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곱슬머리다. 그냥 곱슬이라기엔 조금 섭섭한가? 휜 각도가 그렇게까지 극적이진 않으니 반곱슬이라 해야 할까? 그냥 곱슬이라고 해야 하나? 여튼 꽤 꼬여있다. 꼬여있는 각도가 그리 작지 않다. 배배 꼬여있는 내 성격의 어떤 부분처럼, 평소엔 머리를 그리 길게 유지하지 않으나... 지금 거의 내 인생 최고의 머리 길이를 유지하고 있는데, 짧을 때엔 꼬일 것이 없으니 이 정도로 꼬인 줄을 몰랐는데, 지금 보니 어쩜 이렇게까지 꼬일 수 있는지 신기하다. 배배 꼬여버린 내 성격처럼.
반곱슬을 가진 많은 이가 그렇듯 어릴 땐 나도 꽤 이 머리가 싫었다. 머리를 짧게 유지하니 딱히 좋을 이유는 없었고 그 짧은 머리가 꼬슬거리면 얼마나 꼬슬 거린다고 둘리에 나오는 마이콜에 빗대며 날 놀리던 친구도 있었다. 물론 그땐 내가 쭈구리였어서 놀림을 받기 쉽기도 했지만. 딱히 내가 곱슬머리인 것을 내가 좋아할 이유는 딱히 없었고, 좋지 않을 이유는 꽤 많았다.
군대 가기 전 20대 초반에는 이 컴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꽤 적극적인 조치를 취했다. 어릴 때부터 발랑 까져서 이미 이성에 눈 뜬 지는 한참 지났지만 굉장히 적극적으로 눈을 부릅뜨고 다니던 때이기도 했고, 외모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고 다녔다. 매직 스트레이트를 달마다 하고 다녔다.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그때 당시에도 가격이 그리 저렴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미용실 갈 때마다 대략 8만 원쯤 썼던 걸로 기억하는데....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될 수 있겠냐마는... 그때 당시에는 꼿꼿하게 머리가 펴져 있어야만 내 자존감도 구김 없이 펴질 수 있었다. 지금은 그때 만나던 친구도 꽤 흐릿하지만, 차라리 그 돈 아껴서 만나던 친구 밥이나 더 맛난 걸로 사줄걸. 거의 20년 전이니... 한 끼 4천 원이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을 때인데. 그냥 그땐 그랬다. 얼굴도 그대로, 내면도 그대로인데 고작 머리 펴진 것 하나로 그렇게 만족스러울 수가 없었다. 머리가 꼿꼿하게 펴진 거울 속의 나는 적어도 나에겐 세상에 몇 없을 미남이었다. 머리에 꼿꼿함이 사라지면 내 자존감도 꼿꼿해지지 않는 무엇처럼 고개를 숙였다. 필요할 때 꼿꼿해지지 않은 적이 없어서 잘 모르는 감정이지만서도.
군대에 가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머리에 연연하지 않게 된 게. 거긴 다 똑같으니까. 거기엔 온통 빡빡이 밖에 없었으니까. 전역해서도 굳이 머리를 펴려고 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땐 좀 더 간편하게 그냥 중요한 일 있을 때만 고데기만 몇 번 쓰다가.. 귀찮아서 안 쓰게 됐었다. 그때도 항상 나 좋다는 애는 있었으니까. 뭐 굳이 외모에 신경을 쓰든 쓰지 않든 나 좋다는 친구가 있는데... 굳이 귀찮게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는 마음이 들기도 했었던 것 같다. 내가 곱슬이든 곱슬이 아니든 남이 보기엔 큰 차이가 없다는 걸 알아채기도 한 것 같고. 내가 가졌던 컴플렉스가 더 이상은 컴플렉스가 아니게 되었다. 더이상 그것이 싫지 않아졌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인가, 내 머리가 좋다. 꽤 맘에 든다. 머리를 넘기면 넘기는 방향대로 슥슥 밀린다. 딱히 어떤 스타일을 잡거나 왁스 등으로 모양을 내는 건 아니지만 관리하기 편하다. 관리 안 해도 한것같은 너낌적인 너낌. 머리를 안 자른지 거의 넉 달이 돼 가는데 머리가 꽤 만족스럽다. 개털 같은 옆머리는 빼고. 안 그래도 지저분한데 마스크도, 안경도 계속 쓰고 있으니 어느새 흰머리가 꽤 나서 염색을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옆머리가 이리저리로 자유분방하게 튀며 한 가닥 한 가닥이 개성을 뽐내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주인 닮아 어찌나 자유분방한지... 옆머리만 내가 대충 잘라볼까 고민하기도 했는데 흐음... 그냥 고기 자르는 가위로 잘라도 되나? 조지면 어쩌지? 지금은 미용실도 못 가는데 하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따르며 가위에서 시선을 거둔다. 물론 무증상 감염자가 ㅁ낳아 언제라도 안심할 수는 없지만.. 확진자 열 명 언저리일 때 미용실을 다녀왔어야 했다... 언제 미용실 갈 수 있으려나. 항상 가면 짧은 머리 사진 세 개 중에 가운데 길이를 가리키며 이걸로 해주세요 했었는데 이번엔 좀 다른 주문을 해 볼 거다. 지저분한 것만 다듬어주세요...라고 ㅎㅎㅎ
망쳐도 한 번 더 자르면 된다. 내가 가는 데는 육천 원이니까!!!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