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 ‘강신주의’를 붙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으나 일단 그냥 붙이기로.
종이책을 읽었으나 사진은 패스.
이떤 이론이나 사실을 전하는 글을 쓰는것도 어렵지만, 자기의 경험이나 감정등을 전하는 글을 쓰기는 훨씬 더 어렵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문자로 바꾸는것은 내가 해본 일 중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다. 가장 어려운일은 싸운 상대에게 미안하다고 먼저 말하는 것. 알랭드 보통이 은 자기의 책 낭만적연애와 그 이후의 일상에서 이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바다흐샨의 부상당한 아이에게 피를 나눠주거나 칸다하르의 어느 가족에게 물을 날라다 주는 것이 아내에게 몸을 기울이고 미안하다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쉬울 듯하다.’ 바다흐샨이나 칸다하르가 뭔지 몰라도 그가 말하는 감정이 뭔지는 정확히 알 수 있다. 어디 분쟁 지역 중 하나겠지.. 여튼, 상대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것은 정말 많이 어렵다.
감정을 문자로 바꾸는것이 어려운 이유는 몇 가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가장 큰 것 중 하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을 정확히 구분하기 어렵다는 거다. 이 책은 그것들을 구분하는 데 조금 도움을 준다. 감정 중에는 자신감과 자존감처럼 구분이 어려워 혼용하는 경우가 많고 여러가지 감정을 한번에 느낄 때도 많다. 때로는 한 가지 대상에 대해 서로 반대되는 양가감정을 느낄 때도 있다. 양가감정의 예로는 적절하지 않으나 다들 어릴적에 이런 경험이 있을거다.슈퍼에서 몰래 물건 하나를 집어들고 나온 경험. 이러면 안되는데 하는 양심. 도덕성? 이걸 뭐라 표현해야하지? 책을 한번 더 읽어야 하나. 여튼 그런 감정에 따라오는 배덕감. 하면 안되는 짓을 했을떄 느끼는 배덕감과 물건값을 지불하지 않고 나왔다는 경제적 이득에 따른 쾌감. 성공했다는 만족감 주인이 못봤다 역시 나는 똑똑하다 라는 우월감. 이런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게 그걸 풀어서 글로 표현하는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어릴 적에 몇번에 걸쳐 저질렀던 그 행동은 결국 걸려서 슈퍼에서 손들고 서있다가 부모님이 오셔서 사과하시고 물건값을 지불하시고 나서야 끝났다.
다른 이유로는 내 마음을 깊게 들여다보기 전에는 내 마음이 뭔지 알기 어려울 떄가 있다는 거다. 나미야잡화점의 기적에 나오는 달토끼의 경우와 같이. 나미야 잡화점의 달토끼는 올림픽 출전과 애인의 간병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인데, 애인도 주변도 모두 운동에 매진하라고 한다. 본인은 애인의 간병을 하고 싶은데. 그 상황에 대해 혼자 고찰을 하고 외부의 자극도 받다 보니 자기의 감정을 깊게 들여보내주고 사실은 진짜 고민은 그 두개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인 것이 아니라, 애인의 간병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보다 뒤떨어지는 자기의 재능의, 현실의 한계를 깨닫고 운동을 계속 해야하나 말아야 하는 고민에 빠졌던 거다. 이런 내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말 하기 싫은 내 마음을 인정하는것도, 알아차리는것도 모두 쉽지 않다. 달토끼는 결국 일본의 올림픽 보이콧으로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했다. 보이콧을 하지 않았더라도 참가 할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은 인간이 감정 중 48가지를 유명한 철학자 스피노자의 생각에 덧붙여 작가가 해설한 책이다.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가 48개보다 더 있으려나? 헤아려 보지 않아 모르겠으나 내 어휘력이 비루하든, 실제로 그런 단어가 없든 간에 내 감정을 단어로 표현하기 곤란한 경우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예를들면 세상에서 제일 뜻이 긴 단어인 'MAMIHLAPINATAPAI' 이 단어의 뜻은 '서로에게 꼭 필요한 것이면서도 자신은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어떤 일에 대해서 상대방이 자원하여 해 주기를 바라는, 두 사람 사이에서 조용하면서 긴급하게 오가는 미묘한 눈빛'을 말한다.많이들 봤겠지만 이 단어의 느낌을 언제 느끼느냐는 굉장히 짧게 표현할 수 있다 '조장하실분?'. 그러나 나는 이단어를 표현하는 한글 단어를 본 적은 없다.
이 책의 해설은 가르치거나 자기의 생각을 강요하는 느낌이 아니라, 어려 사례를 들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예를 들면 첫 감정인 비루함에 대해 간단한 설명과 함께 스피노자가 정의한 한 줄을 언급하고 그 감정을 느끼는 소설 속 주인공의 상황과 감정을 대략적으로 해설하는 식. 독서 가이드 같은 느낌이기도 하고 친절하고 읽기 편하다. 차례를 먼저 슥 훑어보고 당연히 31번 욕정부터 봤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
이런 책들은 으레 책의 톤이 작가가 가르치는 느낌... 젠체하는 느낌으로 쓰여지고 내가 받아들이기 쉬운데 이 책은 그런 거 없이 깔끔하게 쓰여졌다. 다만 몇 가지 감정들은 내가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이걸 이렇게 설명한다고? 이건 이런 느낌이 아니라 이런거에 더 가까운거 아닌가? 하는 생각. 노자형... 노자형이라니까 중국의 노자형이랑 헷갈리는데... 스피노자형...은 느낌이 안사네 여튼 스피노자는 4백년 전 사람이라 감정의 정의가 약간 달라졌을 수도, 혹은 내가 반골 꼴통이라 책에 있는 내용을 순수하게 인정하지 않고 꼴통 부리는걸 수도 있겠다. 스피노자도 강신주도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감정에 대해 생각도 많이 한 사람들일 텐데. 이런 느낌을 받을 때마다 책에 손이 안 갔으나 여튼 전체적으로 재미있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