 들어갈 때까지요!

PLAYBOY: Epson이나 다른 일본 컴퓨터 업체들은 어떻겠습니까?

JOBS: 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 일본 기업들은 해안가에 밀려온 죽은 물고기처럼 나오고 있어요. 엡슨은 시장에서 실패했습니다.

PLAYBOY: 컴퓨터처럼 자동차 산업 또한 일본에게 빼앗기고 있는 미국 산업 중 하나입니다. 미국 반도체 업체들이 일본에게 밀리고 있다는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JOBS: 일본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일본이 복제를 해서 내놓는다고들 하지만, 전 더 이상 일본이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재발명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미 누군가가 발명해 놓은 것을 갖다가 연구를 해서, 완전히 이해한 다음 내놓는 식이지요. 실제로 원래 발명자보다 더 낫게 이해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리고 그 이해가 끝나면 재발명을 합니다. 2세대 쯤 거쳐서요. 이 모델은 별로 변하는 것이 없을 때 잘 작동합니다. 가령 스테레오 업계나 자동차 업계를 예로 들 수 있겠네요. 그러나 목표가 빠르게 움직이는 경우, 일본인들은 대단히 어렵게 여깁니다. 재발명 주기가 몇 년 안에 일어나야 하니까요.

즉, 개인용 컴퓨터의 정의가 계속 변화를 거듭하는 한, 일본은 어려운 시기를 겪게 될 겁니다. 그 변화율이 떨어진다면 일본 기업들도 시장에서 힘을 낼 수 있겠지요. 그들은 컴퓨터 업계를 지배하고 싶어 합니다. 의문의 여지가 없어요. 국가적인 자부심으로 여기니까요.

제가 보기에 일본이 괜찮은 컴퓨터를 만들어낼 때까지 한 4~5년은 걸리리라고 봐요. 미국이 이끄는 산업으로 계속 이끌어 나간다면, 4년 안에 세계 최고 급의 제조업체가 되면 됩니다. 우리의 제조 기술은 일본과 동등하거나 앞서 있어요.

PLAYBOY: 그 목표를 위해 어떤 계획을 세우셨나요?

JOBS: 우리가 매킨토시를 디자인했을 때, 매킨토시를 만드는 선반 머신도 디자인을 했습니다. 2천만 달러를 들여서 컴퓨터 업계 최고의 자동화 공장을 건설하였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요. 기업들 대부분은 그런 공장 세우는데 7년은 걸립나다만 우리는 2년만에 만들 예정입니다. 1985년 말쯤 되면 완성될 테고요. 두 번째 공장을 2년 내에 또 세울 겁니다. 즉, 앞으로 3년 정도 지나면 세 번째 공장이 생기겠죠. 우리가 빠르게 주도할 유일한 방법입니다.

PLAYBOY: 일본과 경쟁만 하고 계시지는 않죠. 디스크 드라이브를 소니에서 수입하신다면서요.

JOBS: 일본에서 구입하는 부품이 많이 있습니다. 마이크로프로세서와 고도기술로 만든 RAM 칩, 디스크 드라이브, 키보드를 우리가 세계에서 제일 많이 소비합니다. 플로피-디스크 드라이브나 마이크로프로세서 디자인을 하지 않음으로써 소프트웨어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지요.

PLAYBOY: 소프트웨어에 대해 말씀 나눠 보죠. 그동안 보시건데 소프트웨어 개발의 혁명적인 변화는 무엇일까요?

JOBS: 물론이지요. 마이크로프로세서 상에서 프로그래밍 랭귀지를 올려 놓는 초창기 프로그래밍도 정말 혁명적이었습니다. VisiCalc는 컴퓨터를 사무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첫 번째 실질적인 프로그램이었기에 혁명적이었죠. 실제로 그것을 사용하여 편리해질 수 있으니까요. 이전에는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하기 위해 스스로 프로그래밍을 할 줄 알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쓸 사람은 많지 않죠. 1%나 될려나요? VisiCalc가 나온 덕택에, 정보에 대해 그래프를 그리는 능력이 중요해졌습니다. 로터스도 마찬가지이지요.

PLAYBOY: 독자들에게 별로 친숙하지 않은 브랜드가 많이 나오는데요. 설명해 주시죠.

