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
오늘은 드디어 백신을 맞는 날이다. 몸상태는 꽤 좋다. 어제 늦게까지 책을 본 탓에 조금 늦게 잠에서 깼으나 상쾌하게 깼다. 책이 왜 이리 두껍고 등장인물은 왜이리 많은 건지. 그리 큰 재미는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여튼 꾸역꾸역 읽고 있다. 책을 읽지 않으면 뭘 해야 할까…. 반쯤은 두려움에 읽는 것 같다. 책을 읽는다고 당장 내 인생이 바뀌는 것은 전혀 없지만, 무엇을 읽든 읽지 않는 것 보다는 읽는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꾸역꾸역 읽는다. 일어나자마자 아들이 내 위에 뛰어들어서 놀아달라고 한다. 귀엽다. 그러나 힘들다.
8:20
평소엔 7시 40분에서 8시 사이엔 준비를 끝내고 나가는데, 아침에 아들과 놀아주는 시간이 길어지니 체력적으로 힘들다. 아침시간에 집에 더 있어봐야 아들 학교가는시간 방해만 하게 될 것 같기도 하고, 몸으로 놀아주는것도 힘들다. 집에서 한발짝도 나가기도 전에 나는 이미 지쳤다.
8 : 30
병원에 도착했다. 당연히 일등일줄 알았는데, 내가 일등이 아니다. 노인분 한분이 계시고,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남자와도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간호사들도 아직 출근 전이다. 안면이 있는 간호사와 인사를 하고 시간이 되길 기다린다. 9시도 되기 전에 병원은 점점 붐비기 시작한다. 얀센 외에 AZ접종대상자인 노인들도 많이 보인다. 보호복에 비말이 튀는것을 방지하기 위해 얼굴 전체를 투명한 판으로 막은 간호사가 와서 간단히 설명을 해 주고, 조사지를 작성하고 진료 보고 맞을거라며 진료실 앞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9:20
진료는 별거 없었다. 밖에서 잰 체온을 다시 재고, 귀랑 코, 입 안을 한번씩 확인하고, 이미 간호사가 조사한 간단한 문진들을 반복한 후, 별 문제가 없으면 백신을 맞는다. 별 문제는 없었으나, 왼쪽 귀 안쪽에서 작은 상처가 발견됐다. 헉 저거 뭐지 주사 못맞는건가 하고 쫄았으나 귀 세게 파지 말라는 간단한 주의만 받고 주사를 맞으러 간다. 나보다 늦게 온 사람이 먼저 진료를 본 것 말고 빡치는건 없었다, 서류 넘어갈때 순서가 좀 잘못 넘어간 듯. 잠시 기다리니 호명한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하는데 간호사가 좁은 길을 자기의 몸으로 막고 있다. 들어가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리니 뻘쭘해하며 비켜준다. 자리에 앉는다. 쫄린다. 인터넷에서 본 후기가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아프지 말길 아프지 말길…. 그러나 주사는 아팠다. 내가 맞아본 주사 중 가장 아픈것은 아니지만 꽤 아픈 편. 맞은곳이 굉장히 묵직해진다. 이 느낌은 대략 5분정도 지속됐다. 의사가 아프냐고 물어본다. 아쒸 당연히 아프지 이양반아… 얼굴 보면 몰라?? 라고 하고 싶지만 살짝 웃으며 네 꽤 묵직하네요 라고 대답한다. 여긴 내가 자주 오는 병원이고, 내 평판은 소중하니까. 주사를 맞고 나니 20분이나 병원에서 대기하고 가야 한다고 한다. 길다. 난 이미 병원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보냈다. 주의사항을 몇 개 듣는데.. 다른것은 귀에 안 들어오지만 씻지 말라는 말이 귀에 콱 박힌다. 이 날씨에 그게 가능한가….? 벌써 꿉꿉한 기분이다. 원래 자주 씻는 편은 아니지만, 씻지 말라니 더 씻고싶다. 사춘기가 지나간지 좀 됐는데 이놈에 반항기는 없어지질 않는다.
