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 마이피

네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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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소설] 아파트 그녀(上) (0) 2018/02/23 AM 12:28

창문 사이로 희미한 햇살이 들어오면 월요일 아침이 시작된다. 월요일 아침! 이 얼마나 불쾌한 단어인가? 직장인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싫어할 시간이다. 그리고 그건 얼마 전까지 재하도 그랬다.

재하가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보았다. 아침 6시 30분. 지금부터 출근 준비를 시작해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여유로운 시간과 다르게 벌써 신발장 앞에 서서 몸을 풀고 있었다. 등에 가방을 메고 거울 앞에서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어디 이상한 곳은 없을까?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살펴보던 중 옆구리로 빠져나온 와이셔츠가 눈에 밟혔다. 즉시 벨트를 풀고 와이셔츠를 집어넣었다.

완벽해.

재하가 거울을 보며 미소 지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아침에 이렇게 웃고 있다니. 거울 속 자신의 미소가 새삼 낯설게 느껴졌다. 이제 익숙해질 법한데 여전히 그 모습이 신기했다. 예전 같았으면 알람을 몇 개를 해도 못 일어났는데 시간이 되면 저절로 일어날 뿐만 아니라 이렇게 준비를 하다니……

재하가 구두를 신고 현관문 손잡이를 잡았다. 손잡이는 겨울인 탓에 차가웠다. 그런 손잡이와 반대로 재하의 손은 반대로 뜨겁게 타올랐다. 후우.

진정하자.

눈을 감고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 두근두근. 짧은 심장 박동 소리가 재하의 귓가에 울렸다. 후우. 길게 숨을 내쉬고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재하가 천천히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재하는 이 복도를 좋아했다. 10초도 안 되는 짧은 거리였지만 늘 설레는 복도였다.

“안녕하세요.”

차가운 복도 끝에 재하를 맞이한 것은 따스한 인사였다. 재하가 소라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 그 모습을 온전히 눈에 담기 위해 대답하는 것도 까먹었다.

“재하씨?”

“아, 안녕하세요. 미안해요. 졸려서 잠깐 멍때렸네요.”

순간 재하가 고개를 흔들었다. 양 볼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분명 겨울이건만 한여름처럼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아아. 또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하. 맞아요. 아침이라 많이 졸리죠. 저도 오늘은 조금 피곤하네요.”

맞장구치며 웃는 소라를 멍하니 재하가 쳐다보았다. 길게 내려온 흑발이 그녀의 얼굴을 살포시 쓰다듬고 있었다. 맑은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었으며 그 옆으로 오똑 솟은 콧대가 자신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또 그와는 반대로 수줍게 이어지는 수줍은 보조개가 재하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재하가 그 모습을 보고 눈을 깜빡였다. 이러면 안 되지 하면서도 계속 그 모습을 보았다.

띵.

짤막한 기계음이 들리자 엘리베이터의 문이 스르르 열렸다.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소라가 재하를 보며 고개를 숙이자 재하는 먼저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리고 소라가 그 뒤를 따랐다.

지이잉.

기계음이 내면서 엘리베이터가 내려갔다. 엘리베이터 속, 이 공간은 온전히 소라와 재하의 공간이었다. 재하가 살짝 손을 들어보았다. 30cm도 안 되는 거리. 금방이라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소라가 있었다.

“저기……”

재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이야.

“네?”

재하의 말에 소라가 뒤돌았다. 두 눈이 자신을 향하자 재하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금이야. 지금이야. 속으로 그렇게 되새겼다.

“그게 다름이 아니라……”

“왜요? 무슨 일 있어요?”

하지만 다짐과 다르게 어느새 찢어진 고무장갑처럼 축 늘어졌다. 무슨 일? 무슨 일이라고 할 정도로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아주 간단한 얘기였다. 말 한마디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저녁에 시간 있어요?