JOBS: 로터스는 좋은 스프레드쉬트와 그래픽 프로그램을 결합시켰습니다. 로터스의 워드프로세싱과 데이터베이스가 제일 강력한 툴은 아니라 하더라도, 스프레드 쉬트와 그래픽을 하나의 프로그램 안에 통합시킨 것이야말로 로터스의 강점이에요.

차세대 혁명은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매킨토시 덕분이지요. 매킨토시는 리사의 기술을 쓸만한 가격으로 제공할 수 있습니다. 현재도, 앞으로도 혁명적인 소프트웨어는 계속 나올 겁니다. 나온지 몇 년 후에서야 가치를 진정 평가해 줄 테지만요.

PLAYBOY: 워드프로세싱은 어떤가요? 거기에 대한 언급은 없으셨는데요.

JOBS: 네. VisiCalc 이후에 워드프로세싱에 대해 알려드렸어야 했는데요. 워드프로세싱은 거의 모두가 필요로 하는 애플리케이션이고, 제일 이해하기도 쉽습니다. 아마 개인용 컴퓨터를 장만한 다음에 첫 번째로 쓸 프로그램이 그것이죠. 개인용 컴퓨터가 나오기 이전에도 워드프로세서는 있었습니다만, 개인용 컴퓨터에서 쓸 수 있는 워드프로세서는 경제적인 혁명 이상입니다. 개인용 컴퓨터 이전에는 VisiCalc같은 것이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PLAYBOY: 교육용 소ㅤㅍㅡㅌ웨어에도 혁명이 있었나요?

JOBS: 교육용으로 매우 좋은 소프트웨어가 많이 있습니다만, 혁명적이랄 것까지는 없습니다. VisiCalc같은 것이 없죠. 물론 나올 테지만 24개월 내에 그럴 일이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PLAYBOY: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는데요. 컴퓨터가 교육에 어떤 영향을 끼치리라고 보시나요?

JOBS: 컴퓨터 자체도 그렇고, 소프트웨어도 더 개발해야 교육을 혁명화시킬 수 있습니다. 애플 교육재단(Apple Education Foundation)을 설립하였고, 수 백만 달러의 현금과 장비를 교육 소프트웨어 작업을 하는 분들과 컴퓨터를 구입할 형편이 안 되는 학교에 투입시켰어요. 또한 매킨토시가 대학용 컴퓨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애플 II가 중고등학교에서 쓰인 것처럼요. 개인용 컴퓨터를 천 대 이상 설치할 대학교를 여섯 군데 정도 알아보았는데요. 실제로 찾아보니까 24개 대학이 원하더군요. 그래서 최소한 2백만 달러를 투자할 경우 매킨토시 프로그램에 참여시키겠다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이 24개 대학(아이비리그의 모든 대학들도 포함됩니다) 모두 동의했습니다. 그러니까 1년도 안 되어서 매킨토시가 대학 컴퓨터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올해 만드는 모든 매킨토시를 24개 대학에 뿌릴 수 있다는 얘기죠. 그런데 생산이 거기에 못 미칩니다. 수요는 분명 존재하지만요.

PLAYBOY: 하지만 소프트웨어가 아직이지 않나요?

JOBS: 몇 가지는 준비가 되어 있어요. 아직 준비가 안 된 부분도 있지만, 대학측에서 스스로 프로그램을 작성할 겁니다. IBM이 우리를 막으려 했었죠. 400명의 태스크포스가 만들어져서 대학에게 IBM PC를 뿌리려 한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대학은 꽤 날카롭습니다. 소프트웨어 투자가 하드웨어 투자 이상 나가리라는 점을 알고 있어요. 그래서 IBM 것과 같은 구식 기술에 소프트웨어 투자를 하고싶어 하지 않았죠. 꽤 많은 대학이 IBM의 제안을 거절하고 매킨토시로 갔습니다. 심지어 IBM이 제공한 자금을 매킨토시 구입에 쓴 경우도 있었어요.

PLAYBOY: 어느 대학인가요?

JOBS: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문제가 생길 테니까요.

PLAYBOY: 대학에 계실 때는 컴퓨터 시대가 아니었는데요. 당신과 당신의 친구들이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또 있을까요? 가령 정치계로?

JOBS: 대학에서 만나게 된 분들 중, 뛰어난 사람들은 아무도 정치로 뛰어들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에 정치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은 접었었죠. 이들 모두가 지금 직장인들입니다. 좀 웃기지만요. 인도로 하이킹을 갔다거나 인생의 진실을 찾기 위해 이곳 저곳을 다니던 바로 그들인데 말이죠.