9:40
병원에서 인제 가도된다고 한다. 요 몇일 뒷목이 꽤 아프고, 어제 저녁에는 뒷목에 작은 근경련이 계속 있어서 바로 위층에 있는 자주 가는 정형외과에 가서(음식점은 단골이라고 하는데 병원은 단골이라는 말이 잘 안나온다) 주사를 놔달라고 했으나 일주일은 안 놔주고 그 이후에도 이주까지는 상태 봐서 심각하지 않으면 안 놔준다고 한다. 안 놔줄 것 같긴 했는데… 뭐 그래 니가 의사지 내가 의사냐… 빠른 포기 후 1층 약국으로. 타이레놀을 사려고 했으나 못 샀다. 약국에 없다고 같은 성분의 다른 약으로 준다고 한다. 두 알씩 먹으랜다.
10:20
사무실에 도착했다. 사무실에 나가지 않고 쉬어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 없지만 어제 일이 너무 많았고, 그것에 대한 피드백들을 체크하고 팔로우 업 해야 한다. 앉아서 설렁설렁 업무를 시작한다. 옷을 차려입지 않고 편한 티셔츠에 반바지, 맨발에 크록스를 슬리퍼처럼 신고 회사에 출근하는 것은 꽤 해방감을 주는 일이다. 평소엔 깔끔한 와이셔츠에 양복바지, 구두 풀 세트를 무슨 법 처럼 입고 출근하는데, 이렇게 입고 오니 뭔가 법칙에서 해방된 느낌이다. 자리에 앉아있는 것만으로 이미 조금 즐겁다. 가끔은 이래야 할까 싶다. 물론 이런 사유가 없이는 나 스스로 거의 그러지 못 하겠지만.
11:20
급한 업무는 얼추 보고 인터넷을 잠깐 하는데 누가 올린 타이레놀(그사람도 타이레놀을 못 구하고 같은 성분의 다른 약이었다) 내가 산 타이레놀 용량이 매우 적다. 다른 약에 비해서 거의 절반. 왠지 손해본 느낌이다. 타이레놀 손해봣어요옷…!
11:30
점심시간. 오늘은 원래 삼겹살을 배달시켜 먹으려고 했었는데, 사무실에 원치않는 분이 오셔서 배달삽겹살은 보류. 아플수 있으니 든든히 먹으라는 말들을 많이 봐서 가장 든든히 먹을수 있는 점심 메뉴 부대찌개로 고고. 밥 먹으며 다른 직원들에게 타이레놀을 못 구했다고 하니 새로 들어온 막내가 저 있는데 좀 드릴까요? 시전. 다들 타이레놀 못 산다는데 어디서 샀니??? ‘편의점이요’ 아… 약국엔 없어도 편의점엔 있을 수 있겠구나. 편의점가서 타이레놀 달라고 말은 보통 잘 안 할 테니까.
13:15
점심 먹고 업무를 보고 있는데 인제 슬슬 두통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집에 갈 시간이 됐나 보다. 평소에 아픈적이 없던 왼쪽 관자놀이 쪽으로 편두통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약 맞은지 네 시간 째. 퇴근해야겠다. 많이 아프면 운전도 못 할 지경이 된다는데, 그러기 전에 가야한다. 다행히 퇴근은 멀쩡히 했다. 왼쪽 팔에 맞았는데, 운전하면서 창문에 대고 있는 왼쪽 팔꿈치 부분이 욱신거리기 시작한다. 근육통도 오나 보다. 어제까지 중환자실에 있다가 퇴원한 친구놈이 소고기가 먹고 싶다며 저녁에 먹으러 갈 준비를 하라고 한다. 소고기 생각이 나나 이 ㅁㅊㄴㅇ…
14:30
두통은 잦아들었는데, 몸살기가 오기 시작한다. 다행히도 다른 증상은 거의 없다. 사무실에 다른 직원이 잔여백신을 맞고 많은 증상들을 호소하며 이틀을 쉬었는데, 다른 증상들은 아직이다. 몸살기만 오는 것을 고마워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된다.
