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나라는 사람 전체…로 보면 그리 칭찬할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보지만 개별적인 어떤 능력치들을 보면 꽤… 인정할만한 부분이 있는 사람이라고 나 개인적으로는 생각을 하는데 인성적인 부분이든, 능력적인 부분이든 간에 나 전체가 아닌 일부라도 남들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은 굉장히 기쁜 일이다. 언젠가 썼었던, 칭찬은 인생을 바꾼다는 글처럼, 누군가는 별생각 없이 한 말이더라도, 나에게는 굉장히 큰 의미로 다가오는 그런 인정. 의외의 그런 순간.
예전에 대학에 다닐 때, 누가 봐도 고딩때까진 날라리 양아치인 애가 있었는데 대학에 와서는 그런 티를 막 내지는 않고 조용히 학교 다니는 애가 있었다. 뭐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애는 아니지만, 대학엘 들어오면서 자기를 바꾸려고 하는 그런 사람 중 하나. 나는 대학교 다니는 내내 알바 하느라 학업에 그리 크게 신경 쓰지는 못했었는데(그래도 워낙 꼴통 학교라 학점은 꽤 높았음), 그 친구와 어쩌다 보니 시험공부를 같이 하게 된 적이 있었다(어언 18년…19년 전 일이라 세세한 부분까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행히도 시험을 잘 봤다. 나중에 그 친구와 잘했다 수고했다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데 내가 ‘네 덕분이지~’라는 말을 무심결에 했었나 보다. 뭔갈 의식하고 한 말이 아니었다. 그 말이 아부였거나 입에 발린 말도 아니었고 거짓말도 아니었다. 그때 내가 한 말이 나에겐 어떤 의미가 있는 말이 아니었다. 그냥 반쯤은 인사치레로 한 말. 그 친구가 그때 굉장히 기쁜 표정을 지었던 것 같기는 하다. 그리고 난 그 이후 그 친구의 요즘말로 소위 ‘인싸’무리에 들어갈 수 있었다. 딱히 들어가고 싶던 건 아니었지만.
그전에는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는데, 그 친구의 ‘무리’가 내가 알바하는 호프집으로 와서 친구들과 술을 먹는 일이 꽤 잦아졌다. 내 입장에서야 일이 많아져서 기분 좋게만 보기에는 어렵지만, 여튼 그렇게 오는 건 굉장히 반가웠다. 자기 친구들에게 일일이 날 소개하며 웃고, 학교에서도 날 볼 때마다 항상 크게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인사하고 내가 못 보면 저 멀리서부터 뛰어와서라도 인사하는… 그런 관계로 꽤 오래 지냈다. 성격 자체가 많이 다르고 내가 붙임성 있는 성격이 아니라 막 친하게 지내진 않았지만. 그 친구가 군대 가기 전에 그 ‘무리’와 함께하는 모임에서 하는 말이 그때 그 덕분이라는 말이 자기에게 너무 크게 다가왔다는 거다. 공부로는 여태 한 번도 누구에게 그런 말을 받아본 적이 없던 친구인데, 남들은 모르겠지만 그 시험을 위해 자기 딴에는 정말 많은 노력을 했었다는 것. 그 시험에서 나에게 도움받은 부분도 분명히 있는데, 개인적으로 잘 알던 것은 아니었지만 나를 본인이 어느 정도 인정하는.. 좋게 생각하던 사람이었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굉장히… 너(나)는 별 의미 없이 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자기(그 친구)에게는 정말 큰 의미였다며 그 이후로 정말 그전까지와 자기 자신을 바꾸려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 나는 그때까지도 얘가 나 같은 사람이랑 왜 어울리는지 몰랐다. 그러면서 자기 군대 가도 얘랑 밥 같이 먹고 잘 해주라는 말을 자기 친구들에게 하는데 솔직히 꽤 고마웠고 감동받았다. 군대 가는 시기가 맞지 않아 그 이후로 멀어지고, 그 친구를 이후로 몇 번 보진 못했으나… 그 일 만큼은 꽤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인정받는다는 건 어쩌면 굉장히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어느덧 11년 차. 만으로 10년을 다 채워가는 회사에서 동료(부하) 직원들에게 능력적으로든, 인격적으로든 인정받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굳이 회사 내부만으로 한정 짓지 않더라도 일로 만난 사람들이지만 시간이 쌓이며 사적인 관계가 된 사람들이 몇 있는데 그런 사적인 관계는 당연히… 업무적으로 그들에게 인정을 받고 나서야 될 수 있는 관계일 거다. 갑을 관계에서는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만. 협력사에서 인연이 돼서 친해진 사람들끼리는 굳이 서로 말로 하진 않더라도 알고 있다. 업무적으로 나는 너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사적으로 친해졌으니 그런 말을 하기는 낯간지러운 일이기도 하고. 그런 말을.. 그러나 그런 말을 굳이 말로 듣는다는 것은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든 즐거운 일이다. 혹여 상대가 입에 발린 말로 했다고 하더라도.