PLAYBOY: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것이야말로 결국 쉬운 선택이 아닐까요?

JOBS: 예. 아무도 돈에 신경쓰지는 않아요. 매우 많은 돈을 버는 친구들이 많지만, 실제로는 별 신경 안 씁니다.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이 특별히 바뀌지도 않았구요. 뭔가 시도해 보고 실패도 하고 성공도 하면서 자라나는 것이지요. 다만 정치는 10년간 뭔가 절실히 시도해야 할 영역이 아니었어요. 아직 서른이 안 된 젊은이로서, 20대는 초조한(impatient) 시기라고 봅니다. 이 많은 이들의 이상주의가 정치 앞에서 좌절했을 것이에요. 그렇게 무디게 된 겁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뭔가 위기가 오리라는 생각도 해요. 90년대 초 쯤 되면 상당한 수준의 위기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봅니다.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이 이런 문제들을 수면 위로 드러낼 때가 되니까요. 이상주의와 실용주의를 정치 영역에 들여다 놓을 때가 그 때가 될 것이에요. 제일 잘 훈련받은 세대가 정치로 뛰어드는 겁니다. 어떻게 사람들을 고르고 어떻게 일을 할지, 어떻게 이끌지를 알죠.

PLAYBOY: 모든 세대가 그렇게 말하지 않나요?

JOBS: 이번에는 다릅니다. 기술혁명이 우리 경제와 사회에 매일매일 얽히고 있어요. 미국의 GNP(국민총생산) 50% 이상이 정보기반 산업에서 나오고 있고, 정치 지도자들 대부분은 그 혁명에 대해 배경지식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할 큰 결정들(자원 배분 방법, 교육 방법 등) 다수는 기술 문제를 알고 있어야 하고, 기술의 방향이 어디로 향할지 또한 알고 있어야 이룰 수 있습니다. 아직 시작도 안 되었어요. 가령 교육 부문에서 보면 국가적으로 당혹스러운 정도입니다.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리더쉽과 기술 주도를 잃게 될 경우, 정보와 혁신이 중심이 될 사회에서 미국이 2류급 산업 국가가 될 가능성이 있어요.

PLAYBOY: 교육 투자를 언급하셨는데요. 적자가 만연한 시대에 자금 마련이 쉽지 않잖겠습니까?

JOBS: 향후 5년간, 인류가 해 놓은 거 어떠한 투자보다도 거대한 자본 투자를 무기 분야에 하게 될 겁니다. 사회로서 우리는 돈을 어디에 투자해야 할지, 우리의 자본 투자로 인하여 적자를 과연 올려 놓을지를 결정해버린 것입니다. 그동안 기술적인 측면(가령 반도체 산업)에서 우리의 제일 가까운 경쟁국인 일본은 자신의 과세 구조와 전체 사회를 기술 투자 쪽으로 형성시켜 놓았어요. 무기 구축과 반도체 산업에서 주도권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사실 사이에서 어떠한 합의점도 없다는 느낌이 드실 겁니다. 이 위험에 맞서서 스스로를 교육시켜야 하지요.

PLAYBOY: 그 과정에 컴퓨터가 도움이 되리라 여기실 테지요.

JOBS: 글쎄요. 이야기 하나 말씀해 드리지

신고

 

펜지    친구신청

한줄요약은 무리인거 같고 다섯줄요약이라도 좀...

돌아온leejh    친구신청

ㄴ 인터뷰라서.. 이런 저런 질문을 하고 답하는 거라.. 요약은 좀 힘들 거 같아요.

알베르토VS대종    친구신청

잡스는 30여년 전에 이미 가정용 컴퓨터를 이용한 통신이 전화만큼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것이다라는 걸 미리 내다봤네...

정직하게살자!    친구신청

너무 길어서 스크랩 해둿다 나중에 읽어야겠네요.

국내에서는 스티브 잡스나 애플이나 무진장 까이지만, 기술창업을 희망하는 젊은이라면 그의 삶과 철학을 철저히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흑인농부    친구신청

저도 웬만하면 요약할려고 하는데 이건 애매하더라구요

WaFL    친구신청

읽어볼만한 글이네요. 85년 인터뷰인데 지금까지 만들었던 것들의 비전을 이미 저 때 다 가지고 있었던듯.
대단합니다.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