16:00
원래 몸이 괜찮다면 이시간쯤 퇴근할 예정이었다. 친구놈은 자는지 연락이 없다. 연락이 없는게 차라리 다행일 수 있다. 점심을 너무 많이 먹어서 저녁 생각이 별로 없다. 이놈이랑 밥을 먹으면 항상 좀 거하게 먹게 되는데… 내 다이어트의 주적이다. 다이어트 라고 할만큼 거창하게 뭔가를 하지도 않지만… 내 몸뚱이 관리의 주적. 온몸에 근육들에 힘이 풀리기 시작한다. 몸이 좀 연체동물같은, 오징어 같은 느낌. 욱신거리고, 흐물거린다. 어제 에어컨을 테스트 해봤는데, 한 10분정도 켜 놨는데도 차가운 바람이 안 나와서 오늘 사람을 불렀다. 나오는 바람이 차갑고 시원한 느낌이 아니라… 그냥 선풍기 비슷한 느낌. 가스가 떨어진걸까 실외기가 맛이 간 걸까. 그러나 컴퓨터에서 뭐가 안될 때 사람 부르면 잘 되듯이, 사람 불러서 에어컨을 켜니 아무것도 안 했는데도 찬 바람이 잘 나온다. 뻘쭘하기 짝이없다. 다행히도 사람 부르는 비용은 금전적으론 무료였다. 비용은 내 뻘쭘함과 무안함 뿐… 차라리 돈을 내는게 낫지….
17:00
친구놈이 자다가 일어났는지 전화가 왔다. 어제까지 중환자실에 있던 놈을 운전하라고 할 수도 없고, 내가 운전할 수도 없다. 와이프에게 운전하라 시키고 밥을 먹으러 간다. 아들 학원으로 먼저 가서 아들을 먼저 픽업하고, 친구 집으로 갔다가 다시 되돌아와서 밥 먹어야 한다. 몸은 점점 안좋아진다. 반건조 오징어가 되어가고 있다. 차 옆자리에 멀쩡히 앉아있는것도 쉽지않다. 창문에 기대 병든 괴물같은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우워워어어어….. 차 창문에 비가 한두방울 맺히기 시작한다. 간호사 썜이 오늘 씻지 말랬는데… 아 벌써 꿉꿉한 느낌이다. 집에 가면 에어컨을 틀어야겠다. 설마 또 찬바람이 안 나오진 않겠지.
18:30
밥을 먹고 나왔다. 밥 먹으러 들어갈 땐 한 두방울씩 왔는데, 먹고 나오니 땅에 빈 부분이 없이 흠뻑 젖어있다. 주차장이 있어 비는 맞지 않았지만 공기는 충분히 꿉꿉하다. 식사는 비용대비 리얼루 만족스럽지 않은 식사였다. 소고기는 역시 전문점에 가서 먹어야 한다. 바로 옆에 전문점이 있는데 거기 갈껄 하는 생각이 든다. 젠장. 그래도 밥을 먹으니 힘이 나…기는 개뿔 점점 더 힘들어진다. 몸이 게속 처지는데 많이 먹어서 그런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냉면은 꽤 먹을만 한데 말이지… 다 먹고 다니 아들이 체리쥬빌레를 먹고 싶다고 하는데 근처에 베라가 없다. 이놈은 누굴닮아서 입이 고급이지… 난 베라는 정말 일년에 한번 갈까 말까인데. 체리쥬빌레보다 사빠딸을 먹어보는게 어떠냐고 하니 고민끝에 결국 체리쥬빌레를 먹겠다고 한다. 사빠딸 맛있는데… 친구가 집으로 배달을 시키고 집으로 가는 와중에 아들이 핸드폰을 음식점에 두고 왔댄다. 와이프가 바로 위치추적으로 확인 해 보는데 꽤 정확하게 좀 전에 식사한 음식점에 있다고 핸드폰의 위치가 뜬다. 이거 인권 침해 아닌가….? 아들이 몇 살 즈음에 이걸 싫어하게 될지 궁금하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아이스크림도 배달이 되고, 핸드폰 위치추적도 이렇게 쉽고 편하게 되다니. 그렇지만 이건 넘나 심각한 인권침해다. 아들이 가능한한 빨리 이걸 싫어하게 돼서 엄마든, 나든 누군가와 논쟁해서 이기길 바란다. 지금은 워낙 어려서 순기능이 많지만, 역기능이 많아질 시기가 곧 올 거다. 엄빠에게 말하지 않고 가고 싶은 곳도 생기겠지. 누군가가 자기를 보고있다는거 자체가 싫어질 시기도 생길거고. 빨리 컸으면 좋겠다.