은밀한 얘기도 아니고 스쳐 지나가면서도 할 수 있는 얘기였다. 가볍게 얘기할 수 있고 농담 삼아 얘기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불과하고 그 짧은 한마디가 나오지 않았다. 사람을 놀리듯 목구멍을 간질거리며 혀끝에서 맴돌았다.

“저녁에 그……”

“네. 저녁이요?’

자신을 쳐다보는 두 눈동자 앞에서 재하는 허무하게 무너졌다. 소라의 눈동자를 통해 비친 자신이 모습이 우스꽝스럽게만 보였다. 그러자 혀끝에서 놀던 말은 겁쟁이가 되어 목구멍을 타고 도망쳐버렸다.

“아뇨. 그냥 저녁에 많이 추울 것 같아서요. 어제 한파 경고 문자도 왔잖아요.”

“진짜요? 전 어제 문자 안 왔는데.”

핸드폰을 꺼내는 소라를 보며 재하가 고개를 저었다. 오늘도 날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신을 다독였다. 하지만 이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렇다면 그 날이라는 것은 대체 언제일까? 오늘도, 어제도, 그제도 날이 아니었다. 내일이면 그 날이라는 것이 될 수 있을까? 재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지나친 욕심을 내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주제넘은 욕심은 아닐까?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어디일까? 만일 그 날 일이 없었다면 이렇게 얘기할 일도 없었다.

“곤란하네요. 오늘 저녁에 회식 있을 거 같은데.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에. 운도 없네요.”

회식이라. 문득 재하는 그 날 일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회식이요? 그럼 오늘도 많이 마시는 건가요? 집에 들어갈 때 조심해요.”

“아니, 아니. 그때는 어쩔 수 없이 많이 마신 거에요. 평소에는 그 정도로 마시지 않아요!”

당황하며 손사래를 치는 소라를 보고 재하가 미소 지었다. 붉게 물든 소라의 얼굴과 함께 희미한 향기가 재하의 코끝을 쓰다듬었다. 희미하지만 기분 좋은 향기였다. 마치 그 날 느꼈던 향기처럼.

지금으로부터 한달 전 어느 밤. 재하는 여느 때와 같이 조용한 밤을 보내고 있었다. 일과가 끝나고 침대에 누워 음악을 듣는 것. 그게 재하가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조금 달랐다.

쾅쾅

한참 음악을 듣고 있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옆집 문을 두드리는 소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늦은 밤이었고 그 시간에 집에 찾아올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쾅쾅쾅

하지만 소리는 점차 커졌다. 무슨 일인지 헤드폰을 벗은 순간 재하는 상황을 단번에 파악했다. 부서져라 두드리고 있는 문은 옆집이 아니라 자신의 집이었다.

“누구세요?”

인터폰을 들고 얘기해봤지만, 상대는 대답이 없었다. 재하가 천천히 인터폰의 화면을 보았다. 한 여자가 공포영화 귀신처럼 문 앞에서 있었다. 한 손을 불끈 쥔 여자가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빨리 문 열어!”

그때였다. 여자가 고개를 들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얼마나 크게 소리를 지르는지 인터폰으로 들려오는 소리에 고막이 찢어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덕에 여자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재하가 여자의 얼굴을 보고 머리를 갸웃거렸다. 그 얼굴은 언젠가 보았던, 아니 꽤 자주 봤던 얼굴이었다. 바로 옆집 여자였다.

옆집 여자?

하지만 누구인지 알게 되었을 뿐 이 상황이 여전히 이해되지 않았다. 옆집 여자…… 이름도 모르는 여자였다. 이 시간에 왜 찾아온 거지? 재하가 턱을 괴고 화면을 쳐다보았다.

옛날 어렸을 때는 재하도 이웃들과 친하게 지냈었다. 가까운 이웃이 먼 사촌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그것도 옛말이 되어버렸다. 옛날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이제 이웃이란 그저 옆집에 사는 사람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것은 옆집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미적지근한 관계였다.