어제 미팅이 있어 협력사의 임원분과 이야기하며 차를 마셨는데, 나는 누군가와 친해진다거나 미팅의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 듣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인데, 어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 개인적인 고민을 이야기하게 됐다. 그분이 나를 좋게 보고 있다는 것도 굳이 말로 하지 않았으나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나 행동 등에서 익히 알고 있었다. 이건 꽤 오래 묵은 고민인데 나는 이쪽 업계에서는 이상하다고 생각을 할 수도 있을 만큼 한 회사에서 오래 일을 하고 있다. 보통 길어야 4~5년 정도 한 회사를 다니는 게 이쪽 업계에선 일반적인데 나는 햇수로 11년째. 다음 달에 만으로 10년을 꽉 채우게 된다(2011년 8월 1일 입사). 이렇게 한 회사에 오래 다니다 보니, 업무적으로 알다가 가깝든 멀든 사적인 관계가 된 사람들이 이직하는 것을 꽤 많이 보게 되는데, 한 분은 벌써 몇 번째 옮기기도 하고… 그런 분들을 보게 되면 나만 좀 정체되어 있는 느낌을 지우기가 힘들다. 흐르지 못하고 고여있는 느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렇게 이직한 사람들보다 금전적인 대우를 못 받는다거나 근무 조건이 안 좋다거나 한 것이 아니다. 되려 매우 훌륭한 편. 그런 분들에게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다들 손사래치며 ‘벽에 똥칠할 때까지 다니세요…’라는 말을 하곤 한다. 밑에 직원 뽑거나 어디 갈 때 이력서 넣어야 하니까 자기한테 꼭 말해달라는 말을 덧붙이고. 여튼 내가 지금 회사에서 많이 오래되기도 했고 어떤 인정을 받는 상황에 있다 보니, 의도적인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지만 회사가 어느 정도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부분도 있으니 솔직히 일하기엔 굉장히 편하다. 권한도 많이 주어져있고. 그러다 보니 이런 어느 정도 편한 상황에 젖어서 가끔이라고 말하기엔 낯부끄러울 만큼 자주 나태해지기도 한다.
요는, 나도 이 회사에서 은퇴가 가능한 것은 아니고 언젠가는 다른 회사에 가게 될 텐데 이직하는 사람들 보면 어느 정도 부러운 마음도 있고, 내가 못 해본 일이라 두렵기도 하다. 내가 다른 회사 가도 잘 할지도 모르겠고 그냥 내가 다른 회사에 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고, 가서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고 하는데 그분이 웃으시며 하시는 말씀이 ‘유차장님은 어디 가서도 잘 하실 거예요. 자기가 본인을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 저는 유차장님이 가지신 능력을 높게 보거든. 농담도 잘 하시고 아무랑 이나 이렇게 얘기 잘 나누는 거 쉬운 일 아닌데 굉장히 잘 하시거든요. 이런건 훈련으로 되는것도 아니고’ 라고 하시며 본인이 회사 옮기던 말씀이랑 한 회사에 오래 다닌 친구분 말씀을 해 주시는데 굉장히 위안이 되는 말씀, 현실적인 조언을 해 주셨다. 친한 사람들에게 듣는 거랑은 조금 다른 위안. 그런 말씀을 해 주시는 것이 좋었다. 이런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내 삶에 있어서 어떤 ‘덤’이겠지만, 이런 ‘덤’ 덕에 사는 맛이 난다. 어제는 참 오랜만에 즐거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