20:00
친구가 갔다. 비는 오고 차도 안가지고 와서 와이프가 데려다 줬다. 멀지 않은 곳에 사는 놈이라 데려다 주고 오는 이런것이 별로 부담이 없다. 귀찮은것만 빼면. 친구의 통화를 들어보니 친구들이 병문안을 온다고 한다. 어제까지 중환자실에 있다 나온 놈한테 병문안 와도 되나…? 난 이놈이 먼저 먹자고 해서 나간건데… 이거 내로남불인가? 몸은 변화가 없다. 그리 강하지 않은… 약한 몸살증상. 다른 증상이 없고 근육만 아픈 몸살.
22:00
애를 자라고 올려 보내고 밤시간에 뭔갈 하고 싶었는데, 뭘 하긴 커녕 끙끙대다 잠들었다.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길 바라며.
다음날
04:00
일찍 눈이 떠졌다. 눈을 떠보니 와이프는 없고 아들이 내 몸에 자기 몸을 반쯤 올리고 자고 있다. 자던 중에 내려온 모양이다. 한자리에서 좀 잘 순 없겠니… 눈 뜨마다자 미국 CPI를 확인하고, 미국 지수들을 확인한다. 예상보다 높게 나왔으나 시장 반응은 나쁘지 않다. 다행이다. 아들이 내게 몸을 올리고 있는게 불편해서 아들을 저쪽으로 보내며 몸을 뒤척이니, 뒤척이는 동안 다시 가까이 와서 나에게 팔다리를 올린다. 리얼루 껌딱지가 따로없다. 침대에서 나가야지…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 줄 알았던 육신은 자기 전보다 훨씬 안좋아져있다. 살이 어딘가에 닿을 때 마다아프다. 오늘은 침대에 누워있어야 할 판이다. 소파나 의자에 앉을 때 마다 엉덩이가 아프다. 자판을 칠 때 손가락은 안아파서 다행이다. 보통 이런 몸살기가 오면 고열이나 기침, 오한같은 다른 증상을 동반하는데, 딱 근육통만 있으니 생경하다. 주사를 맞은 부분은 멍든것처럼 내 손을 올리는 것 만으로 꽤 욱신거린다.
이러나 저러나 내 몸이 얼마나 지금 얼마나 아프든 간에 백신을 맞은 것 자체는 꽤 만족스럽다. 안도감이 든다고 해야 할까. 항체가 생성될 때 많이 아프다고 하는 것도 나정도면 양호한 수준인 것 같다. 백신 맞고 난 후 많이 아픈것이 두렵거나 하진 않았으나 여튼 다행스럽다.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의 복귀가 기다려진다. 2주정도 후부터는 자전거도 타고 골프도 다시 칠 테다. 이번주 안에 전국민의 20%이상 맞는 것이 확실시 된다는데 참 잘한다 싶다. 빠르게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