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게이고의 추리소설 이라고 해야하나. 본격적인 추리소설이라고 하기엔 이번 소설의 추리 난이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굉장히 드물게 작가와의 추리대결에서 승리한 그런 느낌… 이지만 이번 책은 일부러 좀 이기게 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작가와 독자 사이의 추리 대결이 이 책의 주 목표가 아니라 그것은 그냥 곁다리. 주 목표는 법으로 정한 공소시효가 아닌 각자 기준에서의 공소시효. 흡사 광신도와같은 적개심으로 가득찬 정의감. 각자의 기준에서의 용서와 속죄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 꽤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캐릭터의 다양한 상황에 이입하여 매우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사형… 에 대한 찬반이라고 해야할까 피해자와 가해자 공권력등에 대해 각각의 입장에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는데 바로 전에 읽은 책 ‘어떻게 일할 것인가’ 에서도 사형에 대해 (주로 의료인의 입장에서) 굉장히 심도 있게 다루는데 그것과 맞물려 더 개인적으로는 더 깊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에서 연결되는 것이 나오면… 이야기들이 맞물리며 생각이 확장되는것이 굉장히 즐거운 경험이 된다.
마치 영화 ‘시빌 워’ 처럼 작가가 사형제도에 대해 의견이 나뉘도록 의도했다고 생각할만큼 등장인물들이 입체적으로 다뤄지는데(강경 비건들에게 면전에서 쌍욕하는 캣맘 정도의 입체감) 그런 배치도 좋았다. 이 작가의 책은 굉장히 다작을 함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책이 모두 다른 형태의 즐거움을 준다. 정말 굉장하다고 생각한다. 이 작가의 책은 한번 잡으면 몇일 걸리지도 않는다. 지금까지 모두 그랬다. 이 작가의 책은 잡고 난 후 다 읽는데까지 48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쓸데없는 묘사가 장황하지도 않고, 쓸데없는 곁다리 이야기들로 이야기의 흐름을 끊지도 않고, 이야기를 빙빙 돌리며 쓸데없이 분량을 늘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어떤 주제의식… 생각할 만한 거리를 항상 이야기 안에 잘 녹여서 이야기 자체에서 주는 즐거움 뿐만이 아니라 그런 철학적인 생각들로 독자들의 세계를 넓혀주는지… 오래 작가생활을 하다 보니 이런 글을 쓰게 되는 것인가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어서 오래 작가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인가. 질투, 경외심, 부러움등 작가 개인에 대해서도 많은 복합적인 기분이 든다. 대단하다. 부럽다. 나도 언젠가 읽는 사람에게 이런 다양한 형태의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어진다.
이 작가의 책은 가장 맛있는 것을 아껴먹는 유아적인 마음으로 아껴가며 볼 예정이다. 모든 책들이 이렇게 재밌다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면 책값을 감당할 길이 없을 것 같아 동시에 걱정도 된다. 이렇게 재미있을리는 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려나.