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셀렉트로 읽음.
정신과 의사들이 쓴 책들은 공통적으로 삶에 대한 태도에 관한 내용이 많이 쓰여있다.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을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읽은 것들은 공통적으로 그렇다. 당연하다면 당연할 것이다, 그들만큼 남들의 삶을 들여봐야 할 직업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니. 그네들이 쓴 책엔 삶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본인은 어떻게 바라보는가. 본인은 어떻게 살았고 어떤 상황에선 이런 감정이 들었었다. 내가 그런 행동이나 삶에 태도를 가지게 된 이유의 기저에는 그런 것이 있다…. 같은, 뭐 이런 내용들이 거의 공통적으로 들어간다. 삶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내용들이나 자기 자신에 대한 신변잡기적인 내용들. 공통적으로는 글을 조금… 따뜻하게 쓴다는 점이 있을 수 있겠다. 이 책도 그렇다. 팍팍한 삶에 어느 정도 위로가 될 내용들. 다만 이 책은 여러 해에 걸쳐 팟캐스트를 진행한 내공이 느껴질 만큼 잘 쓰여졌다. 그리 두껍지도 않아 부담 없이 읽기에도 좋다. 남들은 이런 내용에 위로를 받을 것 같기도 하고, 실제로 다른 사람들이 쓴 리뷰를 보면 많이들 위로를 받았다고 하는데 왜 나는 그런 위로를 못 받을까. 난 왜 이렇게 메말랐을까.
전체적인 책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 책의 각 부분에 대한 평가는 꽤 많이 갈릴 수 있을 것 같다. 나 개인적으로는 신변잡기적인 내용이나 수련의 시절에 관련한 내용이 쓰여진 부분은 그리 공감하며 읽지 못했다. 왜 작가가 정신과를 선택했느냐.. 하는 중요한 부분인데, 딱히 공감보다는 그냥 그랬구나. 그런 느낌. 작가가 진행 중인 팟캐스트에 관련해서도 꽤 많은 부분이 할애됐는데, 그 부분 역시 어떤 공감이나 책을 읽는 어떤 즐거움을 느끼진 못했다. 그냥 검은건 글자요 하얀 건 종이로다... 하는 느낌. 다행히 내용 자체가 어렵지는 않고 경험에 기반한 글이라 구어체로 쓰여있어 글 자체가 술술술 읽힌다. 그런 부분이 아니라 환자를 잃게 되는 부분과 정신과 의사로서 본인의 한계를 느끼는 부분에는 많은 부분 공감이라고 해야 할까. 여튼 그런 감정을 느끼며 훨씬 더 즐겁게 읽었다. 그런 부분을 즐겁게 읽었다니까 좀 이상한데…. 책 읽는 즐거움을 느끼며 읽었다고 정정.
정신과에서 환자를 '잃는'다는 것은 다른 과와 성격이 전혀 다를 것이다.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이 아니라, 일반적인 의원급의 병원에서는 다른 과라고 하더라도 환자를 잃는 일은 그리 많지도 않을 거고. 정형외과를 규칙적으로 다니던 나 같은 사람이 디스크로 사망하거나 감기 때문에 이비인후과에 갔다가 사망하는 일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닐 테니까. 그러나 정신과에서 환자를 '잃는' 것은... 역시 흔한 일은 아니겠으나 의원급 병원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정신과 의사들이 아무리 일을 일로 대하려 한다고 해도, 나 같은 날라리 영업사원이 고객사 한 군데 '잃는' 것과, 환자를 '잃는'것은 당연히 무게가 다를 것인데, 그런 부분이 굉장히 와닿게 잘 표현되었다. 돕고 싶으나, 도울 수 없는 그런 어려움. 일적으로 만난 사람이나 완전히 일로만 볼 수는 없는 상황에 대한 감정이입.
그런 정신과 의사로서의 한계가 표현된 부분을 특히 더 흥미롭게, 재미있게 읽었다. 정신과에 대한 인식의 한계도 그렇고, 병원 운영에 관한 어려움 부분도 뭐…. 많이 공감하긴 어렵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볼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은 공감하기 어려운 이야기일지 몰라도 정신이 아파서 실제로 몸이 아파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보게 됐다. 한동안 가슴이 답답하고 숨을 쉴 때마다 폐를 칼로 후비는 느낌이 들어 원인을 찾아 헤맸었으나, 심증이 가던(기존에 병력이 있던) 심혈관계 쪽에서는 원인을 찾지 못하고 몇 군데 병원을 돌아 본 끝에 아픈 데가 몸이 아니라 마음일 수 있다는 소리를 듣고 정신과를 갔었다. 몇 가지 문진과 간단한 상담 후에 불안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손톱 반의 반만한 약을 처방받아 먹자마자 씻은 듯이 나았던 경험이 있었는데,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참 그땐 어떻게 그렇게 빡빡하게 살았었는지... 그래도 그때로 돌아갈래? 하면 돌아가야지... 돌아가서 레버리지를 만땅 써서 애플삼전 몰빵한 다음 테슬라를 사고 판돈으로 아파트를... 허헣…..
정신과 의사가 쓴 책 중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은 아니지만, 두껍지도 않고 꽤 즐겁게 읽었다. 사서 보기는 조금 애매하다고도 생각하지만... 본인이 마음이 아픈 사람이 아니라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는 분은 한번 읽어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