그렇다면 이 여자는 왜 온 것일까? 신종범죄인가? 재하가 화면 너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런 것 치고 일행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물론 화면 너머로 숨어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장기 매매 같은 얘기는 어디까지나 도시 전설에 불과한 것이다. 게다가 정말 그럴 마음이 있었다면 문을 강제로 뜯고 들어오지 저렇게 대놓고 문을 두드리지 않을 것이다.

자세히 보니 화면 너머로 여자의 행색이 기묘했다. 나사가 풀린 듯 비틀거리고 있었다. 위태하게 흔들리는 그 몸짓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그때였다. 여자가 고개를 푹 숙이고 화면 아래로 내려갔다. 털썩 소리가 들리고 재하는 즉시 인터폰을 내려놓았다. 뭐지?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어갔다. 지금 쓰러진 거야?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재하가 문 앞으로 달려갔다.

문 앞에 도착하자 아까와 달리 힘없는 두드림이 느꼈다. 핸드폰으로 112를 누르고 왼손에 꼬옥 쥐었다. 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누를 수 있도록 엄지손가락을 통화버튼에 맞춰 놓았다.

문손잡이를 잡고 재하가 그 자리에서 멈췄다. 지금 이렇게 하는 게 과연 좋은 행동일까? 차라리 경찰을 부른 것이 옳지 않을까? 그때였다. 어느새 문을 두드리던 소리가 잦아졌다. 재하는 조용히 문에 귀를 대보았다. 그러자 끄윽, 끄윽. 희미한 신음이 문 너머에서 흘러 들어왔다.

끼이익

재하가 천천히 문을 열자 옆집 여자가 보였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재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입가로 침을 질질 흘리면서 무슨 말을 하려고 했으나 이내 고개를 떨구고 침을 뱉었다.

“저기 괜찮아요?”

재하가 여자에게 다가가자 코를 찌르는 알코올 냄새에 표정이 일그러졌다. 여자는 멍한 눈빛으로 재하를 쳐다보았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힘겹게 숨을 내뱉었다.

“뭐야 아저씨. 누군데 여기 있어?”

“네? 여기 우리 집인데요?”

“됐고. 나와봐. 왜 문을 막고 있어.”

“저, 저기요?”

당황한 재하를 두고 여자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마치 제집이라도 되는 마냥 재하의 집으로 들어왔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재하는 옆에서 그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재하가 곧장 여자의 뒤를 따라갔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여자의 신발과 양말이 바닥에 뒹굴고 있었고 여자가 침대에 쓰러져 얼굴을 이불에 박고 있었다.

“됐고. 잘 테니까 그 뭐시기냐 아침되면 깨워줘.”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 눈을 감아버렸다. 그 후 몇 번이나 그녀를 깨우려고 했지만 아무런 소용 없었다. 이따금 이상한 소리를 낼 뿐 몸을 움직이지도 않았다.

마침내 재하는 포기하고 바닥에 떨어진 양말과 신발을 가지런히 놓았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있는그녀를 바라보았다. 빨갛게 볼이 달아오른 채 자는 모습이 그리 밉게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짙은 술 냄새 사이로 희미한 향기가 재하의 코끝을 간지럽혔고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만났다.

“일층 도착했어요. 안 내려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문 너머로 소라가 손짓하고 있었다. 재하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재하는 뒤를 힐끗 돌아보았다. 회사에 있는 엘리베이터와 비슷한 엘리베이터였다. 분명 같은 엘리베이터였지만 달랐다. 회사에서는 5층에서 1층 가는 것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계단으로 갈까 생각 중인데 집에서는 15층에서 1층이 순식간이었다.

두 사람은 아파트 정문을 향해 나란히 걸어갔다. 그렇게 걸어가는 도중 재하가 힐끗 소라를 쳐다보았다. 어깨가 스쳐 지나가고 불어오는 바람에 손이 닿을 듯한 거리였다. 출근길이 아니라 마치 주말 산책로를 걸어가듯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나저나 오늘 많이 피곤한가 봐요? 아까도 멍하니 있던데.”

“그러게요. 오늘 왠지 계속 그러네요.”

“조심해요. 그러다 사고라도 나면 큰일이잖아요.”

“에이. 괜찮아요. 걱정 마요.”

재하가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서서히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할 수 없었다.

정문에 도착한 두 사람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럼 오늘도 힘내세요.”

“소라 씨도 힘내요.”

하루 종 가장 기다렸던 시간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시간이라면 가장 아쉬운 순간은 지금이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발걸음이 아까와 달리 무겁기만 했다.

재하가 뒤돌아 소라를 보았다. 멀어져 가는 모습에 눈길을 떼지 못했다. 어떨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애초에 가는 방향이 다르니 같이 갈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걸 안다고 마냥 괜찮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오늘은 말했냐?

점심 식사 후 커피를 마시던 중 동기가 말했다. 싱글벙글 웃고 있는 동기는 마냥 즐거워 보였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연애라는 것이 당사자는 심각해도 남의 처지에서 보면 그만한 재미가 없을 테니까.

“아니. 오늘도 꽝이지.”

재하가 어깨를 으쓱하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쓴 아메리카노가 입안에서 맴돌았다.

“에휴. 그럼 그렇지.”

동기가 혀를 차자 재하가 어깨를 움츠렸다. 여전히 쓴 맛이 입안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됐어. 다음에 얘기하면 되지.”

그러자 동기가 눈살을 찌푸리며 재하를 노려보았다.

“다음? 다음 언제?”

“뭐, 내일이나 물어보지.”

“야야. 내가 그 소리만 벌써 몇 번째 들었는지 아냐?”

“나도 알아. 근데 막상 말이 나오지 않는 걸 어떡하냐?”

재하가 머리를 긁적였다. 달리 말할 사람이 없어서 동기한테 말한 것이었는데 돌아오는 것은 진심 어린 조언보다 구박에 가까웠다. 재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동기 말처럼 쉽게 말할 수 있었으면 진작 말했겠지.

“한심한 놈. 그러다 누가 먼저 데려가면 어떻게 할 거냐?”

“뭐?”

그 순간 재하의 머릿속에 이상한 상상이 차올랐다.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소라의 모습이 눈 앞에 선했다.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 남자와 함께 있는 모습이, 손을 잡는 모습이, 키스 하는 모습이, 행복해하는 소라의 모습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점점 재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 미안. 말이 너무 심했나?”

눈을 뜨자 동기가 조심스레 재하를 바라보고 있다. 재하는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괜한 생각하지 말자. 그렇지만 한번 떠오른 상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근데 말이야. 너 그 여자 남자친구 없는 건 확인한 거 맞지?”

“응?”

그 순간 재하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야 설마?”

“아…… 망할……”

재하가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에라 멍청한 놈.”

그 모습을 보고 동기가 혀를 찼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출근길과 다르게 몸이 축 늘어지는 길이었다. 일이 고된 탓이었을까? 매일 하는 일이 같은 일인데. 아니. 이미 알고 있었다. 일이 고된 것이 아니라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

아파트 정문에서 멈춰서 재하가 고개를 돌렸다. 소라가 걸어가던 길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서서히 멀어지는 그 모습이 떠올랐다.

‘너 그 여자 남자친구 없는 건 확인한 거 맞지?’

망할. 가장 중요한 것을 물어보지 않았다. 얼굴을 감싸고 한숨을 짙게 토해냈다. 어째서 그런 중요한 걸 물어보지 않았을까? 어째서 그저 없으리라 믿었을까?

문득 재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과연 나는 그녀에게 남자로 보이는 걸까? 어쩌면 단순한 이웃에 불과하지 않을까? 이 모든 것이 단순한 나의 희망이 아닐까?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어쩌면 그동안 우쭐거렸을지도 모른다. 그저 우연히 친해진 것인데 혼자 들떠서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재하가 고개를 들었다.

“당신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작게 중얼거렸지만 차가운 바람 만이 귓가를 맴돌았다. 재하가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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